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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은, 다행히 길지 않았다. 론은 생각보다 일찍 사정했다. 론이 긴 한숨을 쉬며 몸을 떼어낼 때 시오 헤이브는 다리 사이로 무엇이 미지근하게 타고 내리는 느낌에 짧은 숨을 들이켰다.
“시오 헤이브? 다, 다리가?”
시오 헤이브는 다리를 고스란히 벌리고 늘어진 채, 목구멍에서 울리는 깊은 소리를 삼켰다. 론은 그제야 시오 헤이브가 이상한 자세로 왼쪽 다리를 벌리고 기대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겁게 갈라진 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외. 왼쪽 다리가 아까부터…….”
반항이 멈췄던 게 그래서였군. 읍, 스승의 입에서 짤막한 소리가 흘렀다가 급하게 사라졌다. 시오 헤이브는 통증으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떨어진 속옷을 주워 입고 애써 구겨진 수사복을 정돈하려 했다. 그러나 보라색 수사복은 이미 찢어진 데다 혈흔까지 배어 있었다. 론이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순간 시오 헤이브는 매섭게 그것을 쳐냈다. 론은 망연히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론.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오 헤이브의 마른 음성은 괴이할 정도로 담담했다. 그는 뒤틀어진 왼쪽 다리 대신 한쪽 팔을 벽에 짚고 서서 차분하게 물었다.
“저를 사랑하신다 했습니까?”
“사랑합니다.”
그런 돈 안 드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론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끌어안았다. 그러나 시오 헤이브는 통증으로 인해 몸을 움찔할 뿐 마주 안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꺾이지 않은 한 팔을 들어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지독한 통증이 일었는지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사랑해서 이런 행동을 하신 거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놀라신 거 압니다. 못할 짓을 한 것도 압니다. 용서를 빌지도 못하겠지만…….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론의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저도 모르게는 무슨. 사랑은 무슨. 섹스는 원래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시오 헤이브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는 어제 제게, 제 감정에 대해 대답해달라 하셨습니다.”
론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이건 무슨? 벽에 기대선 사내의 음성이 더욱 차분해졌다.
“지금의 이 행위가 사랑에서 나온 거라면……. 론,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론의 눈이 벌어졌다. 왜 당황하지 않지? 왜 파계했다고 좌절하지 않지? 왜 이런 엉뚱한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의 감정을 모르고 시작한 게 아닌데!
“저를 끌고 나가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신 거라 믿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진 않으셨을 거라 믿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는 말도 믿겠습니다. 다만, 이 행위를 견딜 수 없는 걸 보니,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제 이곳에 오실 필요 없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시오 헤이브!”
“잠시 후면 일행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 안에는 계를 담당하는 운트 위비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짓을 한 걸 알게 되면 운트 위비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당신을 잡아낼 것입니다. 워프 게이트를 열고 오미크론 행성 쪽으로 휘하의 부대를 풀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비밀리에 이곳으로 다시 끌려오는 모습 따위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철벽같이 견고했다. 론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당신은 현재 파계 상태 아닌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 그러나 시오 헤이브의 마지막 말엔 오히려 처연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강제된 행위였음이 입증될 경우, 파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걸 모르셨던 게 유감입니다, 론.”
드디어, 턱 끝으로 핏물이 섞인 눈물이 맺혀 떨어졌다. 론은 결국 입술을 깨물었다. 이유를 알고 있었나. 하지만 시오 헤이브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차라리 나를 미친 듯이 욕하고 후려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론의 목소리가 낮게 잦아들었다.
“미안합니다. 시오 헤이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속이 아팠다. 아플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일이 안 풀리면 화가 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다. 론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강제로 범한 상대에게 마음 아파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뒤처리는 제가 혼자 하겠습니다. 속히 나가서, 동료들과 함께 이 섬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운트 위비나 시아 리는 행동이 빠른 사람들입니다.”
그는 론이 가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의 인사도, 그의 사과도, 거멀거멀 젖은 그의 눈동자도 보지 못한 채, 휘청대고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수습했다. 론의 흔적이 직장 내에 남아 있으면 곤란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며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핏물이 섞인 액체를 긁어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미끈미끈한 느낌은 끝도 없었다. 으으윽, 왼쪽 다리가 혼이 나갈 만큼 쑤셨다. 한쪽 팔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샤워기의 물이 얼굴 정면으로 쏟아졌다. 그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8. 별리


시오 헤이브는 허벅지를 관통하는 극심한 통증에 몸을 크게 뒤챘다. 아아! 아아아! 누가 마스터 허리하고 이쪽 다리 좀 잡아! 시아! 시아! 알파! 다급한 목소리는 페르 케프터다. 다시 한 번 엉치뼈 쪽에서 으스러지는 듯한 아픔이 이어졌다. 와아악! 혼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제기랄! 어느 찢어 죽일 놈이 겁대가리도 없이 몽크 마스터한테!”
페르 케프터가 이런 막말을 하는 건 드문 일인데. 시오 헤이브의 머릿속이 빙 돌았다. 살갗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등짝이 아리도록 차가웠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통증 때문에 쇼크가 왔었지. 잠깐 정신을 잃었나.
페르 케프터는 탈구된 고관절을 맞춘 후, 부러진 팔에 부목을 대고 수건으로 고정시켰다. 하지만 늑골도 만져보니 느낌이 좋지 않다. 얼른 의료실에 가서 늑골을 촬영하고 처치해야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페르 케프터는 작은 눈을 완강하게 찡그렸다.
화장실에서 샤워하다 쓰러진 시오를 발견하고 실색한 것도 잠시였다. 문제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은 금방 알게 되었다. 항문 쪽의 출혈을 알아챈 것은 운트 위비였다. 다발성 치열 흔적이 발견되었다. 온몸에 골절, 타박상까지 있었다. 특히 고관절 탈구는 어지간히 힘을 주어 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부러진 팔다리를 질질 끌고 몸을 씻고 있었다. 상황을 보면 시오 헤이브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너무 뻔했다. 알파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시아 리는 단추 구멍만 한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워치케 이른 숭헌 일이 여서 일어나는겨. 붙잡히기만 혀, 고자럴 만든 담에 사지육신을 쭉쭉 째놓을라. 언놈이여, 대치, 언놈이 여길 드와서 이따우 숭악헌 짓을 허구 튄겨!”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아직 연구실인가? 처치를 하느라 탁자 위로 옮겨놓은 모양이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에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입술을 움직여보았다.
“괜찮습니다.”
“시오! 정신이 들었어? 정신이 들었습니까? 괜찮습니까!”
알파는 거의 울부짖듯 했다.
“옷, 좀 주십시오. 한기가 듭니다. 괜찮습니다. 괜찮…….”
괜찮을 리가 없다. 다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간신히 일어나 앉은 사내는 서둘러 소매에 팔을 끼웠다. 성한 팔도 버들버들 떠는 꼴을 본 알파는 속이 뒤집혔다.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죽여놓고 말겠다. 시아 리가 그를 부축해서 푹신한 의자에 앉혔다.
“누굽니까.”
운트 위비였다. 내내 말이 없던 그는 시오가 눈을 뜨자마자 얼음 같은 소리로 추궁했다.
“모, 모릅니다. 운트 위비.”
“눈이 가려진 상태였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운트 위비. 그보다… 잠시만 혼자 있고 싶습니다.”
“누군지만 말씀하시면 혼자 계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습니까?”
“잠시만…….”
시간이 얼마 흐른 것 같진 않았다. 론이 빠져나갈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검사를 받거나 운트에게 시간을 끄는 동안에라도.
“강간은 태형, 파계와 추방뿐만 아니고, 죄질에 따라 종신형이나 거세형도 가능합니다. 누굽니까? 인상착의는 어떻게 됩니까? 범인이 멀리 벗어나기 전에 말씀해주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검은 머리 사내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파계승들의 킬러. 그는 언제나 가차 없는, 계의 집행자였다.
“답을 피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몽크 마스터.”
“그만해, 운트. 지금 마스터의 상태나 보고 닦아세우라고!”
“운트, 이 멍청한 놈. 마스터는 지금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다. 냉큼 안 비켜?”
알파와 페르 케프터가 그를 막아섰다. 하지만 계율 담당 대수사는 엄중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범인을 비호하시는 겁니까, 시오 헤이브? 당신은 피해자이긴 하나, 말하지 않으면 위증과 범인 은닉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은닉의 죄는 추방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결코 죄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천하 없이 숭악헌 눔. 야 후레자식아, 니가 워치케 지금 이분헌티 그런 말을 허는겨. 지금 충격으루다가 골이 훌떡 뒤집히신 거 안 보이는겨?”
알파나 페르 케프터도 이글이글하는 눈으로 운트 위비를 노려보았다. 지금 상황이 보이지도 않나, 감정도 눈치도 없는 놈. 그러나 탁자에서 간신히 일어나 옷을 걸쳐 입은 사내에게선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사람의 표정이 아연했다. 운트 위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단말기를 열었다.
“운트 위비다. 현재 시각으로, 힐링 마운틴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한다.”

* * *

론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누르고 숙소로 되돌아왔다. 자신이 사라진 것도 모르는 채, 레암은 다시 곯아떨어져 있었다. 자신이 데리고 온 동료들은 겨우 하나 둘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채근해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녀석이 더 많았다. 그는 지근대는 머리를 눌렀다.
강간이 파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 몰랐다. 제기랄. 생각을 조금만 해봤으면 당연한데. 순결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발 의지로 금욕을 지켜내느냐가 중요하기에, 의지에 반해 일어난 행위는 파계 사유가 될 수가 없는 거였다. 그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동안 동료들이 하나씩 멍한 얼굴로 일어나 앉았다.
“론 소위? 오늘 간단 말 안 했잖아.”
“아, 스승님께서 바빠서 미안하다고, 시간 내기 어렵다고 전언을 주셨어.”
“…에라이, 김샜군, 그 유명한 몽크 마스터 얼굴이라도 좀 구경할까 했는데. 역시 비싼 값을 하시네.”
“그래 봤자 늙은 영감 아닌가? 넬 켄티 중장 나으리하고 비슷하지 않겠어?”
론은 조금 불쾌한 기색으로 내뱉었다.
“그 정도 영감은 아니야. 나름 볼 만해. 근육도 탄탄하고, 젊어 뵈고, 사나이답지.”
마음이 납처럼 무겁다. 이 감정이 생소하다. 그나저나 어찌한다? 핏물 섞인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는 자신을 걱정했다. 빨리 빠져나가라고 했다. 물론 론 자신도 운트 위비의 냉혹함이나 시아 리의 불같은 성정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실책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더 정확한 정보를 알아냈어야 했다. 팔케 대수사 파계 이야기와 뜬금없이 떠오른 그의 신음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게 틀림없다.
“늦기 전에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베르크 소위, 다들 좀 깨워 봐.”
“론 소위, 저놈들 뻗은 거 봐. 독한 럼으로 나발을 불었다고. 내일 가든가, 업고 가든가 해야 할 거 같은데?”
그가 동료들의 침대 위로 가서 얼굴을 툭툭 치는 동안, 회색 수련사복을 입은 사내가 문을 두드렸다.
“죄송하지만 현재 시각으로 운트 위비 대수사님께서 섬 전역에 봉쇄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섬에 계시는 모든 분은 당분간 출국이 금지됩니다.”
“뭐?”
론의 눈이 커졌다. 운트 위비, 행동이 빠르다더니 거짓이 아니었군. 일이 더럽게 되었다. 그는 보이지 않게 눈을 찡그렸다.

* * *

시오 헤이브는 론과 그의 일행이 여전히 섬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시선을 천장으로 올렸다. 때를 놓쳤군. 속이 타는 것 같아 깊이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의 몸에서 그의 정액이 검출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트 위비는 갱도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된 수사들을 쥐 잡듯 다그치고 있었다.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한 수사들은 밤새 조사를 받아야 했다. 무슨 일인지는 대수사급 외에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섬은 이미 발칵 뒤집혔다. 운트 위비는 이틀간 연속으로 밤샘 조사를 한 뒤 병실로 들어섰다.
“출입이 허가된 수사 중에서는 혐의자를 찾기 어렵습니다. 범위를 넓혀 출입불가 수사들과 외부인들에게까지 조사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운트 위비, 현재 국빈이 와 계십니다. 세케르스 통령 일행까지 잡아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임관을 앞둔 소위도 있습니다.”
시오 헤이브는 속이 바작바작 말랐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랜드 몽크 마스터.”
“…….”
“어째서 누군지 말씀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당신이 상대방을 알고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나가서는 안 될 높은 직책의 수사입니까?”
“…….”
“당신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매우 부적절합니다. 이런 식의 행동은 범인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범죄자의 비호 역시 벌이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처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히, 존경하는 몽크 마스터, 당신께는 더더욱.”
운트 위비는 냉철하며 몹시 무감한 사내였으나 시오 헤이브 개인에 대한 충성도는 놀라웠다. 그는 시오 헤이브까지 처벌하는 상황만큼은 끝까지 피하고 싶어 했다.
“운트 위비. 제가, 은닉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 안 되겠습니까?”
운트 위비의 표정이 미미하게 구겨졌다.
“가볍지 않다 했습니다. 태형 30대에 자계실 3일 감금, 재서원이 요구됩니다. 왜 피해자인 당신이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자는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시오 헤이브는 억지로 침대 위로 일어나 앉았다. 한쪽 팔이 석고로 고정되어 있어 움직이기 불편했다. 그는 운트 위비 앞에 무릎을 접고 그대로 고개를 수그렸다.
“부탁합니다, 운트 위비. 더 이상 사건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시는 이런 청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트 위비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분이 내게 이렇게 애걸하기까지 하나. 이럴 일이 아닌데.
“당신이 왜 이러십니까. 혹시 당신 역시 그 범인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겁니까?”
시오 헤이브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할 것이다. 앞으로는 그를 보지도 아니할 것이다.
“이 사건이 커지는 것 자체가 제게 너무 큰 치욕입니다. 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수치입니다. 제발, 그만해주십시오. 운트 위비.”
검은색 머리카락이 아래로 푹 흘러 떨어졌다. 운트 위비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이유라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다른 이 같으면 어림도 없겠으나, 시오 헤이브는 운트 위비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내였다. 다만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없는 일로 덮지는 못하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안경을 벗어든 그는 피곤한 듯 눈을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무슨 말이야! 운트, 미쳤어? 태형에 재서원? 자계실에 3일 수감? 그는 피해자야! 몽크 마스터라고! 잊었어?”
알파는 시퍼렇게 질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잡으라는 범인은 안 잡고 이게 무슨 기가 막힌 결정인가. 하지만 운트 위비는 그 일 이후로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붉은 머리 수사가 그의 멱살을 잡아챘을 때, 페르는 황급히 그를 뜯어말렸다. 그러잖아도 아까 시아 리도 와서는 운트 위비에게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며 난리를 친 뒤다. 페르 케프터에게 시오 헤이브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알파는 이를 부득 갈아붙였다. 시오나 운트 위비나 다 똑같은 멍청이 개자식들이다.
태형은 다음날 오후에 집행되었다.
태형 30대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운트 위비와 7인 위원회 중 일부가 형 집행을 참관했다. 태형이 5대가 넘어가면 의료팀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알파는 차마 집행을 참관하지 못하고 밖에서 발을 구르며 서 있었다. 짜악, 딱, 짜악, 찢어지는 파공음과 이따금 터지는 가는 쇳소리에 그는 귀를 틀어막았다.
“알파 대수사님.”
눈부시게 하얀 머리카락. 론이었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네놈도 걱정되어서 와본 건가? 어떻게 알았어?”
“레암에게 들었습니다. 지금 스승님, 여기 계시는 겁니까?”
알파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따악, 하는 소리가 째지게 울렸다. 다시 짧게 갈라진 신음이 새어나왔다. 론은 주먹을 꾹 우그렸다.
론은 레암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태의 추이를 파악해나갔다. 시오 헤이브에게서 아무것도 검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영감이 그 와중에 뒤처리는 제대로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일인지 범인을 알면서도 끝까지 숨겼고, 결국 태형과 수감, 재서원이라는 징계까지 받게 되었다는 말을 듣자 속이 쑤시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하니 그리했겠지. 천만다행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거북함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곁에 서 있던 알파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괴로운 듯 귀를 틀어막았다. 이 시간이 너무 길었다. 론은 자리에 서서 입술을 짓씹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러지? 이 빌어먹게 생소한 감정, 이 불편함은 대체 뭐지?
이건, 자책일 뿐이야, 제기랄. 론은 눈꺼풀을 지그시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