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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아침에 힐링 스톤이 상당량 검출되었다고 했다. 채굴을 맡은 수사는 로또 대박이라도 맞은 얼굴로 페르 케프터에게 보고를 올렸고, 시오 헤이브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탄광으로 달려갔다.
시아 리가 옆의 연구실과 통하는 문에서 밀짚 색깔의 머리통을 비죽 내밀었다. 오늘은 곱게 쫑쫑 세 갈래로 땋은 머리채다. 그는 군사와 무기를 전담하는 자였고, 어마어마한 덩치에서 뿜어내는 위용과 박력이 엄청났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취미는 긴 머리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꾸미는 일과 손금을 봐주는 것, 혹은 찻잔을 들여다보며 사랑점 따위를 쳐주는 일이었다. 친한 사이라면 노상 그의 사투리 섞인 음담패설에 시달려야 했는데(자계실에서 몇 번이나 혼쭐이 나고도 그 버릇은 여전했다) 정작 시아 리 자신은 여자 손목 한 번 못 잡아보고 섬에 들어온 맹탕이었다.
“헤이, 마스타 지금 오셨슈? 워치케 이르케 늦으셨슈. 대박이 났으믄 짤을 치다가도 바루다가 튀어나오셔야쥬. 지는 잠옷 입은 채루다가 나왔는디유.”
뭘 하다가도 튀어나오라고? 시오는 얼굴을 찡그리다가 말을 삼켰다. 덩치 큰 사내의 자주색 수사복 아래 비죽 잠옷 바지가 보였다. 머리 땋을 시간에 잠옷이라도 갈아입고 오면 되지.
“아, 예. 시아 리, 늦어서 미안합니다. 볼 일이 잠시 있었습니다.”
“워치케 눈뎅이가 밤탱이가 됐슈? 워떤 직일 놈이 쳤습듀?”
“…아닙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얼래 이건 또 머여. 언 눔이 찌인허게 뽀뽀라두 혔습듀? 입 옆댕이 뻘건 자죽은 대체 뭐래유? 아항, 그려서 잠을 설친개뷰. 꿀잠을 자두 모자를 생치 연령 24세 아닌개비유? 어따어따 뭘 또 숭허게 가리고 그러신대유. 몽크 마스타?”
“무슨 자국입니까? 전염병은 아닙니까? 공기 감염 위험은 없습니까? 면도를 잘못해서 생긴 모낭염이나 접촉성 피부염, 구강 주변 여드름이라면 개의치 않겠습니다. 그러나 전염성이 강한 헤르페스 바이러스나 매독, HIV바이러스의 경우라면…….”
지금 막 들어온 운트 위비가 억양이 없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시아 리 대수사, 제발 좀! 운트 위비! 여기서 그런 병이 왜 나옵니까? 몽크 마스터 어디 다치셨습니까?”
이번엔 붉은 머리 대수사가 와르릉댔다. 시오 헤이브는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곁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맙소사.”
입술 가장자리엔 어젯밤에 론이 만든 벌그레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마가 꾸욱 접혔다. 수돗물을 틀고 입술을 세게 문질렀다. 지워져라. 없어져. 어젯밤의 기억도 이제 그만 사라져라.
…아무래도 만나면 안 될 것 같다. 미안하다. 론.
그는 천천히 론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그리도 보고 싶었던 제자. 이젠 곁에 있으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특히 어제 있었던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전송을 알리는 삐잇 소리가 들렸다. 그는 단말기를 닫고 입가의 붉은 자국을 세게 문질렀다.
삐잇.
메시지 창에 무엇인가 글이 떴다. 소파에서 깜박 졸던 론이 화들짝 몸을 세웠다.
시오 헤이브입니다. 바빠서 뵙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처럼 오셨는데 이렇게 되어 매우 유감입니다. 소위 임관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강녕하시길 기원합니다.
피하신다 이건가? 론의 눈썹 꼬리가 위로 확 솟구쳤다. 망할, 정말 이러기야? 완고하고 딱딱한 척하지만 사실은 물러 터진 겁쟁이 영감 같으니. 눈동자가 번들번들 빛을 뿜었다.
“당신이 이따위로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어, 시오 헤이브. 당신을 끌어낼 방법은 많아.”
그는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다. 맞다. 실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하지만 꽤 위험할 듯도 한데. 표정이 신중해졌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뭐든 걸고 모험을 해야 한다. 그 정도는 잘 알아.
예전에 들었던 그의 나직한 신음이 떠올랐다. 그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욕이 돋는 스타일도 전혀 아니다. 론은 능숙한 섹스 파트너를 좋아했다. 다만, 기억 속에서의 그의 신음만큼은 머리꼭지가 휙 돌아갈 만큼 자극이 컸고, 늘 그것이 의아했다.
“제길, 왜 하필 지금 그 생각이 나는 거야. 난 서툰 쪽은 질색이고 게다가 끔찍하게 근육질인데.”
하지만 생각할수록 그럴듯하다. 나쁘지 않은 경우의 수.
시오 헤이브. 당신이 말야, 아까 재판정에서 본 니코스 팔케 대수사 같은 경우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어? 부인할 텐가, 인정할 텐가?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혼자 플라잉 소서 주차장으로 나갔다. 힐링 스톤 탄광 입구가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안다. 다만 출입을 허가받지 못한 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잠금장치가 되어 있다. 그러나 눈치 빠르고 감이 좋은 론은 비밀번호 따위 진작 꿰뚫고 있었다. 시오 헤이브는 이런 곳에서 가끔 허술했다. 모든 곳에서의 비밀번호가 대동소이했다. 위이잉, 플라잉 소서가 낮은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딸그락. 겨우 너댓 번이나 시도했을까? 16자리의 긴 암호가 수월하게 풀렸다. 무거운 격벽이 끄리리릭 소리를 내며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가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끌고 나가 주지. 이곳에 발붙이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는 줄 아나? 시오 헤이브.
나는, 당신이 필요해. 킹 메이커로서의 당신이.
새하얀 제복을 입은 은발의 사내가 어두운 갱도 안으로 천천히 발을 디뎠다. 사냥을 앞둔 맹수처럼 가늘어진 붉은 눈이 앞을 응시했다.
모여 있던 대수사들이 채굴을 맡은 담당 수사의 뒤를 따라 수직갱으로 따라 들어갔을 때도 시오 헤이브는 연구실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힐링 스톤의 파장 방사 형태를 재확인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핑계였다. 아까 론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나니 기운이 다 빠져나갔던 것이다.
조용하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엔 개미 한 마리 얼씬대지 못할 것이다. 후우. 시오 헤이브는 책상에 앉아 기운 없이 머리에 손을 짚었다.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늘 만나지 않으면 론은 바로 임지로 떠날 테고, 그러면 앞으로 얼굴 볼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다시 입술을 후려치고 지나가는 혓바닥의 뜨끈한 감촉이 되살아났다. 등 뒤로 주르르 소름이 돋았다. 발끝까지 저릿한 느낌에 그는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머리를 깊이 수그리고 중얼거렸다. 나는 시오 헤이브. 감정의 통제에 익숙한 자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감정은…….”
“웃기고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이 뭐요? 시오 헤이브?”
하얀 제복을 입은 사내가 얼음 같은 오연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오 헤이브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몽롱하다. 그가 왜 여기에 있을까? 아니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걸까? 말은 한마디도 나가지 못했다. 눈만 크게 벌어졌다.
“이것이 힐링 스톤입니까, 그 유명한?”
그는 무심한 듯 보안 유리 안에서 구형을 이루고 있는 검은 발광체를 들여다보았다.
“당신과 그 뛰어나다는 수사들이 매달려서 인생을 바치면서까지 이루어내고 있다는 게 요 조그만 돌덩어리입니까? 왜요, 이걸 연구해서 전 세계 신민들을 불로장생이라도 시키려고요? 꿈도 참 위대하십니다, 시오 헤이브.”
퍼뜩, 정신이 되돌아왔다. 시오 헤이브의 완강한 음성은 이럴 때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여긴 그대가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론은 대답하는 대신 스승을 힐난했다.
“대체 남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이 고마워할 줄 압니까? 아니, 그게 재앙이 될지 축복이 될지는 또 어찌 안답니까? 당신의 인생이 아깝지도 않습니까?”
“말을 삼가십시오. 저와 이곳 수사들은 인류를 위해 위대한 가치에 헌신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이곳에서 나가지 않으면, 오늘부로 이 섬에서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당신이 만나주지 않겠다고 해서, 오늘 내로 나갈 참이었습니다.”
“…….”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너무 야박하신 것 아닙니까?”
“이유는 그대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그대를 가르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론.”
뒤집히는 속을 내색하지 않으며 그는 굳은 얼굴로 작별을 청했다. 론은 비죽 웃었다. 여전히 눈부신 웃음. 시오 헤이브는 속이 뜨끈뜨끈해서 시선을 책상으로 떨어뜨렸다.
“어제… 있었던 일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취중 실수이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론이 소리 내어 웃었다. 작게 클클대는 소리에서 시작한 웃음이 점차 커졌다. 흐하, 하하, 하하하. 와하하하!
“재미있군요, 시오 헤이브. 키스한 거 말입니까? 사랑 고백한 거 말이에요?”
“…….”
“어쩌지요, 시오 헤이브? 전 그 일을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론!”
“있던 일이 어찌 없던 일이 되며, 표현하지 않는다 해서 존재하는 감정이 어찌 없어지겠습니까? 내 감정이든, 당신 감정이든, 엄연히 속에서 들끓고 있는 건 잘 아실 터인데?”
“됐습니다. 계속 그런 말을 하실 거라면 나가서 보안 부대를 끌고 오겠습니다.”
단호하게 일어서는 스승을 보며 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시오 헤이브라면 이렇게 반응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극단적인 방법 말고는 답이 없다.
그가 론을 스쳐 지나가 문 곁으로 다가가는 순간, 론은 그의 긴 머리채를 잡아채 땅바닥에 잡아 눌렀다. 콰작,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친 모양인지 아윽, 하는 쉰 듯한 신음이 크게 올라왔다. 잔뜩 구겨진 이마를 보니, 놀랐다기보다 일단 심하게 아픈 모양이었다.
“당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은! 저따위 같잖은 것에 엄청 고귀한 환상을 만들어놓고 갇혀 있어. 다른 놈들까지 떼로 싸잡아서 말이야. 웃기지 마시지.”
론의 얼굴이 차가우면서도 이글이글 열기가 넘치는 기이한 야수의 것으로 표변했다. 그가 가진 진짜 얼굴 중의 하나. 그의 눈 속에서 열기와 광기, 미칠 듯한 집착과 소유욕이 오랜만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시오 헤이브는 머리의 통증이 가시자마자 무릎을 세차게 올려 자신을 잡아 누른 사내의 옆구리를 찍었다. 허억, 순간적인 공격에 론이 몸을 구부리고 기침을 했다. 하지만 깔린 사내는 다시 머리채를 잡혔다. 얼굴이 그대로 맨바닥에 처박혔다. 와악, 고개를 위로 쳐드는 순간 아래로 핏방울이 투둑 떨어졌다. 코피가 터진 모양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론! 당장 비켜주……. 아윽! 아아윽!”
시오 헤이브가 몸부림쳐 벗어나려 할 때, 그를 잡아 누른 청년이 있는 힘껏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옆으로 확 돌아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콰악, 이번엔 왼쪽 갈빗대가 부서지는 듯이 지독하게 아팠다. 시오 헤이브는 이를 악문 채, 주먹을 쥐고 그의 복부를 힘껏 내갈겼다. 아윽, 이번엔 은발의 제자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퍽, 퍼억. 시오 헤이브 역시 주먹 힘이 무지막지했다. 론은 화닥 뒤로 물러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늑골이 하나 부러진 것 같았다. 시오 헤이브의 얼굴은 벌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한쪽 팔도 불편한지 다른 팔로 움켜잡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론. 미쳤습니까? 지금 무슨 짓을!”
모르겠어? 시오 헤이브? 모르는 척하는 건가? 소리치려는 순간 으으윽, 가슴 부위의 통증이 심해졌다. 론이 앓는 소리를 할 때 시오 헤이브는 눈을 크게 떴다. 혹시 크게 다쳤나? 멈칫 다가가는 순간 론의 발끝이 시오 헤이브의 낭심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체계적으로 격투기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론은 7지구에서 싸움을 하며 잔뼈가 굵은 사내였다. 반칙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이기지 않으면 죽는 곳에서, 론은 요령 좋은 싸움꾼이었다. 사내의 낭심이란 치명적이고 손쉬운 급소 아니냐 말이다. 시오 헤이브는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몸을 확 구부린 채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기괴한 신음을 삼키는 게, 정말 죽을 만큼 아픈 모양이었다.
“씨발, 터지지만 않으면 됐어.”
그는 다시 보라색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누르고 무릎으로 그의 두 다리를 찍어 눌렀다. 통증 때문에 거의 눈이 뒤집혔지만, 시오 헤이브란 사내는 완강했다. 무릎이 다시 론의 배를 올려 찼을 때, 론은 왈칵 짜증이 났다.
“가만 좀 있으란 말입니다! 죽도록 때리긴 싫다고!”
이번엔 위에 있는 사내의 무릎이 스승의 허벅지를 찍었다. 악! 이번엔 제법 큰 비명이 터졌다.
론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을 한 것은, 그가 씨근대며 시오 헤이브를 벽에 눌러놓고 수사복을 위로 확 걷어 하반신을 드러낸 후였다. 시오 헤이브는 시퍼렇게 질렸다.
“나, 나를 어쩔 셈인가? 론! 이러지 마라. 이러…….”
“제가 뭘 할지 이제 아셨습니까? 어지간히도 빠르십니다.”
“…하지 마라, 그대는, 나를, 나를 사랑한다 하지 않았는가? 론!”
“그랬습니다.”
“이게 사랑한다고 하는 자에게 할 짓인가? 아으윽. 비켜! 제발!”
그의 사랑에 대한 환상에는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섹스는 근본적으로 야만의 영역이다. 짐승이 하는 짓에 고상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 봤나?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일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산출물인가? 섹스는 섹스일 뿐이다.
브리프를 걷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오 헤이브는 미친 듯이 저항했고, 힘이 완강했다. 론은 덩치에 맞게 힘이 좋고 싸우는 요령도 뛰어났지만, 시오 헤이브는 오랫동안 운동으로 단련된 힘이 무시무시했다. 한 대만 제대로 맞으면 뼈가 나갈 모양이었다. 론은 무릎으로 그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위로 쳐올렸다. 뻐직, 소리와 함께 다리가 위로 확 올라갔다. 아아악! 벽에 붙어 몸부림치던 사내가 다시 온몸을 뒤로 꺾으며 크게 신음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대가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론…….”
“시오 헤이브.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행동이잖아요 이건. 모르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생각한 사랑 행위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 뭐가 어째?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나? 론은 다시 고개를 천장으로 쳐들고 보이지 않게 코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쪽은 제가 훨씬 경험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오가는 행동이라야, 특별한 건 없습니다.”
벽에 밀려 붙은 사내의 피에 젖은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눈을 꾹 감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보라색 속눈썹이 푸르르 떨렸다.
“제발 지금이라도 그만두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리고 전 수사입니다. 이런 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러는 거다, 시오 헤이브. 귀찮게 얻어터지면서 내 스타일도 아닌 인간하고 섹스하기는 나도 싫어. 하지만 나는 당신이 필요하고, 당신은 이 정도 방법을 쓰지 않으면 이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거 아냐?
너는 잠시 후면, 니콜스 팔케 대수사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시오 헤이브.
무슨 일인지 시오 헤이브가 잠잠해졌다. 입술을 깨문 채 목에서 끄륵거리는 소리를 삼키기만 했다. 론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전희도 애무도 입맞춤도 없었다. 브리프를 벗기고, 그는 벽에 기대 있는 사내의 두 다리를 활짝 벌린 후, 그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바지의 지퍼를 급하게 내리고 길게 후르륵 밀려 나온 자신의 살덩이를 시오 헤이브의 몸에 바짝 갖다 붙였다. 론에게서 가지를 친 길고 난폭한 분신이 스승의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를 성마르게 가로질렀다. 다시 몸이 꿈틀, 꼬이며 고통스러운 신음이 나직이 튀어나왔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시오 헤이브?”
웃음도 농담도 애정 어린 말 따위도 없었다. 한 사람은 참담한 표정으로 끄륵거렸고, 한 사내는 터질 듯한 광기를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나도 이러고 싶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시오 헤이브.
론이 시오 헤이브의 다리 사이로 흔들리는 그의 살덩어리를 움켜쥐어 걷어 올리고, 한 손으로 엉덩이 사이를 더듬을 때도 그는 욱, 하는 짧은 신음만 뱉을 뿐,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엉덩이의 근육 역시 딱딱하고 빈틈이 없었다. 잡아 벌려서 작은 구멍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안에 먼저 틀어넣었을 때 흐느낌인지 헐떡임인지 애매한 소리가 잠시 터졌다.
시오 헤이브는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자신을 꿰뚫고 들어온 제자의 손가락을 방치했다. 온몸이 저절로 오그라들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본디 수줍음이 많던 시오는 누구에게든 벗은 몸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훅, 하며 구부러지는 몸이 론에게 가서 닿았다. 론의 하얀 머리카락에 얼굴의 피가 묻어 붉은 무늬가 생긴 것이 보인다. 머릿속이 멍하더니 까맣게 변했다.
이런 비참하고, 더럽고, 끔찍한 짓이 사랑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고?
관절이 잘못되었는지 왼쪽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지독하게 쑤셨다. 잠시 후, 론의 은발이 자신의 머리 위로 살랑 얹히더니 빠르게 흔들렸다. 론은 급하고 목마른 듯했지만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뜨끈뜨끈한 살이 의지를 갖춘 것처럼 요동치며 회음 부분을 쓸었다. 시오 헤이브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다시 다리가 넓은 각도로 벌어지고, 엉덩이 속이 헤집혔다. 론의 몸에서 돋아난 악의 가득한 덩어리가 아래를 비집고 들어섰다. 아프다, 몸이 찢어지는지 마음이 찢어지는지 알 수 없는 통증에 시오 헤이브는 비명도 집어삼킨 채 그저 아파했다. 잘 들어가지 않는 모양인지 그가 손에 꾹꾹 힘을 주어 두툼한 살집을 양쪽으로 더 세게 잡아 벌렸다. 다시 고관절에서 찌르는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기절할 듯한 아픔에 그는 흐으으하며 몸을 비틀었다. 하읍, 하읍. 귀에서 울리는 제자의 낮은 숨소리가 밭아졌다. 하반신에 안간힘을 주어 몸을 잠가보려 애를 썼다. 젠장! 힘 빼라고! 투툭. 재차 찢어지는 통증. 살에 파묻혀 있던 예민한 점막에서 척추까지 길게 찢어지는 감각이 치고 올라왔다. 뒤이어 길쭉한 덩어리가 끝까지 주욱 밀려들었다. 이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장을 파고든 뜨끈한 무엇인가가 용틀임을 하며 펄떡거렸다.
헐떡거리는 숨소리. 숨소리. 숨소리. 아래에서 들리는 쩌덕대는 소리, 뱃속으로 무엇인가 밀려오는 느낌과 나가는 느낌이 죽을 정도로 치욕스럽고 끔찍했다. 론의 손이 반응 없는 시오 헤이브의 사타구니를 더듬더듬 틀어쥘 때, 결국 쇳소리 같은 비명이 시오의 입에서 갈라졌다.
하지만 그의 늘어진 살은 론의 손에서 끝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