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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시오 헤이브는 앉은 자세 그대로 새벽을 맞았다. 늦은 봄의 이른 햇살이 무릎께로 밀려들 때 그는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손을 들어 입술에 댔다. 혓바닥이 치고 들어올 때의 미끈하고 짜릿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건가?
나에게만 보여주었던 특별한 태도와 호의가 넘치는 말이, 그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감정에서 기인했던 것이었나?
그의 몸이 둥글게 앞으로 구부러졌다. 안 된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난, 이곳의 몽크 마스터다. 금욕을 서원한 수사다. 내 마음을 인정하고 그의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파계로 이어질 일이다. 그것은 섬에서 추방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이곳에 쏟아부었어. 내 감정을 인정하고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일생을 걸고 추구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날려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될 말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끌고 나가는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나갈 수는 없다. 그걸 론이 모르지 않을 텐데.
“대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가, 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론. 대체 내게 왜 이런 짓을 했는가. 그대는… 그러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론.”
그의 손이 다시 입술을 덮었다. 허리가 더 깊이 수그러들었다.

* * *

“어이, 땅꼬마, 레암? 사랑이 뭐라 생각하냐?”
자신이 잠시 나갔다 온 것도 모르는지, 술판으로 엉망이 된 탁자에 엎드려 있던 레암이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배시시 웃는 꼴을 보니 3년 전의 레암이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멋진 거지. 좆나 멋진 거. 남자랑 여자가 만나서 아, 뭔가 알싸하고, 뭔가 애절하고, 뭔가 뽀대나구, 속에서 불이 끓어오르는 뭔가가 생기는 거지. 옛날의 수많은 문학과 시와 신화에서 나오는 게 다 사랑 얘기 아니냐고, 응? 론.”
“아 그래 씨발아, 신화나 문학은 엿이나 먹으라 하고,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뭐냐고.”
“음, 그러니까… 너랑 뽀뽀하고 그리고 아해해, 갈 데까지 가보고 싶은 그런 거?”
“어이구 똑똑하시다. 후장 까고 한 번 붙고 싶은 게 사랑이구나. 별것도 아니네.”
“아해해, 그게 아니고 또 뭔가 알싸름하고 괜히 눈물 쥐어짜는 그런 게 있다니까. 뭔가 거룩하고 숭고하고 아름다운 게 있다니까.”
얼씨구, 시오 헤이브 같은 종자가 또 하나 계시는군.
“새꺄, 거룩, 숭고? 넌 로맨스 소설을 너무 봤어. 그래 봤자 결국 옷 벗고 밑 까고 굴착공사잖아.”
“응……. 결론이 그건가? 아해해. 그런가봐, 그럼 사랑이란 게 사실은 너랑 후장 까고 한 판 붙는 건가 보다.”
“새끼! 난 갖다 붙이지 마, 나 좋다는 젖 큰 년 많다구. 게다가 오미크론 행성으로 가면 원주민들도 많은데 왜 입맛 버리는 소릴 해?”
“어어, 야야! 너 그거 불법이야, 론.”
“불법이면? 내가 7지구 출신이라 들은 게 많거든? 행성 원주민들 구멍 맛이 그렇게 죽인다더라. 젖이든 좆이든 좆나게 크고, 빨아들이는 게 완전 빨판이라더라. 그러니까 관리나 군인이나 상인들이 금지된 거 알면서도 만날 사고를 치고 새끼를 까지. 하! 나도 가서 원주민하고 사랑이나 해볼까 그래.”
레암의 불콰한 얼굴이 혐오감으로 찌그러들었다.
“론 인마. 그건 진짜 드럽다. 정말 걔들하고 섹스를 하고 싶어? 구역질 나. 원주민들하곤 하지 마라.”
론은 코를 찡그리고 말을 멈췄다. 결국 그렇군. 원주민이나 혼혈들이란 결국 더럽고 구역질 나는 존재일 뿐이었다.
“레암, 이 개쌍눔 새끼. 사랑에 국경이 있다든?”
“음……. 물론 사랑엔 국경이나 귀천이 없지. 소설에선 되게 멋져 보이던데……. 어, 그, 그래도 원주민은 안 멋져. 차라리 나, 난 어때?”
육갑을 하신다. 론은 기분 좋게 웃었다. 아해해, 아해해, 이제는 조금 커지고 사내다워진 룸메이트가 술로 얼룩진 탁자에 고개를 박고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7. 힐링 스톤 광산에서


14공화국으로 한 번 놀러 와. 오미크론 행성에서 일하다가 휴가받으면 내 고향에서 휴가를 같이 보내는 건 어때? 머리가 까치집이 된 레암이 맞은편 침대에서 헤실대고 웃었다. 그 땅콩만 한 놈은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자기를 이 방에 데리고 와서 재웠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다.
“14공화국에 뭐 볼 게 있다고? 캥거루 가족이 사이좋게 황야를 횡단하는 거? 해변에서 생선 대신 여자라도 낚으라고?”
아히히힛. 요새 캥거루 귀해. 멸종될지도 몰라. 그래도 여전히 14공화국 상징은 천년만년 캥거루일 거야. 레암의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햇빛 아래서 황금빛을 띠었다.
“14공화국은 사실 내륙이 더 근사해. 해변을 제하면 건조 지역이 많은데……. 붉은 모래바람이 멀리서 불어오면, 그게 며칠 동안 온 마을을 뒤덮곤 했어. 하늘이 벌게질 정도로. 나는 겁이 많아서 나가지도 못하고 침실에 박혀서 그 바람이 지나가기만 밤새 빌었지. 장관이야. 물론 휩쓸리면 죽기도 해. 아해해, 그래도 꼭 한 번 와 봐라.”
“새꺄, 거리가 얼만데. 지구 도착하면 휴가 다 가겠다.”
“으히히. 이 몸이 특별히 너를 위해서 워프 게이트를 열어 주겠다. 그건 통령 직권이거든.”
“더럽게 황송하다. 이러니 니네 나라 군대가 당나라 물 군대인 거야, 꼴통아. 비상시나 군용으로만 쓰이는 걸 친구가 온다고 덜렁 열어?”
워프 게이트는 공간 이동용 장치다. 나라마다 내키는 대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들어진 역사도 길지 않았다. 그것은 힐링 마운틴의 운트 위비라는 물리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운트 위비는 현재 힐링 마운틴 행정부의 핵심인 7인 위원회 중 한 명이다. 힐링 마운틴은 워프 게이트의 코드 소스는 공개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받고 일부 공화국에, 그것도 지정된 지역에 한해 설치해주었다. 각 공화국은 전시나, 식민행성 물품 수송 시 혹은 긴급 상황일 때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오래전의 핵무기와 같이 그것은 위험했다. 함부로 열었다간 식민행성의 원주민들이 지구로 쏟아져 들어올 수도 있었고, 적국에 의해 수도가 순식간에 점령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 시공이 틀어질 수 있었다. 이계와 통하는 연결 고리와 같아, 그것은 유용하면서도 극히 조심스러웠다.
“나 아니어도 열어줄 사람 또 있잖아? 흐히. 널 그렇게 예뻐라 하는 몽크 마스터도 네가 온다면 열어주지 않겠어?”
“시오 헤이브가? 맨입으로? 웃기고 자빠졌네. 자기 마누라나 새끼가 있어도 돈 받고 열어줄걸? 그 인간이 얼마나 돈에 빠삭한데.”
“에라이, 췌에. 그런 걸 수도승이라고. 그건 수도승도 학자도 뭣도 아냐. 그냥 너구리 같은 정치가지. 아, 씨발. 재수 없어. 속 뒤집힌다. 우리가 얼마나 마셨더라?”
멍청한 자식. 국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는 최고지. 그러니 네가 여전히 허수아비인 거야.
레암은 비틀비틀 화장실로 걸어가더니 문을 닫지도 않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새끼, 거 문 좀 닫고 싸라!”
“남자끼린데 뭐.”
“새꺄, 니가 여자라면 열고 싸면 반갑지. 서서 싸는 것들은 다 꼴 보기 싫어.”
“…원한다면 말만 해. 여자로 바뀌는 것도 좆나 쉽겠더라. 이거 잘라버리고 여성 호르몬을 사발로 퍼부어! 그러면 끝나는 거 아닌가? 난소도 잘랐으니 이 덜렁대는 것도 못 자를 게 뭐야? 굴 파는 거보단 자르는 게 쉽다며?”
레암의 목소리엔 한이 서려 있었다. 알고 있었나?
“…씨발 새끼들……. 면도하기 싫어. 목젖 나오는 것도 싫어. 아침마다 좆 커지는 것도 죽을 만큼 싫어. 이건 내가 아냐. 잘라내고 싶어.”
“네가 여자였으면 좋았을 거 같나?”
“새꺄, 좋았을 거 같냐가 아니고, 난 원래 여자였어. 냅뒀으면 여자로 갔을 거라고.”
론은 눈썹을 찡그리고 자그마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는 몸을 익숙하게 털고는 다시 휘감아 속옷 사이로 집어넣었다.
“호르몬 끊은 지 몇 년 만에 처음 피 나왔을 때, 그렇게 좋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했거든. 엄마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았지만 전부터 아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어. 이제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 여자로 살 수 있겠구나. F급이라도 성을 바꾸고 진짜 모습대로 살고 싶었어. 아 씨발, 근데 이 섬에 갖다 처박아 버리데. 그러더니 어떤 개쌍놈이 내 난소까지 잘라내고 남성 호르몬을 사발로 부으라고 했다지? 몽크 마스터고 뭐고 찢어 죽이고 싶어.”
…정말 좆같은 인생이다.
“흥, 그래 봤자 땅콩 같은 계집애가 됐겠지. 수다스럽고 눈치 없고 예쁜 옷 차려입고 해해거리기나 하는.”
“시끄러.”
“그래도 제법 예뻤겠다. 젖은 좀 작아도.”
레암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이 잠시 번들번들 한다.
“개 같은 새끼. 꼭 그렇게 말해야 해?”
화장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닫혔다.

* * *

시오 헤이브는 집무실에 없었다. 오전에도 바쁘다더니 오후에도 자리에 없나?
“그랜드 몽크 마스터를 찾는가? 급한 일이라면 전해주겠다.”
그가 시오 헤이브의 집무실 앞에서 오가는 걸 본 중키의 사내가 억양 없는 톤으로 말을 걸었다. 거무스레하고 매끈한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늘어졌고, 약간 매부리코에 턱선이 좁아 날카로워 보이는 자였다. 짙은 색깔의 안경을 쓰고 있어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불편해한다고 했다. 론이 잘 아는 대수사, 운트 위비였다.
운트 위비는 7인 위원회 중 한 명이자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낸 천재 과학자다. 이론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학승인 그는 이곳에서 엉뚱하게도 교리 해석과 적용, 치안, 파계승들에 대한 판결과 집행을 맡고 있었다. 계율의 수호자, 파계 수사들의 킬러로 통하기도 했다. 그는 시오 헤이브처럼 무감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성품이 몹시 건조했다. 자폐 성향이 약간 있었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자신의 관심사에 관한 한, 몇 시간 동안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곁들인 장광설을 쏟아놓기도 했다.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기필코 오류를 바로잡아주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일에 가차 없는 대답도 해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묵언 수행을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말이 없었다.
“어디 계신지 혹시 아십니까? 보좌 수련사도 모른다고 하는데.”
“네가 알 일이 아니다. 사관생도 아니, 론 소위.”
“오전에 열리는 회의는 금방 끝날 거라 해서 다시 왔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길어지는 모양입니다.”
“론 소위는 잘못 알고 있다. 오전의 회의는 파계승의 처분에 대한 회의였고, 나 운트 위비가 주재했다. 판결은 11시 30분에 끝났다.”
아하! 종종 파계승에 대한 재판이 있다는 건 들은 적이 있었다. 사안이 크면 백인회 전원이 참석하지만, 사안이 작으면 7인 위원회에서 2인 이상이 참석해서 판결을 내린다고 알고 있다. 백인회가 모인 눈치는 아니니, 그저 그런 작은 사안일 것이다. 누가 물건을 훔쳤거나, 있으나 마나 한 정보를 팔아치웠거나, 몰래 외박을 했거나 그랬겠지. 아니면 화장실에서 몰래 딸딸이라도 치는데 아주 재수 없게 걸렸거나. 그래 봤자, 초범이면 자계실에 갇혀 며칠 쫄쫄 굶거나, 말도 안 되는 경구를 백 번씩 외우거나, 반성문을 줄창 쓰거나 할 거고.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도. 백인회가 안 모인 것을 보면.”
“두 명의 수사들이 내일 일몰 전까지 추방될 것이다. 오늘은 한 사람에게 태형이 집행되며, 맡았던 일의 정보 유출 금지를 위해 최면 유도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에에? 의외로 큰 사안이었던 모양이다. 추방이라니? 최면 유도 작업까지? 맙소사.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가능하다. 잠시 후 재판 경과와 결과가 전체 공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명의 정식 수사 사이에 부적절한 성관계가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한 사람은 백인회 중 한 명이고, 그래서 백인회는 재판 참가 자격을 잃었다.”
하? 백인회 수사라면 대수사 중 한 명이다. 고위 수사라도 이렇게 쫓겨날 수 있군. 확실히 이 섬의 시스템은 위태위태한 게 퍽 재미있다. 론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인정했다고요?”
“두 사람 모두 인정했다. 다만 팔케 대수사는 부적절한 성관계가 단 1회에 불과하다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타로 도나트 수사는 그들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진술했다. 팔케 대수사는 위증의 혐의까지 얻게 되어 39대의 태형이 추가로 집행될 것이다. 니코스 팔케 대수사는 최면 요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위증까지 겹쳐 정보를 누설치 않겠다는 그의 맹세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강제 집행에 몽크 마스터가 동의했다.”
론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본 운트 위비는 마른 목소리로 덧붙였다.
“급한 일인가?”
“아, 예. 임지로 가기 전에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급한 사안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론 소위는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숙소에서 대기하라.”
그가 몸을 돌려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자주색 수사복 자락이 펄럭대며 다리에 휘감겼다. 꽤 급한 모양이지. 다들 몽크 마스터가 어디 있는지 시치미를 딱 떼고 있는 게, 뻔하다. 알파 영감도 자리에 없으니, 다들 힐링 스톤 광산에라도 간 모양이다. 운트 위비도 그쪽으로 가는 중일지도 모르지. 보좌 수련사도 모르쇠를 대고 있는 꼴을 보니 거의 확실하다. 무렴해진 그는 시오 헤이브의 집무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취기도 아직 가시지 않은데다 점심을 먹은 끝이라 나른하니 졸음이 쏟아졌다.

힐링 스톤 광산은 이 치유의 산에서 핵심이 되는 곳이다. 특이 파장을 내는 불가해한 돌. 그것이 이곳을 치유의 산으로 이름나게 한 것이다. 시오 헤이브는 힐링 스톤으로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힘겹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힐링 스톤 프로젝트는 상상을 초월한 비용이 들었다. 채굴은 일반 석탄 따위를 캐는 일이 아니었다. 파장을 찾아 민감한 센서를 들고 그야말로 고고학자 유물 발굴하듯이 파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다. 그 센서를 개발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끝없이 예산을 잡아먹는 장기 프로젝트가 백인회 같은 정규 의회를 통과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오 헤이브는 무시무시한 의지로 예산을 직접 만들어내,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그는 필요 경비를 세금을 통한 예산이 아닌, 무기 산업과 전쟁에서 얻은 이익, 혹은 워프 게이트 판매 혹은 사용료, 지적 재산권 로열티 등을 통해 조달했다. 힐링 마운틴 시티는 작은 섬이고 특산품도 적은 데다 인구도 7, 8만에 불과했다. 경제 활동 인구는 훨씬 적었다. 많은 수사가 연구실에 박혀 있는 학승이었다. 차 따위만 야금야금 팔아서 그 엄청난 비용을 댈 수는 없었다.
종교가 구심점이 아닌 현재, 도그마가 되어 버린 규율과 힐링 스톤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이상, ‘인류를 위한 위대한 공헌’이라는 가치는 힐링 마운틴 수사들을 결집하는 두 개의 기둥이었다. 고위급 수사들은 비판적이며 까다로웠으나 시오 헤이브의 노선을 지지했다. 그들은 고결한 몽크 마스터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그 이상의 선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고집 센 영감이 능력도 좋으니 그것도 골치다.’
론은 코끝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 * *

“힐링 스톤이 결집할수록 발광체가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알파와 페르 케프터, 진 한은 진작부터 갱도 내의 지하 연구실에 와 있었다. 힐링 스톤은 이 연구실 안의 보호 장치 내에 보관되어 있었다. 시오 헤이브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성을 지닌 거무스레한 물체는 스스로 달라붙어 이제 거의 원형을 이루었다. 제 모양을 갖출수록 은근히 빛도 발하고 있었다.
“원래 형태가 구형이라는 가설도 맞는 모양입니다. 구형이 되어갈수록 파장이 강해지고 안정적이며 규칙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손상된 세포의 완벽한 재생과 활성화에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실험동물의 체세포 분열 시 엔트로피도는 얼마로 나왔습니까?”
“제로 값에 가깝습니다.”
“그 말은.”
“만약 힐링 스톤이 완벽한 구형을 이루고, 규칙적인 파장을 내보내게 되면, 그 생쥐들은 에에……. 힐링 스톤 파장의 범위 안에 있는 한, 천년 동안 살아남을지 모릅니다.”
지구 밖을 떠돌던 암석이 대기권에 진입한 후 산산이 부서지며 이 산에 파묻힌 모양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었다. 방사성 연대 측정에 의하면 힐링 스톤이 지구에 들이박힌 것은 10만 년쯤 되었다. 우주선(宇宙線)에 가까운 강력한 파장이 검출되었을 때, 모든 과학 수사들은 부작용을 두려워해 연구를 피했다. 일부 수사는 방사능과 같은 것으로 여겨 서둘러 섬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이 치유의 산으로 알려졌다는 점을 떠올린 수련사 시오 헤이브는 힐링 스톤 연구를 자처하고 탄광에서 직접 채굴 작업을 시작했다. 지지자도 동료도 없이, 혼자 채굴하고, 혼자 탄광 구석의 납으로 된 격벽 안에 쭈그리고 앉아 파장을 분석했다. 처음 그의 의견에 공감한 게 알파 리온이었고, 운트 위비, 페르 케프터, 시아 리와 진 한이 그 뒤를 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시오 헤이브는 파장의 특성에 대한 첫 논문을 써냈다.
시오 헤이브와 힐링 스톤을 직접 취급하는 연구자들의 생체 연령이 연구를 시작할 당시의 나이인 20세 초반 정도로 고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상을 일으킨 돌연변이 세포를 자살 세포로 전환시키고, 기능이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키는 파장. 그것은 노화로 향하는 생체 시계를 되돌렸다. 연구자들 스스로가 그 이론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되었다.
이 물질을 온전하게 재생해낸 후, 그 파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인류가 그렇게 염원하던 꿈을 어쩌면 우리 손으로 이룰 수도 있겠다. 시오 헤이브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찼다. 그러나 그것을 연구하기에는 많은 비용과 인원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이론을 대수사들에게 공개하고 협조를 구했을 때, 그것은 힐링 마운틴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정식 명칭은 힐링 스톤 안티 엔트로피 펄스(HSAE Pulse)였으나 알파나 시아 리, 페르 케프터 등은 ‘헤이브 펄스’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