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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알파는 모처럼 휴일을 앞둔 저녁을 론 같은 녀석과 함께 보내고 싶진 않았다. 친구와 둘이 조용히 차라도 마시며 농담이라도 하거나 힐링 스톤 채굴 진척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 공사 구분이 깔끔한 친구는 사적인 휴식 시간에 공적인 일을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힐링 스톤만큼은 예외였다.
그런데 론이랑 같이 식사나 하자고? 7인 위원회 수사들도 론과 안면이 있으니 시간되면 같이 오라고 했다. 시오 헤이브는 7인 위원회와 가까이 지내는 편이긴 했으나 개인 식사 시간에까지 사적으로 초대하는 일은 드물었다. 공적인 자리에서나 힐링 스톤 연구실 같은 데서야 나무랄 데 없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었지만, 사석에서 다 모아놓으면 문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군사 문제를 전담하는 시아 리 같은 경우는 대놓고 음담패설을 하는 고약한 버릇 때문에 시오 헤이브가 학을 뗀 적이 많다. 페르 케프터는 어떻고? 눈치 없고 깐깐해서 편하게 이야기할 상대가 못 되었다. 운트 위비는 벙어리처럼 내내 말이 없다가도 자신이 힐링 마운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워프 게이트, 혹은 파계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두 시간이건 세 시간이건 장광설을 쏟아냈다. 사적인 식사 시간에 그 일곱을 다 모아놓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건 시오 헤이브 자신이 가장 잘 알 텐데.
그런데도 구태여 그들을 다 초대한 것은 아마 론 때문이겠지. 그 녀석이 사관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 고위 수사들과 좀 더 친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최근 들어 친구가 제자를 유난스레 총애하는 눈치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화에 론의 이야기가 종종 끼어들었고, 그때마다 슬금대고 웃기 일쑤였다. 처음 론을 보았을 때의 완강하고 딱딱한 모습은 어디다 집어치웠나 모르겠다. 그때가 더 좋았다고, 시오 헤이브.
론은 론대로 시오 헤이브에게 그렇게 깍듯할 수가 없다. 물론 론의 처음 모습을 본 알파는 그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오의 말대로라면 녀석이 아주 멋지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멋지게 자라기는 개뿔. 멋지게 연기하고 있는 거겠지. 누가 네놈 속을 모를 줄 아나, 론?”
알파는 콧방귀를 뀌며 방을 나섰다.
복도 구석에서 검은색 수련사복을 입은 키 큰 청년이 반가운 듯이 알파를 불러 세우더니, 큰 걸음으로 뛰어왔다. 론이다. 땀에 젖은 이마를 문지르는 품이, 자신을 한참 찾은 모양이다.
“알파 수사님, 저, 오늘 저녁때 오실 겁니까?”
“초대를 받았으니 가야지. 뭘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수업이 다 끝났다면서? 축하해주고 싶다고 함께 식사나 하자고 하더군. 페르 케프터나 운트 위비, 진 한, 시아 리도 시간이 되면 가겠다고 했는데, 확실치는 않아.”
“죄송한데 부탁이 있습니다, 대수사님.”
시오 헤이브한테 예의범절 하난 잘 배운 모양이다. 고개까지 정중하게 숙이고 손도 모으셨다?
“사실 전 많이 섭섭합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나게 돼서……. 여쭤보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았고 말입니다.”
알파는 속에서 심술이 뻗쳐올랐다. 아무리 그리 말해도 네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것 같나. 그나저나 이 심술은 이유를 알 수 없군. 그는 코웃음 쳤다.
“배울 게 많다라. 너답지 않은 말이군. 그럼 글이라도 가르쳐 달라지 그러나. 아, 시오 헤이브는 시도 정말 좋아하거든. 배워서 사랑가라도 읊어보든가. 그럼 수업이 좀 연장되려나?”
론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 하는 말끝에 아하? 하는 재미있다는 듯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그러잖아도 시라도 배우겠냐고 하셔서 농담인 줄 알았거든요. 하하하. 진담 섞인 제의였군요.”
알파의 얼굴이 더 완강하게 찌그러들었다. 시오 헤이브가 그런 말까지 했어? 말하지 말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하던 때는 언제고? 아참. 그보다, 하며 론이 화제를 되돌렸다.
“스승님과 둘이서만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이제 졸업 시험 때문에 사관학교로 돌아가면, 평생 제가 여기 오게 될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여쭤볼 것도 많고 털어버릴 것도 많고……. 그 뭐냐, 솔직히 말하면, 스승님이 제게 맺힌 게 한두 가지겠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속을 뒤집어놓았으니. 근데 알파 수사님께서 곁에 계시면 아무래도 뭔가 태연한 척하시고, 아닌 척하시고, 뻥도 치실 거 같고.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만……. 죄송한데 청을 거절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 그리고 더 죄송한데, 와인 두어 병 빼돌리는 방법도 좀.”
알파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론은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얼굴로 투명하게 웃고 있었다. 술 이야기를 할 땐 뻔뻔하기까지 했다. 죄송하네, 부탁이네 하면서도 당당하기 그지없는데,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알파에겐 솔직하고 소탈한 방법을 써야 거부감이 가장 덜하리라는 것을 론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괜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보다는 속풀이를 하고 싶다고 터놓고 술까지 부탁하면 의외로 잘 먹힐 것이다. 알파 대수사는 규칙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자는 아니었고, 가끔 아슬아슬하게 규율을 건드려보는 것도 좋아하는 듯했다. 혹시 아나? 알파 정도라면, 답답이 시오 헤이브에게 한 번쯤 술을 먹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잖나. 생각대로 알파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픽 웃었다.
“이봐, 여긴 규율상 금주가 원칙이야. 그리고 시오 헤이브는 지금까지 술을 마신 적이 없어. 규율을 어긴 적이 없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아나?”
“하지만 필요할 경우, 두 잔까지는 허용한다고 되어있는 걸요. 그 정도는 이해하실 겁니다.”
“그럼 두 잔이면 되지 왜 두 병이야?”
“이걸 잔으로 쓸 생각이거든요. 사실 콩알만 한 잔으로 두 잔을 누구 코에 붙인단 말입니까? 전 열두 살 때부터 보드카 나발을 불었습니다.”
그의 소매에서 나온 것은 식당에서 훔쳐낸 듯한 커다란 주발이었다.
“이것도 분명 잔 아닙니까?”
푸하하하! 알파는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는 놈. 괜찮은 방법이군. 알파는 이런 정도의 애교스러운 반항기와 솔직한 모습을 퍽 좋게 여겼다. 론은 알파가 웃는 모습에서 자신의 태도가 먹혔음을 알아차렸다.
“좋다. 시오 헤이브가 취한 모습을 못 보는 건 유감이지만,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니 부탁을 들어주마. 물론 취할 만큼 마실 턱도 없고, 취한다고 속을 털어놓을 몽크 마스터도 아니지만. 와인은 네 방으로 보내겠다. 오늘 못 가게 되어 미안하다고 네가 직접 전해라. 7인 위원회 수사들에겐 내가 말하겠다.”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는 론을 뒤로 하고 알파는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렀다. 이상한 일이지. 뻔뻔한 녀석. 저 녀석이 내 속을 빤히 알고 이런 방법을 쓴다는 것도 알지만 딱히 거절하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다. 불쾌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감정이 뒤섞였다. 시오 헤이브의 건조하고 쉰 듯한 음성이 지나갔다.
‘녀석은, 자신이 가진 매력과 재능을 남김없이 이용해 사람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거의 본능처럼. 원한다면 수많은 여인을 함락시킬 수도 있고, 광대한 제국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멸절시킬 수도 있어.’
시오 헤이브, 네 말이 맞았어.
혹시 너도, 그의 치명적인 매력에 휩쓸려 들어간 건 아니겠지?
알파는 핏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곤 웃었다. 시오 헤이브가 어떤 자인데. 강하고 단단하며 누구에게든 틈을 허용하지 않는 철혈의 사내 아닌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것은 론 따위 애송이가, 만난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낯짝만 반반한 놈이 침범할 영역이 아닌 것이다.

* * *

“이것이 무엇입니까, 론?”
다른 이들이 한결같이 선약이 있다며 몽크 마스터의 청을 거절했다는 것도 이상한데 론은 태연하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와인입니다. 알파 대수사님께 몰래 부탁해서 간신히 얻었습니다.”
제자는 천진한 표정으로 웃기까지 했다. 알파가? 안 되는 일을 거절하지 않고 이놈한테 갖다 안기기까지 해? 하긴 알파는 그런 일을 종종 무시해서 가끔 자계실에 처박혀 경을 치기도 했지. 나이 먹어서도 여전하군그래. 시오는 허, 하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곳 수사들은 금주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잘 아실 텐데요, 론?”
“하하. 시오 헤이브. 필요할 때에는 두 잔까지 허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도 끝났고 저는 얼마 후면 사관학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냥 맨송맨송 가라고요? 그럴 순 없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필요한 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잔도 챙겨왔습니다. 딱 두 잔으로 끝내겠습니다.”
가방에서 뒤따라나온 것은 커다란 막사발이었다.
“대작을 청합니다. 시오 헤이브.”

처음엔 분명 거절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알코올 따윈 입에 대본 적도 없었다. 취하면 자신이 어떻게 풀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할 일 따위는 애초부터 만들고 싶지 않았다.
론은 집요했다. 섭섭한 게 있으면 오늘 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사과하고 가겠습니다. 저 혼자 무슨 재미로 마신단 말입니까? 한 잔만 드시면 됩니다. 마시는 척만이라도 해주십시오. 저 혼자 이러고 있으면 민망합니다. 저는 아직 수사 후보생이라 괜찮습니다. 잘리기밖에 더 합니까? 그러잖아도 곧 나갈 사람인걸요.
그러잖아도 곧 나간다는 말에 시오 헤이브는 속이 싸르르 저렸다. 그랬지. 앞으로 언제 그를 보게 될지 모르는데. 빛나는 은빛의 물결. 차가우면서도 시원한 맛이 있는 웃음소리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총명하고 재기 넘치는 그와의 대화는 정말 즐거웠지. 그가 귀환을 앞두고 정식으로 청하는 대작 아닌가. 두 잔이라. 그는 결국 맥빠진 손으로 잔을 들었다. 시큰하고 무거운 와인의 맛이 혀에 확 밀려들었다.
“…괜찮습니다. 취하지 않았습니다. 론…….”
말이 잘 나오지 않고 혀가 말렸다. 천장에서 등이 빙빙 돌더니 탁자가 솟아올랐고, 뒤이어 뭔가 옆에서 요란하게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뭐라 떠들어댔다. 뭐라 하는 거지? 론이 와 있었는데.

“아, 진짜 이 영감. 술이 약하다 약하다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사발이 아니고 그냥 잔을 가져왔어도 될 걸 그랬어. 이거 뭐야. 이렇게 금방 나가떨어지면 어떡해? 시오, 시오 헤이브, 정신 차려요. 눈 좀 뜨라니까! 간장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바닥인가, 이거 왜 이래?”
와인 한 모금에 눈이 간잔지런해지더니, 두 모금을 넘기고 나자 스승은 완전히 술에 감겼다. 엎어진 스승을 안아 올리자 고대로 곤드라진 사내가 팔 안에서 물풀처럼 늘어졌다. 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넨장, 헛짓했군. 쯔읍.
시오 헤이브의 속을 떠보고 조금이라도 설득이 먹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섬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방법이 막막했다. 그의 진짜 속내가 어떤지도 궁금했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속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렇게 금방 뻗다니. 속내고 설득이고 개뿔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오 헤이브를 침대로 옮겼다. 단추가 많은 수사복을 애를 먹으며 벗겨 내니 그는 얼굴이 벌게진 채 이불을 쥐고 둥그렇게 몸을 구부렸다.
“시오, 시오 헤이브! 아, 진짜. 벌써 뻗으시면 어쩌라고요.”
“안, 안 잡니다. 론. 안…….”
눈을 여전히 감은 채 입으로만 웅얼웅얼한다. 안 자면 눈 뜨고 좀 일어나보시죠? 하는 말에 그가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그러나 적갈색의 홍채는 훌훌 풀렸다. 론은 속이 불편해져서 얼굴을 찡그렸다. 가끔 시오 헤이브의 이런 모습을 보면 속이 편치 않았다.
“시오. 당신은 여기 힐링 마운틴에 있는 게 좋습니까? 저랑 나가고 싶지 않습니까?”
빙그레, 취한 사내가 천진한 꼴로 웃었다.
“얘기했잖아, 론. 난 여기서 하, 할 일이 있어……. 너만 꿈이 있…는 건 아냐.”
“힘들지 않아요? 적적하지 않냐고요? 여기서 이러고 사는 게 뭔 재미랍니까?”
취기가 심해지는지 그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힘들어. 괴로워 죽겠습니다, 알파. …론? 알파? 음, 하얀 녀석이니 론인가 알파인가?”
웅얼대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대화가 재미있어진 론은 허리를 구부렸다.
“힘드시다고요? 괴롭히는 녀석이 있으면 작살을 내드리지요. 누굽니까, 시오 헤이브?”
“그런 게 아니고…….”
목소리가 우물우물 더 작아졌다. 론은 그의 입에 귀를 갖다 댔다. 그는 꿈결에서도 입 밖으로 그런 말을 내는 것이 거북한 모양인지 한참 동안 꾸물거렸다.
“…섹…….”
으으윽. 론은 갑자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누워서 웅얼대던 사내의 얼굴이 더 진한 색으로 달아오르더니 한 손이 흐느적대며 얼굴을 가렸다. 근엄하고 딱딱한 스승의 껍데기 속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말을 들으려 시작한 짓은 아닌데 엉뚱한 데서 대박이군.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합니까?”
“네놈보다 네 살 많은 거 알면서……. 형님이라고 해. 알프.”
내가 알파로 보이나? 그나저나 알파 영감보다도 나이가 많았군.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생체 나이는 24세로 나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아니 당연하겠지. 대체 자위도 금지라고 하면, 그걸 또 곧이곧대로 지킨다 치면, 그 열기를 무슨 재주로 버티는 걸까. 하여간 힐링 마운틴이란 곳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요상한 곳이다.
그르륵,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조그맣게 울렸다. 이런 이런, 완전히 곯아떨어지셨나? 론은 그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고 얼빠진 듯 웃었다. 소원 성취는 못 했지만 이건 또 다른 의미에서 본전을 건졌군그래. 그는 잔을 씻어두려 주섬주섬 거두어서 욕실로 들어섰다.
“이건 또 뭐야?”
시오 헤이브만 쓰는 전용 욕실엔 엉뚱하게도 잠옷 바지와 브리프가 얌전하게 옷걸이에 걸려 마르고 있었다.
“세탁은 따로 해주지 않나? 손빨래? 마스터쯤 되는 사람이 이 무슨 개궁상이…?”
파하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짐작한 론은 다시 파안대소했다. 못살겠군. 요령 없는 영감. 결국은 몽정이야? 만년 발정인 사춘기 청소년도 아닌데? 그는 킬킬대며 욕실 문을 열고 침대를 건너다보았다.
“이런, 못 볼 걸 봤군.”
푸르륵, 론은 저도 모르게 터지는 맹랑한 웃음소리를 꾸역꾸역 삼켰다. 아, 정말 오늘은 여러 가지로 대박이군. 그는 조심조심 스승이 누워 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 아침에 방출이 미진하셨나? 일어나면 난감하시겠어요, 시오 헤이브.”
처음 먹어 보는 술 때문이었는지, 말대로 아침에 사정이 미진했는지, 배꼽 아래쪽이 그새 빳빳하게 일어나 있었다. 침의도 입지 않은 상태라, 속옷이 위로 불거진 품이 적나라했다. 벌써부터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론은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좀 더 구부렸다. 조심스럽게 위를 툭 쳐 보니 화드득하며 재차 솟아올랐다. 틀림없다. 지금 한참 자라는 중이다. 웃음이 터져 죽겠다. 조금 전 시오 헤이브가 얼결에 뱉어놓은 실토며, 욕실에 걸린 속옷 때문에 벌써 한 차례 웃은 끝이었다. 딱하기도 하셔라. 저걸 글쎄 무슨 재주로 참느냐고. 아니 왜 참느냐고.
섹스가 금지란 것까진 그럴 수도 있겠다. 자위까지 금지하면 대체 불알 두 쪽 멀쩡한 사내들이 무슨 재주로 살아남겠나.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알파 정도 되는 사람이면 요령껏 알아서 처리하겠지. 요컨대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딸 한 번 쳤다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나? 하지만 자기가 관찰한 시오 헤이브는 융통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사내였다. 말대로 수련사 시절에 두어 번 해본 것이 끝일 것이다. 거 참, 대단하십니다, 아예 한 번도 안 해봤다면 모를까, 한두 번 하고 끊는 건 가능한 게 아닌데.
제기랄, 웅얼대는 소리가 침대에 고개를 박은 사내의 입에서 가늘게 흘러나왔다. 론은 잠시 망설이다가 웃음을 참으며 전등을 껐다. 고약한 심보가 발동하기도 했고, 조금은 딱하기도 했다.
내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름 못 볼 꼴을 본 사례로, 난처한 녀석은 처리해드리지요. 예의상 불도 꺼드렸습니다. 스승님이었으니 말입니다.

불룩해진 그의 속옷 위로 가만가만 손가락을 얹었다. 묵직한 감각이 아래에서 느껴졌다. 아래서 꿈틀대는 움직임이 잠시 잡혔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그는 뭉근하게 스승의 샅을 내리눌렀다. 기 싸움이라도 하듯, 아래에서 팽팽한 기운이 밀고 올라왔다. 제법 뜨끈한 열기가 손아귀에 들어찼다.
당신도 나랑 똑같은 사내잖아. 왜 아닌 척하고 살아? 당신 정도 능력이라면 무엇이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데 왜? 그의 심술에는 약간의 질투와 경외도 얽혀 있었다. 나에게는 없는 고결함, 아니 고결함을 지키려 애쓰는 그 태도. 사실, 내내 그게 거슬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손에 힘을 주어 안에 든 살덩어리를 꾸욱 움켜잡았다. 뻣뻣해진 살이 손에 구겨지듯 잡혔다. 아으으, 드디어 가는 신음이 터졌다. 지금 일어나면 그것도 곤란하지.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정신을 차리기엔 요원해 보였다. 론은 한참 동안 속옷 위로 부푼 살덩이를 주물렀다. 재미있다. 여자를 후리기야 헤아릴 수도 없고 남자를 낚아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사내의 것을 가지고 장난쳐본 적은 없었다. 별 재미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뜻밖에 속을 뒤집었다. 살덩어리가 단단해지면서, 속옷 앞쪽의 구멍으로 조금씩 버르적대며 밀려 나왔다. 론은 가로막힌 브리프를 조금 걷어 내렸다. 하아……. 긴 한숨이 튀어나왔다. 혼혈이니 뭐니 해도 사람 꼴은 다 하고 태어나는 법이다. 위로 세차게 튀어 오르는 긴 살덩어리가 꿋꿋했다. 위에 자리 잡은 터럭은 주인의 머리카락처럼 거칠고 뻣뻣하게 뒤엉켜 있었다. 터럭밭을 손가락으로 부비적거리자 그의 몸이 끄응, 하며 잠시 뒤로 꺾였다.
“하하. 포경… 안 했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이게 진짜 좆 깐다는 말이겠군.”
정말 원시 시대에서 온 모양이지. 귀두 아래쪽으로 껍질을 잡아당겨 내렸다. 속살을 내민 귀두는 더 여리고 예민해 보였다. 손가락을 기둥 꼭대기 맨질한 대가리에 대는 순간 하아아, 긴 신음이 제대로 터졌다. 론은 순간적으로 벼락을 맞은 듯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마에 땀이 솟았다.
문지르면 어떤 소리를 내주겠습니까, 시오 헤이브?
이러고저러고 할 것도 없었다. 그는 감싸 쥔 손가락을 아래로 세게 끌어내렸다. 아으윽, 아흑. 탄탄한 몸이 퍼드득 튕겨 올라갔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단단한 불덩어리가 안에서 미친 듯 펄떡거렸다. 침대에선 보라색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온몸에 힘을 꽉 준 채 배를 내밀더니 두 다리를 움찔움찔 넓게 벌렸다. 윗부분의 동그란 대가리를 손톱으로 살살 긁었다. 요도 사이에 손톱이 닿았을 때부터 누운 사내의 몸이 벌벌 떨렸다. 아래로 늘어진 고환을 힘주어 움켜잡자 누워 있던 사내는 결국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아…흑, 아! 사…살살……. 아파. 아흣, 하……. 으윽, 아아아아! 론은 그가 정신을 차렸나 황급히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다. 그는 여전히 눈을 꽉 감은 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론은 그가 사정할 때까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참 동안 그의 중심을 문지르고, 주무르고 쥐어짜듯 하는 동안, 정신을 빼놓은 사내는 와들와들 정신없이 떨며 몽중의 희락을 즐겼다.
흐, 흐, 하, 흣, 으흐흣, 으윽. 단발적인 신음이 점점 세지고 높아졌다. 쩍, 쩌덕, 쩍, 쩌덕, 살끼리 맞닿는 소리에 물기가 스몄다. 허리가 탁탁 튀기듯 솟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으읍, 스승의 숨 막히는 소리에 론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아아아! 갈라진 목소리가 길게 늘어지나 싶더니 갑자기 위로 주욱, 끈적한 액체가 솟아올랐다. 두 번, 세 번. 그가 몸에 힘을 꽁꽁 주면서 숨을 몰아쉬는 리듬에 따라 허연 줄기가 솟구쳤다.
“아 씨……. 양이 많네.”
아으흑, 흐으……. 잠결에 밀려 나오는 긴 신음. 침대에 널브러진 자는 더 이상 딱딱한 얼굴로 무감정을 가장하던 스승이 아니었다. 완전히 혼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시원하게 사정한 그는 몸을 푸들거리며 한참 동안 거칠게 숨을 쉬었다. 얼이 빠지셨군. 론은 슬금슬금 웃으며 주변에 튄 끈적한 액체를 수습했다.
남의 손을 탄 건 이번이 처음이겠지. 꿈속에서일망정 환상적이었겠군. 깨어 있을 때라면 더 좋았겠지만 알면 목매 죽는다고 할 거야. 론은 그의 물렁해진 살덩어리를 조금 더 주무르며 클클거렸다. 기운이 빠진 그의 성기는 말랑한 밀가루 반죽처럼 주무르는 대로 손에 척척 들러붙었다.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의식 없는 자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으흣, 아으……. 가느다란 소리가 잠시 이어지다 사그라졌다.
그나저나 저 신음은 정말 아찔하다. 내가 다 치솟는걸. 이런 걸 원한 건 아닌데. 빌어먹을. 론은 혀를 차며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닦았다. 잠시 눈썹을 찡그린 론은 한숨을 내쉬고 바지를 걷어 내렸다. 그의 브리프 틈으로 길고 큼직하게 자란 음경이 밀려 나왔다.
촌스럽기는. 나까지 이 모양이 될 줄 누가 알았담.
그는 이를 꾹 다물고 음경을 양손으로 붙잡고 문질렀다. 거울로 보이는 해사한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후우, 후우. 아흐, 아흐……. 그는 침대에 누워 몸부림치며 신음하던 스승의 모습을 생각했다. 왜 하필 그게 생각이 나는 거지? 왜 그 소리가 이리 집요해? 그는 눈썹을 확 찡그렸다. 성기가 빳빳해졌다. 죽겠군. 그는 힘을 주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전기가 화드득 튀는 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예민한 피부의 끝자락에 몰려들었다.
아아아, 아흑.
화장실 벽으로 흰 점액이 길게 미끄러졌다. 아까 발작하듯 꿈틀대던 시오 헤이브처럼, 그도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나도 지랄이군. 이게 뭐야.
그는 천천히 욕실 벽에 머리를 박았다.
오늘 당신 이미지는 완전히 천지개벽이야, 시오 헤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