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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신입 수련사들에게는 멘토링을 맡은 담당 수사가 배정됩니다. 언제 정식 수사가 될지는 담당 수사가 결정하죠. 한 달 만에 끝낼 수도 있고, 5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신입 수련사들은 담당 수사를 따라다니며 규율을 배우고, 지도를 받습니다. 학습 시간과 노동 시간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곳의 일과는 지나치게 이르다. 새벽 5시 기상이라니. 얼결에 옷을 뒤집어 입고 나온 신입 수련사들도 눈에 띄었다. 론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레암 세케르스가 옆에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수다를 떨지 못해도 친한 척, 챙겨주는 척하며 귀찮게 하는 건 여전했다. 속도 없는 놈. 하지만 적어도 시끄러운 동안은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키면 이런저런 심부름도 곧잘 해주는 녀석이었다. 너 정말 멋지다. 잘생겼어! 너 같이 근사한 애는 처음 봤어. 주둥이가 간지럽지도 않은가. 아부인지 속이 없는지 저런 말을 잘도 해댄다. 짜증을 왈칵 내면 작은 강아지처럼 발발대며 눈치를 살짝 보고 또 금방 해해 웃기도 했다. 대가리 속에 거품만 든 녀석이로군. 론은 그를 앵앵대는 날파리쯤으로 치부하려 애를 썼으나 일단 너무 엉겨 붙는 게 문제였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옆자리에 앉은 녀석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덩치가 작고 곱다. 유전자 결함이 있다고 했지만 키가 작은 것 말고는 특별히 이상해 보이는 것도 없다.
‘유전자가 꼬여서 혓바닥이 멈추지 않게 됐나보지.’
샐긋대며 웃는 룸메이트에게 론은 픽 웃어 보였다. 놈의 입 끝이 위로 째져 올라갔다.

신입 수련사의 교육을 담당한 아르케 수사는 뒷자리에 앉은 은발의 청년을 곁눈질했다. 매일같이 지각에, 비딱한 자세에, 대놓고 하품까지 하신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왜인지 함부로 나무랄 수 없는 그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한 달 전, 교육장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신경이 몹시 쓰였다. 처음 보는 순간 눈이 부시다는 느낌에 그를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외양이 너무 미끈하기도 했지만 주변을 저절로 조용하게 만드는 일종의 위압감, 등 뒤로 스며드는 서늘한 느낌 때문이었다. 이질적인 붉은 홍채는 기이할 정도로 차가웠다.
한 달 동안 그는 주변 동료를 말없이 제압했다. 아르케 수사는 기수별로 많은 신입 수련사들을 봐왔다. 한두 놈쯤, 주변을 휘어잡는 놈들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도토리 키재기. 비슷비슷한 놈들이 투덕투덕하다가 올라서는 놈이 작은 무리를 이루어 고 안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론은 그런 고만고만한 놈들과는 격이 달랐다.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그를 주시했고, 그의 눈에 들기를 바랐고, 그의 말에 자발적으로 복종했다. 단순히 외모가 눈부시다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아르케는 그에게서 사람을 누르는 힘을 느꼈다. 그의 주변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스스로 튀어 보이려 애쓰지 않았지만, 론은 그 작은 무리에서 이미 핵심 인물로 여겨졌다. 그는 주변에 대한 애정이나 친절함, 부드러움 따위의 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책임감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자신의 것이라 인정한 영역에 관한 한, 론은 집요하게 관리하고 챙기려 들었다.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학생. 아르케 수사는 그에 대한 보고서를 유난히 길게 써서 올리곤 했다.
“이건 또 뭐야!”
오늘은 신참 수련사를 담당할 멘토링 수사가 결정되는 날이다. 명단을 받아든 아르케의 잿빛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신입 수련사 론 : 담당 수사 - 시오 헤이브

그가 아는 시오 헤이브는 단 한 명이다. 모든 수사에게 존경받는 그랜드 몽크 마스터이자 힐링 마운틴의 가차 없는 통치자. 대체 왜 이 이름이 저 애송이 녀석의 담당 수사 칸에 적혀 있느냐. 보통 멘토링 수사들은 서원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수사들이 맡는 게 관례였다. 보얗게 머리를 삭발한 수사들 뒤로 시커먼 옷을 입은 신참 수련사들이 달랑거리며 쫓아다니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긴 머리를 한 수사들 뒤로 신입 수련사들이 따라다니는 경우는 없다. 제 몫을 하는 중견 수사쯤 되면 맡은 일의 기밀 유지 문제도 있거니와, 일단 애 보는 일 따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어느 놈이 명단을 이따위로 짜놓은 거지?”
수련사 아카데미 사무실에 확인해보니 그쪽도 얼떨떨한 반응이다. 그는 새벽부터 길길이 뛰며 몽크 마스터에게 연결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수사 서임식 때 몽크 마스터의 얼굴을 단 한 번 먼발치로 보았을 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론 신입 수련사의 담당 수사, 시오 헤이브 맞습니다. 제가 직접 지명했습니다.”
처음으로 들어본 몽크 마스터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지고 톤이 높은 편이었다. 직접 지명이란다. 파격도 이런 파격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 함부로 이유를 묻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만, 그 학생은 사관학교 교환 학생 신분으로 와 있습니다. 교육 기간은 3년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며, 교리 관련 수업과 힐링 마운틴 자체 계율 관련 과목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제게 보내주시면 별도로 개인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그것도 개별 수업? 몽크 마스터쯤 되는 사람이, 수사 대표 백인회쯤 되는 모임에서 강의를 하는 게 아니고 일개 신참 수련사에게? 아르케는 직접 말을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신입 수련사들에게 담당 수사 이름과 장소를 알려주던 아르케 수사는 론의 이름을 제일 끝으로 호명했다.
“신입 수련사 론, 담당 수사 시오 헤이브, 1구역 메인 센터 22층, 몽크 마스터 집무실. 내일 새벽 5시 30분부터입니다.”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시오 헤이브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몽크 마스터 집무실이라는 의미는 잘 안다. 모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뒷자리에 앉은 은발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론의 가느스름한 눈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인간이 쥐약을 먹었나…….”
건들대던 론의 손에서 메모패드가 덜컥 떨어졌다.
이건, 분명 시오 헤이브가 먼저 치고 들어온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판을 짜셨습니까그래?”
드디어 배정됐나? 후리후리한 장신의 청년이 사무실 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건들대는 품이 볼 만했다. 아주 일찍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오 헤이브는 가타부타 없이 홍채 인식기 앞에 서서 사무실 락을 해제하고 들어섰다. 낮게 이죽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저랑 놀고 싶으셨습니까? 나이 먹으니 물 좋은 비서 하나쯤 달고 다니고 싶으셨던가? 이리저리 잔심부름도 좀 시키고, 눈치껏 분위기도 봐 가면서 땡볕에서 일하는 대신 막일도 좀 시키고? 그냥 밤이건 낮이건 곁에 얼쩡대면서 시중이나 들면 됩니까? 혹시 밤 시중도 포함인가요? 딴 건 몰라도 그건 잘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만.”
말 하는 게 점입가경이다. 첫 출근부터 한 판 붙자 이건가. 시오 헤이브는 대거리하지 않고 잠자코 걸음을 옮겼다.
그간 시오 헤이브는 이런저런 이유로 일주일에 두어 번씩 론과 마주했다. 식사를 함께하자고 청하기도 했고, 서류 수속과 홍채 인식기 세팅 따위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확인한답시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그런 일은 까마득한 아랫사람들이 챙길 일이었다. 물론 아르케 수사가 꼬박꼬박 적어놓는 론에 대한 평가도 매일매일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랬군. 시오는 매일 저녁 보고서를 읽으며 보이지 않게 미소 지었다.
론은 그것까지는 몰랐지만, 몽크 마스터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론 역시 시오 헤이브를 눈여겨보는 것처럼.
론의 태도는 아직까지는 한결같았다.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내는 대신, 느물대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란 개념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무례하다, 아니다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밑으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냉철하면서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집요한 의지가 숨은 눈. 광기에 가까운 열망과 이성이 동시에 깃든 안광은 가끔 제어를 뚫고 밖으로 튀었다. 누군가 자신의 위에 존재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
시오 헤이브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코 흔하지 않은 유형. 그러나 시오 헤이브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유형이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했다. 론은 차게 웃었다.
“하하. 멘토링 수사라……. 정확히, 당신에게서 뭘 배워야 하는 겁니까?”
“그대가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큼만 얻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로에서 무한까지.”
파하! 론은 입꼬리를 올리고 이제는 순수하게 웃었다. 제로에서 무한? 엄청난 자신감이로군. 대단한 무게감을 가진 말이었으되, 어조는 담담했다. 론은 시오 헤이브의 지독한 평정심, 아무것도 읽히지 않으려는 완고한 방어막이 몹시 짜증스러웠다. 저 견고한 마스크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지.
“왜 저를 지명하셨습니까?”
“우문. 그대가 직접 제게 청하셨습니다. 청을 수락한 것뿐입니다.”
“당신 역시 우답이로군요? 저는 청을 수락한 이유를 물은 건데요? 좆나게 한가하신가 봅니다? 혹여 그때 삐쳐서 제게 선생 소리 좀 제대로 듣고 싶으셨던 건 아니고?”
론은 그가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이맛살을 접었다. 표정이 거의 없는 사내지만 분명 묘한 꼴로, 것도 속으로 웃고 있는 거다.
“아무도 스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자에게 그런 무익한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존경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습니다. 필요하거나 탐나는 재능이 있다면, 그 인간 자체를 당신의 소유로 거느리고 싶어 한다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물론 비난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고유한 기질에 속하는 부분일 터이니.”
론은 가만히 이글대는 눈을 내리깔았다. 몇 번 마주하지도 않았으나, 그는 이미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가면을 쓴 채 이기죽거리는 일은 그만둘 때가 된 모양이다. 론은 허리를 바로 세우고 팔짱을 풀었다. 표정이 신중해졌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이 제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오 헤이브는 천천히 입 끝을 올렸다. 그가 진심을 보인다면, 자신도 감정 소모를 해가며 싸울 생각은 없었다. 워낙 표정이 없던 터라 웃어 보이기도 어색했다.
“권위에 복종하는 법입니다.”
픽, 론의 표정이 갑자기 풀리더니 다시 가가대소했다. 와하하하. 결국 그거였나? 그의 비웃음은 차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집무실의 커다란 책상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내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 후에, 그대에게 제왕의 학문을 가르칠 것입니다.”
수려한 청년에게서 터져 나온 홍소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제왕의 학문이라. 론의 눈이 다시 가느스름해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스스로에게도 애써 침묵시켰던 자신의 망상 같은 열망이, 맞은편에 앉은 사내의 입에서 너무 태연하게 흘러나왔다.
“다른 공화국의 통치자들이 저를 무엇이라 부르는지 혹시 아십니까?”
“…….”
“‘킹 메이커’라 부릅니다.”
론의 웃음이 완전히 멈추었다. 각 공화국 정·군계의 숨은 조커, 정권을 창출하는 자, 킹 메이커. 들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대가 나를 당신의 사람으로 소유할 순 없을 것입니다. 허나 이곳에 있는 동안 내게서 무엇을 가져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나, 힐링 마운틴의 몽크 마스터 시오 헤이브, 사관생도 론의 멘토가 될 의향이 있습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론의 입술이 가만히 위로 올라갔다. 깨끗하고 고른 치아가 드러났다.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오 헤이브?”
“그대가 훗날 만들어낸 제국을 감상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론의 선명한 붉은 눈이 숨김없이 벌어졌다. 내가 만들어낸 제국? 그는 이미 상상 속에서 광대한 제국을 수도 없이 건설했다. 하지만 그 길은 시작점부터 뭉개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대체 뭐라 하는 거지? 론은 벼락을 맞은 듯 얼떨떨했으나 머릿속은 일시에 맹렬하게 돌았다.
이것은, 기회다.
보일락 말락 미소 짓고 있는 저 사내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대가가 무엇이든 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시오 헤이브, 당신이 제 멘토가 되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론의 진지한 대답에, 참으로 오랜만에 시오 헤이브는 폭소를 터뜨렸다.

* * *

“오기였나? 론의 담당 수사라니, 너답지 않다.”
“무엇이 나다운 것인가. 알프? 흐으읍!”
이를 악문 채 간신히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느라, 뒷말이 뭉그러졌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근육이 터질 듯 아픈 것을 참으며 기를 쓰는 꼴에 붉은 머리칼의 수사는 인상을 구겼다.
“어지간히 좀 해. 운동하는 걸 보면 자학 취미가 있는 줄 알겠어. 인대 나가겠다.”
“무엇이, 하으, 무엇이 나다운 것이냐 물었다, 알파. 하읍, 그게, 읍, 내, 내가 론의 담당 수사가 된 게, 그리 이상한가? 아!”
콰당. 바벨이 어긋나서 아래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알파는 벌떡 일어나 그를 살폈다. 다행히 비스듬히 옆으로 떨어졌다. 시오는 고개를 뒤로 꺾은 채 고대로 늘어져서 숨을 몰아쉬었다.
“아아, 너무 아파서 잠시 놓쳤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쳤더니. 괜찮아. 다치진 않았다, 알프.”
“모가지 나갈 뻔한 건 알아? 아주 목숨을 걸어라. 잠은 또 왜 못 잤어?”
“그간 숙고할 일이 있었다.”
그가 뭐라고 했냐 하면, 하며 시오 헤이브는 짧게 웃었다
“내가 자신의 멘토가 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알파는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는 데 한참 애를 먹었다.
“뭐? 뭐가 어째? 허락? 쥐좆만도 못한 놈이 몽크 마스터가 담당 수사를 하는 것을 허락씩이나 하신다?”
알파가 얼굴이 시뻘게진 채 두 번째로 벌떡 일어났을 때 시오 헤이브는 플랫 벤치에 누워 아예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웃음이 나? 시오! 일어나 봐! 그 자식 주둥이를 꿰매버릴라. 젖비린내도 안 가신 애놈이 뭐가 어째? 넌 그 말을 듣고도 가만있었어?”
“그는 진지했어. 그의 본질을 제대로 확인한 듯해서 유쾌하다. 가장 그 녀석다운 방식으로 솔직하게 말한 거야.”
시오 헤이브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눈앞에서 으릉대고 선 친구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무표정해졌지만 알파는 그 뒤에 여전히 미소가 숨어 있음을 눈치챘다.
“너는 각 공화국의 통령들이 나를 무엇이라 부르는지 알지 않나.”
“…왕을 만드는 자, 킹 메이커.”
친구가 눈을 끔벅하며 일어서는 것을 보고, 알파는 그의 어깨에 옷을 걸쳐주었다. 할 말이 끓어올랐다.
“그에게서 무엇을 봤지? 녀석은 아직 치기 어린 반항아일 뿐이야. 내 보기엔 싹수가 노래.”
고개를 돌린 시오 헤이브는 다시 조용히 웃었다.
“그럼 넌 수십 년 전에, 초라한 수련사를 벗어나지 못하던 나에게서 무얼 봤나, 알파?”
“시오?”
“난 정식 수사도 되지 못할 형편없는 처지였다. 론과 마찬가지로 7지구 출신이었잖나. 게다가 빼도 박도 못할 식민행성 원주민과의 혼혈 맵. 그런 F급 유전자를 B급으로 세탁까지 해주면서, 나를 왜 몽크 마스터로 밀어 올렸지? 네가 몽크 마스터가 될 수도 있었다. 사실은 네가 더 적임이었어. 안 그런가?”
너무 오래전 이야기. 알파는 쓰게 웃었다. 나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네가 이곳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였으니까. 나는 네게서 그 힘을 보았거든. 넌, 통치자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어. 지금까지도 더 말할 나위 없이 잘해왔고. 내가 사람 하난 잘 봤지. 네가 아니었다면, 현재 이 힐링 마운틴은 이정표를 잃고 진작 와해되었거나 점령되었을걸.”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시오 헤이브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고맙다, 알파.”
자신이 수련사 시절 잠시 견학을 왔던 3공화국 통령의 넷째 아들. 그가 머무는 동안 시오 헤이브가 안내를 맡았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다. 알파는 견학 기간이 지난 후로도 모교인 통합 사관학교로 복귀하지 않고, 신입 수련사로 남았다.
“그래도, 난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는다.”
“무슨 당치않은 말이야? 네가 아닌 다른 몽크 마스터는 상상할 수 없어.”
“내 권위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그야…….”
“내 권위는, 역사와 신화학자로서의 가치, 깨끗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는 수도자에 대한 경외감, 자기 관리에 철저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 폐쇄된 지역을 지키고 다스리는 자에 대한 호기심 같은 걸로 구성되어 있지. 나보다 지혜롭고 여우 같은 정치가, 책략가는 많다.”
“오늘따라 왜 이래, 시오?”
“내가, 학자로서의 이름을 잃고, 한 번 실수로 파계라도 했다 해보자. 과연 내가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아무리 힐링 마운틴 시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고 오랜 세월 이끌고 나갔던 지도자라 한들,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사실, 나는 통치자라기보다는, 숨은 조력자로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다.”
알파는 물끄러미 친구의 무표정한 얼굴을 응시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가라기보다는 학자나 수도승에 가까웠던 친구는 이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항상 자신을 억누르고, 칼끝같이 벼리고 채찍질해야 했다.
“후회한다는 말인가, 시오?”
“아니. 나는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현재 그것이 진행되고 있지. 변함없는 네 도움에 감사할 뿐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일이다. 그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는 눈을 잠시 깜박였다. 말을 고르는지 그의 깊은 적갈색 눈동자가 잠시 위로 향했다. 중얼중얼 튀어나온 말들은 두서가 없었다.
“그 덕인지, 나는 내가 원했지만 가질 수 없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잘 알아보게 되었어. 치자, 지배하는 자로 타고난 사람들.”
“시오.”
“불쌍히 여기는 대신 책임감을 느끼고, 동정의 눈물 대신 사회 시스템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 무슨 일을 원하든 시작을 했으면, 결과를 내는 사람들. 냉철하지만 숨길 줄 알고, 남과 함께 일하는 대신 주변 사람을 모으고, 소유하고, 자신의 손발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오만하고, 당당하며,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고…….”
알파는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친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시오 헤이브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무엇보다, 이유도 알 수 없게 치명적으로 사람을 매혹하는 사람들.”
그는, 킹 메이커. 지배자를 알아보고 권력을 안겨줄 수 있는 자. 알파는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넌, 론에게서 무엇을 보았지, 시오 헤이브?”
그의 고개가 가만히 수그러들었다. 쉰 듯한 목소리에 자조의 빛이 스며들었다.
“…천년의 제국. 나 같은 사람은 결코 꿈꿀 수 없는.”
시오 헤이브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처음엔 그놈이 나와 같은 7지구 출신이고, 식민행성 계열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신경에 거슬렸을 뿐인데. 친구의 마음을 읽은 알파의 맑은 청회색 눈에 안타까운 빛이 스며들었다. 그 안하무인인 녀석을 몇 번씩이나 만나보고, 관찰하고, 결국 직접 교육하겠다 나선 이유가 그것인가? 요 며칠 동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게 그래서였나.
시오, 이 딱한 친구 같으니.
알파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툭툭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