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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모산파.

이 신비의 도문(道門)을 모르는 강호인은 없다. 하지만 모산파에 대해 열에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강호인 또한 드물었다.

세인들은 그저 모산파를 무예보다는 방술(方術)에 능한 은둔 문파 정도로만 여겼다.

거기에 조금 더한다면, 정파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파로 알고 있는 괴상한 족속들 정도?

사실 어쩌다 강호에 등장했을 때, 일반적인 무인들처럼 육체와 육체의 격돌을 우선시했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강호 무인들의 생리였으니까.

하지만 괴이한 주문으로 정신을 어지럽힌다던지, 부적을 써서 환영을 보여준다던지, 팔괘진 안에 사람을 가두고 말려 죽인다던지 하는 ‘사술’에 가까운 행위는 강호인들이 모산파를 꺼려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놈들과 붙느니 마교와 싸우겠다고 공언한 문파가 부지기수요, 누군가가 모산파는 정파 아닌가? 라고 말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부인하는 정파인들이 열에 아홉이었다.

즉, 여기저기서 환영받기는 애초에 틀려먹은 문파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자기변명에 적극적인 자들도 아니었고, 성향 자체가 폐쇄적이기까지 했으니 그 속을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그랬던 모산파가 천산마교의 대대적인 침공을 계기로 강호의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장문인을 포함하여 구 할에 이르는 도인들이 생을 달리했고, 남은 일 할이라고 해봐야 열 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들조차도 이후에 일어난 정사 간 분쟁 당시에 모조리 쓸려 나갔으니, 당금의 강호에서 모산파는 존재하지 않는 옛 이름에 불과했다.

한데 여기에 임휘라는 이름을 가진 모산파의 도인이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모산파의 도사님을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진목란은 임휘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저는 진목란이라 합니다.”

진목란은 통성명을 하면서 자신의 사문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임휘는 그러한 그녀의 태도를 탓하지 않고 마주 포권하며 인사를 받을 뿐이었다.

“무정이와는 동갑이니 어렵게 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목란은 어쩐지 임휘가 말을 할 때마다 미세하게 발음이 흐트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에요. 건 동생과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잠시 오누이의 예를 따랐지만, 도사님은 신분을 알게 된 이상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도사라 칭하기에도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그래도 그리 생각하신다면 편하신 대로 하시길.”

임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건무정의 ‘춤’은 계속되었다.

그는 아마도 느끼고 있으리라. 항상 그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의무감에서 하나씩 해방되고 있음을.

“궁금한 게 많으실 테지요.”

“사실은……. 예.”

진목란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 천봉산에 오고부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요. 알고 싶지 않은,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 같은 것에 다가간 느낌도 듭니다.”

“…….”

“저는 그저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건 동생을 잠시나마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제가 더는 알아서는 안 될 부분들이 많은 듯하여 당황스럽습니다.”

“들려드릴까요? 우리들의 이야기를.”

진목란은 임휘의 제안에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진 소저께도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왜죠?”

이때, 임휘가 슬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예언 하나 할까요? 소저는 분명 조금 후에 저에게 한 사람의 생사를 물어올 것입니다.”

“……?”

건무정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고, 주변에서 너울거리던 망자들의 귀혼은 하늘로, 하늘로 뻗어갔다.



* * *



열다섯에서 스무 살 사이의 어린 무인들이 처음에는 백팔십 명이었다.

완전한 ‘무인’이라 여기기에는 아직 손색이 있었으나, 어쨌든 병기를 들었으니 무인은 무인이었다.

어른들은 그들 어린 무인들에게 ‘정의수호대’라는 거창한 명칭을 주었다.

백팔십의 애송이들은 황산에서, 그리고 천봉산에서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마침내 그 머릿수가 사십이 되었을 때.

높으신 분들은 그들에게 그 이름에 걸맞은 최후의 임무를 요구했다.

최후의…….



천산마교와 정파의 강호가 끝없는 살육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중원의 사파는 엄청난 힘을 비축했다.

후에 그 힘을 모조리 모아 사혼당이라는 강호역사상 초유의 사파연맹을 결성, 막 마교와의 전쟁을 끝낸 정파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작은 다툼이 있고 나서 두 세력은 전면전에 돌입했다.

본디 사파는 정파를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만큼 쌓아 온 역사의 무게가 달랐다는 뜻.

하지만 그 무게를 찍어 누를 정도로 사혼당은 강했다.

정파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따라서 구파가 다시 뭉쳤고, 그들은 천하무림에 자신들과의 동조를 호소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중소문파들과 낭인, 은거고수들이 구파연합이라는 깃발 아래에 모였다.



구파연합과 사혼당은 일 년간 정말 치열하게도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황산에서 양 세력의 사활을 건 대규모 접전이 벌어졌다.

양측 도합 일만의 무인들이 국가 간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결국 팔천에 달하는 목숨이 피바다에 잠겼고, 살아남은 구파연합 오백과 사혼당 천오백이 천봉산까지 내려와 대치를 이어갔다.

이미 정파는 지나치게 많은 희생을 치렀다.

황산결전에서 아예 문파가 통째로 소멸한 경우도 있었고, 삼대(三代)가 모조리 죽어 가문의 맥이 끊긴 불운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소림, 무당, 화산 등등의 구파와 사대세가, 개방이나 전진도 같은 몇몇 거대 문파들은 아직까지도 여력이 남아있었다.

오백 대 천오백, 아니 이쯤에는 삼백 대 천의 싸움이었지만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일류, 초일류 고수의 숫자에서 사혼당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여전히 지리에 어둡고, 그간의 싸움에서 체력 소모가 극심했음이 문제는 문제였다.

그러던 차,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사혼당의 증원 병력이 도착한 것이 그 첫째였다.

본디 중원의 이남 지역은 대대로 정파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사파가 득세할 만큼 호락호락한 땅도 아니었다.

하지만 감추어왔던 사혼당의 저력은 이곳에도 존재했다.

무려 오백에 이르는 사인(邪人)들이 구파연합의 후방을 장악한 채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백이 넘는 의문의 무장 세력이 동쪽에서 등장했다.

그들은 바로 천산마교도들이었다.



“맙소사.”

진목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탄식했다.

구파연합과 사혼당의 전쟁에 대해서는 그녀 또한 알고는 있었다.

육대문파의 완전한 몰락을 가져온 그때의 대전들을 아예 모를 위치에 있지는 않았으니까.

한데 천산마교라니.

당시 중원과 마교는 모든 싸움을 중지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무당일검 진청명(陳晴明)과 천마 독고무황(獨孤武皇)이 태산의 정상에서 칠 주야에 걸친 장대한 일전을 벌인 뒤, 각각 치명상을 입고 물러선 것을 계기로 잠정적인 휴전에 들어가 십년대전이 종식되었다는 게 정설이었다.

따라서 그때쯤이면 마교도들이 중원 정파에 대해 어떠한 적대적인 행동도 취할 수 없어야 했다.

“알고 계셨던 것과는 다르지요?”

진목란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천마와 몇 년을 지내면서 ‘은자림’ 내의 마교인들과도 접할 기회가 꽤나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천마를 상제(上帝)의 대리인으로 여기면서 절대적인 공경과 복종의 자세를 드러냈다.

그런데 무당일검과 천마가 무언(無言)으로 맺은 불가침의 맹세를 저버리고 중원에 칼을 들고 나타난 교도들이 존재했다?

“정파라고 다 정의만을 따르지는 않고, 사파라고 모두 사악한 무리는 아닙니다. 천마의 마인들 또한 같아요. 그들 전부가 천마의 수족은 아니었답니다. 긴 전란은 그들에게 자아(自我)를 부여했습니다. 정파인들에게 혈육을, 친구를, 사부와 제자를 잃은 마교인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어느덧 마교도들도 자신들이 ‘사람’임을 자각했던 것이지요. 그저 명에 따르는 교인(敎人)들이 아닌, 복수가 무엇인지 알고 야망이 무엇인지도 깨달은 ‘사람’ 말입니다.”



마교도들의 출현에 구파연합은 전의를 상실했다.

사혼당만이라면 얼마든지 싸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천산마교라면 얘기가 달랐다.

무려 십 년에 걸친 처참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함을 뇌에 깊이 새긴 이들이 중원의 정파인들이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이백의 마인들이라면 오백의 중원무인들과도 자웅을 겨룰 만한 전력이었다.

싸울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살고자 하는 비루한 욕망뿐.

구파연합의 수뇌부는 그 욕망에 눈이 멀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야 말았다.



정의수호대.

처음 백팔십으로 시작했던 이 애송이들이 어느덧 사십으로 줄었을 때, 그들은 이미 살인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열다섯 어린 녀석도 한 칼이면 일류 고수의 머리를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황산의 피바다와 천봉산의 혈류가 이들을 무섭게 성장시켰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정의수호대 무인들은 출신지가 다양했다.

구대문파와 사대세가는 기본이고, 이미 멸문한 문파의 마지막 계승자나 세외에서 힘을 보태고자 찾아왔던 기인의 후계자도 있었다.

각 파에서 가장 어리거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들 중에 최소 한 명씩은 정의수호대에 들어갔다고 보면 되었다.

결국 그게 이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요행히 천봉산을 빠져나갈 길을 발견한 구파연합은 그 길 역시 발각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을 것도 알았다.

못해도 하루, 가능하다면 이틀 정도는 적을 저지할 수단이 필요했다.

삶을 향한 집착은 절정의 고수든, 중견 고수든, 떠오르는 후기지수든 모두가 같았다.

그 집착이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빠른 선택을 하도록 강요했다.

후일을 도모하기에는 그 가능성이 낮은 인간들.

바로 정의수호대의 어린 무인들이었다.



“서, 설마…….”

진목란의 반응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설마라니요.”

그에 반해 너무나도 차분한 임휘.

“참 신기하게도 그 길은 무척이나 좁았답니다. 수십 장 높이의 암산(巖山)이 둘로 갈라져 생긴 길이었으니까요. 입구만 제대로 막으면, 지형을 잘 이용하고 적들의 시선을 적절히 분산시킬 수 있는 이류 수준의 무인만 되어도 꽤나 시간을 지체시킬 수 있을 정도였지요.”

진목란의 몸이 잘게 떨렸다.

어떠한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 계속 가시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어리석게도 높은 분들의 말을 정말로 믿었답니다. 그 내용이야 뭐 대강 짐작하시겠죠?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대주를 신뢰했지요. 성격이 좀 불같아서 항상 화를 내던 사람이었어요. 그래도 그간 그의 지휘로 우리 사십이 아직 살아있었으니 당연히 따를 수밖에요.”

임휘는 ‘그’를 머릿속에 잠시 그려보는 듯했다.

“예, 맞습니다. 우리가 남았습니다. 여러 조로 나뉘어 각각 다른 임무를 받았으나 결론은 하나였답니다. 죽을 각오로 일대를 지킬 것. 그러면 적을 우회하여 무찌르고 돌아오겠다… 라는 거였습니다. 물론 각오만 다졌지 죽는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했어요. 늘 그런 식으로 자극을 받았으니까요. 그저 그날만큼은 저희를 배려한, 후방을 감시하는 정도의 임무라고 여겼답니다. 그렇게 믿도록 대주가 만들었고요.”

“아!”

진목란은 그제야 자신이 떠올린 불길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루 정도가 지났을 때, 크크… 어떤 자식이 뜬금없이 그럽디다.”

임휘가 건무정을 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영원히 강호를 떠나자고.”

번뜩!

임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 자식은 진작 알았던 겁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

반대로 진목란의 눈은 더없이 처량하게 변했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해했습니다. 녀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 능력으로 우릴 사지에서 구해왔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자식이 무정이에요, 건무정. 저희가 명진이라고 불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