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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거 봐요. 험한 꼴 볼 거라니까.”
한숨을 내쉰 건무정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진목란을 보며 말했다.
한 여인을 가운데 두고 스물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정말이지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목과 몸이 분리되거나 인체의 급소가 크게 벌어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시신들을 가까이에서 목도하게 되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진목란이 시신들을 쳐다보는 사이, 여인의 눈이 건무정에게로 향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건무정은 어깨를 으쓱이며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을 보였다.
“이들이… 당신에게 몹쓸 짓을 했나요?”
진목란이 여인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묻지요?”
여인은 진목란의 물음에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오히려 그녀에게 되물었다.
“아, 질문이 잘못되었군요. 그럴만한 힘이 있는 자들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진목란의 말에 여인은 환하게 웃었다.
“비꼬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초면에 실례했군요.”
왠지 모르게 진목란은 여인에게 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게 취미인가 보네요.”
“저들이 죽어 마땅하다면 상관없겠지요. 짐작은 갑니다. 어떤 짓을 하려 했고, 과거에 또 어떤 패악을 저질러 왔을지.”
“그럼 얘기는 끝났군요.”
여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진목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표정에는 이제 각자 갈 길을 가자는 뜻이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충고 하나 할까요?”
슬쩍 건무정을 곁눈질한 다음, 여인이 진목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그래요, 강호라고 해두죠. 강호에서 쓸데없는 관심은 독이 되어 돌아온답니다. 그리고 어설프게 맺은 관계는 그 끝이 좋지 않다고들 하지요.”
한 마디로 건드리지 마라… 뭐, 이런 의미였다.
“당신은 제가 마음에 안 들지요?”
진목란이 뜬금없이 이렇게 묻자, 여인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왜인지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순간 여인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진마도(眞魔徒)의 마인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진마도.
중원에서도 내로라하는 극강의 마인들로 이루어진 혈귀집단.
그들은 천마로 대변되는 천산마교와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실제 천산마교는 중원강호가 ‘마’로 규정한 것일 뿐, 악을 숭상하는 무리들은 아니었다.
어떤 종교적 교리에 미쳐서 세상을 정화하네, 어쩌네, 황조(皇朝)를 뒤집고 백성이 다스리는 세상을 만드네, 마네, 했던 것이 전통적인 중원인들의 사상과 맞지 않았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을 뿐.
한데 진마도는 진짜배기들이었다.
도리(道理)를 거부하고,
순리(順理)를 증오하며,
아득한 과거에 순자(荀子)가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내세운 도덕과 질서, 예의를 배척하는 절대적 순수,
다시 말해 인의(人義)가 배제된 자연 그대로의 약육강식을 추앙하는, 진정한 의미의 ‘마(魔)’가 그들에게는 선의였다.
이는 사인(邪人)이 부정(不正)을 따르는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사인들은 이익추구를 최선으로 여길 뿐, 현재 만들어진 질서 자체는 존중해왔다.
온전한 틀을 깨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나 할까.
한데 중원의 정통마인들은 완전한 무리(無理)의 세계, 즉 그 어떠한 규정도 필요 없는 아수라장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따라서 내뿜는 기운들 하나하나가 자연스레 ‘정(正)’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진목란이, 정파 중의 정파라 일컬어지며 한때 중원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었던 문파의 정순함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가, 진마도의 마인들에게서나 흘러나올 칙칙한 음기(陰氣)를 모를 수 있을까?
그것은 상대도 다르지는 않았을 터.
정명(正明)하기 그지없는 진목란의 정기가 이 여인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터였다.
두 사람이 먼 거리를 두고서도 서로에게서 짙은 이질감을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극과 극.
당연히 전혀 다른 기운을 간직한 상대방이 불쾌할 수밖에.
“어머나! 진마도라니. 흉측하기도 하지. 왜 그리 생각하시죠?”
예상대로 뻔뻔한 대답이었다.
“그건 그쪽이 더 잘 알 테지요.”
“아쉽게도 저는 진마도의 독종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 놓고? 그것도 세가련의 영역인 이곳에서? 진마도가 세가련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 호시탐탐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 강호인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진목란은 여인을 진마도가 세가련을 치기 위해 미리 보낸 선발대 정도로 여겼다.
그러니 저런 놀라운 무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일단 단편만 본 것이기는 하지만, 여인의 능력은 진목란 자신과 크게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진마도가 아니라면 세상 어느 천지에, 저 나이에, 저 마력에, 저런 잔혹함을 가진 ‘소녀’를 키워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정의의 이름으로 저를 응징하겠다는 말씀?”
“필요하다면.”
슈우우우~
때 아닌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이는 순간, 살초가 펼쳐질 터였다.
어쩌면 진목란에게는 최초의 살인이 될 지도 모르는 찰나.
이런 상황에서도 건무정은 별로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두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곧 여인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무정의 눈동자는 여인이 목에 걸친 황색 담비를 향해 있었다.
스윽.
순간, 건무정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딱!
그가 검지와 중지를 교차해 튕기며 소리를 냄과 동시에 죽은 줄만 알았던 담비가 눈을 번쩍 떴다.
가르르르.
“허허, 살아있네, 살아있어. 하하핫.”
건무정은 즐거운 듯 웃기 시작했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았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사그라졌다.
가르르르르.
건무정의 웃음에 담비가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다 오해야.”
여인이 손으로 담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모습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그녀는 마치 친동생을 어르고 달래는 다정한 누이와 같았다.
어느 쪽이 여인의 진실한 모습일까.
건무정의 이런 느닷없는 행동에 맥이 빠져버린 진목란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요대를 잡았던 손을 내렸다.
“보세요, 이름 모를 소저. 그 녀석 그거 영물입니까?”
건무정이 시원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미세하게 웃음을 지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태도로.
“야, 너 이리 와 볼래?”
건무정이 팔을 쭉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황색 담비가 펄쩍 뛰어올라 그의 팔에 내려앉았다.
진목란과 여인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진목란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짐승이 또 있다는 데에 놀란 것이었고, 여인은 이 자존심 강한 황색 담비가 그녀 외에 다른 이에게도 어떠한 형태로든 반응한 것에 놀란 것이었다.
“허허, 너도 혹시 술 좋아하냐?”
황색 담비는 계속 가르릉거리면서 건무정의 몸을 타고 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이윽고 담비는 건무정의 정수리에 올라 크게 하품을 한 다음 편안하게 몸을 웅크렸다.
“어? 술은 싫고 그냥 자고 싶다고?”
여인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그녀는 지금껏 주목하지 않고 있었던 건무정이 뭔가 특별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단지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건 동생, 일부러 그랬지?”
“예.”
건무정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번에는 왜?”
“싸울 이유가 있습니까?”
“몰라서 묻는 거야? 저 여자는 잔혹한 마인이야. 세상을 위해서라도 지금…….”
“아직 배울 게 많군요, 진 누님은.”
“……?”
건무정은 머리에 담비를 얹은 채 진지한 얼굴로 진목란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웠지만 진목란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기만 했다.
“잊으신 것 같아요. 누님이 왜 저와 함께 내려왔는지.”
“…….”
“저를 보호하는 거였죠?”
“맞아.”
“그럼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합니까?”
건무정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담비를 툭툭 쳤다.
담비는 귀찮다는 듯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그의 손가락을 밀어내려고 했다.
결국 건무정은 담비를 잡아내려 가슴 앞에 두고 살살 등을 쓰다듬었다.
휙~
담비는 다시 여인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처음 그 자세 그대로 그녀의 목에 전신을 걸친 채 둥글게 몸을 말았다.
“건무정입니다.”
가볍게 읍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건무정.
그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여인도 잡았던 곡도를 놓고 읍을 했다.
“연화령(燕火玲)이라 해요.”
건무정은 직감적으로 연화령이 여인의 본명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그렇다는데.
건무정은 슬쩍 진목란을 흘겨보았다. 연화령 또한 진목란을 쳐다보았고.
“흥.”
진목란은 ‘마인’과는 통성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건무정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연 소저의 무예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음을 밝히며, 세상을 대신해 손을 더럽히신 의지에 박수를 보내리다.”
“별 말씀을.”
연화령의 태도는 진목란을 대할 때와 건무정을 대할 때가 판이하게 달랐다.
훨씬 사람이 여유로워 보였고, 아까와 같은 요기나 쌀쌀맞음, 이죽거림이 사라졌다.
“어쩌실 겁니까? 이 시신들을 이대로 두면 추후 귀찮은 일들이 많아질 텐데요.”
후일 음적들의 시체가 발견되면 분명 세가련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전문가를 동원해 시신을 검시할 터였다.
혹, 추적에 능한 자가 있어 연화령의 이동경로를 찾아내 그녀를 잡기 위해 무리를 끌고 올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건 걱정 마시길.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처리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다수의 시체를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이란?
흔하지는 않지만 부골산(腐骨散) 같은 독재를 이용한다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시체의 옷이며 살이며 뼛조각이며, 시간만 주어진다면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다 녹여버릴 수 있으니까.
“마인은 마인이로군.”
진목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에게 연화령은 예의 그 환한 웃음을 건넸다.
“그럼 연 소저, 이쯤에서 각자 갈 길이나 가지요.”
“옳군요.”
“허허.”
진목란은 어쩐지 죽이 맞아 보이는 둘을 보며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저희는 이만.”
푸르륵.
어흐흐어흐엉.
건무정이 나귀를 박박 긁자, 나귀가 구슬피(?) 울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귀를 따라 점박이 말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 말은 나귀가 가는 데로 가고, 멈추면 멈추는 대로 서기를 충실히 반복하고 있었다.
연화령은 멀어져가는 건무정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길 너머로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연화령의 입이 열렸다.
“천랑……. 당신이 천랑이었군요, 건무정.”
연화령의 눈동자에 차가운 마기가 일렁거렸다.
치이이~
이윽고 시체들이 순차적으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녹아들기 시작했다.
“거 봐요. 험한 꼴 볼 거라니까.”
한숨을 내쉰 건무정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진목란을 보며 말했다.
한 여인을 가운데 두고 스물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정말이지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목과 몸이 분리되거나 인체의 급소가 크게 벌어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시신들을 가까이에서 목도하게 되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진목란이 시신들을 쳐다보는 사이, 여인의 눈이 건무정에게로 향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건무정은 어깨를 으쓱이며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을 보였다.
“이들이… 당신에게 몹쓸 짓을 했나요?”
진목란이 여인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묻지요?”
여인은 진목란의 물음에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오히려 그녀에게 되물었다.
“아, 질문이 잘못되었군요. 그럴만한 힘이 있는 자들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진목란의 말에 여인은 환하게 웃었다.
“비꼬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초면에 실례했군요.”
왠지 모르게 진목란은 여인에게 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게 취미인가 보네요.”
“저들이 죽어 마땅하다면 상관없겠지요. 짐작은 갑니다. 어떤 짓을 하려 했고, 과거에 또 어떤 패악을 저질러 왔을지.”
“그럼 얘기는 끝났군요.”
여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진목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표정에는 이제 각자 갈 길을 가자는 뜻이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충고 하나 할까요?”
슬쩍 건무정을 곁눈질한 다음, 여인이 진목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그래요, 강호라고 해두죠. 강호에서 쓸데없는 관심은 독이 되어 돌아온답니다. 그리고 어설프게 맺은 관계는 그 끝이 좋지 않다고들 하지요.”
한 마디로 건드리지 마라… 뭐, 이런 의미였다.
“당신은 제가 마음에 안 들지요?”
진목란이 뜬금없이 이렇게 묻자, 여인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왜인지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순간 여인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진마도(眞魔徒)의 마인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진마도.
중원에서도 내로라하는 극강의 마인들로 이루어진 혈귀집단.
그들은 천마로 대변되는 천산마교와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실제 천산마교는 중원강호가 ‘마’로 규정한 것일 뿐, 악을 숭상하는 무리들은 아니었다.
어떤 종교적 교리에 미쳐서 세상을 정화하네, 어쩌네, 황조(皇朝)를 뒤집고 백성이 다스리는 세상을 만드네, 마네, 했던 것이 전통적인 중원인들의 사상과 맞지 않았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을 뿐.
한데 진마도는 진짜배기들이었다.
도리(道理)를 거부하고,
순리(順理)를 증오하며,
아득한 과거에 순자(荀子)가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내세운 도덕과 질서, 예의를 배척하는 절대적 순수,
다시 말해 인의(人義)가 배제된 자연 그대로의 약육강식을 추앙하는, 진정한 의미의 ‘마(魔)’가 그들에게는 선의였다.
이는 사인(邪人)이 부정(不正)을 따르는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사인들은 이익추구를 최선으로 여길 뿐, 현재 만들어진 질서 자체는 존중해왔다.
온전한 틀을 깨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나 할까.
한데 중원의 정통마인들은 완전한 무리(無理)의 세계, 즉 그 어떠한 규정도 필요 없는 아수라장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따라서 내뿜는 기운들 하나하나가 자연스레 ‘정(正)’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진목란이, 정파 중의 정파라 일컬어지며 한때 중원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었던 문파의 정순함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가, 진마도의 마인들에게서나 흘러나올 칙칙한 음기(陰氣)를 모를 수 있을까?
그것은 상대도 다르지는 않았을 터.
정명(正明)하기 그지없는 진목란의 정기가 이 여인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터였다.
두 사람이 먼 거리를 두고서도 서로에게서 짙은 이질감을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극과 극.
당연히 전혀 다른 기운을 간직한 상대방이 불쾌할 수밖에.
“어머나! 진마도라니. 흉측하기도 하지. 왜 그리 생각하시죠?”
예상대로 뻔뻔한 대답이었다.
“그건 그쪽이 더 잘 알 테지요.”
“아쉽게도 저는 진마도의 독종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 놓고? 그것도 세가련의 영역인 이곳에서? 진마도가 세가련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 호시탐탐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 강호인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진목란은 여인을 진마도가 세가련을 치기 위해 미리 보낸 선발대 정도로 여겼다.
그러니 저런 놀라운 무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일단 단편만 본 것이기는 하지만, 여인의 능력은 진목란 자신과 크게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진마도가 아니라면 세상 어느 천지에, 저 나이에, 저 마력에, 저런 잔혹함을 가진 ‘소녀’를 키워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정의의 이름으로 저를 응징하겠다는 말씀?”
“필요하다면.”
슈우우우~
때 아닌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이는 순간, 살초가 펼쳐질 터였다.
어쩌면 진목란에게는 최초의 살인이 될 지도 모르는 찰나.
이런 상황에서도 건무정은 별로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두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곧 여인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무정의 눈동자는 여인이 목에 걸친 황색 담비를 향해 있었다.
스윽.
순간, 건무정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딱!
그가 검지와 중지를 교차해 튕기며 소리를 냄과 동시에 죽은 줄만 알았던 담비가 눈을 번쩍 떴다.
가르르르.
“허허, 살아있네, 살아있어. 하하핫.”
건무정은 즐거운 듯 웃기 시작했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았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사그라졌다.
가르르르르.
건무정의 웃음에 담비가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다 오해야.”
여인이 손으로 담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모습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그녀는 마치 친동생을 어르고 달래는 다정한 누이와 같았다.
어느 쪽이 여인의 진실한 모습일까.
건무정의 이런 느닷없는 행동에 맥이 빠져버린 진목란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요대를 잡았던 손을 내렸다.
“보세요, 이름 모를 소저. 그 녀석 그거 영물입니까?”
건무정이 시원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미세하게 웃음을 지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태도로.
“야, 너 이리 와 볼래?”
건무정이 팔을 쭉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황색 담비가 펄쩍 뛰어올라 그의 팔에 내려앉았다.
진목란과 여인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진목란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짐승이 또 있다는 데에 놀란 것이었고, 여인은 이 자존심 강한 황색 담비가 그녀 외에 다른 이에게도 어떠한 형태로든 반응한 것에 놀란 것이었다.
“허허, 너도 혹시 술 좋아하냐?”
황색 담비는 계속 가르릉거리면서 건무정의 몸을 타고 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이윽고 담비는 건무정의 정수리에 올라 크게 하품을 한 다음 편안하게 몸을 웅크렸다.
“어? 술은 싫고 그냥 자고 싶다고?”
여인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그녀는 지금껏 주목하지 않고 있었던 건무정이 뭔가 특별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단지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건 동생, 일부러 그랬지?”
“예.”
건무정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번에는 왜?”
“싸울 이유가 있습니까?”
“몰라서 묻는 거야? 저 여자는 잔혹한 마인이야. 세상을 위해서라도 지금…….”
“아직 배울 게 많군요, 진 누님은.”
“……?”
건무정은 머리에 담비를 얹은 채 진지한 얼굴로 진목란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웠지만 진목란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기만 했다.
“잊으신 것 같아요. 누님이 왜 저와 함께 내려왔는지.”
“…….”
“저를 보호하는 거였죠?”
“맞아.”
“그럼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합니까?”
건무정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담비를 툭툭 쳤다.
담비는 귀찮다는 듯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그의 손가락을 밀어내려고 했다.
결국 건무정은 담비를 잡아내려 가슴 앞에 두고 살살 등을 쓰다듬었다.
휙~
담비는 다시 여인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처음 그 자세 그대로 그녀의 목에 전신을 걸친 채 둥글게 몸을 말았다.
“건무정입니다.”
가볍게 읍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건무정.
그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여인도 잡았던 곡도를 놓고 읍을 했다.
“연화령(燕火玲)이라 해요.”
건무정은 직감적으로 연화령이 여인의 본명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그렇다는데.
건무정은 슬쩍 진목란을 흘겨보았다. 연화령 또한 진목란을 쳐다보았고.
“흥.”
진목란은 ‘마인’과는 통성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건무정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연 소저의 무예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음을 밝히며, 세상을 대신해 손을 더럽히신 의지에 박수를 보내리다.”
“별 말씀을.”
연화령의 태도는 진목란을 대할 때와 건무정을 대할 때가 판이하게 달랐다.
훨씬 사람이 여유로워 보였고, 아까와 같은 요기나 쌀쌀맞음, 이죽거림이 사라졌다.
“어쩌실 겁니까? 이 시신들을 이대로 두면 추후 귀찮은 일들이 많아질 텐데요.”
후일 음적들의 시체가 발견되면 분명 세가련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전문가를 동원해 시신을 검시할 터였다.
혹, 추적에 능한 자가 있어 연화령의 이동경로를 찾아내 그녀를 잡기 위해 무리를 끌고 올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건 걱정 마시길.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처리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다수의 시체를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이란?
흔하지는 않지만 부골산(腐骨散) 같은 독재를 이용한다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시체의 옷이며 살이며 뼛조각이며, 시간만 주어진다면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다 녹여버릴 수 있으니까.
“마인은 마인이로군.”
진목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에게 연화령은 예의 그 환한 웃음을 건넸다.
“그럼 연 소저, 이쯤에서 각자 갈 길이나 가지요.”
“옳군요.”
“허허.”
진목란은 어쩐지 죽이 맞아 보이는 둘을 보며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저희는 이만.”
푸르륵.
어흐흐어흐엉.
건무정이 나귀를 박박 긁자, 나귀가 구슬피(?) 울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귀를 따라 점박이 말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 말은 나귀가 가는 데로 가고, 멈추면 멈추는 대로 서기를 충실히 반복하고 있었다.
연화령은 멀어져가는 건무정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길 너머로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연화령의 입이 열렸다.
“천랑……. 당신이 천랑이었군요, 건무정.”
연화령의 눈동자에 차가운 마기가 일렁거렸다.
치이이~
이윽고 시체들이 순차적으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녹아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