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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여기저기서 느껴지던 시선들의 ‘따가움’은 어느새 ‘살기’로 변해있었다.

건무정이 ‘은자림주’라고 부른 노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파에서부터 조금 전 건무정을 보고 손을 부들거리던 소녀까지.

심지어는 손에 쥔 쇠붙이며 돌이며, 막 심으려던 씨앗들조차도 흉악한 무기로 보일 지경이었다.

‘은자림주’라는 그 한 마디에 이곳 전체가 건무정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건무정. 그는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할 금기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뭉개버렸다.

그 대가가 죽음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만큼.

그때 건무정이 슬쩍 몸을 움직여 노인과 나란히 섰다.

그러자 이글거리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신들에게는 어버이와 다름이 없는 노인의 곁에 선 자였다.

당장 허락도 없이 살기를 드러낸 것도 불경인데, 그 방향이 노인이 자리한 쪽과 엇비슷하게 나가니 다들 황급히 살기를 거둔 것이었다.

“아우, 등 따가워 혼났네.”

“끌끌끌.”

노인도, 건무정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내가 언제부터 은자림의 주인이었더냐?”

“밖에서는 다들 그렇게 부르던데요.”

“그리고 난 이들의 주인이 아니다.”

“이분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건무정이 몇몇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지목된 이들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다 쓸데없는 이름이요, 생각이란다.”

“어쨌거나 불러주는 사람한테는 의미가 있는 법이죠.”

“껄껄껄껄!”

건무정의 말에 노인은 큰 소리로 웃었다.

조금 전 본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건무정이 기특하다는 듯이 말이다.

“좀 걷지 않겠느냐?”

“좋으실 대로.”



노인과 건무정은 단 둘이 걷기 시작했다.

노인의 언질이 있었는지 아무도 뒤를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곳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밭은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많이 변했구나.”

“어디가요?”

“흐흠, 우선 머리를 묶은 것도 그렇고.”

“꽤 자랐으니까요. 그리고 애들을 가르치려면 입는 옷도 정갈해야 하고 머리도 단정해야 하지요. 학부모들이란 사람들은 실력보다는 일단 겉모습부터 살피거든요. 제가 예전처럼 하고 다녔어봐요. 글방에 애들을 보내겠어요?”

“하긴.”

“다른 건요?”

“말이 많아졌다.”

“아하하…….”

건무정은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었다.

“눈빛도 순해지고.”

손을 올려 눈가를 비비는 건무정.

“이제는 그냥 사람처럼 느껴지는구나, 네가.”

“에이, 그건 아니죠.”

“그리도 재미있었더냐, 세상살이가? 너를 이렇게 바꿀 만큼.”

“…….”

노인의 물음에 건무정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턱.

노인이 먼저 걸음을 멈췄고, 건무정이 그에 맞춰 섰다.

“후회했지요.”

“후회라…….”

“세상이 살 만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들이 무척이나 후회되더군요. 그랬더니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건무정의 말투는 조금 전과는 달리 꽤나 진중해져 있었다.

“그래도 뭐, 어르신 말처럼 재미는 있었어요.”

“거 잘되었구나.”

노인의 눈빛이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무엇이 말이더냐?”

“어르신 목숨.”

“허허허허허.”



목숨, 목숨이라.

비공식적으로 천하제일무인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노인네, 은자림주일 터였다.

공식적으로는? 당연히 옛 천산마교의 교주다.

물론 본인은 강하게 부정하겠지만.

그런 이에게 있어 수명 따위는 거의 선택에 가깝다.

간단히 말해서 죽고 싶으면 죽는 거고, 살고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래, 또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다.

하늘이 허락하는 한에는.

그런데 이러한 인외(人外)의 천경(天境)에 든 존재에게 목숨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다니.

결국 하늘이 부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인가.

“내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아느냐?”

“좋아했어요?”

“하하하하하!”

노인은 또 다시 유쾌하게 웃었다.

톡톡.

노인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어 번 두드렸다.

“똑똑하다는 것은 축복이란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아주 잘 이용하지.”

“어르신이 제게 그러셨잖아요. 이걸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려면 십 년은 걸릴 거라고. 그런데 뭐, 삼 년 조금 지났는데 찾으시는 걸 보니 짐작이 가더군요.”

“너만 그래.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느니라.”

“그건 어르신이 워낙에 강한 분이라 그래요. 누가 감히 어르신의 죽음을 상상하겠습니까. 그 상상마저도 불충이라 탓하며 자기들의 목을 그을 텐데요?”

건무정은 은자림주를 따르는 이들의 징글징글함을 잘 아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너의 그러한 냉철함도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만약 과거에 너 같은 녀석이 내 곁에 있었다면…….”

노인은 회한에 젖은 음성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래, 네 말대로 하늘이 나를 찾는단다. 이 초라한 목숨이 꺼질 날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더냐. 그건 알 수 없다.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아니면 오늘, 지금 당장이 될지. 하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 사흘을 넘기기가 어렵다는 거란다.”

“한 가지 정정해드릴까요?”

“말해 보거라.”

“어르신을 찾는 건 하늘이 아닐 겁니다. 아마도… 지옥이겠지요.”

“카하하하핫!”

내공이 실린 노인의 웃음소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언감생심 하늘의 부르심을 운운하다니. 나에게 어울리는 곳은 지옥밖에 없거늘.”

건무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에게서는 눈앞의 이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라든지 두려움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건무정은 노인의 껄껄거림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려주었다.

“하아~ 얼마 만에 이리 웃어보는지 원.”

“…….”

“저녁은 먹고 가거라.”

“직접 해주시게요?”

“듣자 하니 네 솜씨도 제법이라던데.”

“어르신은 끝까지 정말 악독한 분입니다, 쯧쯧.”

건무정은 혀를 차며 노인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었다.

“내 평생 들어온 소리가 그거니라. 한때는 내 악함을 자랑스레 여기기도 했지.”

무슨 말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들은 건무정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자림에 밤이 내려왔다.

은자림이라, 은자림.

사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땅을 그리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세력이나 지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에 일절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은자림이라는 명칭은 순전히 미지의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오늘날 강호를 나눠먹은 사패삼강에 속하지 않은, 즉 드러난 권력이 통제하지 못하는 어둠속의 모든 것들을 상징하는 이름이 은자림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은자림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주자들이나 아니라고 생각하지, 실제로 이 ‘은자림’은 강호인들이 규정한 그곳이 틀림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낮에 건무정이 은자림주 어쩌고 했을 때 사방팔방에서 살기가 쏟아진 것도 당연했다.

‘외부인’ 하나의 입 때문에 ‘평화롭던’ 이 세계가 송두리째 뽑혀나갈 수도 있으니까.



오늘따라 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선선한 바람이 고요히 잠들었던 나무를 스치자, 이 달빛을 머금었던 잎사귀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오묘하게 빛났다.

누군가 보았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라며 크게 감탄했을 테지만, 아쉽게도 이 시간에 바깥에서 서성일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다.

후두둑.

낮은 산 중턱에 자리한 초라한 모옥 두 채.

그 앞으로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렸다.

삐걱.

불 켜진 모옥의 창이 살짝 열리며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건무정. 한가한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불과 몇 초 차이로 그는 평생에 몇 번 볼까 말까한 장관을 놓쳤다.

“차를 우렸어요.”

부드럽고도 듣기 좋은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예.”

삐거덕.

건무정은 창문을 닫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그마한 탁자에 흙으로 빚어 만든 찻잔이 놓여졌다.

찻물을 잔에 붓는 손은 무척이나 희었다.

조금 전 건무정에게 말을 걸었던 바로 그 여인.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긴 속눈썹, 가느다란 목선과 예사롭지 않은 몸매가 언뜻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어딘지 모르게 돋보이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싱그러운 차향을 음미하며 건무정은 여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인은 별 대꾸 없이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目禮)만 할 뿐이었다.

무언가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란(蘭)아야, 이제 그만 가서 쉬거라.”

“예, 할아버지.”

‘란’이라 불린 여인은 노인의 말에 곧장 대답한 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건무정은 이내 관심을 끊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손녀야.”

“그래 보입니다.”

“친손녀는 아니고.”

“그랬다면 오히려 제가 놀랐겠죠.”

일단 노인과 여인은 전혀 닮은 곳이 없는데다가, 건무정이 알기로 노인은 평생 여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후손도 없었고.

무엇보다 건무정이 이곳을 떠나기 전인 삼 년 육 개월 전, 그 여인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매우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평생 서로를 인정했던 친구의 혈육이야. 그 친구가 죽고 나서 날 찾아왔지. 그게 이 년 전이구나.”

“잘 갈무리하고는 있지만 무예의 성취가 꽤나 깊은 것 같네요.”

“아마 너보다 나을 걸?”

노인이 놀리듯 말했다. 그럼에도 건무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자신이 느끼기에도 여인의 기운은 특출한 데가 있었다.

“좀 누울 테니 가까이 오거라.”

이미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엉성한 침상에 올라가 앉았던 노인이었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피곤함이 노인에게서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

“예전에는 그냥 말하면 다 되었어. 이루지 못한 것이 별로 없었지.”

“지금은 아닙니까?”

“지금도 그렇다면 내 여기에 누워 있겠느냐. 클클클클.”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버렸더니 다들 그리 하더구나. 그걸 알기까지 참 오래도 길을 돌아왔고.”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하니까 안 어울려요.”

“나다운 게 과연 무엇이더냐. 너다운 것은? 누가 그리 정했을꼬.”

“으음… 이것도 생각해보니 어르신 말씀이 옳습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군요.”

“생각하기는 무슨. 벌써 다 깨우친 녀석이.”

“들켰나요? 허허허헛.”

“크크크큿.”

노인과 건무정은 이후에도 의미 모를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이어갔다.

“혹 너는 아느냐. 그 하나로 영원한 싸움은 없지만 무수히 많은 싸움들은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한 사람의 욕심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인간이란 존재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그러하겠지요.”

“좋아, 좋구나. 그런 너라서 다행이다.”

“괜찮으세요?”

건무정은 슬쩍 엉덩이를 들었다.

노인이 자꾸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럼, 괜찮고말고. 왜?”

“아닙니다.”

건무정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아니긴. 나도 안다. 때가 왔군 그래.”

“손이라도 잡아 드릴까요?”

“그렇게 해줄 테냐.”

건무정은 망설임 없이 노인의 손을 잡았다.

“기대는 하지 마라. 너한테 나눠줄 내력 따위는 없어. 아까워서 혼자 다 가지고 갈란다.”

“참나, 정말 마지막까지 악랄한 분이시네.”

어이없다는 말투로 건무정은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노인에게는 한 줌의 내력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낮에 거창하게 선보였던 그 웃음을 끝으로 노인의 신체는 급격하게 힘을 잃어갔다.

아니, 어쩌면 처음 노인과 만났던 육 년 전, 그날.

그때부터 노인은 죽어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흐흐흐.”

노인의 목소리가 한층 더 작아졌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라.”

“왜 저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