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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3화

2. 진강우(3)





아냐. 이건 아니다. 순간적으로 예전에 추악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황급히 틀어막고 숨을 골랐다. 맞아. 그때 나는 동생이 그저 그 자리에 즉사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끔찍한 생각을 해 댔…….

‘하. 미쳤어, 심차연!’

충격과 이기적인 죄책감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나는 B급 가이드로 발현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소소한 금액을 받고 가이딩 출장을 다녔었다. 그래, 그랬었는데. 추악함으로 얼룩져 절대 지울 수 없던 옛 생각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런 구제할 필요도 없던 나를 진강우는 대체 왜…….

“윽. 토할 것 같아.”

숨을 꾹 삼키고 어지러운 머리를 가다듬었다. 지루한 강의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제 곧 닥쳐올 옛일을 떠올리자, 지루했던 시간은 모두 푸스스 날리는 재처럼 사라졌다.



강의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강의 시간에 떠올랐던 일 때문에 노파심이 든 나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히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심한 목소리. 냉정한 말투. 형을 대하는 동생의 행동은 고작 그런 식이었다. 이래서 정말 신경이란 신경은 다 끄고 싶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아, 나도 참 미련하고 답답하다.

울컥한 감정을 깊숙이 삼킨 채 가슴에 손을 얹어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설사 사고가 난다고 해도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길 바랐기에 누가 봐도 귀찮아하는 동생에게 특히 자동차를 더욱더 조심하라 일렀다. 동생은 자신이 어린애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되도록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조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집에서 얌전히 있으라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동생한테는 냉담한 반응만 들려왔다. 멋대로 내 전화를 뚝 끊고 아무런 대꾸도 없자, 화가 나서 집요하게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지만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한 열 번가량 불이 나도록 전화를 건 끝에, 그제야 동생에게 애정 없는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ㅅㅂㅋㅋ제발 내 일에 신경 좀 꺼. 형이 나한테 뭔데 다짜고짜 고나리질이야?]

“……하.”

기껏 걱정해 줬더니 동생이 한다는 말은 쌀쌀맞게도 상처를 주는 말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동생을 챙겨야 하나. 이제 어련히 혼자 다 할 나이도 된 녀석인데. 울컥하는 마음에 서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다, 너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잖아!]

열이 받아서 나도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더 살벌한 내용에 서운하여 억울한 감정이 치밀었다.

[내가 애야? 형한테 나는 뭔데? 짜증 나게 하지 말고 형이나 잘해. 앞으로 또 이딴 식으로 ㅈㄹ해 대면 형이고 뭐고 없어. 나 빡치게 하지 마. 알았어?]

“아씨. 그래, 이제 나도 몰라! 뒤지든 말든 이제부터 상관 안 해!”

씩씩거리며 분을 삭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서운하고 먹먹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래 보여도 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겨우 딱 한 명 남은 내 가족. 사정상 동생과는 친하지 않더라도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덴 재주가 있는 놈이었다. 정확히는 동생이 나를 무지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래. 이 정도 했으면 형이라는 입장에서 할 만큼은 한 거였다. 미련하게 붙들고 있는 쪽도 일방적인 내 몫이었고. 씁쓸했지만, 이젠 다 그만두자.

애초에 회귀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늬만 가족인 친동생이 아닌 나를 이곳에 보낸 가이딩 파트너 진강우였다. 정 걱정되면 비 오는 날만 신경 써서 동생을 마중 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사고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살펴보니, 당분간 날씨는 계속 맑았다. 앞으로도 날씨만 잘 체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동생한테 신경을 끈 채로 무심코 옆에 놓인 달력을 확인했다. 날짜를 확인하고 난 뒤에야 문득, 얼마 뒤엔 내가 B급 가이드로 각성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회귀 전, 진강우의 말에 따르면 내가 가이드로 각성하고 난 후, 얼마 뒤에 그가 에스퍼로 각성했다고 했다. 그러니 아직 진강우라고 하는 에스퍼가 세상에 없을 때였다. 시기를 보아하니 가이드 발굴 프로젝트가 공표되기 전까진 약 몇 개월이 남은 시점. 그가 에스퍼로 각성하기 전, 내가 가이드 프로젝트 기관으로 들어가기까지 주어진 시간 또한 비슷하게 남은 상황.

최대한 서로 나눴던 말을 떠올리며 아직 에스퍼가 되지 못한 진강우를 찾아야만 한다.

나는 노트에 하나둘씩 회귀 후 시간을 기록하기로 하며 펜을 고쳐 잡았다. 공부할 때도 이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오직 그 때문에 펜을 들고 필기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우스웠다.

1. 3년 전으로 강제 회귀.(2017년)

2. 1년 뒤 가이드 발굴 프로젝트 공표 (2018년)

3. 그 뒤 동생의 사고와 동시에 B급 가이드로 각성.

4. 진강우 S급 에스퍼로 각성.

5. 진강우와 만나는 시점->2018년쯤?

“음…….”

대강이나마 시기를 쭉 정리하고 나니 불현듯 걱정이 밀려왔다. 남은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촉박할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살펴보자면 동생이 사고가 나기까지는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은 상태. 이 부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최악의 상황까지는 막을 수는 있을 거라 여겼으니 괜찮을 듯싶었다. 게다가 지금으로써는 다른 것보다 진강우의 에스퍼 발현 시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진강우는 각성하기 전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에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틀어박힌 나날을 보냈다고 들었다. 무슨 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운동은 그만뒀다고 했었지. 운동선수가 된 그의 모습을 떠올렸을 땐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매우 아쉬웠다.

‘속보입니다. 오늘 밤 10시, 서울 중심부에서 S급 에스퍼가 폭주를 일으키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에스퍼는 전속 기관에 의해 무사히 진압되었지만, 몇 시간 동안 주변 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뉴스에서 처음 봤던 그의 모습은…… 검붉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무서워서 소름이 쫙 끼쳤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눈길이 갔는데 왜였을까.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 봐도 의문이었다.

S급 에스퍼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날, 그에 대한 실시간 내용이 포털 사이트에 오르락내리락했고 나는 그의 이름이 <진강우>라는 걸 에스퍼 교육 기관으로 이송되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 대체 어디서 찾아야 돼.”

그래. 대책을 강구해 보자. 우선 내일은 무조건 자퇴서부터 내고 그가 들를 만한 곳을 샅샅이 뒤져 봐야지. 가장 근방의 편의점을 기점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소득이 있을 테니까.

피곤해서 두 눈을 감고 있자니, 예전 기억들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강우 씨. 몸은 좀 어때요? 오늘 가이딩 괜찮았어요?’

기억 속 그의 입술이 이마를 타고 코끝에 머물며 쪽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심차연, 이만 자자.’

그가 피곤한 목소리를 한 채 나를 단단한 팔로 끌어안았다.

‘너 일주일 내내 가이딩 하느라 피곤하잖아. 이 정도면 잘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아아. 사라져 버린 따뜻한 품이 미친 듯이 그리웠다. 항상 가이딩을 하느라 그와 함께 잠들곤 했는데, 전투를 치르고 다쳐서 돌아온 날이면 손깍지를 끼고 입안 쪽이 다 터져 버린 얼굴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고통에 찡그렸던 미간은 그럴 때마다 평온해지곤 했다. 내가 누군가에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보람을 느껴서, 늘 살을 맞닿은 채로 하루를 보냈었는데…….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 건데요, 강우 씨.”

지금은 내 존재조차 알지 못할 이름을 입에 담아서 그런지 허탈함과 상실감에 씁쓸함만 들어찼다. 그가 없어서 많이 허전하고 잠도 오질 않았다. 결국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다가 어렵고 힘겹게 잠을 청했다.



***



“정말 그만둬도 괜찮겠어? 바로 졸업도 코앞이잖아. 학점도 괜찮은데, 왜.”

“네, 괜찮아요. 갑자기 사정이 안 좋아서요. 더 다니기엔 무리일 것 같아요. 여태 신경 써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자퇴서를 내미니 교수님께선 못내 아쉬웠나 보다. 여러 번이고 재차 회유의 말을 해 왔지만,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교수님의 한숨 소리와 더불어 내 짧은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실 괜찮은 척한 것이고 아쉽기도 했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대학교 졸업장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학교를 유유히 벗어난 나는 곧바로 어젯밤 자기 전에 적었던 메모를 꺼내 들었다. 밤새 그가 한 말을 더듬어 동선 체크를 해 보았는데, 우리가 다녔던 학교와 그다지 멀지 않은 편의점에서 일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꽤 많은 후보 중에 추려 보자니 다섯 군데가 물망에 올랐고 오늘은 그곳들을 다 돌아볼 참이었다.

이런 가설을 세우기 전까지 나는, 정말 미친놈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며 아픈 상처를 꾸역꾸역 집어삼키던 나날을 지속했다. 동생이 정신병원에 가둬 두겠다며 내 뺨을 가격하고 나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도 늘 신경 안정제를 먹고 버티기 일쑤였다. 동생한테 폭력을 당했을 땐, 맞은 뺨을 움켜쥐고 아파서 어린애처럼 엉엉 한참을 울었다. 그가 내 곁에 있었다면 같이 힘들어하며 슬픔을 덜어 줬을 텐데, 이 시점엔 그럴 사람이 내 곁엔 존재하지 않았다.

비참하다 못해 목이 턱턱 막히고 며칠을 앓아눕고, 또 울고. 탈수 증세까지 와서 답답함에 목을 축이고자 맨발로 비가 오는 밤거리를 뛰며 ‘강우 씨’라는 말만 목이 터지게 외쳤다. 그걸 몇 번 더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여태껏 지나온 막연한 어둠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눈을 뜨고 깜빡이고 막 태어난 아기처럼 걸음마를 배우며 차곡차곡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까지가 지금의 이 상황이었다.

지난날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내가 가이드로 각성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과 잘 만나기란 힘든 일일 테니 최대한 빨리 그를 찾아야만 했다. 과거를 트는 일이라서 미래가 바뀌게 될까 영 찜찜했지만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틀어진다고 해도 내가 겪었던 회귀 전보다는 덜 끔찍할 것이리라 굳게 믿었으니까.

맞아. 지금에 충실하자.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는 게 우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