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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2화

2. 진강우(2)





내가 갔던 곳은 평범한 시민들이 사건을 의뢰하면 해결해 주는 흥신소 성향을 띤 재조합 회사였다. 그곳에서 나는.

‘공간 및 시간 능력과 모든 기억을 조절할 수 있는 매우 귀한 S급 에스퍼입니다. 조금 불안정해도 심차연 씨라면 충분히 다룰 수 있겠죠?’

진강우를 처음 만났다.

나와 진강우의 관계가 처음부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접근을 극도로 꺼렸던 그가, 부지기수로 내게 냉정하게 대하는 게 일반적으로 비추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그는 나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어디 그 잘난 가이딩 좀 해 보시지? 하던 진강우의 말이 허세로 똘똘 뭉친 말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내 가이딩을 거부했고, 홀로 버티려고 애썼다. 그게 못내 마음이 쓰여 늘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날이 늘어 갔다.

하루는 가이딩을 받지 않아 불안정해진 진강우를 위해서 직접 임무를 함께하던 때였다. 번쩍이던 섬광과 순식간에 불안정한 상태에 돌입하여 힘도 쓰지 못하던 그를 집어삼키려는 상황에서 나는 내 온몸을 내던졌다. 그것이 가이드로서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인지, 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움직인 것인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에스퍼를 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알기 힘든 울렁거림이 몸을 감쌌을 뿐이었다.

진강우를 감싸는 것과 동시에 나는 공명을 시도했고 불안정했던 그를 살렸다. 내 등은 그를 감싼 것 때문에 심한 타격을 입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고통에 넝마가 되었다. 그 이후로 진강우는 내게 한없이 다정하게 굴었다. 내가 뭐만 하면 걱정하며 안절부절 힘들어하는 모습은 내 쪽에서 그를 좋아하고 믿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계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답답한 어둠에 둘러싸인 인생에서 빛이 하나 가까스로 내리쬐어 죽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듯이. 하루하루가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복에 겨운 일이었다.

‘아프지 마. 네가 아프면 이상하게 가슴이 욱신거려, 미칠 것 같으니까. 응?’

달콤한 목소리가 아직도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깊은 우물 밑바닥까지 들리는 의미 깊은 애정.

‘항상 내 옆에 있어. 눈 밖에 나면 지켜 주기 어려우니까, 그냥 우리 둘이서 걱정 없이 살자.’

하루에도 여러 번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던 진강우를 생각하면 마음 전체가 미치도록 쓰렸다. 나는 무한한 애정을 주던 당신처럼 그만큼 노력했을까? 아니, 정작 가이드인 내가 제대로 못 해 준 기억만이 선명하게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못나게 굴고 추하게 행동했던 어리숙하고 부족한 나날들만 얼기설기 기억 속 공간에 저장되어 자물쇠가 걸리었다.

힘겹게 호흡하며 생이별을 한 그를 찾기 위해서, 회귀 후에 부단히도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저 막막하던 가운데 조금씩 퍼즐을 짜 맞추다 보면 이따금 회귀할 당시에 일이 떠올랐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촉박했다. 우리가 서로 각성하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진강우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분명히 회귀 전 내게 평범하게 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서로가 만날 접점이 사라지는 꼴이었다. 강제로 회귀한 지금 내 세상에선 그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잘 가. 꼭 살아남아. 네가 하고 싶었던 그 흔한 데이트도 다른 사람이랑 해 보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거야.’

웃기지 마, 진강우. 나를 멋대로 강제 회귀시켜 놓고 평범하게 살라고? 당신 없이 혼자서 죽은 듯이 숨만 쉬며 살아 봤자 그것이 다 무슨 의미인데.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와 파트너가 되어 함께 생활하게 된 이후였다. 그가 없는 내 삶은 말라비틀어진 새싹일 뿐이었다. 씨앗을 뿌려 준 것도 그였고, 그 씨앗에 물을 주어 싹을 나게 해 준 것도, 모두 그가 한 일이었다.

그는 바보같이 파트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 위해서 미련한 죽음을 선택했다. 고작 어리숙한 B급 가이드 한 명을 살린답시고 회귀 스킬을 내게 사용했다.

‘……진짜 B급이야? 그런데 어떻게 S급 가이딩이 가능하지?’

그러게. 왜 가능했을까. 네가 진강우라서 내겐 매우 특별했으니 가능했던 걸까.

‘심차연. 다른 S급은 안 돼. 넌 이제 내 파트너니까 나 이외의 사람 말은 무시해. 오로지 나한테만 집중하는 거야.’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사용했던 스킬의 리스크가 뒤늦게 떠올랐다. 회귀를 사용하고 난 후 다시 스킬을 시전할 수 있는 시간은 최소 반나절이 훌쩍 지나야지만,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즉 나를 과거로 강제 회귀시킨 진강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죽었을 것이다. 스킬 쿨 타임이 돌지 않았을 테니 도망치지도 못하고 내가 갇힌 무너져 가는 방어막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갔겠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혼자서 얼마나 슬펐을지 도통 가늠이 안 가.’

그의 희생으로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혼자서 도망치고 나니 멋대로 이런 일을 벌인 그에게 모든 부분이 화가 났다. 나를 위해서 죽은 진강우뿐만이 아니라, 그가 회귀 전 했던 모든 말조차도 모두 거스르고 싶었다.

잊으라고 했지만 기억하고 싶었고, 다시 만나서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니 우리가 각성하기 전에 그와 만나서 평범했던 삶을 조금이라도 누려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를 떠나 회귀 된 지도 오늘로써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 하늘은 그와 첫 임무를 나갔을 때와 무섭도록 똑 닮아 있었다. 평소에는 무뚝뚝해도 같이 임무를 나갈 때마다 상냥했는데. 조금 더 내 쪽에 맞춰 주며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더랬지. 그러다가 내가 임무 중 다치기라도 했을 땐 강철같이 냉정해졌던 그였다.

처음 봤을 때는 어땠더라. 희미했던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 보니, 상냥했지만 강했던 모습에 남들보다 더 시선이 갔던 게 떠올랐다. 이 감정이 동료애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의 감정인지는 아직도 아리송하게 남아 있다. 남들이 다 무서워해서 파트너조차 찾지 못한 그에게 배정되었을 때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암담했으니까.

얼굴은 생각보다 잘생겼었다. 종종 웃어 주던 미소 또한 따뜻했고 상냥했다. 오로지 내게만 보여 주던 그 미소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가 친해지기 버거울 정도로 벽을 쌓았고, 나도 소심했기에 곧장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했기에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 순간 그에게 이미 푹 빠져 버린 후였다.

자신보다 나를 더 생각해 줬던 사람이었다. 늘 믿음직스럽고 다정했지만, 그건 오로지 나한테만 국한된 그의 성격이었다. 설마 그를 좋아했던가. 맞아. 좋아했기에 여태껏 옆에 없으니 불안하고 허전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야! 오늘 1교시라며!?”

“으응, 나 일어났어!”

달력을 살펴보니 평일이었다. 회귀해서도 학교에 가야 한다니. 진짜 끔찍하다. 그 전에 진강우를 찾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그와 첫 가이딩 파트너를 맺고 나눴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떠올려 봤다. 다녔던 대학교는 신기하게도 나와 같았고, 학과만 달랐었던가. 평범한 경영학과를 나왔던 나와는 달리, 그는 체대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덩치가 컸고 무뚝뚝했다. 아마도 듣기로는 학교 근처에서 공부했다고 했는데. 똑똑하고 성실했던 그라면 분명히 그 근처에서…….

“야! 심차연!”

네 살 아래 동생이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씨발! 알아서 해, 난 깨웠다!”

쾅 소리가 나며 문 닫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나를 죽도록 싫어하는 동생이 나간 것이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놀란 마음만 겨우 쓸어 넘겼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나가기 위해 급하게 옷가지들을 몸에 걸쳤다. 가벼운 티셔츠와 면바지만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서니 구슬프게도 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심차연, 너는 파란색이 어울려. 그게 좀 더 너다운 색이야.’

“아…….”

정말 무심결에 떠오른 음성이었다. 맞아, 진강우는 내가 파란색이 잘 어울린다고 했었지. 똑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르게 맞췄던 피어싱도 그래서 파란색으로 골랐었고.

현재 내 귀에는 그와 맞췄던 커플 피어싱이 달려 있었다. 그가 회귀 전 내게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다. 그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기어코 입안을 잘게 씹으며 참아 냈다. 내가 울면 그 사람은 왜 또 우냐고 슬퍼할 테니까. 아마도 울지 말라고 머리를 헝클어뜨릴 것이고, 나는 괜찮다는 듯이 그렇게 또 웃기만 하겠지.

최대한 입꼬리를 말아서 웃어 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가장 나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색하고 미련해 보이는 억지를 빼지 못한 채로. 그가 보면 비웃을 만한 어리숙함만 거울에 비추어졌다.



***



때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 이미 진강우는 대학을 졸업했고, 나는 아직도 학교에 묶여 있었다. 지금도 무료하게 앉아서 수업을 듣는 와중 멍청하게 떠들어 대는 동기생들의 모습을 조용히 눈으로 훑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원체 소심한 성격 탓에 대학교에서도 늘 겉돌던 존재였다. 게다가 이맘때쯤 동생이 크게 아파 목돈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학교마저 자퇴했다.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동생의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으니 부득이한 처사였다. 그때 어땠었지? 곰곰이 기억을 되새기자,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거의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버린 내 동생의 모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혼자서 끔찍함을 마주하고 벌벌 사시나무처럼 떨며 주저앉아 몸을 웅크린 채…….

‘잠깐, 오늘 며칠이지?’

회귀 전에 썼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구닥다리 핸드폰을 열어 보니 오늘은 동생이 교통 사고당하기 약 한 달 전 정도 되는 날이었다. 밤에 도서관에서 돌아오던 빗길에 크게 사고가 났었던가.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졌고, 척추가 다쳐 두 다리는 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망가졌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몰골은 많이 나아지긴 했다지만, 그래도 사고 당시 모습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연했다.

머릿속엔 이미 끔찍했던 동생의 모습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동생과 사이는 나빴으나 다시는 그런 일을 겪기 싫었던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만 쌓였다. 동생이 사고가 났을 때 나는 열심히 일하던 중이었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쉴 틈 없이 들어오는 주문에 라면만 줄창 끓였었던가. 스프 냄새가 너무 질려 헛구역질이 나올 수준까지 오자, 메시지와 함께 전화가 걸려 왔었고.

“아…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