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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1화

1. 희생





“사, 살려 주세요…….”

애원하는 목소리가 처량했다. 작고 마른 몸이 파르르 떨며 울먹였다. 벌벌 떠는 심차연 주위에는 핏자국이 만연했다. 그렇다는 건 그가 이미 한차례 공격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땅을 짚고 눈을 감으니 적들의 움직임이 시뮬레이션처럼 머릿속에 얼기설기 펼쳐졌다. 동쪽으로 세 명, 서쪽으로 네 명, 남과 북으로 각각 다섯 명씩. 꽤 많은 인원이 심차연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입에선 당연하게 욕이 튀어나왔다.

저 작은 녀석 하나를 잡겠다고 기관에서 이 많은 인원을 배치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심차연.”

땅에 꿇었던 무릎을 일으켜 자신을 방어하던 녀석을 찾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후. 그제야 구석에서 작은 햄스터처럼 몸을 웅크린 심차연의 커다란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불과 몇 분 전 녀석의 모습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내가 이곳에 없는 동안 살려고 발버둥 쳤을 심차연의 모습이 그려졌다.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었다. 좀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나는 왜 너를 더 빨리 발견하지 못한 걸까. 밀려오는 후회를 머금고 다시금 너를 살폈다.

커다란 눈망울은 불안한 듯 흔들렸다. 흑요석같이 까만 눈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뚝뚝 눈물을 흘려 댔다.

……우는 녀석을 보자 심장이 쿡쿡 아려 왔다.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늘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고. 그러다가 후회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벌벌 떠는 너의 몸을 꽉 끌어안고 다독여 주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미 심차연을 가둔 방어막을 제외한 바깥쪽은 붕괴의 조짐이 보였다. 수많은 파편이 눈가루처럼 팔랑거리는 형상에 머릿속에선 적신호를 울렸다.

“강우 씨…….”

심차연이 내 이름을 불렀지만, 이를 무시하고 주위를 살폈다. 지금으로써는 심차연을 데려가려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분명히 울고 있을 녀석을 향해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심차연. 절대로 방어막 밖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흐으…… 강우 씨이…….”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내가 널 무조건 지켜 낼 거야. 나 믿지? 꼭 믿어야 해. 그래야지 살 수 있어.”

“네. 강우 씨 믿을게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게요.”

“그래, 좋아.”

심차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공포감에 휩싸인 채였다. 한마디를 전할 때마다 떨려 오는 불안함이 피부 위로 느껴졌다. 파트너끼리는 서로의 감각이 공유되니, 충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몸에서 최대한 많은 힘을 무리하게 짜내었다. 숨을 죽이고 심차연 주위에 있던 자들을 물색하여 한꺼번에 죽일 생각이었다.

스릉.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검 끝에 힘을 주입해서 단번에 휘두르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이 방법엔 커다란 리스크가 존재했다.

기관에서 보낸 자들과 더불어 심차연과 나까지 죽는다. 어찌 보면 녀석을 가두고 있던 방어막 자체를 부숴 버리는 일이었으니 큰 도박에 가까웠다.

심차연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킬을 쓰기 전, 녀석을 우선으로 강제 회귀시키는 일뿐이었다.

이미 모든 시나리오는 완성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방법이 이것뿐이었으니 서운함과 애틋한 감정은 접어야만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심차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엉망으로 울고 있는 까만 눈의 녀석과 마주하니 아, 심차연이 느끼는 공포가 내게도 똑똑히 느껴진다.

난잡하게 뒤엉키는 감정이 스며 와 모든 게 절망으로 물들었다. 나는 지금 녀석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내 표정 때문에 그가 더 공포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최대한 괜찮은 척 웃어 보이자 심차연 역시 편안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그래, 그 모습이 심차연다웠다. 넌 그렇게 웃으면 돼. 파트너가 되어 항상 고생만 시켰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그를 편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그를 보낼 강제 회귀 시점을 짜 보았다. 우리가 만나기 전으로, 파트너가 아니었을 때로 회귀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면 너는 평범하게 살 수 있을 테고 나를 만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무리하게 가이딩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울먹이는 심차연의 얼굴에서 눈물이 메말랐을 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과거로 돌아가면 잘 살아. 이용당하지도 말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도망쳐. 그리고 나를 잊어. 수많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정작 입 밖에 꺼내려고 하니 벅찬 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들었다.

가장하고 싶은 말부터 천천히 해 보자. 하나씩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면 소심한 그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최대한 뻔뻔하게 말하기로 했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부터 차곡차곡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심차연. 있잖아…. 나 너 안 미워해. 이건 정말 진심이니까 의심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내가 곁에 없어도 꼭 행복해라, 차연아.”

“강우 씨,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요.”

떨려 오는 목소리에 마음이 미어졌다. 심장이 쿵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눈이 따갑도록 달아올랐다. 내가 여기서 울어 버리면 네가 더 슬퍼할 거라 울지 말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눈가엔 저절로 물기가 서렸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헤어지기는 죽도록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쉬움을 참아 내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마음의 아픔보다는 참을 만했다.

나는 심차연의 강제 회귀를 시행하기 위해서 팔을 그쪽으로 쭉 뻗었다. 평범했던 검은 눈이 놀란 듯 크게 뜨이는 게 보였다. 담담히 그를 바라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만나기 3년 전으로 널 회귀시킬 거야.”

“회, 회귀라뇨? 안 돼요, 강우 씨! 내가 어떻게 강우 씨를 혼자 두고…… 자, 잠깐 저 버리지 말아요!”

“잘 가. 꼭 살아남아. 네가 하고 싶었던 그 흔한 데이트도 다른 사람이랑 해 보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거야. 아, 맞다. 심차연 너 좀 있으면 생일이었지?”

생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슬펐던가. 내뱉은 단어 하나에 심장이 뜨거웠다. 그가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넌 웃는 게 좋은데 내 품도 아닌 곳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이대로 널 보내기 싫다. 죽어도 보내기 싫어. 하지만 보내 줘야만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냥 내가 너한테 미리 챙겨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심차연.”

이름을 부르자 동그란 눈이 표정을 살펴 왔다. 귀엽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작은 햄스터 같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너와 헤어지기 싫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회귀 스킬에는 크나큰 리스크가 존재했으니 그러니까 네 곁엔 내가 없을 거였다. 늘 그랬듯이 나는 항상 널 먼저 생각할 거야.

“차연아. 이젠 널 놓아줄게. 잘 가.”

“아, 안 돼요, 강우 씨!”

‘널 진심으로 사랑했어’라는 말은 끝내 전하지 않았다. 그러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이 울려 왔지만, 이를 무참히 무시했다.

2020년 어느 한 가을. 너와 나의 파트너 계약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2. 진강우(1)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악몽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떴다. 몸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통 한기가 들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바보같이 또 그와 헤어졌을 때의 꿈을 꾸고 말았다. 꿈을 꾸고 나면 어김없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동반되었다. 진강우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을 어떻게 잊어.

나는 눈을 비벼서 뿌옇던 시야를 확보했다.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왔고, 어김없이 그가 없는 끔찍한 아침이 찾아왔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니 힘들었던 마음에 차가운 공기가 들어찼다.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이 공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나 혼자서만 비겁하게 도망친 상황에서 회귀가 되고 난 이후로 밤잠을 설쳐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지금의 난 결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회귀한 시점은 정확히 3년 전 과거.

그가 나를 왜 이곳으로 보냈는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가이드 발굴 프로젝트가 생기기 정확히 1년 전이 지금 시점이었다. 생활은 매우 자유로웠고 에스퍼나 가이드라는 것도 전혀 몰랐을 그 시절로 돌아온 것이다.

딱 이맘때쯤이였나. 내가 막 학교를 자퇴하고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힘들어서 방황했던 적이. 큰돈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가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도 마쳤었다.

옆에 놓아둔 달력을 살펴보니 아직 가이드 프로젝트가 공표되려면 기간이 조금 남은 상황이었다. 진강우와 내가 완벽히 타인이었을 시절.

나는 아직 가이드로 각성한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그를 만나는 시점은 가이드로 각성하고 난 뒤였으니.

무슨 일을 벌여서라도 가이드 프로젝트가 공표되기 전, 다시 진강우를 만나야 했다. 그는 지금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을 잘 알았지만, 그래도 꼭 만나서 함께하고 싶었다. 회귀하고 난 이후로 더욱이 매 순간 하루라도 그와 평범한 날을 꿈꿔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다른 사람이 아닌, 진강우와 모든 걸 함께하면서 서로를 보듬는 관계를 원했다. 진강우 옆이 아니면 살아가는 의미조차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꼭 그를 만나길 간절히 바랐다.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라 여겼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틀어진 발자취는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고, 더 혼란스러운 발자국만 남기며 새로운 상처와 얼룩을 새길 뿐이었다. 나를 잡으려고 하는 끔찍한 사람들. 알 수 없이 떠들어 대며 내게 손가락질하던 모든 이에게 진강우는 든든한 방패와도 같았다.

구멍이 날 걱정이라곤 전혀 없던 그 견고함이 뚫려 버린 순간, 내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허한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아쉽게도 나를 몰아넣은 채 강제로 끌고 가려던 사람들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나를 앞에 두고 어렴풋이 ‘쓸모가 있을 거다’, ‘한몫 단단히 챙기겠네’ 하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이 사실은 나를 보호하던 진강우조차 모르는 일이다. 내가 가장 허약하고 힘을 쓸 수 없을 때 들이닥친 불행과 맞물린 공포. 회귀를 한 시점에서조차 그 끔찍한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선명하게 자리할 뿐.

그랬기에 진강우를 꼭 찾아야 한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그의 이름을 외쳐 대었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아니, 그를 모르는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도통 가늠이 가질 않아 무서움만 가중되었다.

모든 가이드는 대학을 졸업하게 될 나이쯤이 되면, 가이드 자격증을 받게 된다. 나도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나이였지만, 지금은 가이드로 각성하기 전으로 돌아온 것이니까.

잘 떠올려 보면 가이드 프로젝트가 공표되자마자 지원했으니 나도 가이드로 각성할 날이 머지않은 셈이었다.

나는 비교적 손쉽게 가이딩 적합 판정을 받았었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 주는 가이드 자격증을 발급받은 후, 가이드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이송되기 전 나는 사설 기관에 배치되어 파트너가 될 에스퍼를 기다렸다.

‘적당히 손잡고 스킨십하고. 가이딩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까 대범하게 해. 알지? 대범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