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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욕도 전염이 된다.
다음날 아침.
당소기는 상단의 행렬을 따라 말을 몰고 있었다.
그의 눈은 시뻘게져 있었는데, 어젯밤의 충격적인 패배를 곱씹느라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일방적인 패배.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마교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권장각으로 맞부딪쳤을 때 느꼈던 기운은 광포한 마공도 아니었고, 사이한 사파계열도 아니었다.
‘오히려… 도가 무공에 가까웠지.’
해답은 얻었지만 불완전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송곳일까.
낭중지추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예리하고 뾰족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답을 해줘야할 담천우는 아직도 마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건 정오도 훌쩍 지났는데, 상단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그를 깨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마차에 들어갔다고 했고, 이전에도 삼 일간 마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했던 사례가 있다고 했다.
‘혹시 내상을 입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힘을 쏟아냈을 때 반드시 쉬어줘야 하는 그런 증상이라도 있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생각이 길어질수록 후자 쪽으로 물꼬가 트였다.
내공을 응집했다가 한꺼번에 터트리고, 그걸 다시 응집하는 뭐 그런 류의 무공이 아닐까…….
변명 같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강할 리가 없다는 반발심으로 툭하고 튀어 나온 생각이었다.
‘일단 내가기공 고수는 아니니까.’
당소기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힘은 맞지만, 육장으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일반적인 내력과는 달랐다.
뭔가 근원적인 힘에 더 가까운 듯한…….
‘하아… 생각이 너무 그쪽으로 치우쳤군.’
당소기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번만 더 부딪쳐 본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혹시 그게 외공적인 힘이었다면, 자신이 앞지를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외공은 성장에 있어 그 한계가 뚜렷하니까.
‘오 년… 십 년, 아니면 그 뒤.’
“오…….”
“오라버니!”
“응!?”
당소기는 깜짝 놀라서 전방을 바라봤다.
언제 다가왔는지 당혜미가 암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 오라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사람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듣지도 못하고.”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렇다.”
“오라버니가 피곤해요? 철두철미하게 자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지금은 좀 피곤하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냐?”
“오라버니! 우리 언제까지 저놈의 상단과 같이 가야 해요?”
당소기는 쓴 미소를 지었다.
당혜미는 자신의 동생이기는 하지만 꽤나 변덕이 심한 아이였기에, 기분을 맞춰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도 항주 방향으로 옳게 가고 있는데, 뭐가 문제지?”
“하지만 아주 느리게 가고 있죠.”
“애당초 우리 일은 시급을 다투는 것이 아니었다.”
당소기는 여지없이 딱 잘라 말했다.
“흥! 저딴 수준 떨어지는 상단과 같이 동행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요.”
“……저딴?”
당소기의 눈썹이 꿈틀하고 올라갔다.
“그래요. 저런 상단이 뭐가 좋다고 적 소저는 저렇게 붙어 있는지…….”
당소기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의 동생이 이리도 심사가 꼬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친해 보이는군.’
당소기도 의아하게 여길 만큼 적세령과 송린은 마치 친자매인양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주로 말하는 쪽은 적세령이었고, 송린은 듣는 쪽이었지만.
“오라버니도 저 불여시 상단주가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못 떠나고 있는 거냐고요.”
“너는 무슨 그런 말을…….”
당소기는 뜨악한 표정으로 당혜미를 바라보았다.
항상 자신만만해 하던 동생답지 않은 모습. 놀랍게도 그녀는 질시에 차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러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금대수도, 종회도 송린이라는 여상단주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예외라면 적세령의 호위로 붙여진 혁위 뿐.
어찌 되었든 송린은 여태껏 당혜미가 가졌던 여왕벌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당혜미같이 드센 성격이 아닌, 아주 유한 성격의 여왕벌 말이다.
“흥! 저딴 여자가 뭐가 좋다고 다 같이 헬렐레 하는 거야?”
당혜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두 청년을 쌀쌀맞게 대했다는 걸 잊어버린 듯했다.
당소기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딴말할 것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상단과 섞여서 같이 간다.”
“흥! 우리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단을 보호해 주면서 같이 가야 하는 거죠?”
당소기는 그녀의 어이없는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보호?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지만 그 표현은 잘못되었다. 보호는 우리가 받으면서 가게 될 것이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호를 받다니요?”
“여기 상단에는 상상도 못할 고수가 있다.”
“고수요? 마전이라는 사람의 무공은 그냥 그렇던데요.”
“그자가 아니다.”
“그럼 누구를 말하는 건데요?”
“상단사람들이 천 공자라고 부르는 사람.”
당소기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다보니 갑자기 오한이 느껴진 것이었다.
어젯밤.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당소기는 담천우가 떠나가고 난 뒤 암기의 흔적을 찾아 근방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 암기가 당가에서 만든 폭뢰정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랬다면 자신이 암기에 대항치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암기는 자신과 천우와의 격차를 확인시켜줬을 뿐이었다.
‘그건 분명 나뭇가지였다.’
그런데 그 힘이 얼마나 무지막지 했는지 바위를 두 치나 꿰뚫고 박혀 있었다.
“……보호를 받는 쪽은 우리란 말이다.”
당소기의 눈이 담천우가 있는 마차를 향했다.
그는 임무를 넘어서서 담천우 그 자체가 궁금해졌다.
* * *
“실패했습니다.”
“실패했다? 이유가 뭐지?”
중년인은 책상 가득히 쌓인 서류더미에서 눈을 떼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고자를 바라봤다.
“무림맹 백호단주가 개입했다고 합니다.”
“무림맹 백호단주라면 사천당가의 암룡 아닌가?”
당소기라면 그도 알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작은 용이라고 불리는 신진고수.
그 무재가 뛰어나서 절정이라고까지도 평가되는 자.
“그래도 의외로군. 아무리 암룡이라 하나 패천문의 흑산비상검이나 녹림의 척혈광부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
중년인은 뭔가 미심쩍은 답에 해결을 구하려는 듯 손가락을 탁자에 톡톡 두들겼다.
보고자는 그 와중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가?”
“그게… 말입니다. 암룡 당소기가 같이 동행하고 있는 자가 바로 혈마단의 목표물이라고 합니다.”
“동행하고 있는 자라면… 항주지부대인의 딸?”
“예, 그렇습니다.”
짜증이 가득했던 중년인의 얼굴에 슬며시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혈마단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 목표물과 겹친 걸 알고 차마 손을 쓰지 못한 모양입니다.”
“후후후, 그래야지.”
중년인은 자신들 쪽이 우위를 점했다는 걸 알고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된 바에는, 좋은 그림을 그려도 될 것 같군. 항부지부대인의 딸까지 같이 처리하는 그림말이야. 마침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좋게 처리될 것 같군.”
“……아, 그자를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그래, 도호부에 잠들어 있는 전장의 사냥개에게 먹이를 주는 게 좋겠어.”
중년인은 그러면서 전도에 놓인 한 지점을 가리켰다.
* * *
‘기척이 사라졌다.’
담천우는 앵앵거리던 모기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며칠 전부터 상단의 주변을 귀찮게 맴돌던 것들.
그중에 몇몇은 지금으로서는 상단을 온전히 지키면서 상대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꽤나 긴장감을 주었기에, 예의 주시하던 차였다.
“잘된 일이야.”
허튼 짓에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 그만큼 수련시간이 길어지는 거니까.
촤르르르.
화답하듯 주먹에 맺히는 짙푸른 기운. 천일령원기공의 내공이 이제 완숙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바깥바람을 좀 쐬어야겠군.’
얼마 전 당소기라는 젊은 아이와 붙고 나서 거의 하루 만에 다시 나가는 마실.
하지만 나서자마자 담천우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이봐요?”
웬 고양이 상을 한 여인이 암팡지게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누구……?”
“흥! 삼 일 전에 상단에 합류했잖아요.”
“아…….”
솔직히 당소기 말고는 존재감이 없어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와그작와그작.
지금 씹고 있는 건 상행을 나가기 전에 개별적으로 사놓았던 벽곡단이었는데, 몸의 화기를 없애면서 수련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맛은 글쎄… 보장 못하지만.
“이봐요?”
“아직 안 갔네?”
“야! 쟁자수.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리고 너, 왜 꼬박꼬박 반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당혜미가 보여주는 막무가내식 태도에 담천우의 얼굴에도 슬슬 짜증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존댓말을 좋아하시는구나. 알았어요. 좀 꺼져주시죠. 하루 만에 휴식하는 거라 방해받고 싶지 않거든요.”
“뭐 이런 게 다 있어!”
자기 혼자 열을 내던 당혜미는 살짝 호흡을 가다듬더니, 이내 생글 거리며 말했다.
“좋아요. 실력이 있다고 하니 그렇게 건방지다 해도 이해할게요. 작은 오라버니에게서 들으니 실력이 대단하다고 그러던데… 어때요? 이런 조그마한 상단은 그만두고 우리 당가와 함께하는 게?”
“당가? 그… 사천당가?”
“이제야 나의 대단함을 깨달았나 보죠? 맞아요. 내가 바로 사천제일화 당혜미에요. 우리 아버지는 당대 당가의 가주시고, 할아버지는 무림 십왕 중에 하나이신 독왕이에요.”
“아… 그러세요.”
담천우의 눈은 차갑게 식어갔지만, 그걸 모르던 당혜미는 기고만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능력도 출중하고 얼굴도… 뭐 그만하면 쓸 만한 것 같아서 내가 곁에 두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결정해요. 특별히 내 호위로 써줄게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담천우는 멍하니 당혜미를 바라보았다.
……이정도면 병이 아닐까.
바스락.
그런데 어느 순간 나뭇잎 밟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송린이었다.
얼굴을 보니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저…….”
송린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좌절감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움츠렸다. 그에 비해 당혜미는 이미 모든 걸 빼앗은 것 같은 승자의 표정.
담천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다면야…….”
“네, 당연히 사천당가겠죠. 후후, 잘 생각했어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난 지금 당신한테 빨리 꺼져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참나, 왜 와가지고 햇빛은 가리는 거야. 아침부터 별 그지 같은 말을 다 들었네요.”
“뭐, 뭐라고요?”
“에휴, 말을 말아야지.”
담천우는 송린을 슬쩍 바라보며 내심 혀를 쯧쯧 찼다.
오 년 동안 있겠다고 분명히 말을 했고, 혹여 간다 해도 저런 성질 더러운 여자 밑으로 가겠냐고.
“그쯤 해두죠.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니까.”
담천우가 음성에 강한 내기를 실자, 당혜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당신… 진짜…….”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려던 찰나, 당혜미는 멈칫하면서 입을 닫았다.
송린의 시선이 담천우에게 박혀 있었는데, 그 표정이 환희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예쁘기는 더럽게 예쁘네.’
담천우는 아찔해지는 광경에 살짝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당소기는 상단의 행렬을 따라 말을 몰고 있었다.
그의 눈은 시뻘게져 있었는데, 어젯밤의 충격적인 패배를 곱씹느라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일방적인 패배.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마교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권장각으로 맞부딪쳤을 때 느꼈던 기운은 광포한 마공도 아니었고, 사이한 사파계열도 아니었다.
‘오히려… 도가 무공에 가까웠지.’
해답은 얻었지만 불완전했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송곳일까.
낭중지추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예리하고 뾰족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답을 해줘야할 담천우는 아직도 마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건 정오도 훌쩍 지났는데, 상단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그를 깨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마차에 들어갔다고 했고, 이전에도 삼 일간 마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했던 사례가 있다고 했다.
‘혹시 내상을 입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힘을 쏟아냈을 때 반드시 쉬어줘야 하는 그런 증상이라도 있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생각이 길어질수록 후자 쪽으로 물꼬가 트였다.
내공을 응집했다가 한꺼번에 터트리고, 그걸 다시 응집하는 뭐 그런 류의 무공이 아닐까…….
변명 같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강할 리가 없다는 반발심으로 툭하고 튀어 나온 생각이었다.
‘일단 내가기공 고수는 아니니까.’
당소기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힘은 맞지만, 육장으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일반적인 내력과는 달랐다.
뭔가 근원적인 힘에 더 가까운 듯한…….
‘하아… 생각이 너무 그쪽으로 치우쳤군.’
당소기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너무 치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번만 더 부딪쳐 본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혹시 그게 외공적인 힘이었다면, 자신이 앞지를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외공은 성장에 있어 그 한계가 뚜렷하니까.
‘오 년… 십 년, 아니면 그 뒤.’
“오…….”
“오라버니!”
“응!?”
당소기는 깜짝 놀라서 전방을 바라봤다.
언제 다가왔는지 당혜미가 암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 오라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사람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듣지도 못하고.”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렇다.”
“오라버니가 피곤해요? 철두철미하게 자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지금은 좀 피곤하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냐?”
“오라버니! 우리 언제까지 저놈의 상단과 같이 가야 해요?”
당소기는 쓴 미소를 지었다.
당혜미는 자신의 동생이기는 하지만 꽤나 변덕이 심한 아이였기에, 기분을 맞춰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도 항주 방향으로 옳게 가고 있는데, 뭐가 문제지?”
“하지만 아주 느리게 가고 있죠.”
“애당초 우리 일은 시급을 다투는 것이 아니었다.”
당소기는 여지없이 딱 잘라 말했다.
“흥! 저딴 수준 떨어지는 상단과 같이 동행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요.”
“……저딴?”
당소기의 눈썹이 꿈틀하고 올라갔다.
“그래요. 저런 상단이 뭐가 좋다고 적 소저는 저렇게 붙어 있는지…….”
당소기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의 동생이 이리도 심사가 꼬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친해 보이는군.’
당소기도 의아하게 여길 만큼 적세령과 송린은 마치 친자매인양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주로 말하는 쪽은 적세령이었고, 송린은 듣는 쪽이었지만.
“오라버니도 저 불여시 상단주가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못 떠나고 있는 거냐고요.”
“너는 무슨 그런 말을…….”
당소기는 뜨악한 표정으로 당혜미를 바라보았다.
항상 자신만만해 하던 동생답지 않은 모습. 놀랍게도 그녀는 질시에 차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러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금대수도, 종회도 송린이라는 여상단주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예외라면 적세령의 호위로 붙여진 혁위 뿐.
어찌 되었든 송린은 여태껏 당혜미가 가졌던 여왕벌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당혜미같이 드센 성격이 아닌, 아주 유한 성격의 여왕벌 말이다.
“흥! 저딴 여자가 뭐가 좋다고 다 같이 헬렐레 하는 거야?”
당혜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두 청년을 쌀쌀맞게 대했다는 걸 잊어버린 듯했다.
당소기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딴말할 것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상단과 섞여서 같이 간다.”
“흥! 우리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단을 보호해 주면서 같이 가야 하는 거죠?”
당소기는 그녀의 어이없는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보호?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지만 그 표현은 잘못되었다. 보호는 우리가 받으면서 가게 될 것이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호를 받다니요?”
“여기 상단에는 상상도 못할 고수가 있다.”
“고수요? 마전이라는 사람의 무공은 그냥 그렇던데요.”
“그자가 아니다.”
“그럼 누구를 말하는 건데요?”
“상단사람들이 천 공자라고 부르는 사람.”
당소기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다보니 갑자기 오한이 느껴진 것이었다.
어젯밤.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당소기는 담천우가 떠나가고 난 뒤 암기의 흔적을 찾아 근방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 암기가 당가에서 만든 폭뢰정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랬다면 자신이 암기에 대항치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암기는 자신과 천우와의 격차를 확인시켜줬을 뿐이었다.
‘그건 분명 나뭇가지였다.’
그런데 그 힘이 얼마나 무지막지 했는지 바위를 두 치나 꿰뚫고 박혀 있었다.
“……보호를 받는 쪽은 우리란 말이다.”
당소기의 눈이 담천우가 있는 마차를 향했다.
그는 임무를 넘어서서 담천우 그 자체가 궁금해졌다.
* * *
“실패했습니다.”
“실패했다? 이유가 뭐지?”
중년인은 책상 가득히 쌓인 서류더미에서 눈을 떼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고자를 바라봤다.
“무림맹 백호단주가 개입했다고 합니다.”
“무림맹 백호단주라면 사천당가의 암룡 아닌가?”
당소기라면 그도 알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작은 용이라고 불리는 신진고수.
그 무재가 뛰어나서 절정이라고까지도 평가되는 자.
“그래도 의외로군. 아무리 암룡이라 하나 패천문의 흑산비상검이나 녹림의 척혈광부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
중년인은 뭔가 미심쩍은 답에 해결을 구하려는 듯 손가락을 탁자에 톡톡 두들겼다.
보고자는 그 와중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가?”
“그게… 말입니다. 암룡 당소기가 같이 동행하고 있는 자가 바로 혈마단의 목표물이라고 합니다.”
“동행하고 있는 자라면… 항주지부대인의 딸?”
“예, 그렇습니다.”
짜증이 가득했던 중년인의 얼굴에 슬며시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혈마단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 목표물과 겹친 걸 알고 차마 손을 쓰지 못한 모양입니다.”
“후후후, 그래야지.”
중년인은 자신들 쪽이 우위를 점했다는 걸 알고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된 바에는, 좋은 그림을 그려도 될 것 같군. 항부지부대인의 딸까지 같이 처리하는 그림말이야. 마침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좋게 처리될 것 같군.”
“……아, 그자를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그래, 도호부에 잠들어 있는 전장의 사냥개에게 먹이를 주는 게 좋겠어.”
중년인은 그러면서 전도에 놓인 한 지점을 가리켰다.
* * *
‘기척이 사라졌다.’
담천우는 앵앵거리던 모기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며칠 전부터 상단의 주변을 귀찮게 맴돌던 것들.
그중에 몇몇은 지금으로서는 상단을 온전히 지키면서 상대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꽤나 긴장감을 주었기에, 예의 주시하던 차였다.
“잘된 일이야.”
허튼 짓에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 그만큼 수련시간이 길어지는 거니까.
촤르르르.
화답하듯 주먹에 맺히는 짙푸른 기운. 천일령원기공의 내공이 이제 완숙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바깥바람을 좀 쐬어야겠군.’
얼마 전 당소기라는 젊은 아이와 붙고 나서 거의 하루 만에 다시 나가는 마실.
하지만 나서자마자 담천우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이봐요?”
웬 고양이 상을 한 여인이 암팡지게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누구……?”
“흥! 삼 일 전에 상단에 합류했잖아요.”
“아…….”
솔직히 당소기 말고는 존재감이 없어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와그작와그작.
지금 씹고 있는 건 상행을 나가기 전에 개별적으로 사놓았던 벽곡단이었는데, 몸의 화기를 없애면서 수련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맛은 글쎄… 보장 못하지만.
“이봐요?”
“아직 안 갔네?”
“야! 쟁자수.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리고 너, 왜 꼬박꼬박 반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당혜미가 보여주는 막무가내식 태도에 담천우의 얼굴에도 슬슬 짜증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존댓말을 좋아하시는구나. 알았어요. 좀 꺼져주시죠. 하루 만에 휴식하는 거라 방해받고 싶지 않거든요.”
“뭐 이런 게 다 있어!”
자기 혼자 열을 내던 당혜미는 살짝 호흡을 가다듬더니, 이내 생글 거리며 말했다.
“좋아요. 실력이 있다고 하니 그렇게 건방지다 해도 이해할게요. 작은 오라버니에게서 들으니 실력이 대단하다고 그러던데… 어때요? 이런 조그마한 상단은 그만두고 우리 당가와 함께하는 게?”
“당가? 그… 사천당가?”
“이제야 나의 대단함을 깨달았나 보죠? 맞아요. 내가 바로 사천제일화 당혜미에요. 우리 아버지는 당대 당가의 가주시고, 할아버지는 무림 십왕 중에 하나이신 독왕이에요.”
“아… 그러세요.”
담천우의 눈은 차갑게 식어갔지만, 그걸 모르던 당혜미는 기고만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능력도 출중하고 얼굴도… 뭐 그만하면 쓸 만한 것 같아서 내가 곁에 두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결정해요. 특별히 내 호위로 써줄게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담천우는 멍하니 당혜미를 바라보았다.
……이정도면 병이 아닐까.
바스락.
그런데 어느 순간 나뭇잎 밟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송린이었다.
얼굴을 보니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저…….”
송린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좌절감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움츠렸다. 그에 비해 당혜미는 이미 모든 걸 빼앗은 것 같은 승자의 표정.
담천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다면야…….”
“네, 당연히 사천당가겠죠. 후후, 잘 생각했어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난 지금 당신한테 빨리 꺼져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참나, 왜 와가지고 햇빛은 가리는 거야. 아침부터 별 그지 같은 말을 다 들었네요.”
“뭐, 뭐라고요?”
“에휴, 말을 말아야지.”
담천우는 송린을 슬쩍 바라보며 내심 혀를 쯧쯧 찼다.
오 년 동안 있겠다고 분명히 말을 했고, 혹여 간다 해도 저런 성질 더러운 여자 밑으로 가겠냐고.
“그쯤 해두죠.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니까.”
담천우가 음성에 강한 내기를 실자, 당혜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당신… 진짜…….”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려던 찰나, 당혜미는 멈칫하면서 입을 닫았다.
송린의 시선이 담천우에게 박혀 있었는데, 그 표정이 환희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예쁘기는 더럽게 예쁘네.’
담천우는 아찔해지는 광경에 살짝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