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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네가 내 뺨을 때려?







“당신 미쳤어요?”

“아니, 지극히 정상입니다만.”

“고작 저딴 년 때문에 나한테 이런다고요?”

당소기의 말에 담천우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누가 들으면 연인 간의 싸움 같겠지만, 고작해야 호위문제로 발생된 자존심 싸움일 뿐이었다.

바로 그때, 당소기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혜미.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작은 오라버니, 저놈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들었다.”

“들었다고? 들었는데도 가만히 있을 거야?”

“말이 좀 심했다. 둘 다.”

담천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했죠. 제가 좀 말이 심했습니다. 인정할게요.”

놀란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담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나 경어를 잘 쓰는 사람이다, 내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당혜미의 고개가 획하고 돌아갔다.

“흥! 당신, 내가 이대로 넘어갈 것 같아요? 절대 가만히 안 둘 거예요.”

“네. 정말 기대되네요.”

“으으. 정말 얄미워 죽겠네!”

당혜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발을 쿵쿵 거리며 사라졌다.

당소기가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직 어려서 그러니 이해해주게. 가주님한테는 내가 잘 얘기하지.”

“에이,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아요.”

암고양이가 발톱을 들이댄다고 무서워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보기가 안쓰러울 뿐이지.

“헌데, 저한테 용건이 있나요?”

이렇게 물은 이유는 당소기의 표정에 뭔가 할 말이 가득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기… 어젯밤 대결 말인데.”

“대결? 아, 한밤의 체조.”

담천우로서는 순화해서 말을 한 것이었는데, 당소기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송린은 뭔가 곤란한 얘기가 나올 것 같음을 짐작하고는 눈치 빠르게 빠져주었다.

덕분에 당소기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혹시 외가고수인가?”

“……아.”

담천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맞아요. 주특기가 외공이지.”

“그랬군.”

딱딱하게 굳어 있던 당소기의 입가가 조금 더 편안하게 제자리를 잡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담천우는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게 착한 거짓말이구나. 이렇게 또 착한 짓을 하고야 말았어.’

“헌데 언제까지 동행할 작정이죠? 당신 동생도 슬슬 거슬리고, 오래 있어봐야 좋은 꼴을 볼 거 같지는 않은데.”

“어차피 우리가 가는 방향도 항주 쪽이다. 허니 같이 동행했으면 싶은데.”

“따라붙은 쥐새끼들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기척은 모두 사라졌으니까.”  

“……아!”

냉독이라고 소문난 당소기답지 않게 그의 입이 주책없이 벌어졌다.

“눈치 채고 있었단 말인가?”

“삼 일 전. 합류하자마자 이십여 명 정도의 기척이 느껴지더군요.”

“이십여 명?!”

생각보다 많았던 적의 숫자에 놀랐는지, 당소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히려 빚을 졌군.”

“호오, 빚 갚을 생각이 있는 건가요? 사천당가답군요.”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라는 사천당가의 유명한 가훈.

담천우는 그것을 상기시킨 것이었고, 당소기는 얼굴이 더욱 굳었다.

“확실히 빚을 졌다고 할 수 있겠군. 뭔가 바라는 거라도 있나?”

“일단 생각해보고요. 이런 빚은 두고두고 써먹어야죠. 사천당가의 직계들을 위기에서 구해줬는데.”

“내가 이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지키도록 하지.”

그의 말에 담천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 * *



물동량이 넘쳐나기로 유명한 항주.

당대의 시성 이태백이 사랑한 곳이자 향락의 도시.

그중에서도 항주의 중심지라고 하면 역시 항주 대항로였다.

마차 여덟 량이 한꺼번에 왕복할 수 있을 만큼 대로는 넓었고, 그 양쪽에 죽 늘어선 노점은 사람들에게 많은 유흥거리를 제공했다.

그런데 시객들과 풍류를 아는 강호인들이 어울려 향락을 즐기는 이 거리에, 돌연 지축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다그닥 다그닥.

총 팔십 량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레 행렬.

하지만 그 행렬보다도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끈 건 바로 그들의 차림새였다.

왜냐하면 단정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한 맨 앞의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일행들의 옷차림은 다소 추레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과연 항주네요.”

송린은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민망한 지 코끝을 찡긋 했다.

세련된 항주 사람들의 복색에 비하면, 연이은 야숙으로 꼬질꼬질해진 상단의 모양새는 단연코 비교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단주님,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런 허울 좋은 옷을 걸친 사람들보다도 상단주님이 훨씬 아름다우십니다.”

“대행수님도 참…….”

“흥! 가지가지 하네.”

송찬과 송린의 대화에 당혜미는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녀는 담천우와 그 일이 있고나서 상단 사람들하고도 완전히 틀어졌다.

특히 담천우와 송린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살짝 난감해진 송린은 분위기도 전환시킬 겸 적세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적 소저, 우리는 절강도호부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차피 본가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요. 마침 도호부에 아는 분도 있으니, 이왕 가는 김에 저도 보면 좋죠.”

“적 소저께서 도호부에 아시는 분이 계시다고요?”

“히히. 가서 만나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귀염성 있게 혀를 쭉 내미는 적세령의 태도에 송린은 담담한 미소를 흘렸다.

그녀에게는 지부대인의 딸이라는 지고한 신분만 아니라면 친동생으로 삼고 싶은 사근사근한 귀여움이 있었다.



* * *



절강도호부의 수문을 책임지고 있던 도위 나평의 별명은 석불(石佛)이었다.

인성이 침착하고 진중해서가 아니라, 웬만한 일에는 엉덩이를 붙이고 꿈쩍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아냥조로 붙여진 것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항주는 물류의 핵심지였고, 게다가 그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던 절강도호부에는 많은 유력인사들이 내방했다.

그렇다 보니 나평은 웬만한 건 다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 지금 누가 내방했다고?”

“송가상단과 사천당가의 당소기 소협, 당혜미 소저, 제검문의 종회 소협, 금환장 금대수 소협입니다.”

“송가상단이면 송가상단이지, 나머지 사람들은 뭔가? 같이 왔다는 거야?”

“그, 그게 그렇게 같이 왔습니다.”

“햐아, 미치겠구만.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차라리 황실이나 군의 상급기관에서 방문했다고 하면 쉬울 것이다. 즉각 윗선에 알리면 되니까. 그런데 무림의 인사라니…….

어쩔 수 없이 나평은 웬만한 일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소문이 난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가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나평은 짐짓 그렇게 말하며 수하에게는 침착함을 보여주려 했지만, 민간에까지 흉악하기로 소문이 난 사천당가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도착하고 보니 관문 앞의 정경은 아직까지는 평온했다. 그 앞으로는 웬 마차들이 죽 늘어서 있고, 영준발랄하게 생긴 몇몇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나평은 그들에게 다가가 크게 군례를 취하며 말을 건넸다.

“관문의 책임자 도위 나평이오. 소협들께서는 어인 일로 행차하셨소?”

“아, 나 도위시로군요. 저는 적세령이라고 해요. 그리고 여기는 사천당가의 당소기 소협, 당혜미 소저, 제검문의 종회 소협, 금환장의 금대수 소협이구요. 사실 저희들은 곁가지로 따라온 것이고, 여기 계신 상단주 언니가 일이 있다고 해서 따라온 거예요.”

나평은 이 일이 실로 기묘하다 싶었다.

사천당가의 직계도 있는데 왜 가장 나이가 어려보이는 소녀가 앞에 나서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경우가 없다면서 꾸짖지는 않았는데, 이는 순전히 관문장으로서의 오랜 경험으로 익혀온 감 때문이었다.

그만큼 나평은 눈앞의 소녀가 결코 범상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 당소기마저도 존중해 주는 눈치니까.’

무림에 별 관심이 없는 나평일지라도 사천당가의 당소기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달리 나평의 군례는 더없이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상단주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까지 방문하셨소?”

“저는 송가상단의 상단주인 송린이라고 합니다. 황실에서 명하신 대로 금년 명월 말까지 납품하게 되어 있던 미곡 오천 석을 정상적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송가상단에서… 군량미를? 흐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오?”

“……착각이라뇨?”

“우리 도호부에 정기적으로 군량미를 대는 군상은 따로 있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거기 장 위사, 혹시 자네는 그런 일을 상부로부터 전달 받은 바가 있었는가?”

“아닙니다, 나 도위 어른. 요사이 그런 전갈은 따로 없었습니다.”

“흐음, 이런 난감할 데가 있나……. 일단 빨리 문 별장을 불러오게!

“충!”

장 위사가 재빠르게 뛰어가자, 송린은 살짝 불안해지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나평에게 물었다.

“혹시 뭔가 착오가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죠?”

“글쎄올시다. 나는 그저 관문의 책임자일 뿐이고, 군량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따로 있으니 한 번 기다려 보시오.”

송린으로서는 일 각이 여삼추 같은 시간이었다.

그 인내심이 촛농처럼 닳아 없어질 때쯤에야, 저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의 얼굴에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이었다.

“별장 문학수요.”

나평의 앞까지 와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군량 담당은 꽤나 몸집이 둔중한 자였다.

“송가상단에서 군납을 하러 왔다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가늘어진 나평의 눈빛.

그런 중대사가 있음에도 도호부의 관문을 책임지는 자신에게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무언의 힐난에, 문 별장은 더듬거리며 변명을 했다.

“아, 알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기일을, 커험… 어겼습니다.”

“기일을… 어겼다?”

나평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군상이 기일을 어긴다는 것은 결코 용납이 안 되는 일.

만약 이것이 전시였다면, 즉참 사유에 해당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그의 말에 송린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히 납기일은 아직 열흘이나 남아있습니다. 제가 지닌 군령장에도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구요.”

“커, 커험…….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있게.”

“여기 군령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송린이 품에서 관인이 찍힌 군령장을 꺼내 내밀자, 문학수의 얼굴이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제야 나평은 별장의 행동이 꽤나 수상쩍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를 다그쳤다.

“둘의 주장이 이렇게 엇갈리니 대조할 수 있도록 관련 공부를 가져 오도록 하게. 그럼 바로 확인이 가능할 것 아닌가?”

별장 문학수는 발뺌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크흠… 제가 뭔가 착각한 것 같기는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기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게 맞는군요. 허나 검수를 확실히 해봐야 제대로 납품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검수할 때 나 도위께서는 참견하지 마시지요. 이건 저희의 일이니 말입니다.”

“당연히 그리 하도록 하겠네.”



나평은 말뿐만이 아니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영역 외의 것은 건드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그때, 수하 몇을 데리고 와서 군량미를 들쑤시기 시작하던 문학수가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뭐 이런 하품을 납품했단 말인가. 쯧쯧, 여기도 벌레가 먹었고, 아이쿠, 저기도 벌레를 먹지 않았나. 에잉, 이런 물건을 가지고 무슨 납품을 하겠다고. 쯧쯧.”

“……자네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나 도위님께서는 상관하지 마시지요. 군량 문제는 엄연히 제 소관이니 말입니다.”

문학수는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못하겠다는 듯이 배를 내밀었다.

나평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저놈이 어디서 돈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렇게 나온다 해도 별 도리가 없었다.

“지금 뭐하는 것입니까?”

이때, 당소기가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냉막한 얼굴인데, 미간을 찡그리니 흉흉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문학수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 되었다.

“무엄하다. 감히 공무를 방해하다니. 그러는 네놈은 누구인가!”

“사천당문의 당소기라 하오.”

당소기의 자기소개에 거만히 예를 받았던 문학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소기라면…….”

“강호에서는 암룡이라 불리고 있소이다.”

“그, 그런…….”

문학수는 그제야 엉덩이 무거운 나평이 왜 여기까지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석불이 왜 여기까지 나왔나 했더니…….’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당 공자라 해도 나라의 일에 관여할 수는 없소. 무림과 관은 엄히 구분되어야 하니 말이오. 만일 한 번만 더 경망되게 나선다면 국법을 어기는 것으로 알고 엄히 다스리겠소.”

나평은 눈을 크게 흘겨 떴다.

“끄응…….”

당소기는 살짝 앓는 소리를 냈다.

이번 기회에 담천우에게 졌던 빚을 털어내고자 했던 것인데, 꼴이 우습게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그가 바로 잡을 수 없는 단계였다.

그렇게 모두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그때, 그녀가 나섰다.

“에이, 그래도 이건 너무 억지잖아요. 지금 지적하신 걸 보니까 완전히 순 엉터리네. 우리 언니한테 뭐 억하심정 있어요? 사심을 가지고 함부로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진짜 천벌 받아요.”

적세령.

그녀는 꽤나 분기에 차 있었다. 그래서 삿대질까지 했다. 제법 어른 티를 내면서 말이다.

으득.

하지만 그것은 문학수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인내심이란 끈을 끊는 일이 되었다.

당소기는 어찌 어찌 참아 넘겼다.

그러나 시녀 같아 보이는 여아의 참견을 참아낼 만한 배려심은 그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공무를 방해하는 것이냐! 소상단의 어린 계집년 따위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쫘악.

순간, 찰진 타격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적세령의 뺨은 금세 울긋불긋하게 부어올랐다.

“아, 아저씨… 지금 나 때린 거야?”

“이, 이게 무슨…….”

“당신 미쳤어요?!”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나평과 문학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표정을 굳히며 분노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문학수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나랏일에 한낱 계집종 따위가 끼어드는 게 아니다!”

“아!”

나평은 뜻하지 않은 사태에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가, 문득 몸을 소스라치게 떨었다.

이 소녀가 누구인지 그제야 기억이 난 것이었다.

“저저저… 적 대인의 따님.”

“으응? 나 도위,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지, 지금 자네가 때린 분은 이곳 항주지부대인의 영애일세.”

그 순간, 문학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항주지부대인이라면, 금번에 중앙으로 불려갈 것이 유력한 실세 중에 실세였다.

문학수는 마치 저승사자라도 대하는 양 벌벌 떨면서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아, 아이고, 아가씨. 소인이 그만 크나큰 실수를…….”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 위해 그가 어떻게든 해보려던 그때.

추상같은 울림이 군영 내에 울려 퍼졌다.

“지금 내 눈앞에서 도대체 뭐하는 짓들이냐!”

순간, 나평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방금 생각해낸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항주지부대인과 도호부의 최고위 무장인 절도사가 호형호제 하는 사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