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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당신은 정체가 뭡니까(2)







(2)





“당소기?”

담천우로서는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당가의 독물과 판박이처럼 꼭 닮아 있었으니까. 딱 몇 십 년만 뒤로 돌리면 저 얼굴이 나올 것 같았다.

당소기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나를 아나?”

“뭐 어쩌다 보니. 그런데 왜 나를 기다렸나요?”

“확인해두고 싶었다. 네가 누구인지 말이다.”

담천우는 사천당가의 애송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낮에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오 척 반은 넘을 것 같고 육 척은 조금 안 되는 중키인데, 꽤나 단련이 잘된 몸이었다.

눈빛도 이정도면 꽤 쓸 만하고.

“괜찮네요, 그만하면.”

“……지금 나를 두고 한 말인가?”

“그래요. 그놈의 영감탱이가 하도 당가 자랑을 하기에, 어떤가 싶었는데 뭐 이정도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몰라도 돼요, 애송이는.”

“……미친놈이었군.”

직접 보면 대충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겠다 생각했던 당소기는 직접 보고 나니 혼란만 더욱 가중된 느낌이었다.

“태양혈도 밋밋하고, 매가리도 없어 보이고 그렇죠?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구요.”

“크흠…….”

마음을 들켰는지 애매한 비음을 흘리는 당소기를 향해 담천우는 충고를 해주었다.

“네 수준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시간낭비 하지 말고 꺼져 주실래요? 오랜만에 나와서인지 간만에 기분이 좋으니까.”

“……꽤나 거슬리게 말을 하는 재주가 있군.”

“저한테 예의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부류에요. 송린 그 아이.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 너는 아니죠.”

“참신하군. 나를 열 받게 할 생각이었다면, 성공했다고 말해주지.”

담천우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냥은 안 떨어질 것 같더라니.

“말로 때우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결국 맞아야 말을 듣는 유형이었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당소기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자리를 옮기지. 모두를 깨울 생각이 아니라면.”

“호오. 자기가 맞을 장소를 미리 섭외해두다니, 성격이 참 특이하네요.”

“구공(口功) 만큼 실제 실력도 쓸 만한지 두고 보겠다. 따라와.”

휘익.

먼저 말을 던져 놓고 야조처럼 신형을 날리는 당소기.

야음을 뚫은 음영이 질풍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밤의 푸닥거리라……. 재밌겠네.”

달도 뜨고 바람도 선선한 것이, 때리기 딱 좋은 날씨였다.

담천우는 미소를 흘리며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이쯤 해두고 멈춰요.”

담천우의 제안에 당소기는 신법을 그만두고 멈춰 섰다.

“생각보다 너무 멀리 왔잖아요.”

담천우가 투덜댄 이유는 말 그대로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소기가 갑자기 신법대결에 열을 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법 수준이 꽤나 상당하더군.”

당소기는 경계심 어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에이, 그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

“그대는 혹시 새외무림 쪽인가?”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상에 갑자기 나온 무림이사는 없다.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지. 신법도 뛰어나고 암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수상하군.”

그의 탐색하는 듯한 눈빛에 담천우는 가만히 웃었다.

“글쎄요. 내가 누굴까요?”

‘만약 저자가 마교 출신이라면…….’

당소기는 손에 쥔 강침을 어루만졌다.

마교는 어린 무인이라도 사악한 마공으로 인해 말도 못하게 강한 무공을 지녔다고 들었다.

구름이 흘러가고, 가려졌던 달이 설핏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웠던 음영이 사라지고, 담천우의 얼굴을 본 당소기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서생같이 여리하게 생겨먹어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시작해요.”

채근하는 담천우의 눈을 보는 순간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날카롭고 무거웠다.

그리고 그 눈이 자신을 직시하는 순간.

당소기의 심장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동자 저 깊은 곳에 숨겨진 광기(狂氣).

그것은 마치 무저갱으로 빨려들 것 같은 착각을 주었고, 그 강한 흡입력은 아찔함마저도 주었다.

빨려 들어갈 듯이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담천우의 입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각인처럼 새겨져서 뇌리에 박혔다.

“영감탱이를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을게요.”

당소기는 그 음성이 마치 분절처럼 끊어지듯이 천천히 느껴졌다.

“이봐요, 괜찮아? 얼었으면 그만하던지.”

“아…….”

당소기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다시 보니 녀석의 눈은 권태로움만이 가득 차있었다.

반면에 자신의 손바닥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너… 뭐지?”

“뭐냐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담천우.

당소기로서는 당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중형문파 소속도 아니고, 심지어 쟁자수 복장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압박감은 눈앞의 녀석이 진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참 성격 이상하네. 사람을 불러 놓고 뭐하는 짓이에요!”

아!

당소기는 깨달았다.

어디서 이런 압박감을 느껴보았는지.

‘조, 조부님의 기운과 비슷하다.’

물론 조부인 독왕 당효와 닮은 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특유의 동질감 같은 게 있었다.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

‘말도 안 돼!’

자신의 조부가 누구던가.

독왕 당효.

무림에서 무려 십왕 중에 일인으로 꼽히는 절대강자가 아닌가.

그럼에도 당소기가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건, 조부에게서 손수 가르침을 받게 된 그 순간을 몸으로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절대자의 위엄.

어린 치기에 전력을 맛보고 싶다며 졸랐던 자신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그런데 그 몸으로 새겨진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고작 또래의 남자로 인해.

당소기는 이를 악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사천당가의 암룡이다.”

하늘 보다 높은 자긍심이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증명하고자 했다.

콰앙.

주변의 공기를 훅 달구는 폭발적인 기운.

가볍고 경쾌하기만 했던 암흔비뢰신보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은밀하고 음험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온몸의 기운이 시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친 듯이 넘실대는 기운 앞에서, 정작 담천우는 담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다.

“정겹구만.”

당소기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반갑다는 듯이 웃는 거지?

“하지만 이정도로는 영감에 비해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죠.”

담천우의 말이 들리는 순간, 당소기는 발끈했다.

항상 또래 중에 최고라는 말만 들어왔던 그가 어디서 이런 평가를 들어봤겠는가.

콰직.

암기와 독으로 대표되는 당소기의 선공은 의외로 권장각이었다.

매섭게 날아드는 주먹.

탄력을 받은 권이 회초리처럼 휘어졌다.

그것을 살짝 몸만 뒤틀어 피한 담천우는 내려찍듯이 회전각법을 날렸다.

“권장각… 도 제법이로군.”

당소기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담천우는 비웃듯이 웃으며 답을 했다.

“그 말은 내 쪽에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때, 당소기의 눈이 커졌다.

어느 순간 날아든 연환각.

구름에 숨어든 달빛처럼 음험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채챙.

어느새 당소기의 손에는 두 자루의 단검이 들려있었다.

연환각을 순간적으로 쌍단검을 교차해서 틀어막은 당소기.

하지만 당소기의 눈에는 황당함이 어려 있었다.

풍이라도 걸린 듯 사정없이 떨리는 손.

피륙으로 된 다리와 철검이 맞부딪쳤는데, 밀리는 쪽은 이쪽이다?

“호오, 그걸 막아?”

담천우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발동되는 순간, 당소기는 지체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파앙.

엄청난 살상파 끝에 당소기와 담천우는 처음의 그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담천우는 처음과 같은 자세였고, 당소기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공방이 그에게는 엄청난 손실을 안겨 주었다.

두 손에 들려있던 비검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부서져 있었고, 그의 발밑은 지렁이가 기어 다닌 듯한 밭고랑이 새겨져 있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단지 일격을 받았을 뿐인데 이 모양이라니. 당소기는 절망감을 느꼈다.

도대체 이런 상식 밖의 힘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그제야 이제껏 여린 인상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몸의 외형이 보였다.

잘 발달된 오밀조밀한 근육이 몸 구석구석에 꽉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한계인 것 같은데, 눈빛이 아직도 건방지네요.”

담천우는 그러면서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당소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하찮은 대접은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는 그였다.

어딜 가든 천하의 암룡이라며 떠받듦만 받았던 그로서는 생소하다 못해 모욕적이었다.

“건방진 놈!”

다다다닷.

분노를 담은 맹폭.

콩을 볶는 듯 터져 나온 어지러운 암기의 향연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바로 당가의 절예, 구환살이었다.

마치 자수를 놓듯 길고 가는 손가락이 허공을 노닐고, 그 궤적을 따라 빗살처럼 무수한 암기가 터져 나왔다.

“죽어라!”

핏발이 선 당소기의 눈. 이미 그의 뇌리 속에서는 담천우를 두고 마교의 간세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겠다는 당초의 생각은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

상처 받은 자존심을 회복받는 것뿐.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공세 속에서 당소기는 담천우의 건치를 보았다. 그것은 마치 손자의 어리광을 보는 할아버지의 미소 같았다.

“……꽤나 깜찍한 짓을 하는군요.”

담천우는 무척이나 한가로운 듯한 여유로운 몸짓으로 휘휘 손을 내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놀라웠다.

파바바방.

그 별것 아닌 손짓에 암기가 제 갈 길을 잃고 휘말리더니, 마치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당소기는 한순간 얼어붙었다.

최고의 절예를 저렇게 가볍게 무산시킨 괴물에게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그의 눈에 담천우의 입이 천천히 열리는 게 들어왔다.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해야겠네.”

꿀꺽.

당소기는 얼굴을 붉혔다.

저도 모르게 긴장한 탓인지 목으로 침을 삼켰기 때문이었다.

혹시 들었을까 싶었지만, 그는 곧 그게 사치스런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피잉.

정말이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미약한 파공음.

꿈틀.

당소기의 뺨이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로 가져갔다.



* * *



“어, 언제…….”

축축한 느낌. 이건 분명 피였다.

당소기는 적어도 눈으로는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낱낱이 파헤쳐줄 심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눈으로 보지도 못했다.

이제 당소기의 눈에는 담천우가 인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담천우는 꽤나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능글거렸다.

“어? 빗나갔네. 어디 그럼 다음에는 머리를 뚫어줄까?”

“그, 그건…….”

당소기는 저도 모르게 두세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 나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멈칫했지만, 자신만만했던 이십대의 청년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걸 보고 담천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여기까지군요. 조금 재밌어지려고 했는데.”

당소기는 이를 악물었다.

담천우는 분명 자신이 가지고 있던 눈빛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실력이 안 되는 자에 대한 멸시.

하지만 그것이 담천우에게는 당연해 보였다.

[대충했어야지. 너무 주목 받는 건 곤란하다고.]

“대충했는데도 저렇게 약할 줄 알았나.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해.”

누군가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듯 혼잣말을 하며 돌아서서 가는 담천우를, 당소기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