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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당신은 정체가 뭡니까(1)
(1)
“이분은 항주지부대인의 고명딸이신 적세령 낭자이시오.”
“……항주지부대인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지라, 송린은 적세령이 내미는 손을 잡지 못하고 공중에서 헛손질을 했다.
“그런데 왜…….”
재빨리 적세령의 손을 부여잡은 송린은 말하고 나서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라니? 너무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보통의 강호인들은 관을 경원시 하며, 특히나 지부대인은 정오품의 고위관직. 현령에 비해서도 서너 단계나 높은 고위관료인 점을 생각해 보면 송린의 반응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부대인께서 본문과 조금 인연이 있으시오. 하여 세령 낭자가 항주까지 오는 길을 부탁받은 것이고.”
다행히 그녀의 의문을 알아챘는지 당소기의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아아, 그렇군요.”
송린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호인과 관이라니, 꽤나 안 어울리는 조합인 것만은 확실했다.
눈앞의 남자가 강호무림에서도 한 지역의 절대패자로 군림하던 사천당가라는 권문세족의 일원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 계신 금대수 소협과 종회 소협은 같은 항주출신으로서, 지부대인의 요청을 받아 호위에 동행하였소.”
당소기의 부연설명에 송린의 미간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상하리만큼 선을 긋는 것 같은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냉독(冷獨) 당소기라더니.’
송린은 그제야 무섭도록 차가운 남자라고 정평이 난 강호의 소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독음 역시 홀로 독(獨)인 걸 보면, 본시 성격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냉막한 성품인 듯했다.
그래도 금대수는 온순한 편인지 당소기가 뭐라고 하든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지만, 종회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종회는 조금 전에 송가상단에 보여줬던 여유 있는 귀공자의 모습 대신, 쫓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항상 당소기가 있었다.
그런 종회를 향해 당소기가 무기질적인 냉막한 시선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런데, 언제쯤 감사인사를 할 셈인가, 종 소협?”
“……그게 무슨 말이요?”
“내가 아까 그대의 목숨을 구해 준 것 같은데, 아직 감사인사를 받은 기억이 없어서.”
“크흠…….”
종회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종 소협이 시의 적절하게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본 상단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습니다. 중과부적인 상황 속에서 큰 곤욕을 치르셨지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
종회의 동공이 해연히 커졌다.
실로 난감한 상황에 송린이 대신 나서준 셈이었다.
허나 정작 그녀의 마음속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담천우가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 웬일인지 종회의 뜨거운 시선은 송린에게서 거둬지지 않고 있었다.
송린은 되도록 종회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인사는 받은 것으로 해두지.”
당소기는 옷자락을 털어내며 발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상대하기도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휴우…….”
금대수의 긴 한숨소리.
그간 중간에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송린은 말은 안 해도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니까.
한숨을 돌린 그녀의 눈에 문득 이상한 점이 들어왔다.
“그런데 당소기 공자님은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저게 작은 오라버니의 별난 취미에요. 흥! 왜 저런 걸 하는지. 자기가 죽인 시체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확인하더라고요. 아 쫌, 가자구요, 오라버니. 왜 이런 데서 시간을 뺏겨야 하는 데요.”
한껏 짜증을 내는 당혜미였지만, 당소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 그 어떤 때보다도 소중한 시간인 듯, 세심하게 산적들의 시체를 들춰보고 있었다.
덕분에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송린은 난감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이렇게 모이기도 참 힘든 조합이라는 것이었다.
어리지만 오히려 당혜미를 달래는 적세령, 그녀의 옆에 서있는 과묵한 호위 사내 혁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금대수, 경쟁심을 불태우는 종회와 유아독존 당소기까지.
“소기 오라버니!”
당혜미는 다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 * *
당소기는 당혜미의 재촉에도 아랑곳 않고 평상시 하던 대로 시체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 촌정도 얕군.’
못마땅한 시선이 시체를 훑어갔다.
세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사후 강직된 근육이 암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건 적이 찰나지간에 알아차렸다는 소리.
‘생각보다 고수였던가.’
불의의 기습임에도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고수는 강호에 흔하지 않다.
당소기는 언제나처럼 검시도구인 바늘을 시체에서 천천히 빼서 품에 넣었다.
침구를 수습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그가 어렸을 적에 조부의 조언을 듣고 매번 하던 일이었으니까.
“물어볼 걸 그랬군, 이놈이 누구인지.”
당소기는 혀를 끌끌 찼다.
종회를 너무 우습게 본 나머지, 적에 대해서도 경시를 한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는 혹시 놓친 게 있나 해서 다시 찬찬히 훑어 내렸다.
“응!?”
살짝 굳는 당소기의 얼굴.
나무를 보다 보니 숲을 보지 못했다.
그제야 전체적인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사람과는 달리 유난히 긴 팔다리와 혈기가 살짝 맺힌 눈.
왠지 무림맹에 널리 알려진 자의 특징과 비슷했다.
“설마, 이자…….”
“혈사도 소장충입니다.”
“으음…….”
생각보다 거물이 거론되자, 당소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송가상단의 마전이라고 합니다.”
“당소기요.”
“알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마전의 눈빛에는 존경의 염이 가득했다.
하지만 당소기는 읍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우협산도 여기 있었소?”
“예, 여기 있습니다.”
“여기?”
“네, 여기입니다.”
당소기는 그제야 마전이 우협산을 가리키며 물건처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는 소장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수인 우협산이 시체가 되어있었다.
“이자를 어떻게 없앤 것이오?”
결과는 있으나 원인이 보이지 않는다.
종회가 우협산을 먼저 상대해서 베어버린 후 소장충까지 상대했나?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당장 종회에게 가서 백배사죄해야 했다.
이렇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실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협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절정고수다.’
허울뿐인 무림맹 단주가 되고 나서 당소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적대세력에 속한 자들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깜냥이 안 되면서 덤비는 것만큼 추한 것은 없으니까
“마 조장님께서 해치우셨습니다.”
눈치 없는 상단무사가 자랑스레 한 말에 마전은 얼굴을 붉혔다.
조금 전에는 담천우의 전음에 고양되어 무심코 따라했을 뿐, 자신이 죽였다는 건 정말 턱도 없는 말이었다.
“저, 저기…….”
마전이 사실을 말하려는데 당소기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우협산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하나 둘 파헤치기 시작했다.
‘마전이라는 자가 낸 상처로 보이는 건 여기 옆구리. 흐흠, 그런데 이건 깊은 자상에 불과하다. 이정도면 꽤나 큰 중상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것 때문에 죽었다고는 할 수 없지. 다른 곳은… 깨끗하군. 혹시 그렇다면…….’
자신이 한 것처럼 이마에 구멍이라도 낸 것일까 싶어서 살펴보던 당소기는 순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깨끗하다. 마치 두부를 그리 한 것처럼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후두부까지도 살펴봤지만 뚫고 나간 것이 분명했다.
‘설마 이곳에 아버님이라도 오셨었나?’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그 정도로 자신이 낸 암흔과는 확실히 격차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여기도.”
산적들 중에 살아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죽은 자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암기에 당했다는 것.
“혹시 상단에 암기를 다루는 자가 있소?”
“……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혹시 자신이 말하는 게 누가 될까 싶었는지, 마전의 태도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당소기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수법이 너무 깔끔하고 고명해서 그렇소. 같은 암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군요.”
“아…….”
그제야 어두웠던 마전의 얼굴빛이 환하게 변했다.
“천 공자께서는 잠시 쉬러 마차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천… 공자? 그렇다면 나이가……?”
“잘은 모르지만, 이제 한 스물 대여섯쯤 되셨을 겁니다.”
“스… 물 대여섯…….”
당소기의 동공이 풍랑을 맞은 듯 거칠게 흔들렸다.
“……천우라는 그 놈이 그렇게 강했다고! 저 자존심 덩어리가 경악할 만큼?”
가까운 곳에서 이를 지켜보던 종회의 혼잣말이 허공을 맴돌았다.
* * *
후우하는 깊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다가 어느새 뚝 그치기를 얼마였을까.
스윽 하는 옷자락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꽤 시간이 흐른 모양이군.”
[산적의 습격이 있고나서 만 하루 반이 지났다.]
시간을 알려주는 충현의 말에 담천우는 자세를 바로 했다.
밤인지 밖에서는 작은 날벌레들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제는 내공 수준이 팔십삼 년 정도.”
그간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폭혈의 잠력이 풀려서인지, 아무튼 내공이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중단혈을 수련하기 위해 할애하느라 시간을 조금 뺏기기는 했지만, 그걸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애써서 뚫어놓은 중단혈이 막힐 수도 있으니까
[내공이 쌓이는 게 무시무시할 정도로군. 내가 알기로는, 중원에서 최상급의 내공심법이 적공을 하면 보통 일 년에 삼 년 정도 적공된다고 하던데,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천하에 내가기공의 종류는 많다. 그럼에도 굳이 일류, 초일류 이렇게 등급을 나누게 되는 것은 그 적공의 속도에 있다.
삼류의 내가기공은 일 년을 내리 해봐야 내공이 거의 쌓이지 않는다. 만약 십 년을 쉬지 않고 적공한다면? 그러면 아마도 한 이삼 년의 내공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삼재심법처럼 저자거리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심법들이다.
이류의 내가기공부터는 사정이 좀 낫다. 한마디로 말해, 익히면 익힌 티가 좀 난다. 이것은 주로 소문파나 도관에서 가르쳐 주는 심법들인데, 일 년을 적공하면 반 년 정도는 내공이 쌓인다.
일류의 내가기공은 흔히 중대형 문파에서 보유하고 있는 심법들이다. 이건 일 년을 하면 일 년이 쌓인다. 대형문파에서 속가제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내가기공 역시도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하지만 초일류 내가기공부터는 대문파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초특급 비전이었다.
일 년을 적공하면 두 배 정도의 효율을 거뒀다. 대형 문파의 직계 제자들이 익히는 게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최상등급의 내가기공은 천하를 두고 따져 봐도 종류가 몇 개 없었다.
그것의 최정점에 있는 게 바로 마교의 천마신공.
이건 세간에 알려져 있는 것만 해도 일 년에 세 배에서 다섯 배의 효율을 거둔다고 했다. 물론 천마신공은 기본 자질이 있어야 하기에, 적어도 익히는 자가 준재는 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담천우의 설명을 들은 충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뭐야? 그럼 네가 익힌 심법이 제일 빠르고 안전하게 내공을 모을 수 있는 심법이라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 셈이지.’
[전에… 네가 만들었다고 했었던가? 대단하군. 우연의 산물치고는, 만든 심법이 그렇게나 효과가 좋은 심공이었다니.]
‘우연? 우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완성되기까지 주화입마를 얼마나 겪었는데.
주화입마를 수십여 차례나 겪고, 혈맥이 걸레짝이 되고나서야 기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펄럭.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새로운 공기를 마시니, 담천우는 찌뿌듯함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새하얀 달빛이 비추는 정경.
마차는 멈추어 있었고, 야영을 하는지 모닥불이 타오르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안경쯤 되는 것 같군.”
“정확히는 안경에서 약 이틀 정도 더 밑으로 내려간 강하 지역이다.”
녹의를 입은 자의 얼굴이 어두컴컴한 음영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우.”
(1)
“이분은 항주지부대인의 고명딸이신 적세령 낭자이시오.”
“……항주지부대인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지라, 송린은 적세령이 내미는 손을 잡지 못하고 공중에서 헛손질을 했다.
“그런데 왜…….”
재빨리 적세령의 손을 부여잡은 송린은 말하고 나서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라니? 너무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보통의 강호인들은 관을 경원시 하며, 특히나 지부대인은 정오품의 고위관직. 현령에 비해서도 서너 단계나 높은 고위관료인 점을 생각해 보면 송린의 반응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부대인께서 본문과 조금 인연이 있으시오. 하여 세령 낭자가 항주까지 오는 길을 부탁받은 것이고.”
다행히 그녀의 의문을 알아챘는지 당소기의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아아, 그렇군요.”
송린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호인과 관이라니, 꽤나 안 어울리는 조합인 것만은 확실했다.
눈앞의 남자가 강호무림에서도 한 지역의 절대패자로 군림하던 사천당가라는 권문세족의 일원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 계신 금대수 소협과 종회 소협은 같은 항주출신으로서, 지부대인의 요청을 받아 호위에 동행하였소.”
당소기의 부연설명에 송린의 미간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상하리만큼 선을 긋는 것 같은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냉독(冷獨) 당소기라더니.’
송린은 그제야 무섭도록 차가운 남자라고 정평이 난 강호의 소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독음 역시 홀로 독(獨)인 걸 보면, 본시 성격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냉막한 성품인 듯했다.
그래도 금대수는 온순한 편인지 당소기가 뭐라고 하든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지만, 종회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종회는 조금 전에 송가상단에 보여줬던 여유 있는 귀공자의 모습 대신, 쫓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항상 당소기가 있었다.
그런 종회를 향해 당소기가 무기질적인 냉막한 시선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런데, 언제쯤 감사인사를 할 셈인가, 종 소협?”
“……그게 무슨 말이요?”
“내가 아까 그대의 목숨을 구해 준 것 같은데, 아직 감사인사를 받은 기억이 없어서.”
“크흠…….”
종회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종 소협이 시의 적절하게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본 상단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습니다. 중과부적인 상황 속에서 큰 곤욕을 치르셨지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
종회의 동공이 해연히 커졌다.
실로 난감한 상황에 송린이 대신 나서준 셈이었다.
허나 정작 그녀의 마음속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담천우가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 웬일인지 종회의 뜨거운 시선은 송린에게서 거둬지지 않고 있었다.
송린은 되도록 종회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인사는 받은 것으로 해두지.”
당소기는 옷자락을 털어내며 발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상대하기도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휴우…….”
금대수의 긴 한숨소리.
그간 중간에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송린은 말은 안 해도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니까.
한숨을 돌린 그녀의 눈에 문득 이상한 점이 들어왔다.
“그런데 당소기 공자님은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저게 작은 오라버니의 별난 취미에요. 흥! 왜 저런 걸 하는지. 자기가 죽인 시체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확인하더라고요. 아 쫌, 가자구요, 오라버니. 왜 이런 데서 시간을 뺏겨야 하는 데요.”
한껏 짜증을 내는 당혜미였지만, 당소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 그 어떤 때보다도 소중한 시간인 듯, 세심하게 산적들의 시체를 들춰보고 있었다.
덕분에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송린은 난감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이렇게 모이기도 참 힘든 조합이라는 것이었다.
어리지만 오히려 당혜미를 달래는 적세령, 그녀의 옆에 서있는 과묵한 호위 사내 혁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금대수, 경쟁심을 불태우는 종회와 유아독존 당소기까지.
“소기 오라버니!”
당혜미는 다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 * *
당소기는 당혜미의 재촉에도 아랑곳 않고 평상시 하던 대로 시체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 촌정도 얕군.’
못마땅한 시선이 시체를 훑어갔다.
세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사후 강직된 근육이 암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건 적이 찰나지간에 알아차렸다는 소리.
‘생각보다 고수였던가.’
불의의 기습임에도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고수는 강호에 흔하지 않다.
당소기는 언제나처럼 검시도구인 바늘을 시체에서 천천히 빼서 품에 넣었다.
침구를 수습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그가 어렸을 적에 조부의 조언을 듣고 매번 하던 일이었으니까.
“물어볼 걸 그랬군, 이놈이 누구인지.”
당소기는 혀를 끌끌 찼다.
종회를 너무 우습게 본 나머지, 적에 대해서도 경시를 한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는 혹시 놓친 게 있나 해서 다시 찬찬히 훑어 내렸다.
“응!?”
살짝 굳는 당소기의 얼굴.
나무를 보다 보니 숲을 보지 못했다.
그제야 전체적인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사람과는 달리 유난히 긴 팔다리와 혈기가 살짝 맺힌 눈.
왠지 무림맹에 널리 알려진 자의 특징과 비슷했다.
“설마, 이자…….”
“혈사도 소장충입니다.”
“으음…….”
생각보다 거물이 거론되자, 당소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송가상단의 마전이라고 합니다.”
“당소기요.”
“알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마전의 눈빛에는 존경의 염이 가득했다.
하지만 당소기는 읍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우협산도 여기 있었소?”
“예, 여기 있습니다.”
“여기?”
“네, 여기입니다.”
당소기는 그제야 마전이 우협산을 가리키며 물건처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는 소장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수인 우협산이 시체가 되어있었다.
“이자를 어떻게 없앤 것이오?”
결과는 있으나 원인이 보이지 않는다.
종회가 우협산을 먼저 상대해서 베어버린 후 소장충까지 상대했나?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당장 종회에게 가서 백배사죄해야 했다.
이렇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실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협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절정고수다.’
허울뿐인 무림맹 단주가 되고 나서 당소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적대세력에 속한 자들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깜냥이 안 되면서 덤비는 것만큼 추한 것은 없으니까
“마 조장님께서 해치우셨습니다.”
눈치 없는 상단무사가 자랑스레 한 말에 마전은 얼굴을 붉혔다.
조금 전에는 담천우의 전음에 고양되어 무심코 따라했을 뿐, 자신이 죽였다는 건 정말 턱도 없는 말이었다.
“저, 저기…….”
마전이 사실을 말하려는데 당소기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우협산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하나 둘 파헤치기 시작했다.
‘마전이라는 자가 낸 상처로 보이는 건 여기 옆구리. 흐흠, 그런데 이건 깊은 자상에 불과하다. 이정도면 꽤나 큰 중상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것 때문에 죽었다고는 할 수 없지. 다른 곳은… 깨끗하군. 혹시 그렇다면…….’
자신이 한 것처럼 이마에 구멍이라도 낸 것일까 싶어서 살펴보던 당소기는 순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깨끗하다. 마치 두부를 그리 한 것처럼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후두부까지도 살펴봤지만 뚫고 나간 것이 분명했다.
‘설마 이곳에 아버님이라도 오셨었나?’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그 정도로 자신이 낸 암흔과는 확실히 격차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여기도.”
산적들 중에 살아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죽은 자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암기에 당했다는 것.
“혹시 상단에 암기를 다루는 자가 있소?”
“……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혹시 자신이 말하는 게 누가 될까 싶었는지, 마전의 태도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당소기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수법이 너무 깔끔하고 고명해서 그렇소. 같은 암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군요.”
“아…….”
그제야 어두웠던 마전의 얼굴빛이 환하게 변했다.
“천 공자께서는 잠시 쉬러 마차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천… 공자? 그렇다면 나이가……?”
“잘은 모르지만, 이제 한 스물 대여섯쯤 되셨을 겁니다.”
“스… 물 대여섯…….”
당소기의 동공이 풍랑을 맞은 듯 거칠게 흔들렸다.
“……천우라는 그 놈이 그렇게 강했다고! 저 자존심 덩어리가 경악할 만큼?”
가까운 곳에서 이를 지켜보던 종회의 혼잣말이 허공을 맴돌았다.
* * *
후우하는 깊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다가 어느새 뚝 그치기를 얼마였을까.
스윽 하는 옷자락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꽤 시간이 흐른 모양이군.”
[산적의 습격이 있고나서 만 하루 반이 지났다.]
시간을 알려주는 충현의 말에 담천우는 자세를 바로 했다.
밤인지 밖에서는 작은 날벌레들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제는 내공 수준이 팔십삼 년 정도.”
그간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폭혈의 잠력이 풀려서인지, 아무튼 내공이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중단혈을 수련하기 위해 할애하느라 시간을 조금 뺏기기는 했지만, 그걸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애써서 뚫어놓은 중단혈이 막힐 수도 있으니까
[내공이 쌓이는 게 무시무시할 정도로군. 내가 알기로는, 중원에서 최상급의 내공심법이 적공을 하면 보통 일 년에 삼 년 정도 적공된다고 하던데,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천하에 내가기공의 종류는 많다. 그럼에도 굳이 일류, 초일류 이렇게 등급을 나누게 되는 것은 그 적공의 속도에 있다.
삼류의 내가기공은 일 년을 내리 해봐야 내공이 거의 쌓이지 않는다. 만약 십 년을 쉬지 않고 적공한다면? 그러면 아마도 한 이삼 년의 내공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삼재심법처럼 저자거리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심법들이다.
이류의 내가기공부터는 사정이 좀 낫다. 한마디로 말해, 익히면 익힌 티가 좀 난다. 이것은 주로 소문파나 도관에서 가르쳐 주는 심법들인데, 일 년을 적공하면 반 년 정도는 내공이 쌓인다.
일류의 내가기공은 흔히 중대형 문파에서 보유하고 있는 심법들이다. 이건 일 년을 하면 일 년이 쌓인다. 대형문파에서 속가제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내가기공 역시도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하지만 초일류 내가기공부터는 대문파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초특급 비전이었다.
일 년을 적공하면 두 배 정도의 효율을 거뒀다. 대형 문파의 직계 제자들이 익히는 게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최상등급의 내가기공은 천하를 두고 따져 봐도 종류가 몇 개 없었다.
그것의 최정점에 있는 게 바로 마교의 천마신공.
이건 세간에 알려져 있는 것만 해도 일 년에 세 배에서 다섯 배의 효율을 거둔다고 했다. 물론 천마신공은 기본 자질이 있어야 하기에, 적어도 익히는 자가 준재는 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담천우의 설명을 들은 충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뭐야? 그럼 네가 익힌 심법이 제일 빠르고 안전하게 내공을 모을 수 있는 심법이라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 셈이지.’
[전에… 네가 만들었다고 했었던가? 대단하군. 우연의 산물치고는, 만든 심법이 그렇게나 효과가 좋은 심공이었다니.]
‘우연? 우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완성되기까지 주화입마를 얼마나 겪었는데.
주화입마를 수십여 차례나 겪고, 혈맥이 걸레짝이 되고나서야 기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펄럭.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새로운 공기를 마시니, 담천우는 찌뿌듯함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새하얀 달빛이 비추는 정경.
마차는 멈추어 있었고, 야영을 하는지 모닥불이 타오르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안경쯤 되는 것 같군.”
“정확히는 안경에서 약 이틀 정도 더 밑으로 내려간 강하 지역이다.”
녹의를 입은 자의 얼굴이 어두컴컴한 음영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