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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또 다른 위기? 기회!(3)







(3)





하지만 그건 마전의 오판이었다.

그러나 마전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순전히 우협산의 경험이 빚어낸 노림수에 걸려든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마전보다 두 단계는 위이니, 그렇게 쉽게 넘어갈 리가 없는데…….

‘아직은 좀 무리였어, 아직은.’

마전도 노력은 했지만, 경험이란 간극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려대로 구석에 몰린 맹수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쥐새끼 같은 놈, 이제야 잡았다.”

비릿한 혈향이 풍기는 듯한 우협산의 미소.

마전도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낀 듯 뒤로 몸을 날리려고 했지만, 이미 관성에 의해 몸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파바바밧.

바닥을 찍어서 어이없는 허탕일 줄 알았던 우협산의 참격은 땅거죽에 충격파를 일게 하는 목적이었고, 반탄력으로 전이된 힘은 땅 속에 묻혀 있던 자갈들을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자갈들이 화살인양 빼곡하게 마전을 향해 꽂혀들었다.

“제길!”

마전은 생전 하지 않던 비속어를 날리며 몸의 중심점을 낮추었다.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맞서 싸우는 것을 택한 것.

다다다닥.

급히 쳐낸 검막이라서 몇 개는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고, 마전은 그 충격을 그대로 감당해야만 했다.

“크헉.”

참을 수 없는 욕지기와 함께 핏물을 쏟아내는 마전.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기 때문일까. 짙은 패배감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포기할까 생각했을 때, 예의 그 전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마전은 욕설을 각오했지만, 이번에는 놀랍게도 욕설이 섞여 있지 않았다.

-이건 네가 못한 게 아니고 상대가 잘한 거야. 움츠리지 말고 물어뜯어! 육참골단 몰라? 살을 주고 뼈를 취하라고.-

마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너무 움츠려 있었다는 얘기였다.

상대는 절정의 고수. 한 팔을 잃을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아하하하.”

-미친 새끼. 왜 웃어? 공격 안 해?-

전음에는 비속어가 난무했지만, 마전은 웃을 수 있었다.

“지겨운 놈, 죽여주마.”

다행히 상대는 방심하고 있었고, 자신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살아 있었다.

위잉.

마치 허리를 양단하겠다는 듯한 횡격.

마전은 그것에 나려타곤으로 대응했다.

허벅지 쪽이 화끈했다.

굴러서 피했음에도 허벅지가 갈린 것이었다.

상대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 순간이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이 순간!



마전의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침 굴러간 방향은 우협산의 정면.

용수철처럼 튀어서 도약한 마전은 번개 같은 일섬을 날렸다.

“앗!”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이 없었던지라 우협산은 당황했다.

해연히 벌어진 동공.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도끼는 지금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고, 정(靜)의 원리가 빠진 초식은 한 번 수세에 몰리면 불어나는 물에 걷잡을 수가 없게 된 둑과 같았다.

푸우욱.

우협산의 눈꼬리가 실룩거렸다.

그만큼 거북한 소리였다.

“이런 개 같은 놈이!”

우협산은 마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마전의 얼굴에는 절망이 아로새겨졌다.

절반의 성공.

복부를 관통시키고자 했으나, 정작 마전이 뚫은 것은 우협산의 옆구리.

“아…….”

죽을 만큼 노력했기에 허탈감이 컸다.

더 이상의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피.

그리고 또 피.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마전은 이미 깊은 수렁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수렁 속으로.

분노로 점철된 대부가 들이쳤지만, 그에게는 검을 들어서 막아낼 힘조차 없었다.

“조금은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전의 허망한 눈빛이 먹먹한 구름에 갇힌 창공에 닿았다.

바로 그때 들려온 음성.

-꽤 괜찮은 공격이었다, 너로서는.-

담천우의 칭찬에 마전은 고개를 들었다.

다시 구름이 걷히고 파란 창공이 보였다.

그리고 뭔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파공음이 귀를 간질였다.

퍼석.

“크… 크륵.”

털썩.

마전은 잘못 본 줄 알았다.

결코 넘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거산이 자신의 무릎 앞에 쓰러져 있었다.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예의 그 전음이 들려왔다.

-목을 베.-

마전은 홀린 듯이 다가가 우협산의 머리를 들었다.

이렇게 가벼웠나.

믿기지가 않았다.

-목을 베. 사 할 정도는… 뭐 네가 한거니까.-

마전은 최면이라도 걸린 듯 목에 검을 갖다 댔다.

스르르서억.

소매를 훔쳐 눈을 닦은 마전은 소리를 쳤다.

“우협산은 죽었다. 모두 항복해라!”



* * *



“제기랄!”

종회는 마전의 외침을 듣고 대뜸 인상부터 찌푸렸다.

이렇게 상황이 돌아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협산은 자신도 감히 감당키가 어려운 강자니까.

이렇게 되면 자신이 소장충을 택한 보람이 없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일행들이 올 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이런 빌어먹을!”

무명의 무인이 우협산을 벤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지금 종회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대적 중이던 소장충은 의형의 부고를 듣는 순간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조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제야 종회는 소장충이 자신의 배경 때문에 강한 살수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채채챙.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어지는 쾌도.

소장충이 뿜어내는 이도류의 쾌식이 종회의 몸 여기저기에 도상을 새겨놓았다.

결국 종회는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타앗.

일기신뢰보로 오행을 밟으며 십여 장을 물러난 종회.

일순을 돌아 겨우 짬을 돌린 그였지만, 이건 명백한 실기였다.

쿠아아앙.

궁신탄영의 수로 육박해 들어오는 소장충의 쌍도.

위아래로 흔들리는 이도류가 독사의 혀처럼 날름거렸다.

“끄윽.”

재빨리 검을 갖다 대며 맞섰지만, 이미 상대의 쌍도에는 적잖은 체중이 실려 있었다.

까드드득.

소름 끼치는 절삭음.

“다 죽여 버리겠다, 이 개잡놈들아!”

“으으으으.”

소장충의 눈빛에서 우러나오는 독기에 종회는 질려버렸다.

결단코 이렇게 무서운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정파 애송이놈! 죽여주마!”

무공의 깊이는 비슷했지만, 그 악과 깡은 감히 종회가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이도류의 독랄한 이가 종회를 서서히 삼켜갔다.

파시시식.

그리고 이도류의 날이 스쳐갈 때마다 종회의 검은 조금씩 이가 나가고 있었다.

“맙소사…….”

종회는 폐부에서 올라오는 신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검은 명검급에 준하는 묵철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묵철이 깨져나가고 있었다.

제검문의 비룡대정검식이 이도류의 날에 무너지기 직전.

종회는 어떻게든 퇴로를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만큼 상황은 급박했다.

이 상태라면 십 초식 안에 목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너, 넌…….”

눈을 굴리던 종회는 우연찮게 눈이 다소 매섭게 생긴 젊은 쟁자수와 시선이 맞닿았다.

그러자 종회의 눈이 급변했다.

처음에는 그저 입만 싼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전에 우연찮게 본 것이 있었다.

놈이 암기를 귀신 같이 다루는 모습을 말이다.

“도, 도와…….”

일말의 자존심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종회가 발견한 건 쟁자수의 입가에 드리워진 비웃음이었다.

“에이, 왜 그래요. 정파의 전도유망한 분께서.”

“으드득.”

놀림이 분명했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치욕적인 말을 끝끝내 목구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지금까지의 수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종회의 검식이 사납게 변했다.

천하 십대검식에 들어갈 정도로 위력적인 검법이 바로 비룡대정검식이었다.

본래 실력이 비슷했던 만큼 판도는 금방 백중세로 변했다.

그렇게 종회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종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소장충이 자신보다 두 배는 더 살아왔으며, 생사결을 벌인 경험은 몇 십 배가 넘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 이런 미친!”

종회가 내지른 검을 무식하게 이빨로 물어 무력화시킨 소장충.

명검의 날에 혀끝이 살짝 갈라졌지만, 소장충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 소장충의 이도류 앞에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사, 살려줘!”

비명을 지르는 종회에게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존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쟁자수, 담천우는 끝까지 외면했을 뿐더러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

“여전히 꼴사납군.”

어디선가 들려온 오연한 목소리. 그 후에는 파공성이 뒤따랐다.

휘이이익.

콰직.

그리고 소장충은 뒤로 넘어갔다.

종회를 그렇게나 무섭게 압박했던 소장충은 한순간 머리가 꿰뚫린 시체로 변해 있었다.



* * *



“꽤나 요란한 등장이네.”

담천우는 입맛을 다셨다.

이쯤에서 정파 애송이가 하나쯤 나자빠져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는데.

새로이 전장에 나타난 자들은 총 다섯 명. 그중에 아까부터 시선을 잡아끈 자는 녹의를 걸친 젊은 사내였다. 그가 바로 소장충을 죽인 사내이기도 했다.

녹의를 걸친 사내는 암기를 많이 다뤄서 그런지 팔이 꽤나 긴 편이었고, 키는 종회와 비슷한 약 육 척 정도. 얼굴은 종회가 그냥 잘생긴 편이라면, 이쪽은 잘생기기는 했는데 냉막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빛은… 마음에 들었다.

저 정도면 일반적인 후기지수처럼 그냥 내공만 강한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것 같았다.

담천우는 살펴본 김에 새로이 나타난 일행들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여인 둘, 녹의를 걸친 사내를 제외하면 남자가 둘이었다. 하지만 담천우의 시선은 곧 시들해졌다.

녹의를 걸친 놈이 특별한 거지, 나머지는 마전에 비해서도 특별한 게 없는 그냥 그런 자들이었다.

“그나저나 암기술을 보아하니 추혼연미표같은데…….”

이는 기억에도 있는 수법이었다. 독왕이라고 불리던 사천당가의 독물 당효의 절기. 녹의 또한 사천당가의 복식이니 맞을 터였다.

“그런데 꽤나 닮았단 말이지.”

사천당가니 당연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당효와 너무도 닮았다. 하도 빼닮아서 담천우가 이 영감탱이가 혹시 늘그막에 아들을 봤나 의심했을 정도였다.

만약에 종회가 당소기 어쩌고저쩌고 이를 갈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당소광인가가 독물의 손자니 그 형제쯤 되겠군.’

여전히 종회는 당소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이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저걸 보면 정말로 정도의 촉망받는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꼭 저런 사람이 맹주나 장로가 돼서 한자리를 해먹는 거지.

“들어가십니까?”

담천우가 마차에 들어가려는 찰나, 마전이 그를 붙들어 세웠다. 눈빛에 어린 고마움을 보니 담천우가 암기를 던지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담천우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아, 예. 피곤해서요.”

“공자…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아, 예.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인 거죠 뭐.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데, 아까 욕설을 내뱉은 거요.”

“괜찮습니다. 평상시에도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아닙니다. 이번 생에는 경어 한 번 써보려고요.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반말이 툭툭 튀어나와도 조금 이해해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마전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이번 생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도와주신 덕분에 우리 상단이 살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은공들께서는 누구시온지 알 수 있을는지요?”

송린의 음성은 더 없이 공손했다. 상단을 향해 다가오는 외인들의 복색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움을 준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니까.

송린의 말에 맨 앞에 섰던 냉막해 보이는 자가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무림맹 백호단 소속의 당소기외다.”

“암룡!”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당소기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별 반응이 없었다.

더없이 오연한 모습.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천하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답군요.”

감격스러운 얼굴을 한 무사의 발언처럼 암룡은 보통 존재가 아니었다.

천하를 통틀어 무림맹 제일의 후기지수 열 명 중에도 꼽히며, 무림맹 타격부대에서도 당당히 단주를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암룡 당소기였다.

“그런데… 혹시 이분들께서는…….”

송린이 조심스럽게 이리 물은 건, 그런 암룡이 누군가를 호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조심하십시오, 아가씨. 방금 전까지 혈사가 있었던지라 위험합니다.”

“우읍!”

“적 소저, 뒤로 물러나 계시지요.”

“그렇습니다. 봐서 좋을 상황은 아닙니다.”

일행 중 맨 뒤에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시체에 익숙하지 않은지 헛구역질을 해댔다.

확실히 약식이기는 하나 정갈한 비갑을 걸친 복식으로 보아, 무인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일행은 모두가 적 소저라는 사람을 호위하는 듯한 포진을 하고 있었다.

적 소저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상황이 정리되자,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둘씩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저, 저는 금환장의 금대수요. 강호에서는 부끄럽게도 항주금룡이라고 부르고 있소.”

약관이나 지났을까. 금대수는 약간 통통한 인상이었는데, 꽤나 부끄러움이 많은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당가의 당혜미예요.”

송린은 당소기가 자신을 소개할 때만큼이나 무척 놀랐다.

“과연 미모가 남다르다 생각했습니다. 사천제일미녀셨군요.”

송린의 감탄대로 당혜미는 출중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쭉 뻗은 다리와 굴곡 있는 몸매, 시원하게 뻗은 검미까지.

당혜미는 살짝 뒤로 빼고 있던 몸을 앞으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례십니다. 그러는 상단주도 미모가 뛰어나신 걸요.”

의례적인 겸양인 게 분명한 당혜미의 답례.

그녀는 말과는 달리, 다소 초라한 송린의 복색에 시선이 꽂혀 있는 상태였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상단주라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십니다.”

“과찬의 말씀이셔요. 그저 산동에서 조그마한 상단을 하고 있는 미천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옆에 있던 금대수가 격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살짝 난처한 상황에 빠진 송린을 구해준 건 당소기였다.

“그런데 이런 외진 곳까지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상행 중에 이곳에서 산적을 만나 곤란을 당하던 차에, 천운으로 정 소협의 도움이 닿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송린은 담담히 소회를 털어 놓았다.

비록 종회가 마지막에 조금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티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이다.

다른 일행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한 당소기는 대충 상황을 알 텐데도 그저 흥하고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그런데 암룡께서는 어쩐 일로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그 말에 당소기는 작은 한숨과 함께 손끝으로 맨 뒤에 서있던 여자를 가리켰다.

“적 소저를 항주까지 데려다 주라는 부친의 엄명을 받았는지라…….”

“저는 적세령이에요. 반가워요, 언니.”

적세령은 그새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생글거리며 다가와 송린에게 말을 건넸다.

송린은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꽤나 쾌활한 소녀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언니,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마요.”

붙임성 있는 태도가 마치 친동생 같아서 반갑게 손을 내미는데, 송린의 그런 손을 멈칫거리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