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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또 다른 위기? 기회!(2)







(2)





어느 누가 봐도, 명성으로나 배경으로나 종회가 우협산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마전은 우협산에게 십초지적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인 열세.

“알겠습니다. 제가 우협산 쪽을 맡겠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마전의 눈은 강렬한 투지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야 눈빛이 제대로 돌아왔네.”

무인이란 저래야 하는 거다. 강약을 가리지 않고 생사의 대결을 벌여야 진정한 실력이 붙는 거다.

‘그에 비한다면 종회라는 놈은 쓰레기고.’

안 봐도 뻔했다. 소장충과 대충 어울리는 척 하다가, 우협산이 마전을 베어버리면 바로 송가상단을 버리고 도망갈 속셈이겠지.

물론 도망가면서 한마디는 할 것이다. 이 원한은 필히 갚아주겠다는.

‘……아니면 일행을 데리고 와서 추후에 저들을 섬멸할 생각인지도 모르고.’

담천우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몇몇 사람들의 기척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약 삼백여 장 정도 떨어진 곳. 그러고 보면 이 산중에 혼자 다니는 게 썩 부자연스럽기는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행과 따로 떨어져 있다가 이런 사태를 보게 된 거겠지.

‘……그런데 기운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저 멀리서 감지되고 있는 기운 중에 하나는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날카롭고 은밀하며 끈끈한 기운. 너무나도 독특해서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기운의 크기로 보아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작자는 아니겠지만, 같은 가문의 사람인 건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되면 좀 곤란하지.”

서둘러야 할 이유를 찾아 버렸다. 멀리서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이는 꽤나 실력자였다.

그가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린다면 상단의 무사들은 별 피해 없이 이번 일을 넘기게 될 테고, 더불어 실전을 경험할 기회도 잃게 된다. 그리고 싸움구경을 할 기회도 잃게 되겠지.

‘싸움구경은 역시 개싸움이 최고니까.’

담천우는 입가에 악랄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거 참 이상하네. 우협산, 소장충, 하도 얘기가 많아서 나름 녹림에서는 방구 좀 끼는 줄 알았는데, 무공을 죄다 구공(口功)으로 쌓은 모양이지? 에휴, 그럴 거면 어디 가서 녹림이라고 하지를 말든가.”

“이, 이 육시랄 쟁자수놈이 지금 뭐라고!”

“뭐 이 살인광 새끼야. 그렇게 눈을 뜨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았냐? 면상은 생기다 말아가지고.”

불은 제대로 지폈다. 눈깔을 보니 소장충과 우협산은 눈이 제대로 돌아가 있었다.

역시나 너무 착해졌다. 악역까지 자처했으니.

담천우의 말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나무아미타불.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랴.’

“으드득. 내 반드시 저 쟁자수놈의 혀를 뽑아버리고 말겠다. 그리고 소정협 네놈도 가만두지 않겠다.”

“아, 아니 이보시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던 종회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벗어났다.

원독이 가득한 종회의 시선이 담천우에게 꽂혔지만, 그런다고 뭐 어쩌겠는가. 고작해야 그는 쟁자수일뿐인데.

‘에휴, 그래봐야 승률이 일 할이네.’

[일 할?]

‘그래, 격장계로 그나마 일 할. 그 정도가 마전이 이길 확률이야. 방금 전까지는 전무(全無)였지.’

[갈 길이 멀군.]

충현은 담천우의 말을 재깍 알아듣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마전과 우협산 사이의 간극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내 앞에서 지게 만들 수는 없지.’

[방법이 있나보지?]

‘물론.’

그래도 쭉정이들 중에 알곡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인데, 그 재능이라도 키워봐야지.



‘승산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길 방법을 찾는다면 두 가지다. 자신이 강해지거나, 아니면 상대가 약해지거나.’

[꽤나 명쾌하군.]

‘싸우면서 강해지면 돼.’

[뭐, 뭐라고?]

‘자신한테 버거운 상대를 겪으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러다 보면 강해지는 거지.’

[미… 쳤군.]

‘이게 강해지는 정석이다.’

담천우가 천마신교에 있던 시절, 그는 여러 놈을 가르치려고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포기했다. 제대로 알아먹지를 못해서.

그래서 결국 마지막으로 시도한 게, 죽도록 패는 것이었다.

사람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성장한다.

이게 만고의 진리다.

[미친놈. 넌 누구든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천재의 방법을 범인이 어찌 알까.’

담천우가 괴소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충현은 문득 마전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품었다.

[도망치는 게 좋을지도…….]



* * *



심상공간 내에서 충현과 담천우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싸움은 이미 격화되어 있었다.

[천우!]

충현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른 이유는, 불과 한 초식만에 마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기 때문인데, 상황은 흑산비상검 혼원때보다도 더 심각했다.

“십 초도 못 버틸 수 있겠네.”

[그렇게 한가한 소리나 할 때가 아니다. 빨리 그 대책이라는 걸 내놔봐.]

남일 얘기하듯 반응하는 담천우의 행태에 충현은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담천우의 시선은 여전히 우협산에 못 박혀 있는 상태였다.

“우협산의 무기가 부(斧)라서 한 방만 잘못 맞아도 몸이 으스러질 것 같지만, 사실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그것도 초식의 연장선일 뿐이란 거지.”

거추장스러운 부(斧)라는 방해물을 제외하고 선과 선이라는 초식으로 풀어보자면, 우협산의 움직임은 뭔가 익숙한 것이었다.

그게 뭘까.

‘……공동파?’

어이가 없었지만 한참을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 그러했다.

우협산의 부법에서는 공동파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오고 있었다.

“크하하하, 이 비리비리한 녀석. 세로로 쪼개서 죽여주마.”

팔랑개비마냥 부를 날리던 우협산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왜 명호에 광(狂)자가 붙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기는 한데… 저건 못 따라 가겠다.’

담천우는 보다 못해 혀를 끌끌 찼다.

혹시 공동파의 속가제자쯤 되는 것일까.

“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

보통 녹림도라는 게 죄를 짓고서 산속으로 들어온 놈들이다 보니, 본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 다반사였다.

물론 전대 녹림도왕 관태정처럼 녹림에서 내려오는 고유의 무공을 익히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우협산이라는 놈의 초식에는 정파 특유의 끈끈함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게 부법이 아니라 검로라는 거다.

“소양검이라는 검식이었던 것 같은데…….”

담천우는 머릿속으로 소양검의 특징을 대략 떠올려 보았다.

“이렇게 했던 것 같고.”

손으로 대충 휘저으니 그럴듯한 팔괘의 모양이 그려졌다.

꽤나 정적이면서도 유려한 곡선.

수법으로 펼쳐서 그렇지, 이건 검법이다.

몇 번 손으로 펼쳐보고 나서, 담천우는 소양검과 부법의 차이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정(靜)의 검결을 떼버리다니.”

담천우가 실소를 터트린 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였다.

뭔가 부족하다 싶었는데, 지금 자신이 펼쳐 보인 검결과 부법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깊이의 차이.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제깟 놈이 쾌속과 직선적인 것만 살린다고 나름 떼다가 쓴 모양인데, 그로 인해 검법도 부법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어이가 없군.”

소양검은 본시 방어를 중시한다.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을 검리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거기서 정(靜)을 빼버리면, 본래의 목적인 방어의 의미를 당최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

‘쯧. 의외로 이길 방법이 간단했네.’

마전 쪽을 보니 그는 이미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검(劍)은 부(斧)를 막기에는 너무도 가늘었으며, 상대의 힘을 흘리기에는 수준차가 너무 났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담천우는 마전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호흡과 호흡 사이의 간극을 노려.-

마전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지, 바삐 움직이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담천우는 갑갑해 하면서도 전음을 멈추지 않았다.

-참 답답하네. 저 미친놈의 부법은 허점투성이라고. 방어가 아주 취약하단 말야.-

[야이, 미친놈아!]

담천우는 골을 울리는 충현의 음성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래 갑자기?”

[그렇게 조언을 하면 어떡해! 쟤가 호흡과 호흡 사이를 가를 수 있겠냐고.]

“……그게 왜 안 돼? 너무도 간단한 건데.”

충현은 깊은 한숨을 흘렸다.

[범인에게는 그런 충고가 소용이 없다고.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줘야지.]

“싸우는 도중에 찰나의 깨달음을 얻으면 되지 않을까?”

[휴우… 한순간이나마 내가 너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다니. 나도 나름 파훼법을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종적인 공격, 그러니까 내려 긋는 초식은 세밀하지만, 베는 동작은 허술하잖아. 베는 동작의 다음을 노리라고 하던지.]

“그게 호흡과 호흡 사이를 노리는 거잖아.”

[평범한 자에게는 나처럼 세밀하게 얘기해 줘야 한다.]

“거 참 귀찮네. 이래서 무조건 패면서 알려줘야 돼.”

담천우는 투덜대면서도 전음은 잊지 않았다.

-상대는 베는 동작이 허술해. 베는 동작의 다음을 노리라고.-

그래도 이번에는 효과가 나름 있어 보였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것 같더니, 어찌 어찌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제대로 된 공격은 못하더라도, 참격(斬擊) 다음이 허술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피할 방도는 생긴 것이었다.

그래봐야 피하기 일색이던 것이 열 번에 한두 번 정도 반격하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지만, 조금 전에 비해서는 괄목상대할 만한 변화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놈의 쥐새끼가!”

우협산의 얼굴은 분노 때문인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일류에 겨우 걸칠까 말까 한 이가 절정고수를 상대로 삼십 초를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눈에 이번에는 환장할 만한 장면이 보였다.

분명히 산적의 숫자가 상단무사들에 비해 월등히 더 많았는데도, 산적이 압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들은 죄다 자기네 식구들이었다.

하도 믿기지가 않아서 눈을 비비고 봐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바로 그때.

“아, 암기?”

상단무사의 이마에 박도가 꽂히려는 시점에, 암기 하나가 교묘히 날아와 검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그걸 목전에서 지켜본 우협산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제, 제기랄. 사천당가가 개입했다!”

“아니라고.”

우협산의 외침을 들은 담천우는 툴툴대면서도 암기를 날려대는 데에 더욱 집중했다.

솔직히 마전에게는 개입을 안 하겠다고 해놨지만, 아예 개입을 하지 않으면 상단 무사들이 몰살을 당할 테니 개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죽으면 안 되잖아. 아쉬운 대로 써먹어야지.”

담천우는 이름 모를 상단무사에게 박도를 밀어 넣으려는 녹림도의 옆구리에 돌멩이를 박아 넣으며 그렇게 읊조렸다.

‘나는 송가상단 은둔의 무공고수이자 쟁자수다!’

판은 담천우가 의도한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상단무사들은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조금씩 실전이라는 걸 배워나갔고, 마전과 우협산, 그리고 종회와 소장충은 그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성격 이상한 놈.]

충현의 비웃음을 뒤로 흘려버리고, 담천우는 마전 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대로는 그저 도망 다니는 법만 익힐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우협산의 머릿속이 딴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란 사실이었다.

과연 암기를 날리는 방수는 어디 있을까라는 그런 생각.

이미 그에게는 마전이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부족해. 마전 저 녀석이 좀 더 변해야 할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듯이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상대가 약해지거나 자신이 강해지거나.

그런데 상대가 약해지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자면 마전의 검법을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군. 좋게 말하면 일격필살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뒤가 없어. 굳이 중원으로 따지자면 해남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백제 유파의 검법이지. 그런데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는 것 같아. 저기서 저런 검로는, 흐음…….]

담천우도 충현의 말에 동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몇몇 검로는 영 어색하거든.

사실 우협산의 초식이 이상하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건 아마도 중원에 정착한 후 몇 세대가 흘러가는 동안, 원형은 잊히고 중원 검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이겠지.

담천우는 아까처럼 손으로 검식을 구현해 보기 시작했다.

몇 번 해보고 나니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대략 알 수가 있었다.

“지금도 삼 초식에서 사 초식으로 넘어갈 때 반 푼 정도 힘을 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을 더 줬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진기수발이 조금 더 원활했을 테고.”

초식과 내기는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거둘 때 거두고 내지를 때 내지르고.

맞지 않는 호흡은 저렇게 파탄이 나기 마련이다.

좋지 않은 검로의 반복이 다시금 우협산 쪽으로 추를 기울게 만들고 있었다.

참다못한 담천우가 전음으로 고함을 쳤다.

-야, 돌머리! 일검파산은 조금 더 힘을 줘야지. 삼 초식은 사 초식과 연계되는 식인데, 지금의 검식은 전혀 이어지지 않고 따로 놀고 있잖아, 이 자식아!-

욕설에 놀랐는지 마전은 순간 움찔했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날아오는 도끼에 머리가 쪼개질 뻔했다.

이정도 되면 마전의 신경이 분산되어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내친걸음이라고 여긴 담천우는 전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방의 약점을 알았으면, 그걸 집요하게 파고들어야지. 자! 상대가 횡적 공격에 취약하다, 그럼 무슨 초식을 써야 돼? 에휴, 그것도 모르면 그냥 뒈지든지.-

급한 마음에 담천우는 욕설이 튀어 나왔다.

내준 숙제 때문인지 마전의 발은 잠시간 아예 멈춰있었다.

우우웅. 퍼어엉.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해일 같은 공격이 마전을 덮쳤다.

피시잇.

대부에서 터져 나온 공압이 어찌나 센지, 마전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시뻘겋게 달아오른 마전의 눈빛에 어린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뭔가를 결심한 듯한 강한 투지.

파밧.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낸 듯한 움직임!

마전은 아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쾌속하게 몸을 날려 공세의 범위를 벗어났다.

드디어 적의 취약한 점을 완전히 간파해낸 것이었다.

부웅. 부우웅.

풍차처럼 휘둘러지는 대부가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을 요절낼 것 같았지만, 삭풍을 견디는 때 이른 새싹마냥 마전은 버텨내고 버텨냈다.

퍼캉.

그러자 우협산의 도끼가 마전의 힘을 이기지 못했는지, 아니면 제풀에 힘이 빠진 건지, 헛되이 땅거죽을 찍었다.

“이때다.”

순간, 마전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그가 빛살처럼 우협산의 품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