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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나는 오늘 살인면허를 가졌다(1)
(1)
원행 길에 나선지 오일 째.
원행은 여러 사람의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 번 산적의 습격을 받기는 했지만, 다행히 마전 수준에서도 충분히 감당할 만했기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 기간 동안 담천우는 천일령원기공을 축기하는 것과 천마도법 그리고 천무무극권을 참오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머릿속에 수없이 명멸하고 있는 잔상 속에서 천무무극권과 천마도법의 초식이 지워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참오하다 보면 상당부분 천마도에 천무무극권이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 생기고는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담천우는 수상쩍은 두 사내를 감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째 감시하다 보니 정체를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일단 흑사방도는 맞았다. 단, 최근까지는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목공이었다.
그것도 십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숙련공.
깡촌에 묻혀 사는 청년들이 흔히 그러하듯, 무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그들에게도 헛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그렇게 나름 포부를 가지고서 안정된 벌목공을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나섰건만, 이십대 중반을 넘을 때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을 받아줄 백도의 무가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을 받아줄 만한 곳은 흑도밖에 없었는데, 흑사방으로서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방도들이 필요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던 것.
“형님, 저기 말이요. 상단주가 너무 불쌍하지 않소?”
“어허. 딴 생각하지 말고, 임무를 생각해라, 이 녀석아.”
“형님은 저 아리따운 여인이 앞으로 당할 일이 안타깝지도 않소?”
“그, 그거야 나도 마음에 쪼까 걸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맘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방주님이 그래도 저 여인을 거둬서 잘 대해 준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겄냐. 누가 그랬잖냐, 여인네 팔자는 서방을 잘 만나는 것에 달렸다고.”
“그럼 다행이지만요.”
“그러니까 너도 마음 단도리 잘해. 딴 생각 먹지 말고. 우리가 임무를 잘해내야 자랑스러운 흑도인이 되는 것이여.”
이게 저놈들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저런 걸 보면, 꽤나 순박한 놈들인 것 같기는 한데…….
“하기사, 인품도 무공도 훌륭하신 우리 방주님이신데, 어련히 잘 대해 주실라구요.”
[저놈들, 죽여 버려라.]
또 다시 살인면허를 허락하는 충현을 말리느라 담천우는 혼이 났다.
저것들은 그냥 모자란 놈들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모자란 놈들.
나름 알아보니, 흑사방주는 육십에 가까운데다가 탐욕만 많은 놈이라는데, 훌륭하긴 개뿔.
“야, 충현. 저런 놈들까지 죽이면, 괜히 찝찝할 것 같다고. 내가 무슨 살인마인줄 알아?”
그렇게 담천우가 말하는 순간, 두 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런데 성님. 우리 흑사방주님의 무공이 월메나 센 거요?”
“내가 들으니까, 맨손으로 바위도 쪼개고 호랑이도 때려잡는다고 하더라.”
“우와. 그, 그건 정말 초인 아니오?”
“그래서 내가 무공을 배우려는 거 아니냐. 두고 봐라. 무촌에서 나를 무시했던 두칠이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그냥… 죽일까? 착하게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 * *
그로부터 하루 뒤.
“여기서 잠깐 쉬고 간다.”
여느 때처럼 마전은 두 시진 정도의 이동 후 잠깐의 휴식을 주었다.
꽤나 빡빡한 이동이었기에 무사들이나 행수들 할 것 없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때, 담천우는 두 눈을 빛냈다.
주시하고 있던 놈들이 드디어 음지를 벗어나 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두 녀석들은 꽁꽁 싸맨 봇짐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있던 호리병에 타기 시작했다.
‘저건… 미혼약?’
그 말이 맞는지 바람결을 타고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만 타면 되겠지?”
“아이고, 형님. 걱정도 팔자요. 이게 약발이 세서 소도 잠에 빠질 정도라고 했수다.”
“아, 그래? 자, 그럼 슬슬 다 되었으니, 무사들에게 수고한다고 하면서 한 모금씩 돌리자.”
“형님. 혹시 안 마시면 어떡하오?”
“야, 생각을 해봐라. 오늘만 벌써 몇 시진째 이동을 계속했는데, 목이 마르겠냐 안 마르겠냐? 그리고 야영지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마시고 피곤해지면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할 거야.”
얘기를 들어보니 당장 여기서 습격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앞으로 반시진만 더 가면 야영을 하기 때문에 무사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고, 잠에 빠져도 거기 가서 빠지겠지.
그런데 문제는 담천우가 먼저 이걸 들었다는 거였다.
담천우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서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돌에 적잖은 힘이 실렸는지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이런 데다 쓰라고 있는 탄지공이 아닌데……. 어쨌든 적중이다.
퍼석.
돌멩이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적지 않은 거력이 담겨 있었기에, 호리병은 주둥이만 남기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뭐, 뭐야!”
“혀, 형님!”
토룡과 지룡은 당연히 대경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자라마냥 고개를 바싹 숙이는 게, 긴장한 표정이 담천우가 있던 곳에서도 보였다.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든 지룡은 그 후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짐짓 괜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할 거 없다. 그, 그냥 우연이다. 아마도 손에서 미끄러진 모양이지. 내가 이럴 줄 알고 호리병을 하나 더 가지고 왔지 않냐.”
말과는 다르게 남은 호리병에 미혼약을 털어 넣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토룡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말했다.
“성님. 만약… 이것도 실패하면 어쩌죠?”
“어허. 아까는 손에서 미끄러졌대도. 부정 타게 왜 그러느냐?”
“성님… 꼭 이거 해야 하는 거유?”
“자랑스러운 흑도인이 되느냐 마느냐가 여기에 달렸다.”
그들을 보며 담천우는 혀를 끌끌 찼다.
이번에는 어떠한 실수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 호리병을 몸으로 꽁꽁 감쌌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걸 보면 참으로 멍청한 놈들이었다.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고수가 개입한 것을 깨닫고는 즉시 포기할 텐데 말이다.
담천우는 다시 돌을 손가락에 놓고 탄지했다.
피잉.
섬전같이 날아간 작은 돌멩이는 호리병이 아닌 토룡의 팔꿈치, 정확하게는 곡지혈 쪽을 강타했다.
“아앗!”
외마디 비명성과 함께 호리병이 토룡의 손을 벗어나 땅으로 향했다.
파삭.
땅에 부딪힌 충격으로 산산이 깨져 버린 호리병.
“아아…….”
토룡은 눈망울이 아득해졌다.
꿈꿔왔던 영광스러운 흑도인의 될 기회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혀, 형님.”
“이 녀석이! 그걸 어떻게 떨어뜨리냐!”
“그게, 내가 떨어뜨리고 싶어서 떨어뜨린 게 아니고, 뭐가 팔꿈치에 맞아서 떨어뜨린 거요.”
“뭐라고? 그래도 막았어야지.”
하아… 한숨이 나오는 광경이다.
이래서 바보는 상대하는 게 아닌데.
담천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전음을 날렸다.
-어이, 바보형제들. 내 전음소리 잘 듣고 대답해! 죽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너네 흑사방도지?-
“허, 헙. 이게 뭐다냐? 어디서 목소리만 들리는데……. 에… 그, 그러니까. 아! 들리시오?”
“그, 그렇소.”
그래도 형이라고, 지룡 쪽이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편인 것 같았다.
-네놈들이 미혼약을 먹인 후에, 습격은 다른 사람이 하는 거지? 그게 오늘 있는 거고?-
“그, 그걸 어떻게……?”
지룡은 적잖이 당황했다.
일단 들은 건 다 들었다.
지룡 또한 그걸 깨달았는지 다급히 말했다.
“우리를 어쩌실 작정이오?”
-어떻게 할까? 죽이는 게 가장 편하기는 한데.-
“아이고, 살려주시오.”
“혀, 형님. 우리 이제 죽는 거요?”
남자끼리 껴안고 우는 장면은 별로였다.
담천우는 하는 수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내려놓았다.
사실 그들을 내버려 두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둘을 죽이면 괜히 상단만 들쑤시게 될 것 같아서였다.
-너네들, 개수작만 부려봐.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죽여줄 테니까. 알았어?-
“네네, 감사합니다.”
“신선님, 감사합니다.”
토룡과 지룡은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담천우는 그제야 바랑 안에 든 육포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혀, 형님. 그런데 아까 그것은 뭐요?”
“야. 신선님 들으실라.”
“가신 것 같은디. 아무 소리도 없잖여.”
“그, 그래? 그럼 아까 그거 혹시 그거 아니냐? 전음 뭐 이런 거.”
“전음? 그게 뭐요?”
“아, 무식한 놈. 목소리만 들리게 하는 그런 게 있다.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자랑스러운 흑도인이 되겠다고 그러냐.”
역시 죽일 걸 그랬다. 착해지지만 않았어도…….
“하긴, 오늘 밤에는 많이 죽일 수도 있겠네.”
저 어리바리한 촌놈들보다는 그쪽이 더 손맛이 있겠지.
담천우는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짜릿해지는 것 같았다.
[……변태 같은 놈.]
* * *
반시진만 간다고 생각했는데, 마전은 그 뒤로도 한 시진을 더 갔다.
저 어리바리한 놈들이 그것도 모르고 미혼약을 먹였으면 어떡할 뻔했어.
가는 길에 픽픽 쓰러지면 당연히 의심은 두 형제들이 받았을 테고, 미래의 자랑스러운 흑도인은 흙에 양분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뭐, 송린의 성격상 그냥 살려주세요, 라고 했을 테지만.
아무튼 행렬은 무탈하게 도착해서 노숙할 준비까지 완료를 했다.
어떤 자들은 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땅을 고르기도 하고, 밤이슬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두툼하게 모포도 깔았다.
물론 담천우는 거기에서 제외였다.
높은 고목 위로 훌쩍 올라간 담천우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굵은 나뭇가지에 몸을 뉘는 것이었다.
초여름인지라 잎사귀로 무성한 가지를 뚫고 점점이 박힌 별들.
꽤나 장관이기는 하지만…….
‘언제쯤 올까?’
담천우의 가슴은 신방을 차린 신랑처럼 왠지 모를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었다.
데구르르르. 나뭇가지 몇 개가 그의 손가락 위에서 잘그락거렸다.
아쉬운 대로 급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제법 끝이 날카롭게 갈려있으니 일회용 암기 대용으로는 이만한 게 없어 보였다.
저벅.
그때, 귀에 들려오는 자그마한 소리.
무심코 넘겨버릴 수도 있는 미음(微音)이었지만, 담천우는 팽팽한 고양감이 당겨왔다.
“좋아.”
[착해졌다며.]
‘그래서 아까 살려줬잖아.’
그간 너무 무료했다.
예전에는 사람을 안 죽이는 날이 없었지.
찌르르르. 뚝.
풀벌레 소리가 일제히 잦아들었다.
바보 같은 녀석들.
괜한 기대였나.
진한 살기는 날벌레 소리를 죽인다.
몰라서 그렇지, 곤충들은 의외로 살기에 민감한 편이니까.
그걸 모르는 걸 보니 전문 살수들은 아니었다.
뚝뚝.
담천우는 무료함에 앉은 자리에서 나뭇가지를 더 떼어냈다.
생각보다 날파리들이 꽤나 많았다.
풀밭을 헤치는 소리로 미루어 볼 때, 한 이십 명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누가 보면 미혼약이라도 탄 줄 알겠네.”
담천우는 주변을 살펴본 후 혀를 찼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아직까지도 번을 서던 상단의 무사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고된 원행길에 피곤하기는 했겠지만 어찌 저리도 긴장감이 없는지.
이래서야… 오 년 뒤가 걱정이다.
아! 왜 내가 오 년 뒤를 걱정하고 있는 거지?
충현 저 녀석은 도사나 땡중을 불러다가 성불을 시키면 되는데.
제길,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드는 곳이기는 한데… 에라 모르겠다!
갈피를 잃은 마음과는 달리 담천우의 손에서 노닐던 나뭇가지는 거침없이 허공을 날았다.
쐐액.
어둠을 뚫고 검은색 실선이 그려졌다.
“컥.”
짧고도 미약한 단발마.
바보 같은 녀석.
그렇게 짧고 약하게 비명을 지르면 어뜩하냐.
그래도 다행인 건, 적들에게서 뭔가 동요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거겠지.
그래, 보낸 김에 선물 하나를 더 보내자.
잠에 취해 있는 녀석들도 깨울 겸.
다시금 어둠 속을 나뭇가지가 갈랐다.
쐐애애액.
“크헉!”
이번엔 좀 컸다.
누구나 알아챌 만큼
좋구나.
피피피피핑.
신명이 난 담천우의 손이 어둠을 수놓았다.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를 여는 귀접(鬼蝶)의 날갯짓이라도 하듯.
나무로 된 암기는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꽂혔다.
“살… 려!”
드디어 살려줘, 라는 말이 적들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암기의 좋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일 수 있다는 것.
암기는 다수를 상대로 공포를 주는 최적의 수단이다.
“뭐, 뭐야! 습격?”
“어이, 다들 깨워! 하나, 둘, 셋……. 이십은 넘어 보이잖아!”
드디어 상단에서도 알아챘는지 큰 소란이 일었다.
그 모습에 담천우는 혀를 찼다.
비명을 그렇게나 질렀는데 이제야 알아채다니.
그래도 최소한의 경각심은 있었는지 다급히 호각을 불었고, 그 덕분에 모두가 소란스럽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다들 죽이자.”
담천우는 달그림자와 닮은 하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살인면허를 가진 날이니까.
(1)
원행 길에 나선지 오일 째.
원행은 여러 사람의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 번 산적의 습격을 받기는 했지만, 다행히 마전 수준에서도 충분히 감당할 만했기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 기간 동안 담천우는 천일령원기공을 축기하는 것과 천마도법 그리고 천무무극권을 참오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머릿속에 수없이 명멸하고 있는 잔상 속에서 천무무극권과 천마도법의 초식이 지워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참오하다 보면 상당부분 천마도에 천무무극권이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 생기고는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담천우는 수상쩍은 두 사내를 감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째 감시하다 보니 정체를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일단 흑사방도는 맞았다. 단, 최근까지는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목공이었다.
그것도 십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숙련공.
깡촌에 묻혀 사는 청년들이 흔히 그러하듯, 무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그들에게도 헛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그렇게 나름 포부를 가지고서 안정된 벌목공을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나섰건만, 이십대 중반을 넘을 때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을 받아줄 백도의 무가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을 받아줄 만한 곳은 흑도밖에 없었는데, 흑사방으로서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방도들이 필요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던 것.
“형님, 저기 말이요. 상단주가 너무 불쌍하지 않소?”
“어허. 딴 생각하지 말고, 임무를 생각해라, 이 녀석아.”
“형님은 저 아리따운 여인이 앞으로 당할 일이 안타깝지도 않소?”
“그, 그거야 나도 마음에 쪼까 걸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맘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방주님이 그래도 저 여인을 거둬서 잘 대해 준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겄냐. 누가 그랬잖냐, 여인네 팔자는 서방을 잘 만나는 것에 달렸다고.”
“그럼 다행이지만요.”
“그러니까 너도 마음 단도리 잘해. 딴 생각 먹지 말고. 우리가 임무를 잘해내야 자랑스러운 흑도인이 되는 것이여.”
이게 저놈들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저런 걸 보면, 꽤나 순박한 놈들인 것 같기는 한데…….
“하기사, 인품도 무공도 훌륭하신 우리 방주님이신데, 어련히 잘 대해 주실라구요.”
[저놈들, 죽여 버려라.]
또 다시 살인면허를 허락하는 충현을 말리느라 담천우는 혼이 났다.
저것들은 그냥 모자란 놈들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모자란 놈들.
나름 알아보니, 흑사방주는 육십에 가까운데다가 탐욕만 많은 놈이라는데, 훌륭하긴 개뿔.
“야, 충현. 저런 놈들까지 죽이면, 괜히 찝찝할 것 같다고. 내가 무슨 살인마인줄 알아?”
그렇게 담천우가 말하는 순간, 두 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런데 성님. 우리 흑사방주님의 무공이 월메나 센 거요?”
“내가 들으니까, 맨손으로 바위도 쪼개고 호랑이도 때려잡는다고 하더라.”
“우와. 그, 그건 정말 초인 아니오?”
“그래서 내가 무공을 배우려는 거 아니냐. 두고 봐라. 무촌에서 나를 무시했던 두칠이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그냥… 죽일까? 착하게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
* * *
그로부터 하루 뒤.
“여기서 잠깐 쉬고 간다.”
여느 때처럼 마전은 두 시진 정도의 이동 후 잠깐의 휴식을 주었다.
꽤나 빡빡한 이동이었기에 무사들이나 행수들 할 것 없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때, 담천우는 두 눈을 빛냈다.
주시하고 있던 놈들이 드디어 음지를 벗어나 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두 녀석들은 꽁꽁 싸맨 봇짐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있던 호리병에 타기 시작했다.
‘저건… 미혼약?’
그 말이 맞는지 바람결을 타고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만 타면 되겠지?”
“아이고, 형님. 걱정도 팔자요. 이게 약발이 세서 소도 잠에 빠질 정도라고 했수다.”
“아, 그래? 자, 그럼 슬슬 다 되었으니, 무사들에게 수고한다고 하면서 한 모금씩 돌리자.”
“형님. 혹시 안 마시면 어떡하오?”
“야, 생각을 해봐라. 오늘만 벌써 몇 시진째 이동을 계속했는데, 목이 마르겠냐 안 마르겠냐? 그리고 야영지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마시고 피곤해지면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할 거야.”
얘기를 들어보니 당장 여기서 습격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앞으로 반시진만 더 가면 야영을 하기 때문에 무사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고, 잠에 빠져도 거기 가서 빠지겠지.
그런데 문제는 담천우가 먼저 이걸 들었다는 거였다.
담천우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서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돌에 적잖은 힘이 실렸는지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이런 데다 쓰라고 있는 탄지공이 아닌데……. 어쨌든 적중이다.
퍼석.
돌멩이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적지 않은 거력이 담겨 있었기에, 호리병은 주둥이만 남기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뭐, 뭐야!”
“혀, 형님!”
토룡과 지룡은 당연히 대경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자라마냥 고개를 바싹 숙이는 게, 긴장한 표정이 담천우가 있던 곳에서도 보였다.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든 지룡은 그 후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짐짓 괜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할 거 없다. 그, 그냥 우연이다. 아마도 손에서 미끄러진 모양이지. 내가 이럴 줄 알고 호리병을 하나 더 가지고 왔지 않냐.”
말과는 다르게 남은 호리병에 미혼약을 털어 넣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토룡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말했다.
“성님. 만약… 이것도 실패하면 어쩌죠?”
“어허. 아까는 손에서 미끄러졌대도. 부정 타게 왜 그러느냐?”
“성님… 꼭 이거 해야 하는 거유?”
“자랑스러운 흑도인이 되느냐 마느냐가 여기에 달렸다.”
그들을 보며 담천우는 혀를 끌끌 찼다.
이번에는 어떠한 실수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 호리병을 몸으로 꽁꽁 감쌌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걸 보면 참으로 멍청한 놈들이었다.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고수가 개입한 것을 깨닫고는 즉시 포기할 텐데 말이다.
담천우는 다시 돌을 손가락에 놓고 탄지했다.
피잉.
섬전같이 날아간 작은 돌멩이는 호리병이 아닌 토룡의 팔꿈치, 정확하게는 곡지혈 쪽을 강타했다.
“아앗!”
외마디 비명성과 함께 호리병이 토룡의 손을 벗어나 땅으로 향했다.
파삭.
땅에 부딪힌 충격으로 산산이 깨져 버린 호리병.
“아아…….”
토룡은 눈망울이 아득해졌다.
꿈꿔왔던 영광스러운 흑도인의 될 기회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혀, 형님.”
“이 녀석이! 그걸 어떻게 떨어뜨리냐!”
“그게, 내가 떨어뜨리고 싶어서 떨어뜨린 게 아니고, 뭐가 팔꿈치에 맞아서 떨어뜨린 거요.”
“뭐라고? 그래도 막았어야지.”
하아… 한숨이 나오는 광경이다.
이래서 바보는 상대하는 게 아닌데.
담천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전음을 날렸다.
-어이, 바보형제들. 내 전음소리 잘 듣고 대답해! 죽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너네 흑사방도지?-
“허, 헙. 이게 뭐다냐? 어디서 목소리만 들리는데……. 에… 그, 그러니까. 아! 들리시오?”
“그, 그렇소.”
그래도 형이라고, 지룡 쪽이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편인 것 같았다.
-네놈들이 미혼약을 먹인 후에, 습격은 다른 사람이 하는 거지? 그게 오늘 있는 거고?-
“그, 그걸 어떻게……?”
지룡은 적잖이 당황했다.
일단 들은 건 다 들었다.
지룡 또한 그걸 깨달았는지 다급히 말했다.
“우리를 어쩌실 작정이오?”
-어떻게 할까? 죽이는 게 가장 편하기는 한데.-
“아이고, 살려주시오.”
“혀, 형님. 우리 이제 죽는 거요?”
남자끼리 껴안고 우는 장면은 별로였다.
담천우는 하는 수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내려놓았다.
사실 그들을 내버려 두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둘을 죽이면 괜히 상단만 들쑤시게 될 것 같아서였다.
-너네들, 개수작만 부려봐.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죽여줄 테니까. 알았어?-
“네네, 감사합니다.”
“신선님, 감사합니다.”
토룡과 지룡은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담천우는 그제야 바랑 안에 든 육포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혀, 형님. 그런데 아까 그것은 뭐요?”
“야. 신선님 들으실라.”
“가신 것 같은디. 아무 소리도 없잖여.”
“그, 그래? 그럼 아까 그거 혹시 그거 아니냐? 전음 뭐 이런 거.”
“전음? 그게 뭐요?”
“아, 무식한 놈. 목소리만 들리게 하는 그런 게 있다.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자랑스러운 흑도인이 되겠다고 그러냐.”
역시 죽일 걸 그랬다. 착해지지만 않았어도…….
“하긴, 오늘 밤에는 많이 죽일 수도 있겠네.”
저 어리바리한 촌놈들보다는 그쪽이 더 손맛이 있겠지.
담천우는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짜릿해지는 것 같았다.
[……변태 같은 놈.]
* * *
반시진만 간다고 생각했는데, 마전은 그 뒤로도 한 시진을 더 갔다.
저 어리바리한 놈들이 그것도 모르고 미혼약을 먹였으면 어떡할 뻔했어.
가는 길에 픽픽 쓰러지면 당연히 의심은 두 형제들이 받았을 테고, 미래의 자랑스러운 흑도인은 흙에 양분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뭐, 송린의 성격상 그냥 살려주세요, 라고 했을 테지만.
아무튼 행렬은 무탈하게 도착해서 노숙할 준비까지 완료를 했다.
어떤 자들은 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땅을 고르기도 하고, 밤이슬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두툼하게 모포도 깔았다.
물론 담천우는 거기에서 제외였다.
높은 고목 위로 훌쩍 올라간 담천우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굵은 나뭇가지에 몸을 뉘는 것이었다.
초여름인지라 잎사귀로 무성한 가지를 뚫고 점점이 박힌 별들.
꽤나 장관이기는 하지만…….
‘언제쯤 올까?’
담천우의 가슴은 신방을 차린 신랑처럼 왠지 모를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었다.
데구르르르. 나뭇가지 몇 개가 그의 손가락 위에서 잘그락거렸다.
아쉬운 대로 급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제법 끝이 날카롭게 갈려있으니 일회용 암기 대용으로는 이만한 게 없어 보였다.
저벅.
그때, 귀에 들려오는 자그마한 소리.
무심코 넘겨버릴 수도 있는 미음(微音)이었지만, 담천우는 팽팽한 고양감이 당겨왔다.
“좋아.”
[착해졌다며.]
‘그래서 아까 살려줬잖아.’
그간 너무 무료했다.
예전에는 사람을 안 죽이는 날이 없었지.
찌르르르. 뚝.
풀벌레 소리가 일제히 잦아들었다.
바보 같은 녀석들.
괜한 기대였나.
진한 살기는 날벌레 소리를 죽인다.
몰라서 그렇지, 곤충들은 의외로 살기에 민감한 편이니까.
그걸 모르는 걸 보니 전문 살수들은 아니었다.
뚝뚝.
담천우는 무료함에 앉은 자리에서 나뭇가지를 더 떼어냈다.
생각보다 날파리들이 꽤나 많았다.
풀밭을 헤치는 소리로 미루어 볼 때, 한 이십 명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누가 보면 미혼약이라도 탄 줄 알겠네.”
담천우는 주변을 살펴본 후 혀를 찼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아직까지도 번을 서던 상단의 무사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고된 원행길에 피곤하기는 했겠지만 어찌 저리도 긴장감이 없는지.
이래서야… 오 년 뒤가 걱정이다.
아! 왜 내가 오 년 뒤를 걱정하고 있는 거지?
충현 저 녀석은 도사나 땡중을 불러다가 성불을 시키면 되는데.
제길,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드는 곳이기는 한데… 에라 모르겠다!
갈피를 잃은 마음과는 달리 담천우의 손에서 노닐던 나뭇가지는 거침없이 허공을 날았다.
쐐액.
어둠을 뚫고 검은색 실선이 그려졌다.
“컥.”
짧고도 미약한 단발마.
바보 같은 녀석.
그렇게 짧고 약하게 비명을 지르면 어뜩하냐.
그래도 다행인 건, 적들에게서 뭔가 동요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거겠지.
그래, 보낸 김에 선물 하나를 더 보내자.
잠에 취해 있는 녀석들도 깨울 겸.
다시금 어둠 속을 나뭇가지가 갈랐다.
쐐애애액.
“크헉!”
이번엔 좀 컸다.
누구나 알아챌 만큼
좋구나.
피피피피핑.
신명이 난 담천우의 손이 어둠을 수놓았다.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를 여는 귀접(鬼蝶)의 날갯짓이라도 하듯.
나무로 된 암기는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꽂혔다.
“살… 려!”
드디어 살려줘, 라는 말이 적들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암기의 좋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일 수 있다는 것.
암기는 다수를 상대로 공포를 주는 최적의 수단이다.
“뭐, 뭐야! 습격?”
“어이, 다들 깨워! 하나, 둘, 셋……. 이십은 넘어 보이잖아!”
드디어 상단에서도 알아챘는지 큰 소란이 일었다.
그 모습에 담천우는 혀를 찼다.
비명을 그렇게나 질렀는데 이제야 알아채다니.
그래도 최소한의 경각심은 있었는지 다급히 호각을 불었고, 그 덕분에 모두가 소란스럽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다들 죽이자.”
담천우는 달그림자와 닮은 하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살인면허를 가진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