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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정체기라는 게 뭐지?(2)
(2)
송가상단 지음당은 본래 손님들이 묵는 객방이었다.
허나 상단의 몰락과 함께 손님의 왕래가 끊겨 버려서, 지금은 쟁자수들이 머무는 방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쟁자수들이 죄다 떠나버렸으니, 지금은 담천우 혼자 독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절간처럼 적막한 공간에 검푸른 안광이 새겨졌다.
드디어 하루 내내 매달렸던 적공을 마친 담천우가 몸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제 팔십년인가.”
말을 하면서도 담천우는 믿기지가 않았다.
도 선주에게서 갈취한 은자 삼천 냥을 가지고는 애매한 산삼 뿌리정도밖에는 살 수가 없었는데, 그 수령이고 해봐야 일백오십 년 정도.
그래서 크게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사실 평범한 무인이 복용했다면 그 진력을 다 이끌어내지 못해서 고작해야 몸 보양 정도나 가능할 정도였다.
실제로 명문세가에서는 삼의 수령이 이백 년을 넘지 않으면 아예 영약으로도 취급을 안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만큼 들이는 값에 비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담천우 역시도 많아봐야 일이년 정도의 내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그와는 달랐다.
‘폭혈공으로 흩어졌던 진력의 찌꺼기까지 모두 딸려오다니. 이건 정말이지 예상치 못했던 소득이로군.’
담천우는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단순히 내공의 총량이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천마도법.
드디어 금제되어 있던 독문무공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성립된 것.
천마도법은 담천우 자신이 만든 도법이기는 하지만, 최후의 도식이라는 천마육도만큼은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했다.
그 첫 번째 일도(一刀)인 천하만결(天下萬決)만 해도 최소한 팔십에서 구십년의 내공은 있어야 했고, 후반식인 사도(四刀)에서 육도(六刀)까지는 족히 사갑자는 있어야 할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이번의 결실로 인해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은 덜 수 있었다.
최소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정도는 된 것이니까.
천마도의 일식이라도 쓸 수 있다는 의미는 그만큼 큰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적공을 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
중단전의 형성이 하단전의 축기에도 꽤나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건 하단전 다음에 중단전, 그리고 상단전을 열어 우화등선에 이른다는 삼원조화의 무리(武理)와는 전혀 상반되는 결과였다.
“이리되면 예전의 무위를 되찾는 데에 오 년이 채 걸리지 않을 수도 있겠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심상공간에서 난리가 났다.
담천우는 괜히 건드렸다 싶었다. 농을 한번 해본 걸 가지고 진짜인줄 알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오 년 동안은 어디 안 가니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좀 마라.”
[……그 말, 꼭 지켜라.]
확답을 듣고서야 잠잠해 지는 충현이었다.
그러고 보면 삼 일 동안 상단을 비웠을 때,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나름 봐준 건가 싶기도 하고.’
“어… 현제, 기침하였는가?”
“혀언제?”
담천우는 장지문을 과격하게 열어젖혔다.
문을 여니 예상대로 꽤나 띨띨하게 생긴 얼굴로 송찬이 어울리지도 않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깨어있었군.”
“뭐예요, 아침부터?”
담천우의 반응은 냉랭했다.
딱 보니 좋은 내용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네가 좀 심했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살기를 뿌려댔으니.]
‘흥! 저놈은 왠지 밉상이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송찬의 태도가 안쓰러웠는지 충현이 은근슬쩍 편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이렇게나 무서워하고 있는데, 굳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신교에서 만났다면, 감히 저렇게 말도 못 붙일 놈인데.
담천우의 묘한 시선이 닿자 뱀에게 걸린 개구리처럼 몸을 바르르 떨던 송찬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커험. 그게… 말일세. 밥은 먹었는가?”
“아직요. 그게 용건입니까?”
담천우가 살짝 누그러진 반응을 보인 건,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찬의 안색이 꽤나 안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담천우야 도 선주에게서 빼돌린 돈도 있어 외부에서 음식을 잘 먹고 다녔던지라 보기 좋게 살이 올랐지만, 이쪽은 오히려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피폐해 보였다.
“사실은 긴히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네.”
“네에, 부탁. 부탁 좋죠. 그런데 일개 쟁자수한테 부탁할 것이 있나 모르겠네요?”
“하하하, 자네는 그냥 쟁자수가 아니지 않은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쟁자수 맞아요.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쟁자수죠.”
“아닐세. 나는 자네를 기인이라고 생각하네. 지금은 세상의 눈을 잠시 속이고 있는 은거기인 말일세.”
담천우는 송찬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냥 원하는 것이나 말씀해 보시죠.”
“크흠, 크흠. 다른 게 아니고, 우리 상단이 얼마 뒤면 상행을 나간다네.”
“네에, 그런데요?”
“그 원행에 동행을 해줬으면 하네.”
“동행이요? 아, 조심히 다녀오세요.”
담천우는 그 말을 하고는 장지문을 닫기 위해 손을 뻗었다.
탁.
닫히는 문을 급하게 가로막는 송찬의 손. 담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죠?”
“부탁이네.”
“저는 일을 하면서 돈도 안 받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원행까지 가야한다고요?”
염치라는 걸 그래도 아는 것인지, 송찬의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담천우도 까짓 거 갔다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귀찮았다.
그리고 원행을 나가면 아무래도 무공을 수련하는 데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도 무공을 수련할 수 있지만, 나가면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
방문이 닫히기 직전, 어지간히 다급했는지 송찬은 아예 몸으로 문을 막아 세웠다.
“이거… 놓으시죠?”
“이보게. 이번에는 상단주님도 같이 가실 거라네.”
“……누구요?”
“상단주님이 원행에 가신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송찬의 음성에 담천우의 평온했던 얼굴이 바스러졌다.
제길,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심상공간에서 충현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짝 짜증이 난 담천우가 물었다.
“송 상단주가 왜 가시는 거죠? 보통은 장거리 원행은 표국에 맡기지 않나요?”
“그게 안 되니까 하는 말일세.”
“널린 게 표국인데, 왜 안 된다는 것죠?”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네. 표국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어서 말일세.”
“흐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요.”
이문이 남는 일이라면 웬만한 표국은 다 달라붙을 텐데…….
담천우는 문득 전에 송형욱과 도 선주가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진짜 상단이 망해가는 거예요? 그래서 표국들이 거부하는 거고?”
“그, 그게…….”
맞네. 망해가네.
담천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단 최고수는 이류무사에, 상단은 망하기 일보직전.
평온은 개뿔.
“그래도 이번 원행만 성공한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네. 아니, 반드시 나아지네. 그래서 사활을 걸고서 하는 거란 말일세.”
“휴우… 꼭 상단주도 가야 한데요?”
“우리도 말리고자 했지만, 이번 원행만큼은 반드시 가시겠다고 하시니……. 워낙에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기도 하시고.”
‘제기랄.’
듣고 보니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귀에 딱지가 앉겠다.
그래도 일단 상황은 알아봐야겠지.
상단주가 안 가는 게 최선이기는 한데.
“알겠습니다. 일단 동행하는 걸로 생각해 볼게요. 저한테 뭘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 고맙네.”
송찬의 얼굴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걸 보고 있자니, 담천우는 살짝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이자가 툴툴댄 것도 생각해보면 다 상단을 위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상단이 왜 이렇게 어려워요? 아, 궁금한 건 아닌데… 아니, 궁금해 할 사람이 있기는 하네요.”
“휴우……. 그건 얘기하자면 기네.”
말도 하기 전에 한숨부터 토해놓는 송찬이었다.
담천우는 반응을 보고 괜히 얘기를 꺼냈나 싶었다.
다른 마음은 없었고, 충현이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꺼내본 것뿐인데, 이런 반응일 줄이야.
“과거에는 송가상단이라고 하면 알아줬었네. 오십 년 전만해도 말이지.”
“……서두는 좀 짧게 부탁드릴게요.”
“커험. 아무튼, 원래 송가상단은 삼한 지역과의 중계무역으로 흥했었네. 그때만 해도 호위무사가 기백은 넘어갔었지.”
담천우의 심드렁한 반응에, 열변을 토해내던 송찬은 다소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그 성세는 다 어디로 가고 십여 년 전부터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네.”
“아, 그럼 망하기 시작한 게 최근은 아니었네요. 십 년 전부터 서서히 망해간 거구나.”
“그, 그렇네.”
어지간히 무안했던지 송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상단의 성세가 기울어진 것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번 일로 반전의 기회를 삼겠다는 거네요.”
“바로 그렇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상단주가 외지인인 자네를 구해오니, 나로서는 신경이 더욱 쓰였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상단주가 옳았지. 옹졸했던 나를 용서해 주게.”
“뭐 괜찮아요. 착해진 제가 참아야죠. 그리 신경 쓰이지도 않았어요.”
“……고, 고맙네.”
고맙다는 말과는 달리 송찬은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이상해서 담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충현의 질책하는 음성이 뒤따랐다.
[본인이 본인보고 착하다는 사람이 어디 있냐?]
‘왜! 예전에 비해서 많이 착해졌잖아.’
“그런데 상단주님은 어디 있죠? 제가 한번 만나봐야겠어요.”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천우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그것은 짧았던 휴식을 고하는 종언이었다.
* * *
“상단주님, 저 송찬입니다.”
“아, 대행수님. 들어오세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담천우는 송찬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송린은 꽤나 업무에 열정적인 유형인 듯했다.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연신 뭔가를 쓰기에 바빴다.
그 탓에 송찬과 담천우는 아무 말도 없이 멀뚱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송찬은 그게 익숙한 듯 표정이 담담했다.
‘그나저나 방이 좀 휑한데.’
담천우는 그 사이 방안을 쭉 훑어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휑해도 너무 휑했다.
전에 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건 아녀자의 방이 아니라 그냥 서생의 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래. 그렇게 하나하나씩 시작하는 거다. 호위라는 건 대상자의 습관이나 생활양식도 신경을 써야 하지.]
‘무슨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헛물을 켜는 충현의 말에 담천우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 업무를 마치고 고개를 든 송린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 천 공자도 같이 오셨군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에요. 죄송해요. 전표를 계산할 때는 중간에 끊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서……. 송찬 대행수님은 그런 걸 잘 아시기 때문에…….”
“…….”
“호호, 이해가 안 되시죠?”
“네, 뭐…….”
담천우는 고개를 성의 없이 주억거렸다.
그의 태도를 송린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여전히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두 분께서는 어인 일로 오셨나요?”
“송찬 대행수님께 들으니, 원행을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네, 들으셨군요.”
“꼭 가셔야만 하나요?”
내심 다른 말을 기대했던 송찬 대행수는 담천우를 노려보았다.
“어마. 지금 저를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정작 송린은 꽤나 감격한 얼굴이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담천우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물론 정답은, 무공 수련을 위한 중요한 시기라서 원행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네,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 먼 원행에 가신다니 밤잠을 이룰 수가 없네요.”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해요. 하지만 이번 원행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꼭 동행해야 돼요.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살짝 감격에 젖은 송린의 반응과는 달리 담천우는 크게 실망했다.
이런 반응이라면 마음을 돌리기란 어렵겠지.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담천우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네에? 천 공자님이 왜요?”
“그러게요.”
“크흠. 상단주님, 천 공자가 나름 무에 조예가 깊은 듯하니, 같이 한다면 필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열정을 보아서 허락해 주시지요.”
담천우는 굳이 안 해도 될 말까지 하는 송찬을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았다.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린을 설득하려는 송찬의 태도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아니 될 말이에요.”
담천우는 저도 모르게 송린을 빤히 바라봤다.
그만큼 그녀의 말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의외로 그녀는 강경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상단주님!”
“대행수님! 이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요. 아시잖아요. 여정이 긴 원행이라는 걸. 사경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분께는 절대 무리에요. 천 공자님, 우리 대행수님께서 상단이 걱정되는 마음에 괜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셔요.”
“상단주님! 아니, 아가씨! 지금 우리들의 입장이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행수님, 이건 도리에 맞지 않아요. 다음이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절대 안돼요. 천 공자님, 저는 원행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담천우의 입가에는 살짝 놀라움의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단주는 상단주였다.
매사 끌려 다니는 모습이 무르다 못해 연두부같은 인상이었는데, 결단할 때는 아주 강단이 있었다.
“무인으로서 참여하는 건 안 된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예, 당연합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네요. 잘 알겠습니다.”
담천우는 실망에 젖은 송찬을 내버려 둔 채 장지문을 닫고 나왔다.
[정말 안 갈 거냐?]
나오자마자 충현이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안 갈 수가 없게 만드네.”
담천우는 굳게 닫힌 상단주실의 문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2)
송가상단 지음당은 본래 손님들이 묵는 객방이었다.
허나 상단의 몰락과 함께 손님의 왕래가 끊겨 버려서, 지금은 쟁자수들이 머무는 방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쟁자수들이 죄다 떠나버렸으니, 지금은 담천우 혼자 독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절간처럼 적막한 공간에 검푸른 안광이 새겨졌다.
드디어 하루 내내 매달렸던 적공을 마친 담천우가 몸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제 팔십년인가.”
말을 하면서도 담천우는 믿기지가 않았다.
도 선주에게서 갈취한 은자 삼천 냥을 가지고는 애매한 산삼 뿌리정도밖에는 살 수가 없었는데, 그 수령이고 해봐야 일백오십 년 정도.
그래서 크게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사실 평범한 무인이 복용했다면 그 진력을 다 이끌어내지 못해서 고작해야 몸 보양 정도나 가능할 정도였다.
실제로 명문세가에서는 삼의 수령이 이백 년을 넘지 않으면 아예 영약으로도 취급을 안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만큼 들이는 값에 비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담천우 역시도 많아봐야 일이년 정도의 내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그와는 달랐다.
‘폭혈공으로 흩어졌던 진력의 찌꺼기까지 모두 딸려오다니. 이건 정말이지 예상치 못했던 소득이로군.’
담천우는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단순히 내공의 총량이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천마도법.
드디어 금제되어 있던 독문무공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성립된 것.
천마도법은 담천우 자신이 만든 도법이기는 하지만, 최후의 도식이라는 천마육도만큼은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했다.
그 첫 번째 일도(一刀)인 천하만결(天下萬決)만 해도 최소한 팔십에서 구십년의 내공은 있어야 했고, 후반식인 사도(四刀)에서 육도(六刀)까지는 족히 사갑자는 있어야 할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이번의 결실로 인해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은 덜 수 있었다.
최소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정도는 된 것이니까.
천마도의 일식이라도 쓸 수 있다는 의미는 그만큼 큰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적공을 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
중단전의 형성이 하단전의 축기에도 꽤나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건 하단전 다음에 중단전, 그리고 상단전을 열어 우화등선에 이른다는 삼원조화의 무리(武理)와는 전혀 상반되는 결과였다.
“이리되면 예전의 무위를 되찾는 데에 오 년이 채 걸리지 않을 수도 있겠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심상공간에서 난리가 났다.
담천우는 괜히 건드렸다 싶었다. 농을 한번 해본 걸 가지고 진짜인줄 알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오 년 동안은 어디 안 가니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좀 마라.”
[……그 말, 꼭 지켜라.]
확답을 듣고서야 잠잠해 지는 충현이었다.
그러고 보면 삼 일 동안 상단을 비웠을 때,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나름 봐준 건가 싶기도 하고.’
“어… 현제, 기침하였는가?”
“혀언제?”
담천우는 장지문을 과격하게 열어젖혔다.
문을 여니 예상대로 꽤나 띨띨하게 생긴 얼굴로 송찬이 어울리지도 않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깨어있었군.”
“뭐예요, 아침부터?”
담천우의 반응은 냉랭했다.
딱 보니 좋은 내용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네가 좀 심했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살기를 뿌려댔으니.]
‘흥! 저놈은 왠지 밉상이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송찬의 태도가 안쓰러웠는지 충현이 은근슬쩍 편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이렇게나 무서워하고 있는데, 굳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신교에서 만났다면, 감히 저렇게 말도 못 붙일 놈인데.
담천우의 묘한 시선이 닿자 뱀에게 걸린 개구리처럼 몸을 바르르 떨던 송찬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커험. 그게… 말일세. 밥은 먹었는가?”
“아직요. 그게 용건입니까?”
담천우가 살짝 누그러진 반응을 보인 건,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찬의 안색이 꽤나 안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담천우야 도 선주에게서 빼돌린 돈도 있어 외부에서 음식을 잘 먹고 다녔던지라 보기 좋게 살이 올랐지만, 이쪽은 오히려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피폐해 보였다.
“사실은 긴히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네.”
“네에, 부탁. 부탁 좋죠. 그런데 일개 쟁자수한테 부탁할 것이 있나 모르겠네요?”
“하하하, 자네는 그냥 쟁자수가 아니지 않은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쟁자수 맞아요.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쟁자수죠.”
“아닐세. 나는 자네를 기인이라고 생각하네. 지금은 세상의 눈을 잠시 속이고 있는 은거기인 말일세.”
담천우는 송찬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냥 원하는 것이나 말씀해 보시죠.”
“크흠, 크흠. 다른 게 아니고, 우리 상단이 얼마 뒤면 상행을 나간다네.”
“네에, 그런데요?”
“그 원행에 동행을 해줬으면 하네.”
“동행이요? 아, 조심히 다녀오세요.”
담천우는 그 말을 하고는 장지문을 닫기 위해 손을 뻗었다.
탁.
닫히는 문을 급하게 가로막는 송찬의 손. 담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죠?”
“부탁이네.”
“저는 일을 하면서 돈도 안 받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원행까지 가야한다고요?”
염치라는 걸 그래도 아는 것인지, 송찬의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담천우도 까짓 거 갔다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귀찮았다.
그리고 원행을 나가면 아무래도 무공을 수련하는 데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도 무공을 수련할 수 있지만, 나가면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
방문이 닫히기 직전, 어지간히 다급했는지 송찬은 아예 몸으로 문을 막아 세웠다.
“이거… 놓으시죠?”
“이보게. 이번에는 상단주님도 같이 가실 거라네.”
“……누구요?”
“상단주님이 원행에 가신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송찬의 음성에 담천우의 평온했던 얼굴이 바스러졌다.
제길,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심상공간에서 충현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짝 짜증이 난 담천우가 물었다.
“송 상단주가 왜 가시는 거죠? 보통은 장거리 원행은 표국에 맡기지 않나요?”
“그게 안 되니까 하는 말일세.”
“널린 게 표국인데, 왜 안 된다는 것죠?”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네. 표국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어서 말일세.”
“흐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요.”
이문이 남는 일이라면 웬만한 표국은 다 달라붙을 텐데…….
담천우는 문득 전에 송형욱과 도 선주가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진짜 상단이 망해가는 거예요? 그래서 표국들이 거부하는 거고?”
“그, 그게…….”
맞네. 망해가네.
담천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단 최고수는 이류무사에, 상단은 망하기 일보직전.
평온은 개뿔.
“그래도 이번 원행만 성공한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네. 아니, 반드시 나아지네. 그래서 사활을 걸고서 하는 거란 말일세.”
“휴우… 꼭 상단주도 가야 한데요?”
“우리도 말리고자 했지만, 이번 원행만큼은 반드시 가시겠다고 하시니……. 워낙에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기도 하시고.”
‘제기랄.’
듣고 보니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귀에 딱지가 앉겠다.
그래도 일단 상황은 알아봐야겠지.
상단주가 안 가는 게 최선이기는 한데.
“알겠습니다. 일단 동행하는 걸로 생각해 볼게요. 저한테 뭘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 고맙네.”
송찬의 얼굴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걸 보고 있자니, 담천우는 살짝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이자가 툴툴댄 것도 생각해보면 다 상단을 위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상단이 왜 이렇게 어려워요? 아, 궁금한 건 아닌데… 아니, 궁금해 할 사람이 있기는 하네요.”
“휴우……. 그건 얘기하자면 기네.”
말도 하기 전에 한숨부터 토해놓는 송찬이었다.
담천우는 반응을 보고 괜히 얘기를 꺼냈나 싶었다.
다른 마음은 없었고, 충현이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꺼내본 것뿐인데, 이런 반응일 줄이야.
“과거에는 송가상단이라고 하면 알아줬었네. 오십 년 전만해도 말이지.”
“……서두는 좀 짧게 부탁드릴게요.”
“커험. 아무튼, 원래 송가상단은 삼한 지역과의 중계무역으로 흥했었네. 그때만 해도 호위무사가 기백은 넘어갔었지.”
담천우의 심드렁한 반응에, 열변을 토해내던 송찬은 다소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그 성세는 다 어디로 가고 십여 년 전부터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네.”
“아, 그럼 망하기 시작한 게 최근은 아니었네요. 십 년 전부터 서서히 망해간 거구나.”
“그, 그렇네.”
어지간히 무안했던지 송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상단의 성세가 기울어진 것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번 일로 반전의 기회를 삼겠다는 거네요.”
“바로 그렇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상단주가 외지인인 자네를 구해오니, 나로서는 신경이 더욱 쓰였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상단주가 옳았지. 옹졸했던 나를 용서해 주게.”
“뭐 괜찮아요. 착해진 제가 참아야죠. 그리 신경 쓰이지도 않았어요.”
“……고, 고맙네.”
고맙다는 말과는 달리 송찬은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이상해서 담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충현의 질책하는 음성이 뒤따랐다.
[본인이 본인보고 착하다는 사람이 어디 있냐?]
‘왜! 예전에 비해서 많이 착해졌잖아.’
“그런데 상단주님은 어디 있죠? 제가 한번 만나봐야겠어요.”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천우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그것은 짧았던 휴식을 고하는 종언이었다.
* * *
“상단주님, 저 송찬입니다.”
“아, 대행수님. 들어오세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담천우는 송찬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송린은 꽤나 업무에 열정적인 유형인 듯했다.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연신 뭔가를 쓰기에 바빴다.
그 탓에 송찬과 담천우는 아무 말도 없이 멀뚱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송찬은 그게 익숙한 듯 표정이 담담했다.
‘그나저나 방이 좀 휑한데.’
담천우는 그 사이 방안을 쭉 훑어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휑해도 너무 휑했다.
전에 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건 아녀자의 방이 아니라 그냥 서생의 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래. 그렇게 하나하나씩 시작하는 거다. 호위라는 건 대상자의 습관이나 생활양식도 신경을 써야 하지.]
‘무슨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헛물을 켜는 충현의 말에 담천우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 업무를 마치고 고개를 든 송린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 천 공자도 같이 오셨군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에요. 죄송해요. 전표를 계산할 때는 중간에 끊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서……. 송찬 대행수님은 그런 걸 잘 아시기 때문에…….”
“…….”
“호호, 이해가 안 되시죠?”
“네, 뭐…….”
담천우는 고개를 성의 없이 주억거렸다.
그의 태도를 송린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여전히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두 분께서는 어인 일로 오셨나요?”
“송찬 대행수님께 들으니, 원행을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네, 들으셨군요.”
“꼭 가셔야만 하나요?”
내심 다른 말을 기대했던 송찬 대행수는 담천우를 노려보았다.
“어마. 지금 저를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정작 송린은 꽤나 감격한 얼굴이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담천우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물론 정답은, 무공 수련을 위한 중요한 시기라서 원행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네,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 먼 원행에 가신다니 밤잠을 이룰 수가 없네요.”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해요. 하지만 이번 원행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꼭 동행해야 돼요.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살짝 감격에 젖은 송린의 반응과는 달리 담천우는 크게 실망했다.
이런 반응이라면 마음을 돌리기란 어렵겠지.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담천우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네에? 천 공자님이 왜요?”
“그러게요.”
“크흠. 상단주님, 천 공자가 나름 무에 조예가 깊은 듯하니, 같이 한다면 필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열정을 보아서 허락해 주시지요.”
담천우는 굳이 안 해도 될 말까지 하는 송찬을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았다.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린을 설득하려는 송찬의 태도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아니 될 말이에요.”
담천우는 저도 모르게 송린을 빤히 바라봤다.
그만큼 그녀의 말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의외로 그녀는 강경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상단주님!”
“대행수님! 이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요. 아시잖아요. 여정이 긴 원행이라는 걸. 사경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분께는 절대 무리에요. 천 공자님, 우리 대행수님께서 상단이 걱정되는 마음에 괜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셔요.”
“상단주님! 아니, 아가씨! 지금 우리들의 입장이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행수님, 이건 도리에 맞지 않아요. 다음이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절대 안돼요. 천 공자님, 저는 원행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담천우의 입가에는 살짝 놀라움의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단주는 상단주였다.
매사 끌려 다니는 모습이 무르다 못해 연두부같은 인상이었는데, 결단할 때는 아주 강단이 있었다.
“무인으로서 참여하는 건 안 된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까?”
“예, 당연합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네요. 잘 알겠습니다.”
담천우는 실망에 젖은 송찬을 내버려 둔 채 장지문을 닫고 나왔다.
[정말 안 갈 거냐?]
나오자마자 충현이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안 갈 수가 없게 만드네.”
담천우는 굳게 닫힌 상단주실의 문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