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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조그마한 상단에도 일은 벌어진다(3)
(3)
쉬이이익.
마치 벚꽃이 떨어지듯 무수히 흩날리는 나뭇잎.
그 개수가 한두 개도 아닌 수십여 개였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뻗어진 팔이 그 나뭇잎들을 잘게 쪼개 버렸다.
파사사삭.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가 되어버린 나뭇잎들.
쿠웅.
이번에는 북소리 같은 강한 진각이 대지를 울렸다.
한 치나 될 법한 족적이 암석을 뚫고 파고들었다.
발끝에서 시작된 추진력이 이십여 차례의 연환각으로 펼쳐졌다.
파바바방.
공중에서 빛살처럼 뻗어졌던 철각이 백년은 족히 묵은 나무둥치에 틀어박혔다.
파아앙.
단 한 방.
그 굵고 수령이 깊은 나무가 힘없이 쓰러지는 데에는 단 한 방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사아아악.
이번에는 바람처럼 그리고 갈대처럼 소리 없이 은밀하게 다가갔다.
강하게 뻗어진 일격.
기이한 각도와 방향에서 제각각 뿜어져 나오는 수영 속에는 은밀하고 강력한 한 방이 숨어져 있었다.
그 수영이 암석에 닿는 순간, 촘촘하게 송곳 모양으로 움푹움푹 파여졌다.
드디어 한바탕 끝을 낸 천무무극권의 시연.
두드드득.
담천우가 암석에서 손을 빼내자, 바위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제야 감을 좀 잡겠네.”
담천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기에, 그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불과 삼일 만에 자신의 것으로 어느 정도 체화할 수 있었다.
“창의천무신류. 알면 알수록 무서운 무공이란 말이지.”
내공의 힘을 빌리지 않았음에도 두터운 암석조차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극강의 외력.
신체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해주고 신체구조를 천잠사처럼 질기게 해주는 강력함.
그것뿐인가. 폭혈을 다스리는 절대력은 그 어떤 자와도 맞설 수 있는 강력함을 선사해 줄 터였다.
“한 김에 폭혈까지 써봐?”
방금 전까지의 일격이 내공을 일절 쓰지 않고 온전히 외공만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궁금할 수밖에.
과연 폭혈은 어떤 느낌일까.
구그그긍.
잠시 후, 그의 몸 안의 폭혈이 개혈되었고, 그러자 몸 안에서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강한 진력이 느껴졌다.
아!
희열.
그것은 신세계였다.
쿠르르르.
전격이라는 표현을 해야 맞을까.
담천우의 손에서 뻗어졌지만, 눈이 못 따라갈 만큼의 진력이 가공할 정도의 속도로 폭발했다.
콰아아앙!
시공간을 압축시킨 것 같은 굉음.
담천우는 귓불이 떨어질 것처럼 얼얼했다.
투투투툭.
화강암에서 떨어져 나온 자잘한 알갱이들이 공중으로 비산했다가 땅에 닿는 모습은 마치 새하얀 눈꽃을 연상케 했다.
쉐에엑.
이번에는 암기술.
손 안에 쥐어진 나뭇가지 하나가 빛살처럼 날아가 순식간에 암석을 파고들었다.
파바밧.
그것이 마치 무른 두부라도 된 듯이 두터운 암석을 무려 세 치나 파고들어갔다.
암천비도술.
이것은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이 아니라 충현이 군문에 들어가서 접한 군문의 무공을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고친 것이었는데, 이것이 담천우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뭐랄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효율성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자면, 꽤나 많은 마교 무공을 익혔던 그로서도 대체재를 찾지 못할 만큼 범용성이 넓은 무공이었다.
게다가 더욱 좋은 것은, 폭혈과 어우러지니 더할 나위 없이 효율이 높다는 것.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데?”
사실 처음 의도와는 조금 다른 결과이기는 했다.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을 체화하면 본래 익혔던 마교의 무공도 다시 한번 재정립하려고 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에 정신이 팔려 버리는 바람에 마교의 무공은 손도 대지 못했다.
순수한 외공만으로도 일류 고수는 너끈하고, 천무심결의 일단공까지 해공하면 절정의 극에 달한 무인까지도 어떻게 할 것 같았다
거기다가 마교의 최고수로 군림했던 내공과 경험을 더한다면…….
담천우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번 생은 꽤나 기대가 되었다.
꽃길만 가도 되겠는데?
부르르르.
……아! 이 녀석만 없다면.
삼일 내내 채근해 대는 충현이놈 때문에 담천우는 아주 신경쇠약에 걸리는 줄 알았다.
“슬슬 내려가야겠네.”
안 그래도 이제는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담천우의 시선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산 끝자락에 송가상단이 있는 회음현이 걸렸다.
기다리고 있으려나? 별일은 없겠지?
제기랄!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면 역시 영혼이 너무 많이 오염되었어.
부르르. 다시 시작되는 충현의 재촉.
“알았다, 알았어.”
회음현으로 향하는 담천우의 발 끝에 힘이 실렸다.
다시 무료함으로 돌아가는 심정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나쁘지는 않았다.
역시 너무도 많이 오염되었어…….
* * *
송가상단 상단주의 집무실.
“오늘로 삼 일째로군요.”
“상단주님, 기대하지 마세요. 나타날 놈이었으면 진즉에 나타났겠죠. 그놈도 송형욱이처럼 야반도주를 한 겁니다.”
“또 그 말씀이세요? 방 안에 써놓은 편지를 보셨잖아요.”
편지라는 말에 주춤 했던 송찬은 그러나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저는 차라리 사라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놈, 뭔가 좀 꺼림칙해서요.”
“꺼림칙하다고요?”
“네에. 삼 일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도 선주한테 그놈이 뭔가를 단단히 한 것 같단 말입니다. 도 선주가 보통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쩔쩔매던 거 하며…….”
“혹시 무림인이 아닐까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천우라는 놈의 외양은 너무 비리비리하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그렇죠. 우리 상단의 무사들을 보십시오. 죄다 체구가 건장하지 않습니까?”
“흐으음…….”
“상단주님, 대행수님. 천우라는 자가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때, 외랑채의 일을 맡아보고 있는 행수 고량의 말이 문밖에서 들려왔다.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송린과 송찬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송찬은 당황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 자가?”
송린은 그 모습을 보며 거보라는 듯 슬쩍 미소를 흘렸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미닫이문이 드르륵하고 열렸다.
그리고 한 사내가 그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송린과 송찬의 입은 너나할 것 없이 크게 벌어졌다.
“아, 아니 자, 자네…….”
평소 천우를 무시했던 마음이 컸던 만큼, 반향의 크기 역시도 송찬 쪽이 훨씬 컸다.
시체처럼 파리한 안색에 키만 크고 바짝 말라서 동정심까지 일게 했던 약골청년은 어디 가고, 각진 어깨와 잔근육이 덧붙여진 골격이 그 나이또래의 무사처럼 보일 정도로 건장했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기에 아직까지는 낯빛이 창백했다.
그런데 여인이라고 할 만큼 미려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지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가녀린 얼굴선은 마치 여자처럼 섬세했으며, 긴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질끈 동여맨 모습은 귀족가의 자제처럼 품위가 있었다.
게다가 초췌했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살도 적당히 올라와 있었으니, 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다만 눈이 조금 날카로워서 그나마 단점이라고 할 만했지만, 그 점이 남성성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매파들이 보면 한 번쯤은 사주단자를 청할 만한 미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뭐… 왔다고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자, 자네가 정말… 커험, 그 천우… 라는 사람이 맞는가?”
“여태까지 봐놓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랍니까?”
경어와는 달리 여전히 특유의 껄렁껄렁함이 묻어 있었지만, 송찬은 전처럼 반발을 하지 못했다.
어쩐지 훤히 드러난 얼굴에 왠지 모를 위압감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송린은 살짝 놀란 듯했으나, 담담히 웃어보였다.
담천우는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닥해 보였다.
“어쩌다 보니 길게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미안해… 알았어. 미안합니다.”
담천우는 두 손을 모으려고 노력하는 충현을 제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 중이었다.
사실 여기도 찾아오기 싫었는데,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둥 충현 놈이 지랄을 해대서 한 번 와본 것이었다.
얼굴이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정직하게 얘기나 하던가.
“자, 자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어디 있나!”
“편지 써 놨잖아요.”
“그래도 사람이 얘기는 하고 가야지.”
“그렇게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무…….”
송찬은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어른 체면이 있지 무서워했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때, 송린이 낯빛을 굳히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무공을 익히셨나요?”
“익혔습니다.”
“얼마나요?”
“스스로 원하는 사람의 목을 딸 수 있을 만큼은 익혔습니다.”
“천 공자님, 저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건데요.”
“저도 충분히 진지한데요.”
송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그럼 천 공자님이 원하시는 일을 말씀해 보세요. 유능하신 분을 쟁자수로 두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요.”
“흐음.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습니다.”
“진심이세요?”
“네, 진심으로요.”
“후우… 알겠어요. 일단 나가 보세요.”
축객령이 떨어지고 천우가 사라진 뒤.
송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혹시 생각보다는 무공이 별로여서가 아닐까요?”
“글쎄요.”
송린은 그리 말하며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마를 매만졌다.
* * *
담천우가 깨어난 지 열 아흐레째.
여전히 송형욱을 비롯한 쟁자수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물론 지금쯤은 장강 어디선가 어엿한 뱃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그 빈자리를 탓하지 않았다.
쟁자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담천우가 일을 잘해줬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는 편하네.”
담천우 역시도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원래도 일이 단순한데다가 사람들의 시선도 받지 않고 있었으니까.
표국이었다면 쟁자수가 원행도 같이 나가고 일이 많았을 텐데, 여기는 쟁자수라기보다는 그냥 잡부였다.
그것도 구멍가게만한 상단의 잡부.
그러다보니 물동량은 저번의 미곡 건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고, 그저 소량의 상품 입출고가 있을 때에만 날라 주면 그만이었다.
오죽하면 담천우 스스로조차도 오 년이 아니라 십 년 동안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만큼 직업 만족도가 높은 직종이었다. 쟁자수라는 건.
담천우는 이런 자신이 대견해서 충현에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나도 내가 이렇게 경어를 잘 쓸 줄은 몰랐다.”
[미친놈. 경어만 쓰며 다냐? 여전히 행동하는 걸 보면 반미치광이잖아.]
“미치광이라니! 나처럼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쟁자수가 어디 있다고.”
[……상단에 쟁자수라고는 너 하나뿐이잖아.]
응, 그러니까.
요사이 송찬은 아예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러게 협박을 왜 해?]
“밤눈 어두울까봐 걱정해준 거잖아. 밤길 조심하라고.”
친히 경어까지 써줬는데.
담천우는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가지고 도망가던 송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무공은?]
“진척이 좀 더뎌. 지금까지가 희한하게 빨랐던 거지.”
천무심결로 뚫어낸 중단혈은 조금 더 혈류의 흐름이 원활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멀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마도무공인 천일령원기공의 성취는 여전히 빠른 편이었다. 어느새 칠십년 수위로 다가가고 있는 느낌.
하지만 이제 체내에 남아있는 여력이 없었기에 가속도는 조금 정체된 듯했다.
[그리고 공주님의 호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돼.]
“공주님이 아니고, 이제야 이십이 갓 넘은 꼬마 아가씨라고. 아무튼 다 보고 있으니까 걱정 하지 마라. 여기가 무슨 전장도 아니고, 참나.”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돼. 특히 저번처럼 삼 일씩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절대 안 되고.]
“알았다고. 별 미친 영혼 하나를 잘못 만나서 시집살이 아주 오지게 하고 있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잔소리를 해대는 충현을 피해 담천우가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데, 문득 누군가와 시선이 맞닿았다.
“응?”
찌릿찌릿한 적의.
살갗까지 따갑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보통 적의가 아닌데…….
뭐야, 저놈은?
한 이십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그런대로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입꼬리가 얇아서 신경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렇게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날 노려보지?
담천우는 때마침 저만치서 지나가고 있던 송찬을 붙잡았다.
송찬은 담천우를 보고는 기함을 했다.
“아이 깜짝이야! 왜, 왜 그러는가?”
“누가 잡아먹어요?”
“아, 아니 그러니까 말일세.”
“아유, 괜찮아요.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니에요.”
뭐, 아주 나쁜 놈에서 조금 덜 나쁜 놈이 된 거기는 하지만.
담천우는 그래서 친근하게 웃어보였다.
젠장, 그러니까 더 겁을 먹네.
“그나저나 저기 인상 더러운 놈은 누굽니까?”
“……응? 인상은 자네가 더 더러운데?”
“쓰읍. 밤길 요새 괜찮아요?”
“아, 아니네. 자네는 잘생긴 거지. 하하하하, 저기 저 사람이 궁금하다고 했지? 저 사람은 우리 상단의 호위무사이자 총괄경호를 맡고 있는 일조장 기환이라고 하네.”
“아… 그래요?”
담천우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어찌되었든 상단 사람인데, 나를 저렇게 적대할 일이 있나?
다행히 고개를 틀어서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기환.
송찬은 그가 들리지 않게끔 담천우에게 속삭였다.
“자네도 조심하게. 자네도 나름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는 했지만, 기환 조장은 무서운 무공을 익히고 있거든.”
담천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저게 상단의 최고수는 아니겠지요?”
“최고수라네.”
큰일 났다.
담천우는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세상에, 상단의 최고수라는 놈이 고작 이류라니.
여기는 전장보다도 더 위험한 곳이었다.
(3)
쉬이이익.
마치 벚꽃이 떨어지듯 무수히 흩날리는 나뭇잎.
그 개수가 한두 개도 아닌 수십여 개였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뻗어진 팔이 그 나뭇잎들을 잘게 쪼개 버렸다.
파사사삭.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가 되어버린 나뭇잎들.
쿠웅.
이번에는 북소리 같은 강한 진각이 대지를 울렸다.
한 치나 될 법한 족적이 암석을 뚫고 파고들었다.
발끝에서 시작된 추진력이 이십여 차례의 연환각으로 펼쳐졌다.
파바바방.
공중에서 빛살처럼 뻗어졌던 철각이 백년은 족히 묵은 나무둥치에 틀어박혔다.
파아앙.
단 한 방.
그 굵고 수령이 깊은 나무가 힘없이 쓰러지는 데에는 단 한 방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사아아악.
이번에는 바람처럼 그리고 갈대처럼 소리 없이 은밀하게 다가갔다.
강하게 뻗어진 일격.
기이한 각도와 방향에서 제각각 뿜어져 나오는 수영 속에는 은밀하고 강력한 한 방이 숨어져 있었다.
그 수영이 암석에 닿는 순간, 촘촘하게 송곳 모양으로 움푹움푹 파여졌다.
드디어 한바탕 끝을 낸 천무무극권의 시연.
두드드득.
담천우가 암석에서 손을 빼내자, 바위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제야 감을 좀 잡겠네.”
담천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기에, 그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불과 삼일 만에 자신의 것으로 어느 정도 체화할 수 있었다.
“창의천무신류. 알면 알수록 무서운 무공이란 말이지.”
내공의 힘을 빌리지 않았음에도 두터운 암석조차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극강의 외력.
신체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해주고 신체구조를 천잠사처럼 질기게 해주는 강력함.
그것뿐인가. 폭혈을 다스리는 절대력은 그 어떤 자와도 맞설 수 있는 강력함을 선사해 줄 터였다.
“한 김에 폭혈까지 써봐?”
방금 전까지의 일격이 내공을 일절 쓰지 않고 온전히 외공만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궁금할 수밖에.
과연 폭혈은 어떤 느낌일까.
구그그긍.
잠시 후, 그의 몸 안의 폭혈이 개혈되었고, 그러자 몸 안에서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강한 진력이 느껴졌다.
아!
희열.
그것은 신세계였다.
쿠르르르.
전격이라는 표현을 해야 맞을까.
담천우의 손에서 뻗어졌지만, 눈이 못 따라갈 만큼의 진력이 가공할 정도의 속도로 폭발했다.
콰아아앙!
시공간을 압축시킨 것 같은 굉음.
담천우는 귓불이 떨어질 것처럼 얼얼했다.
투투투툭.
화강암에서 떨어져 나온 자잘한 알갱이들이 공중으로 비산했다가 땅에 닿는 모습은 마치 새하얀 눈꽃을 연상케 했다.
쉐에엑.
이번에는 암기술.
손 안에 쥐어진 나뭇가지 하나가 빛살처럼 날아가 순식간에 암석을 파고들었다.
파바밧.
그것이 마치 무른 두부라도 된 듯이 두터운 암석을 무려 세 치나 파고들어갔다.
암천비도술.
이것은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이 아니라 충현이 군문에 들어가서 접한 군문의 무공을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고친 것이었는데, 이것이 담천우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뭐랄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효율성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자면, 꽤나 많은 마교 무공을 익혔던 그로서도 대체재를 찾지 못할 만큼 범용성이 넓은 무공이었다.
게다가 더욱 좋은 것은, 폭혈과 어우러지니 더할 나위 없이 효율이 높다는 것.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데?”
사실 처음 의도와는 조금 다른 결과이기는 했다.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을 체화하면 본래 익혔던 마교의 무공도 다시 한번 재정립하려고 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에 정신이 팔려 버리는 바람에 마교의 무공은 손도 대지 못했다.
순수한 외공만으로도 일류 고수는 너끈하고, 천무심결의 일단공까지 해공하면 절정의 극에 달한 무인까지도 어떻게 할 것 같았다
거기다가 마교의 최고수로 군림했던 내공과 경험을 더한다면…….
담천우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번 생은 꽤나 기대가 되었다.
꽃길만 가도 되겠는데?
부르르르.
……아! 이 녀석만 없다면.
삼일 내내 채근해 대는 충현이놈 때문에 담천우는 아주 신경쇠약에 걸리는 줄 알았다.
“슬슬 내려가야겠네.”
안 그래도 이제는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담천우의 시선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산 끝자락에 송가상단이 있는 회음현이 걸렸다.
기다리고 있으려나? 별일은 없겠지?
제기랄!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면 역시 영혼이 너무 많이 오염되었어.
부르르. 다시 시작되는 충현의 재촉.
“알았다, 알았어.”
회음현으로 향하는 담천우의 발 끝에 힘이 실렸다.
다시 무료함으로 돌아가는 심정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나쁘지는 않았다.
역시 너무도 많이 오염되었어…….
* * *
송가상단 상단주의 집무실.
“오늘로 삼 일째로군요.”
“상단주님, 기대하지 마세요. 나타날 놈이었으면 진즉에 나타났겠죠. 그놈도 송형욱이처럼 야반도주를 한 겁니다.”
“또 그 말씀이세요? 방 안에 써놓은 편지를 보셨잖아요.”
편지라는 말에 주춤 했던 송찬은 그러나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저는 차라리 사라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놈, 뭔가 좀 꺼림칙해서요.”
“꺼림칙하다고요?”
“네에. 삼 일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도 선주한테 그놈이 뭔가를 단단히 한 것 같단 말입니다. 도 선주가 보통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쩔쩔매던 거 하며…….”
“혹시 무림인이 아닐까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천우라는 놈의 외양은 너무 비리비리하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그렇죠. 우리 상단의 무사들을 보십시오. 죄다 체구가 건장하지 않습니까?”
“흐으음…….”
“상단주님, 대행수님. 천우라는 자가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때, 외랑채의 일을 맡아보고 있는 행수 고량의 말이 문밖에서 들려왔다.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송린과 송찬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송찬은 당황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 자가?”
송린은 그 모습을 보며 거보라는 듯 슬쩍 미소를 흘렸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미닫이문이 드르륵하고 열렸다.
그리고 한 사내가 그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송린과 송찬의 입은 너나할 것 없이 크게 벌어졌다.
“아, 아니 자, 자네…….”
평소 천우를 무시했던 마음이 컸던 만큼, 반향의 크기 역시도 송찬 쪽이 훨씬 컸다.
시체처럼 파리한 안색에 키만 크고 바짝 말라서 동정심까지 일게 했던 약골청년은 어디 가고, 각진 어깨와 잔근육이 덧붙여진 골격이 그 나이또래의 무사처럼 보일 정도로 건장했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기에 아직까지는 낯빛이 창백했다.
그런데 여인이라고 할 만큼 미려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지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가녀린 얼굴선은 마치 여자처럼 섬세했으며, 긴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질끈 동여맨 모습은 귀족가의 자제처럼 품위가 있었다.
게다가 초췌했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살도 적당히 올라와 있었으니, 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다만 눈이 조금 날카로워서 그나마 단점이라고 할 만했지만, 그 점이 남성성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매파들이 보면 한 번쯤은 사주단자를 청할 만한 미남자가 거기에 있었다.
“뭐… 왔다고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자, 자네가 정말… 커험, 그 천우… 라는 사람이 맞는가?”
“여태까지 봐놓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랍니까?”
경어와는 달리 여전히 특유의 껄렁껄렁함이 묻어 있었지만, 송찬은 전처럼 반발을 하지 못했다.
어쩐지 훤히 드러난 얼굴에 왠지 모를 위압감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송린은 살짝 놀란 듯했으나, 담담히 웃어보였다.
담천우는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닥해 보였다.
“어쩌다 보니 길게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미안해… 알았어. 미안합니다.”
담천우는 두 손을 모으려고 노력하는 충현을 제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 중이었다.
사실 여기도 찾아오기 싫었는데,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둥 충현 놈이 지랄을 해대서 한 번 와본 것이었다.
얼굴이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정직하게 얘기나 하던가.
“자, 자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어디 있나!”
“편지 써 놨잖아요.”
“그래도 사람이 얘기는 하고 가야지.”
“그렇게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무…….”
송찬은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어른 체면이 있지 무서워했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때, 송린이 낯빛을 굳히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무공을 익히셨나요?”
“익혔습니다.”
“얼마나요?”
“스스로 원하는 사람의 목을 딸 수 있을 만큼은 익혔습니다.”
“천 공자님, 저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건데요.”
“저도 충분히 진지한데요.”
송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그럼 천 공자님이 원하시는 일을 말씀해 보세요. 유능하신 분을 쟁자수로 두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요.”
“흐음.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습니다.”
“진심이세요?”
“네, 진심으로요.”
“후우… 알겠어요. 일단 나가 보세요.”
축객령이 떨어지고 천우가 사라진 뒤.
송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혹시 생각보다는 무공이 별로여서가 아닐까요?”
“글쎄요.”
송린은 그리 말하며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마를 매만졌다.
* * *
담천우가 깨어난 지 열 아흐레째.
여전히 송형욱을 비롯한 쟁자수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물론 지금쯤은 장강 어디선가 어엿한 뱃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그 빈자리를 탓하지 않았다.
쟁자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담천우가 일을 잘해줬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는 편하네.”
담천우 역시도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원래도 일이 단순한데다가 사람들의 시선도 받지 않고 있었으니까.
표국이었다면 쟁자수가 원행도 같이 나가고 일이 많았을 텐데, 여기는 쟁자수라기보다는 그냥 잡부였다.
그것도 구멍가게만한 상단의 잡부.
그러다보니 물동량은 저번의 미곡 건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고, 그저 소량의 상품 입출고가 있을 때에만 날라 주면 그만이었다.
오죽하면 담천우 스스로조차도 오 년이 아니라 십 년 동안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만큼 직업 만족도가 높은 직종이었다. 쟁자수라는 건.
담천우는 이런 자신이 대견해서 충현에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나도 내가 이렇게 경어를 잘 쓸 줄은 몰랐다.”
[미친놈. 경어만 쓰며 다냐? 여전히 행동하는 걸 보면 반미치광이잖아.]
“미치광이라니! 나처럼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쟁자수가 어디 있다고.”
[……상단에 쟁자수라고는 너 하나뿐이잖아.]
응, 그러니까.
요사이 송찬은 아예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러게 협박을 왜 해?]
“밤눈 어두울까봐 걱정해준 거잖아. 밤길 조심하라고.”
친히 경어까지 써줬는데.
담천우는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가지고 도망가던 송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무공은?]
“진척이 좀 더뎌. 지금까지가 희한하게 빨랐던 거지.”
천무심결로 뚫어낸 중단혈은 조금 더 혈류의 흐름이 원활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멀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마도무공인 천일령원기공의 성취는 여전히 빠른 편이었다. 어느새 칠십년 수위로 다가가고 있는 느낌.
하지만 이제 체내에 남아있는 여력이 없었기에 가속도는 조금 정체된 듯했다.
[그리고 공주님의 호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돼.]
“공주님이 아니고, 이제야 이십이 갓 넘은 꼬마 아가씨라고. 아무튼 다 보고 있으니까 걱정 하지 마라. 여기가 무슨 전장도 아니고, 참나.”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돼. 특히 저번처럼 삼 일씩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절대 안 되고.]
“알았다고. 별 미친 영혼 하나를 잘못 만나서 시집살이 아주 오지게 하고 있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잔소리를 해대는 충현을 피해 담천우가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데, 문득 누군가와 시선이 맞닿았다.
“응?”
찌릿찌릿한 적의.
살갗까지 따갑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보통 적의가 아닌데…….
뭐야, 저놈은?
한 이십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그런대로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입꼬리가 얇아서 신경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렇게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날 노려보지?
담천우는 때마침 저만치서 지나가고 있던 송찬을 붙잡았다.
송찬은 담천우를 보고는 기함을 했다.
“아이 깜짝이야! 왜, 왜 그러는가?”
“누가 잡아먹어요?”
“아, 아니 그러니까 말일세.”
“아유, 괜찮아요.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니에요.”
뭐, 아주 나쁜 놈에서 조금 덜 나쁜 놈이 된 거기는 하지만.
담천우는 그래서 친근하게 웃어보였다.
젠장, 그러니까 더 겁을 먹네.
“그나저나 저기 인상 더러운 놈은 누굽니까?”
“……응? 인상은 자네가 더 더러운데?”
“쓰읍. 밤길 요새 괜찮아요?”
“아, 아니네. 자네는 잘생긴 거지. 하하하하, 저기 저 사람이 궁금하다고 했지? 저 사람은 우리 상단의 호위무사이자 총괄경호를 맡고 있는 일조장 기환이라고 하네.”
“아… 그래요?”
담천우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어찌되었든 상단 사람인데, 나를 저렇게 적대할 일이 있나?
다행히 고개를 틀어서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기환.
송찬은 그가 들리지 않게끔 담천우에게 속삭였다.
“자네도 조심하게. 자네도 나름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는 했지만, 기환 조장은 무서운 무공을 익히고 있거든.”
담천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저게 상단의 최고수는 아니겠지요?”
“최고수라네.”
큰일 났다.
담천우는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세상에, 상단의 최고수라는 놈이 고작 이류라니.
여기는 전장보다도 더 위험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