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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조그마한 상단에도 일은 벌어진다(2)
(2)
“죄송하오. 너무 늦… 었지……?”
헐레벌떡 뛰어오던 송찬은 순간 할 말을 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좋지 못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르던 십여 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송찬은 급한 대로 행수와 무사들을 설득해서 같이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냐는 듯한 그런 불만들이 가득 했다.
그러나…….
“……도 선주, 거기서 뭐하시오?”
송찬이 정작 목격한 것은 눈빛이 시뻘개져서 미곡을 미친 듯이 나르고 있는 도 선주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송 대행수, 나 정말 열심히 하고 있소. 그러니 제, 제발 저 귀신을…….”
“귀신? 누구 말이오? 설마 저기 저놈?”
송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담천우를 가리켰다.
“저, 저분께서…….”
도 선주는 감히 담천우는 쳐다보지도 못한 채 벌벌 떨었다.
왜 저래? 나는 지금 기분이 한껏 좋은데.
“도가야.”
“헙! 왜, 왜 그러십니까?”
“일 각이 지나가고 있다. 슬슬 손가락이 근지러워지기 시작하는구나.”
“히익!”
담천우의 말에 도 선주는 급히 돌아서서 물건을 나르는 데에만 열중했다.
“이, 이봐. 천…….”
“천우입니다.”
담천우는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송찬을 보며 혀를 찼다.
“아, 그래. 이봐, 천우. 아니 도 선주가 왜 저러는 건가? 왜 우리 물건들을 날라주고 있느냐고.”
“자발적으로 하신 다네요. 뭐 좋은 일이죠.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되고.”
“제, 제발 가만히 계십시오.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손가락 얘기에 도 선주와 부하들은 벌벌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 각이 지날 때마다 사람을 때려 죽여서 바닷가에 던진 무지막지한 놈이 바로 담천우였다.
지금까지 무려 다섯 놈이나.
“아, 아니 도 선주. 이러고 나서 웃돈을 받으려는 거 아니오?”
“아! 대행수님, 제가 아까는 실수를 했습니다. 제발 말 걸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십시오.”
“그, 그래도 이건 도리가 아니라서 같이…….”
“제발요. 제발 부탁입니다.”
도 선주는 이제 사정사정을 했다.
그의 눈에 대행수는 이미 어리바리한 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가증스럽게 의뭉을 떨고 있는 대마귀.
“이 짓도 이제는 귀찮아지네요.”
담천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 선주는 기함을 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지,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 수레에다가 실어드릴까요?”
“그래 주면 좋고요.”
담천우의 말이 마치 하늘의 계시라도 된 듯 황송해 하며 도 선주는 물건을 날랐다.
워낙에 힘이 좋은 선원들이라 그런지, 불과 한 시진 만에 그 많은 오천 석의 미곡이 수레에 차곡차곡 쌓였다.
“휴우, 대단하네요.”
담천우의 말이 떨어지자 도 선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단의 무사들도 불만이 사라졌다. 본연의 임무인 호송만 하면 되니까.
행수들도 힘 빼는 일 없이 물건이 제대로 들어왔는지만 확인하면 되니 만족해했다.
그때, 담천우가 도 선주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뭐를 말입니까?”
“저놈들 몸값이오.”
담천우는 한쪽 구석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송형욱 등을 은밀히 가리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는 물건을 다 나르면…….”
“닥치시구요. 손가락 들기 전에.”
“흐읍!”
담천우가 손가락 운운하자 도 선주의 입이 쏙 들어갔다.
“선원이 모자라신 것 같은데, 데려다 쓰시지요. 단, 계산은 확실히. 아까 일 년에 이백 냥씩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양심적으로 삼 년 치 계산해서 일인당 육백 냥만 받을게요.”
“그, 그런 말씀은 없으…….”
“그래서요? 어쩌라고요?”
안 도와주네. 좀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옛날 같았으면 다 죽이고, 노예선도 불태우고… 잠깐, 이건 착한 일인가?
아무튼 다 죽었다.
“아, 아닙니다. 드, 드리겠습니다.”
“생각 잘했어요.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거든요.”
도 선주는 학질이 걸린 사람처럼 손을 벌벌 떨었다.
“자, 일도 다 봤으니 서로 갈 길 가자구요.”
“이보게, 천우……. 살… 려주게.”
저 멀리서 송형욱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담천우는 못들은 척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저기 천우. 송형욱이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까 선착장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에이, 잘못 보셨겠죠. 조금 전엔 물건이 잘 들어왔는지 확인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잖아요.”
“아, 그런가? 하긴 야반도주한 놈들이 여기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송형욱은 뱃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 * *
“이봐, 쫌생이.”
상단으로 돌아온 담천우는 방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을 감고 충현을 불렀다.
사실은 잔존사념이라고 부르려다가 귀찮아서 그리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이 명칭이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었다.
“자꾸 이렇게 대답을 안 하면, 나 오 년 안 채워?”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심상공간에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념.
[……왜 그러지?]
“약조한 게 있을 텐데? 중단혈을 회복할 방법을 알고 있다며.”
담천우는 충현과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담천우가 오 년간 송가상단에 머무는 대신, 그 대가로 충현이 뭉개진 중단혈을 회복할 방도를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 의견을 제시한 담천우도 크게 기대는 안 했었다. 그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그… 도 선주라는 놈들, 관아에 처넣었어야 했다.]
그거 가지고 꽁해 있었구나.
담천우는 혀를 끌끌 찼다.
“어차피 그런 놈들이 쌔고 쌘 게 강호다. 사파 놈들이 하는 짓거리에 비하면 그 정도는 양호하지.”
[……알겠다. 하지만 상단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 이런 쪼끄만 한 상단에 문제가 있어봐야 뭐가 있겠냐만서도, 우리 충현이가 그렇게 불안하다면 한번 알아보지. 그러니 일단 중단혈 문제부터 해결 하자고.”
[알았다, 알려주지. 중단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일문의 무공을 익혀야만 한다.]
“무공? 흐음, 글쎄. 환영에서 보았던 그 무공을 익히는 거라면 별로 안 내키는데.”
솔직히 담천우는 조금 실망이었다.
환영에서 보았던 충현의 무공은 나이에 비해서는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마교의 장로급 정도였다.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겪어보는 것이 낫겠지.]
자존심이 상한 듯한 충현.
잠시 후, 굳게 닫혀있던 기억의 저편이 열리더니 생소한 무공 지식과 환상들이 담천우에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 담천우는 눈을 떴다.
“놀랍군.”
솔직히 담천우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동이족의 무공 따위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실제로 경험해본 그 무공은 경이를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환상 속에서 다시 나타난 그 무공은 충현의 것이 아니었다. 충현의 사부인 환백이 무공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전생의 나보다 위였다.”
창의천무신류.
그것은 백두대간에 있다는 문파인데, 어찌 그런 무공을 가지고도 세상에 나오지를 않았단 말인가.
오백 년간 이어온 일인전승의 문파라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기인은 많았다.
기억으로 전이된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공을 담당하고 있는 천무무극공.
동공이자 권장각을 같이 겸하고 있었기에 천무무극권이라고도 칭해지는 것이었다.
이 천무무극권의 목표는 단순했다.
강력한 외신(外身)을 만든다는 것.
그럼 이 외신은 어떻게 만드느냐.
먼저 외신삼문이라는 입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신지(神肢).
신지는 감각을 깨우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는데,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 밥도 안 먹이고 잠도 안 재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암습을 하니 사람이 거의 신경쇠약 직전까지 갔다.
그렇게 첫 번째 과정을 겨우 넘기면, 그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는 노위(蘆葦).
노위는 유함을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유연함을 갖기 위해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죄다 뽑아놓고, 사람이 취할 수 없는 각도로 움직이도록 강요했다.
후계자들은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태반이 포기하거나 반병신이 되었는데, 만약에 이 과정까지 버틴다고 하면 마지막 삼 단계인 금단(金鍛)이라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과정은 더욱더 무식했다.
뼈를 다 부러뜨린 후, 온갖 특효 약재로 만든 시약에 몸을 담근 후 그대로 굳혔다.
그렇게 뼈가 모두 굳으면 다시 부러뜨렸다.
이 과정을 수차례나 반복했다.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단단해질 때까지.
그렇게 해서 버티면 정식 입문제자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반병신이 되거나 죽었다.
괜히 일인전승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정식 입문제자가 되면, 드디어 창의천무신류의 진짜 내가기공인 천무심결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사실 천무무극공은 이 천무심결을 익히기 위한 발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천무심결이라는 것은 여타 선류 무공처럼 뜬구름 잡듯 선단 따위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강궁(심장)이 있는 혈을 단련시켜 그 폭발력으로 강력한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폭발력을 견디기 위한 육신을 만드는 게 바로 천무무극공의 역할.
여기서 폭혈공을 행했음에도 몸의 사지가 그런대로 멀쩡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놈의 몸은 그만큼 단단하고 질겼다.
그리고 드디어 중단혈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 역시도 깨달았다.
폭발은 폭(爆)의 힘으로 극복한다.
어차피 천무심결은 폭혈의 힘.
워낙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지라 중단혈이 꽉 막혀 있었지만, 그것을 작은 송곳으로 뚫듯 폭혈의 힘으로 뚫는 것이다.
담천우는 여기까지 이론상으로는 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될까?’
[된다. 천무신류의 힘은 강하다.]
충현은 담천우의 반신반의한 마음과는 달리 확신에 차있었다.
담천우야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이 강했지만 말이다.
담천우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중뢰, 심천, 일기.]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충현이 일러주는 혈자리를 꾹꾹 눌렀다.
사실 담천우는 이런 혈자리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별 효용도 없는 혈자리였다. 그런 만큼 미지를 향한 담천우의 손끝은 살짝 떨려왔다.
그그그극.
그런데 뭔가 태동이 있었다. 맷돌에 갈리는 듯한 기묘한 기음.
담천우는 흉통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꽉 막혔던 혈류가 꿈틀거리며 맥동했기에 참아내야 했다.
쿠르르르.
처음에는 미약했던 혈류가 큰 맥을 만나서 폭포를 만난 듯 흐름이 빨라졌다.
충현에게서 들었던 강궁, 그러니까 근원의 생명에 맞닿은 것이었다.
‘이것이 진원진기의 기운.’
이곳은 하단전을 주로 익히는 중원문파에서는 건드리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곳이었다.
쿵쿵! 그 생명의 힘이 파동에 따라 시반이라고 불리는 중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끄응…….”
담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입 벌리지 마라.]
‘알고 있다.’
연공 중에 입을 벌리면 진기가 흐트러진다.
알고 있음에도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건 생각했던 것보다 고통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원래 연단이란 그런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게다가 예전에도 주화입마 직전까지 갔던 적이 많아서 고통을 참아내는 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쿠쿵!
‘으윽… 제길.’
이번 것은 좀 심했다. 고통의 강도가 남달랐다.
뭔가 온몸을 쥐어 짜내는 듯한 그런 느낌.
하단전을 연공하는 과정은, 하고 나면 뭔가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건 그런 게 없었다.
‘평소에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평소에도 이 정도다. 물론 지금은 막혀있으니까 조금 고통이 더하기는 하겠지만.]
……매일 이런다고?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을 익히는 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제길!
그렇게 욕을 내뱉으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엑!
한 됫박은 되는 듯한 양의 피가 담천우의 입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기다렸던 결과이기도 했다.
한결 가슴이 편해져 있었고, 그보다…….
쿵쿵.
가슴 쪽에서 그전과는 다른 맥동이 느껴졌다.
뭐랄까, 심장의 박동소리가 두 배는 되는 듯한 기분이랄까.
“이런 기분이었군.”
과정이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결과물은 꽤나 쓸 만했다.
그만큼 몸 상태가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아예 뭉개졌었던 중단혈이 미약하게나마 뚫려있었다.
비록 그 틈이 바늘만큼 가늘기는 했지만, 일단 자리를 잡은 혈류는 점점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갈 터였다.
“그럼 이게 일단공인가?”
[그렇다. 온전한 일단공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평소에는 닫고 지내다가, 실전에서만 개혈하고 폭발시킨다라…….”
알면 알수록 참으로 독특한 무공이었다.
그 폭발력만큼은 하단전의 무공을 압도할 만큼 개세적이었다.
오죽하면 총 구단공으로 이루어진 천무심결 중에, 충현은 고작 오단공만을 이루었을 뿐인데도 전장의 무신이라고 불렸을까.
“그러고 보면 너는 참 바보 같은 놈이야.”
만약에 충현 저놈이 오단공을 넘어 팔단공까지 갔었다면, 과거의 자신에게도 필적할 만한 경지를 지녔을 터였다.
담천우는 몸이 슬슬 근지러웠다.
새로운 무공을 얻고 보니 시험해보고 싶어진 것이었다.
“안 되겠네.”
담천우는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서둘러 신형을 날렸다.
(2)
“죄송하오. 너무 늦… 었지……?”
헐레벌떡 뛰어오던 송찬은 순간 할 말을 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좋지 못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르던 십여 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송찬은 급한 대로 행수와 무사들을 설득해서 같이 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냐는 듯한 그런 불만들이 가득 했다.
그러나…….
“……도 선주, 거기서 뭐하시오?”
송찬이 정작 목격한 것은 눈빛이 시뻘개져서 미곡을 미친 듯이 나르고 있는 도 선주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송 대행수, 나 정말 열심히 하고 있소. 그러니 제, 제발 저 귀신을…….”
“귀신? 누구 말이오? 설마 저기 저놈?”
송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담천우를 가리켰다.
“저, 저분께서…….”
도 선주는 감히 담천우는 쳐다보지도 못한 채 벌벌 떨었다.
왜 저래? 나는 지금 기분이 한껏 좋은데.
“도가야.”
“헙! 왜, 왜 그러십니까?”
“일 각이 지나가고 있다. 슬슬 손가락이 근지러워지기 시작하는구나.”
“히익!”
담천우의 말에 도 선주는 급히 돌아서서 물건을 나르는 데에만 열중했다.
“이, 이봐. 천…….”
“천우입니다.”
담천우는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송찬을 보며 혀를 찼다.
“아, 그래. 이봐, 천우. 아니 도 선주가 왜 저러는 건가? 왜 우리 물건들을 날라주고 있느냐고.”
“자발적으로 하신 다네요. 뭐 좋은 일이죠.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되고.”
“제, 제발 가만히 계십시오.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손가락 얘기에 도 선주와 부하들은 벌벌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 각이 지날 때마다 사람을 때려 죽여서 바닷가에 던진 무지막지한 놈이 바로 담천우였다.
지금까지 무려 다섯 놈이나.
“아, 아니 도 선주. 이러고 나서 웃돈을 받으려는 거 아니오?”
“아! 대행수님, 제가 아까는 실수를 했습니다. 제발 말 걸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십시오.”
“그, 그래도 이건 도리가 아니라서 같이…….”
“제발요. 제발 부탁입니다.”
도 선주는 이제 사정사정을 했다.
그의 눈에 대행수는 이미 어리바리한 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가증스럽게 의뭉을 떨고 있는 대마귀.
“이 짓도 이제는 귀찮아지네요.”
담천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 선주는 기함을 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지,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 수레에다가 실어드릴까요?”
“그래 주면 좋고요.”
담천우의 말이 마치 하늘의 계시라도 된 듯 황송해 하며 도 선주는 물건을 날랐다.
워낙에 힘이 좋은 선원들이라 그런지, 불과 한 시진 만에 그 많은 오천 석의 미곡이 수레에 차곡차곡 쌓였다.
“휴우, 대단하네요.”
담천우의 말이 떨어지자 도 선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단의 무사들도 불만이 사라졌다. 본연의 임무인 호송만 하면 되니까.
행수들도 힘 빼는 일 없이 물건이 제대로 들어왔는지만 확인하면 되니 만족해했다.
그때, 담천우가 도 선주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뭐를 말입니까?”
“저놈들 몸값이오.”
담천우는 한쪽 구석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송형욱 등을 은밀히 가리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는 물건을 다 나르면…….”
“닥치시구요. 손가락 들기 전에.”
“흐읍!”
담천우가 손가락 운운하자 도 선주의 입이 쏙 들어갔다.
“선원이 모자라신 것 같은데, 데려다 쓰시지요. 단, 계산은 확실히. 아까 일 년에 이백 냥씩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양심적으로 삼 년 치 계산해서 일인당 육백 냥만 받을게요.”
“그, 그런 말씀은 없으…….”
“그래서요? 어쩌라고요?”
안 도와주네. 좀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옛날 같았으면 다 죽이고, 노예선도 불태우고… 잠깐, 이건 착한 일인가?
아무튼 다 죽었다.
“아, 아닙니다. 드, 드리겠습니다.”
“생각 잘했어요.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거든요.”
도 선주는 학질이 걸린 사람처럼 손을 벌벌 떨었다.
“자, 일도 다 봤으니 서로 갈 길 가자구요.”
“이보게, 천우……. 살… 려주게.”
저 멀리서 송형욱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담천우는 못들은 척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저기 천우. 송형욱이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까 선착장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에이, 잘못 보셨겠죠. 조금 전엔 물건이 잘 들어왔는지 확인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잖아요.”
“아, 그런가? 하긴 야반도주한 놈들이 여기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송형욱은 뱃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 * *
“이봐, 쫌생이.”
상단으로 돌아온 담천우는 방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을 감고 충현을 불렀다.
사실은 잔존사념이라고 부르려다가 귀찮아서 그리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이 명칭이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었다.
“자꾸 이렇게 대답을 안 하면, 나 오 년 안 채워?”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심상공간에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념.
[……왜 그러지?]
“약조한 게 있을 텐데? 중단혈을 회복할 방법을 알고 있다며.”
담천우는 충현과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담천우가 오 년간 송가상단에 머무는 대신, 그 대가로 충현이 뭉개진 중단혈을 회복할 방도를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 의견을 제시한 담천우도 크게 기대는 안 했었다. 그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그… 도 선주라는 놈들, 관아에 처넣었어야 했다.]
그거 가지고 꽁해 있었구나.
담천우는 혀를 끌끌 찼다.
“어차피 그런 놈들이 쌔고 쌘 게 강호다. 사파 놈들이 하는 짓거리에 비하면 그 정도는 양호하지.”
[……알겠다. 하지만 상단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 이런 쪼끄만 한 상단에 문제가 있어봐야 뭐가 있겠냐만서도, 우리 충현이가 그렇게 불안하다면 한번 알아보지. 그러니 일단 중단혈 문제부터 해결 하자고.”
[알았다, 알려주지. 중단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일문의 무공을 익혀야만 한다.]
“무공? 흐음, 글쎄. 환영에서 보았던 그 무공을 익히는 거라면 별로 안 내키는데.”
솔직히 담천우는 조금 실망이었다.
환영에서 보았던 충현의 무공은 나이에 비해서는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마교의 장로급 정도였다.
[말로 듣는 것보다는 직접 겪어보는 것이 낫겠지.]
자존심이 상한 듯한 충현.
잠시 후, 굳게 닫혀있던 기억의 저편이 열리더니 생소한 무공 지식과 환상들이 담천우에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 담천우는 눈을 떴다.
“놀랍군.”
솔직히 담천우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동이족의 무공 따위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실제로 경험해본 그 무공은 경이를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환상 속에서 다시 나타난 그 무공은 충현의 것이 아니었다. 충현의 사부인 환백이 무공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전생의 나보다 위였다.”
창의천무신류.
그것은 백두대간에 있다는 문파인데, 어찌 그런 무공을 가지고도 세상에 나오지를 않았단 말인가.
오백 년간 이어온 일인전승의 문파라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기인은 많았다.
기억으로 전이된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공을 담당하고 있는 천무무극공.
동공이자 권장각을 같이 겸하고 있었기에 천무무극권이라고도 칭해지는 것이었다.
이 천무무극권의 목표는 단순했다.
강력한 외신(外身)을 만든다는 것.
그럼 이 외신은 어떻게 만드느냐.
먼저 외신삼문이라는 입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신지(神肢).
신지는 감각을 깨우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는데,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 밥도 안 먹이고 잠도 안 재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암습을 하니 사람이 거의 신경쇠약 직전까지 갔다.
그렇게 첫 번째 과정을 겨우 넘기면, 그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는 노위(蘆葦).
노위는 유함을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유연함을 갖기 위해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죄다 뽑아놓고, 사람이 취할 수 없는 각도로 움직이도록 강요했다.
후계자들은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태반이 포기하거나 반병신이 되었는데, 만약에 이 과정까지 버틴다고 하면 마지막 삼 단계인 금단(金鍛)이라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과정은 더욱더 무식했다.
뼈를 다 부러뜨린 후, 온갖 특효 약재로 만든 시약에 몸을 담근 후 그대로 굳혔다.
그렇게 뼈가 모두 굳으면 다시 부러뜨렸다.
이 과정을 수차례나 반복했다.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단단해질 때까지.
그렇게 해서 버티면 정식 입문제자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반병신이 되거나 죽었다.
괜히 일인전승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정식 입문제자가 되면, 드디어 창의천무신류의 진짜 내가기공인 천무심결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사실 천무무극공은 이 천무심결을 익히기 위한 발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천무심결이라는 것은 여타 선류 무공처럼 뜬구름 잡듯 선단 따위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강궁(심장)이 있는 혈을 단련시켜 그 폭발력으로 강력한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폭발력을 견디기 위한 육신을 만드는 게 바로 천무무극공의 역할.
여기서 폭혈공을 행했음에도 몸의 사지가 그런대로 멀쩡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놈의 몸은 그만큼 단단하고 질겼다.
그리고 드디어 중단혈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 역시도 깨달았다.
폭발은 폭(爆)의 힘으로 극복한다.
어차피 천무심결은 폭혈의 힘.
워낙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지라 중단혈이 꽉 막혀 있었지만, 그것을 작은 송곳으로 뚫듯 폭혈의 힘으로 뚫는 것이다.
담천우는 여기까지 이론상으로는 다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될까?’
[된다. 천무신류의 힘은 강하다.]
충현은 담천우의 반신반의한 마음과는 달리 확신에 차있었다.
담천우야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이 강했지만 말이다.
담천우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중뢰, 심천, 일기.]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충현이 일러주는 혈자리를 꾹꾹 눌렀다.
사실 담천우는 이런 혈자리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별 효용도 없는 혈자리였다. 그런 만큼 미지를 향한 담천우의 손끝은 살짝 떨려왔다.
그그그극.
그런데 뭔가 태동이 있었다. 맷돌에 갈리는 듯한 기묘한 기음.
담천우는 흉통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꽉 막혔던 혈류가 꿈틀거리며 맥동했기에 참아내야 했다.
쿠르르르.
처음에는 미약했던 혈류가 큰 맥을 만나서 폭포를 만난 듯 흐름이 빨라졌다.
충현에게서 들었던 강궁, 그러니까 근원의 생명에 맞닿은 것이었다.
‘이것이 진원진기의 기운.’
이곳은 하단전을 주로 익히는 중원문파에서는 건드리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곳이었다.
쿵쿵! 그 생명의 힘이 파동에 따라 시반이라고 불리는 중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끄응…….”
담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입 벌리지 마라.]
‘알고 있다.’
연공 중에 입을 벌리면 진기가 흐트러진다.
알고 있음에도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건 생각했던 것보다 고통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원래 연단이란 그런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게다가 예전에도 주화입마 직전까지 갔던 적이 많아서 고통을 참아내는 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쿠쿵!
‘으윽… 제길.’
이번 것은 좀 심했다. 고통의 강도가 남달랐다.
뭔가 온몸을 쥐어 짜내는 듯한 그런 느낌.
하단전을 연공하는 과정은, 하고 나면 뭔가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건 그런 게 없었다.
‘평소에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평소에도 이 정도다. 물론 지금은 막혀있으니까 조금 고통이 더하기는 하겠지만.]
……매일 이런다고? 창의천무신류의 무공을 익히는 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제길!
그렇게 욕을 내뱉으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엑!
한 됫박은 되는 듯한 양의 피가 담천우의 입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기다렸던 결과이기도 했다.
한결 가슴이 편해져 있었고, 그보다…….
쿵쿵.
가슴 쪽에서 그전과는 다른 맥동이 느껴졌다.
뭐랄까, 심장의 박동소리가 두 배는 되는 듯한 기분이랄까.
“이런 기분이었군.”
과정이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결과물은 꽤나 쓸 만했다.
그만큼 몸 상태가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아예 뭉개졌었던 중단혈이 미약하게나마 뚫려있었다.
비록 그 틈이 바늘만큼 가늘기는 했지만, 일단 자리를 잡은 혈류는 점점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갈 터였다.
“그럼 이게 일단공인가?”
[그렇다. 온전한 일단공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평소에는 닫고 지내다가, 실전에서만 개혈하고 폭발시킨다라…….”
알면 알수록 참으로 독특한 무공이었다.
그 폭발력만큼은 하단전의 무공을 압도할 만큼 개세적이었다.
오죽하면 총 구단공으로 이루어진 천무심결 중에, 충현은 고작 오단공만을 이루었을 뿐인데도 전장의 무신이라고 불렸을까.
“그러고 보면 너는 참 바보 같은 놈이야.”
만약에 충현 저놈이 오단공을 넘어 팔단공까지 갔었다면, 과거의 자신에게도 필적할 만한 경지를 지녔을 터였다.
담천우는 몸이 슬슬 근지러웠다.
새로운 무공을 얻고 보니 시험해보고 싶어진 것이었다.
“안 되겠네.”
담천우는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서둘러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