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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조그마한 상단에도 일은 벌어진다(1)
(1)
“이봐, 최근에 형욱이에 대해 뭐 들은 거 있어?”
“……송형욱?”
여느 때처럼 물건을 나르고 난 후 슬슬 수련에 몰두해 볼까하고 고민하던 찰나.
담천우는 안색이 새하얘진 대행수 송찬을 돌아보았다.
적잖이 당황하는 눈빛.
그러고 보니…….
혼자서 일을 떠맡은 지 꽤나 오래 되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차라리 송형욱이란 작자가 없는 편이 일을 후딱 해치워 버리기가 쉽기도 했고.
“몰라요. 요새 통 못 봤는데요.”
“못 봤다고? 이런 젠장맞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송찬은 절규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옆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아?”
“오침할 시간이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광분하는 송찬을 향해 담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전 할당량은 다 해서요.”
“지금이 그런 상황이냐고. 사람이 없어졌잖아. 같이 일하던 사람이 없어졌으면 나한테 얘기를 했어야지.”
“지금까지 오전 내내 저 혼자서 일을 다 했는데요.”
“그러니까… 에이씨, 그러니까… 자넨 그 뭐야, 가슴팍 풀어헤친 그 꼬락서니가 뭐냐고! 단정히 해야지.”
제 성질을 못이긴 송찬은 괜한 것을 가지고 담천우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담천우는 내심 저 자식이 왜 저러지 하면서 강아지 보듯 쳐다볼 뿐이었다.
“자넨 궁금하지도 않나? 지금 우리 상단에 있던 쟁자수들이 죄다 사라졌다고!”
“……아아.”
“아아? 지금 상단에 있는 쟁자수라고는 자네 혼자뿐이야.”
어쩐지 요새 숙소가 좀 편하더라니. 독방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는 잘 때 널찍하니 편하겠네요. 저는 이만 잠을 좀 자러.”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야반도주를 했다고. 당장에 물건을 하역해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 아무도.”
방방 뛰는 꼬락서니를 보니 볼 만은 한데 귀가 따가워 죽겠네.
그나저나 송형욱 그 작자, 언젠가는 남의 뒤통수를 때릴 것 같기는 했지만 고작 야반도주라니, 좀 어울리지가 않았다. 좀 더 크게 해먹을 줄 알았는데.
“이를 어쩐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녀석밖에는 없으니, 이일을 어째…….”
……이 녀석, 파묻어 버릴까?
“거기가 어딘데요?”
“응?”
송찬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담천우는 살짝 짜증이 난 어투로 말했다.
“가보자구요. 뭐가 얼마나 왔기에 그러는지.”
젠장! 내가 너무 많이 착해졌어.
아, 옛날이 그립다. 영혼이 시꺼멓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렇게 담천우는 재생(再生)을 한 후 처음으로 상단 밖을 나섰다.
빨리 문제를 처리하고 수련을 하겠다는 일념 하에.
* * *
잠시 후, 담천우와 송찬은 물건이 잔뜩 하역되고 있는 부둣가 선착장에 서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은 가장 큰 배 앞에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이걸 다 언제 하냐고.”
크기는 크네.
미곡선으로 보이는 큰 배가 무려 세 척.
거기에 실린 양으로 보면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물론 나 혼자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만.
“송 행수, 드디어 나타났군. 동이 튼 지가 언제인데 지금 오냔 말이오. 기다리느라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소.”
난 뱃사람이다, 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듯한 텁석부리 장한이, 딱 봐도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송찬에게 말을 쏘아 붙였다.
“미, 미안하오. 이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말이오.”
담천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송찬을 노려보았다. 자신한테는 그렇게도 고압적이더니, 저런 하잘 것 없는 놈한테는 절절 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정? 사정이야 다 있는 거 아니우. 우리도 사정이 있소. 뭍에 내리지도 못한 채 물길을 찾아 헤맨 지가 벌써 열흘이라, 밑에 애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그런데 이렇게 늦게 나타나면 어쩌란 말이우, 이 뙤약볕에. 뭐하시오, 인계장에 도장 안 찍소?”
선주는 뙤약볕에 장시간을 기다려서 잔뜩 찌푸려진 탓에,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이 더욱 험악해 보였다.
송찬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선주의 손을 부여잡고는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이요, 도 선주! 내 사실은 긴히 부탁할 게 있소이다.”
“부탁? 무슨 부탁 말이우?
“커험! 다른 게 아니라, 갑자기… 에 그러니까, 하역할 쟁자수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뭐여!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야? 설마 지금 우리들 보고 이 짐을 나르라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의 말에 송찬은 움찔했다.
도 선주라고 불린 남자의 얼굴에는 왼쪽에 가로로 새겨진 검상이 있었는데, 인상을 일그러뜨리자 그 검상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도 선주, 한두 번 했던 거래도 아니고… 이번만, 딱 이번만 어떻게 부탁을 좀 드리면 안 되겠소?”
“허어, 이거 왜 이러시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얘들아, 닻 다시 올려라. 손님이 물건을 인계받지 못하신단다.”
“헙! 도 선주, 아니오. 이러지 마시오.”
“우리는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오. 분명히 얘기하지만, 하역? 알아서 하슈. 대신 하역 작업이 일 각 지체될 때마다 은 일천 냥씩을 받을 테니 그리 아슈.”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갑자기 하시면…….”
“허허. 먼저 약속을 어긴 건 그대가 아니오? 만약에 은자를 못 내놓겠다면 지금 실려 있는 미곡으로 대신할 터이니 알아서 하슈.”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처사요, 도 선주.”
“시간은 지금도 가고 있소이다. 어서 빨리 선택하시오. 나 같으면 빨리 인부들을 데리고 와서 작업을 하겠소이다.”
송찬은 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담천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나를 보는 거지?
“이봐.”
“이봐가 아니고 천우입니다.”
“천우… 하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 도 선주 옆에 딱 붙어서 미곡을 잘 지키고 있게.”
“에? 지금 어디 가는데요?”
“어디 가긴, 어디서 일꾼을 섭외해 오든 아니면 상단의 무사라도 데리고 와야지. 자네는 여기 딱 붙어 있게. 그리고… 행여나 도 선주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행동은 하지 말게.”
그러더니 굉장한 비밀이라도 알려준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소문에 의하면, 도 선주가 예전에 물길을 타면서 한가락 했다고 하네. 그러니 괜스레 건드려서 벌집 쑤시지 말라고.”
아, 한가락. 한가락 좀 하셨구나.
담천우의 이러한 시선을 겁먹은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털북숭이 도 선주가 흰 이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어 보였다.
“도 선주,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게.”
“낄낄낄. 천천히 다녀오시게나. 하역작업이 늦어질수록 받을 은자는 늘어나는 거니까.”
송찬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시가 아깝다는 듯 상단 방향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담천우는 배 안에 실려 있는 미곡더미 쪽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할 것도 없고, 오침이라도 하는 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도 선주가 그런 담천우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놈 참 별종일세.”
껄껄 웃는 도 선주를 보며 선원들도 그를 따라 웃었다. 하지만 담천우는 상관하지 않고 등을 보이고는 돌아누웠다.
송가상단이야 어찌되든 나는 송린만 지키면 되지 뭐.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설핏 잠이 든 담천우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주님, 제 말이 어떻습니까? 행수가 과연 듣던 대로 덜 떨어져 보이니, 꽤나 우려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담천우가 음성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도 선주라는 자의 옆에 붙어서 손을 비비고 있는 놈이 있었다. 바로 야반도주를 했다던 송형욱이었다.
찾았다, 요놈.
송형욱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도 선주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래, 그대 말이 맞았어. 이번 일로 한몫 단단히 잡게 생겼군.”
“지금 송가상단은 망하기 직전이라는 안 좋은 소문이 저잣거리에 퍼져 있어서, 잡일꾼을 구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원래 있던 쟁자수들 역시도 제가 부추겨서 데리고 나왔으니 낭패를 볼 수밖에 없겠지요.”
“좋아, 좋아. 잘만 하면 미곡을 한 천 석, 아니 미곡의 절반가량도 우려먹을 수가 있겠구만.”
“그래서 말인데, 헤헤. 이번 일로 한몫 챙기실 때 저희한테도 좀 나눠 주시지요.”
“그래야지.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한 오 할만 떼 주시지요. 저희가 상황을 다 만들어놓지 않았습니까?”
오 할을 얘기하는 송형욱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도 선주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오 할, 오 할이라. 그래, 뭐 까짓 거 그 정도는 떼 주지.”
“감사합니다, 도 선주 어르신.”
송형욱은 같이 야반도주를 한 쟁자수들과 함께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이렇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게 고마워서 그러는데, 자네들에게 좋은 취직자리도 마련해 주고 싶네만.”
“……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를 보니까, 얼굴이 물을 가까이 해야 하는 관상이야. 기왕에 쟁자수도 그만두게 되었으니, 우리랑 같이 배를 타는 게 어떻겠는가?”
“네? 하하… 저는 멀미가 심해서.”
“괜찮네, 괜찮아. 멀미쯤이야 몇 번 배를 타고 나면 해결될 일이지. 그리고 이렇게 좋은 일자리도 알선해 주었으니, 소개비 정도는 받아야겠지? 앞으로 한 해마다 은자 이백 냥씩만 받도록 하겠네.”
“네에?”
송형욱과 쟁자수들은 도 선주의 말에 기함을 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가면서 배를 타야 한다니.
“자네들이 일을 제대로 해서 모두 갚아야 할 거야. 만약에 못하면 고기밥으로 줘버릴 테니까.”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그제야 쟁자수들은 도 선주가 말하는 게 노예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도 선주와 함께 있던 이들이 그들을 포위했으니까.
“아하하하.”
담천우는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구냐!”
“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나 계속 해. 재미있네.”
“앗, 자네는!”
그때, 송형욱이 담천우를 보며 반색을 했다.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을 발견 했다는 듯이.
하지만 담천우는 떫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뒤통수를 때리더니, 결국은 노를 젓게 생겼네. 뭐 그쪽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너, 너!”
“왜?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주니까 착한 놈인 줄 알았냐?”
아니, 난 존댓말을 잘하는 나쁜 놈이다.
조금 희석된 나쁜 놈.
“그러니까, 웃으면서 보내줄게. 잘 가.”
“으드득. 선주, 저놈은 안 잡아갑니까?”
“그러고 보니 배짱도 두둑한 것 같고, 천상 물길을 타야 할 놈일세.”
그의 말에 담천우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도선주를 바라봤다.
저놈의 물길 어쩌고 천성 어쩌고 하는 건 완전 버릇이구만.
거기다가 송형욱이 저 놈은 안 되겠다 싶으니까 물귀신 작전을 써?
역시 첫 느낌 그대로 재수가 없는 놈이었다.
“말했잖아. 나 안 착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담천우 입가에는 어느새 나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나 좀 건드려줘.”
다 죽여 버리게.
역시 너무 지루한 건 질색이다. 가끔씩은 이렇게 심심풀이도 있어야지.
* * *
“쟤 뭐래는 거냐?”
털복숭이 도 선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낄낄낄. 저 녀석이 선주님을 아주 허당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이놈 이거, 이거. 쟤는 아무리 봐도 배짱이 두둑한 게 우리 과인데, 너무 대가 세단 말이지. 흐음, 그런데 너는 좀 맞아야겠다. 안 그래도 허튼 생각하는 놈들한테는 본보기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도 선주는 그러면서 송형욱 등을 노려보았다.
한 놈만 걸려봐라, 이런 눈빛으로.
그러자 송형욱은 진짜로 도망갈 생각이라도 했는지, 죄지은 사람 마냥 흠칫했다.
“어라? 진짜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었어? 요것들 요망하네. 하긴 지난번 상단에서도 야반도주한 이력도 있고 하니까. 흐음,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요놈들 중에 본보기로 하나는 죽여야겠는데…….”
“아이고. 우리 선주님, 또 이러신다. 여기는 남의 이목도 있는데 죽이면 안 되지요.”
“그래, 네 말도 맞다. 일단 잡아서 족쳐 놓고, 그중에서 제일 말을 안 듣는 놈만 물에다 던져야겠어.”
많이 해본 장단인 듯 도선주와 부하의 대거리가 환상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송형욱은 그제야 털썩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아이고, 도 선주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희들 덕분에 이번에 큰 이문을 남기게 되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렇기는 그렇지.”
송형욱의 말에 도 선주는 살짝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들이 아니었으면 이런 알짜배기 소문을 접하지도 못했을 테고. 그런데 말이야, 건방지게 나한테 몫을 떼 달라는 둥의 이딴 소리를 했단 말이지.”
“그, 그러니까 그건 말실수였습니다. 저희가 어찌 도 선주님께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거참. 기네, 길어.
담천우는 슬슬 따분해졌다.
“어이, 거기. 노예선을 타든지 말든지 그건 관심 없고, 송찬 그 인간이 오기 전에 빨리 끝내자고.”
“……허참.”
담천우의 말에 노예 예비후보들을 데리고 농담 따먹기를 하던 도 선주와 부하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때, 도 선주의 부하 하나가 화를 참지 못하고 배 위에 나뒹굴고 있던 반월도를 집어 들었다.
“얌마, 너 죽고 싶어?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선주님, 이 새끼는 도저히 안 되겠는데요. 본보기 삼아서 죽이시지요.”
어, 그래. 나야 좋지.
그의 말에 담천우는 반색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 본보기다.
따악.
풀썩.
“……어?”
순간 도 선주와 사내들은 할 말을 잊은 채 멍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목이라도 날릴 것 같았던 부하가 머리를 싸맨 채 바닥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하냐, 쟤?”
“선주님, 강치가 기절… 아니 죽었는뎁쇼?”
“뭐어?”
깜짝 놀란 도 선주는 재빨리 다가가서 부하를 살펴봤다.
철퇴에라도 맞은 듯이 깊게 함몰된 이마.
그것을 보고 도 선주는 침음을 삼켰다.
“도대체 누가… 설마…….”
도 선주가 자신을 돌아보자 담천우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 나야.”
그 순간, 도 선주의 안색이 역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시꺼멓게 변했다.
“아, 아니 어떻게…….”
“뭐 그냥 때려줬지.”
그러면서 담천우는 그들에게 산뜻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마치 악마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어서 오라고. 나 심심해.”
(1)
“이봐, 최근에 형욱이에 대해 뭐 들은 거 있어?”
“……송형욱?”
여느 때처럼 물건을 나르고 난 후 슬슬 수련에 몰두해 볼까하고 고민하던 찰나.
담천우는 안색이 새하얘진 대행수 송찬을 돌아보았다.
적잖이 당황하는 눈빛.
그러고 보니…….
혼자서 일을 떠맡은 지 꽤나 오래 되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차라리 송형욱이란 작자가 없는 편이 일을 후딱 해치워 버리기가 쉽기도 했고.
“몰라요. 요새 통 못 봤는데요.”
“못 봤다고? 이런 젠장맞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송찬은 절규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옆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아?”
“오침할 시간이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광분하는 송찬을 향해 담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전 할당량은 다 해서요.”
“지금이 그런 상황이냐고. 사람이 없어졌잖아. 같이 일하던 사람이 없어졌으면 나한테 얘기를 했어야지.”
“지금까지 오전 내내 저 혼자서 일을 다 했는데요.”
“그러니까… 에이씨, 그러니까… 자넨 그 뭐야, 가슴팍 풀어헤친 그 꼬락서니가 뭐냐고! 단정히 해야지.”
제 성질을 못이긴 송찬은 괜한 것을 가지고 담천우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담천우는 내심 저 자식이 왜 저러지 하면서 강아지 보듯 쳐다볼 뿐이었다.
“자넨 궁금하지도 않나? 지금 우리 상단에 있던 쟁자수들이 죄다 사라졌다고!”
“……아아.”
“아아? 지금 상단에 있는 쟁자수라고는 자네 혼자뿐이야.”
어쩐지 요새 숙소가 좀 편하더라니. 독방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는 잘 때 널찍하니 편하겠네요. 저는 이만 잠을 좀 자러.”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야반도주를 했다고. 당장에 물건을 하역해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 아무도.”
방방 뛰는 꼬락서니를 보니 볼 만은 한데 귀가 따가워 죽겠네.
그나저나 송형욱 그 작자, 언젠가는 남의 뒤통수를 때릴 것 같기는 했지만 고작 야반도주라니, 좀 어울리지가 않았다. 좀 더 크게 해먹을 줄 알았는데.
“이를 어쩐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녀석밖에는 없으니, 이일을 어째…….”
……이 녀석, 파묻어 버릴까?
“거기가 어딘데요?”
“응?”
송찬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담천우는 살짝 짜증이 난 어투로 말했다.
“가보자구요. 뭐가 얼마나 왔기에 그러는지.”
젠장! 내가 너무 많이 착해졌어.
아, 옛날이 그립다. 영혼이 시꺼멓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렇게 담천우는 재생(再生)을 한 후 처음으로 상단 밖을 나섰다.
빨리 문제를 처리하고 수련을 하겠다는 일념 하에.
* * *
잠시 후, 담천우와 송찬은 물건이 잔뜩 하역되고 있는 부둣가 선착장에 서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은 가장 큰 배 앞에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이걸 다 언제 하냐고.”
크기는 크네.
미곡선으로 보이는 큰 배가 무려 세 척.
거기에 실린 양으로 보면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물론 나 혼자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만.
“송 행수, 드디어 나타났군. 동이 튼 지가 언제인데 지금 오냔 말이오. 기다리느라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소.”
난 뱃사람이다, 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듯한 텁석부리 장한이, 딱 봐도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송찬에게 말을 쏘아 붙였다.
“미, 미안하오. 이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말이오.”
담천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송찬을 노려보았다. 자신한테는 그렇게도 고압적이더니, 저런 하잘 것 없는 놈한테는 절절 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정? 사정이야 다 있는 거 아니우. 우리도 사정이 있소. 뭍에 내리지도 못한 채 물길을 찾아 헤맨 지가 벌써 열흘이라, 밑에 애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그런데 이렇게 늦게 나타나면 어쩌란 말이우, 이 뙤약볕에. 뭐하시오, 인계장에 도장 안 찍소?”
선주는 뙤약볕에 장시간을 기다려서 잔뜩 찌푸려진 탓에,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이 더욱 험악해 보였다.
송찬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선주의 손을 부여잡고는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이요, 도 선주! 내 사실은 긴히 부탁할 게 있소이다.”
“부탁? 무슨 부탁 말이우?
“커험! 다른 게 아니라, 갑자기… 에 그러니까, 하역할 쟁자수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뭐여!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야? 설마 지금 우리들 보고 이 짐을 나르라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의 말에 송찬은 움찔했다.
도 선주라고 불린 남자의 얼굴에는 왼쪽에 가로로 새겨진 검상이 있었는데, 인상을 일그러뜨리자 그 검상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도 선주, 한두 번 했던 거래도 아니고… 이번만, 딱 이번만 어떻게 부탁을 좀 드리면 안 되겠소?”
“허어, 이거 왜 이러시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얘들아, 닻 다시 올려라. 손님이 물건을 인계받지 못하신단다.”
“헙! 도 선주, 아니오. 이러지 마시오.”
“우리는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오. 분명히 얘기하지만, 하역? 알아서 하슈. 대신 하역 작업이 일 각 지체될 때마다 은 일천 냥씩을 받을 테니 그리 아슈.”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갑자기 하시면…….”
“허허. 먼저 약속을 어긴 건 그대가 아니오? 만약에 은자를 못 내놓겠다면 지금 실려 있는 미곡으로 대신할 터이니 알아서 하슈.”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처사요, 도 선주.”
“시간은 지금도 가고 있소이다. 어서 빨리 선택하시오. 나 같으면 빨리 인부들을 데리고 와서 작업을 하겠소이다.”
송찬은 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담천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나를 보는 거지?
“이봐.”
“이봐가 아니고 천우입니다.”
“천우… 하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 도 선주 옆에 딱 붙어서 미곡을 잘 지키고 있게.”
“에? 지금 어디 가는데요?”
“어디 가긴, 어디서 일꾼을 섭외해 오든 아니면 상단의 무사라도 데리고 와야지. 자네는 여기 딱 붙어 있게. 그리고… 행여나 도 선주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행동은 하지 말게.”
그러더니 굉장한 비밀이라도 알려준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소문에 의하면, 도 선주가 예전에 물길을 타면서 한가락 했다고 하네. 그러니 괜스레 건드려서 벌집 쑤시지 말라고.”
아, 한가락. 한가락 좀 하셨구나.
담천우의 이러한 시선을 겁먹은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털북숭이 도 선주가 흰 이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어 보였다.
“도 선주,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게.”
“낄낄낄. 천천히 다녀오시게나. 하역작업이 늦어질수록 받을 은자는 늘어나는 거니까.”
송찬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시가 아깝다는 듯 상단 방향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담천우는 배 안에 실려 있는 미곡더미 쪽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할 것도 없고, 오침이라도 하는 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도 선주가 그런 담천우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놈 참 별종일세.”
껄껄 웃는 도 선주를 보며 선원들도 그를 따라 웃었다. 하지만 담천우는 상관하지 않고 등을 보이고는 돌아누웠다.
송가상단이야 어찌되든 나는 송린만 지키면 되지 뭐.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설핏 잠이 든 담천우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주님, 제 말이 어떻습니까? 행수가 과연 듣던 대로 덜 떨어져 보이니, 꽤나 우려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담천우가 음성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도 선주라는 자의 옆에 붙어서 손을 비비고 있는 놈이 있었다. 바로 야반도주를 했다던 송형욱이었다.
찾았다, 요놈.
송형욱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도 선주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래, 그대 말이 맞았어. 이번 일로 한몫 단단히 잡게 생겼군.”
“지금 송가상단은 망하기 직전이라는 안 좋은 소문이 저잣거리에 퍼져 있어서, 잡일꾼을 구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원래 있던 쟁자수들 역시도 제가 부추겨서 데리고 나왔으니 낭패를 볼 수밖에 없겠지요.”
“좋아, 좋아. 잘만 하면 미곡을 한 천 석, 아니 미곡의 절반가량도 우려먹을 수가 있겠구만.”
“그래서 말인데, 헤헤. 이번 일로 한몫 챙기실 때 저희한테도 좀 나눠 주시지요.”
“그래야지.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한 오 할만 떼 주시지요. 저희가 상황을 다 만들어놓지 않았습니까?”
오 할을 얘기하는 송형욱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도 선주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오 할, 오 할이라. 그래, 뭐 까짓 거 그 정도는 떼 주지.”
“감사합니다, 도 선주 어르신.”
송형욱은 같이 야반도주를 한 쟁자수들과 함께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이렇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게 고마워서 그러는데, 자네들에게 좋은 취직자리도 마련해 주고 싶네만.”
“……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를 보니까, 얼굴이 물을 가까이 해야 하는 관상이야. 기왕에 쟁자수도 그만두게 되었으니, 우리랑 같이 배를 타는 게 어떻겠는가?”
“네? 하하… 저는 멀미가 심해서.”
“괜찮네, 괜찮아. 멀미쯤이야 몇 번 배를 타고 나면 해결될 일이지. 그리고 이렇게 좋은 일자리도 알선해 주었으니, 소개비 정도는 받아야겠지? 앞으로 한 해마다 은자 이백 냥씩만 받도록 하겠네.”
“네에?”
송형욱과 쟁자수들은 도 선주의 말에 기함을 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가면서 배를 타야 한다니.
“자네들이 일을 제대로 해서 모두 갚아야 할 거야. 만약에 못하면 고기밥으로 줘버릴 테니까.”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그제야 쟁자수들은 도 선주가 말하는 게 노예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도 선주와 함께 있던 이들이 그들을 포위했으니까.
“아하하하.”
담천우는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구냐!”
“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나 계속 해. 재미있네.”
“앗, 자네는!”
그때, 송형욱이 담천우를 보며 반색을 했다.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을 발견 했다는 듯이.
하지만 담천우는 떫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뒤통수를 때리더니, 결국은 노를 젓게 생겼네. 뭐 그쪽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너, 너!”
“왜?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주니까 착한 놈인 줄 알았냐?”
아니, 난 존댓말을 잘하는 나쁜 놈이다.
조금 희석된 나쁜 놈.
“그러니까, 웃으면서 보내줄게. 잘 가.”
“으드득. 선주, 저놈은 안 잡아갑니까?”
“그러고 보니 배짱도 두둑한 것 같고, 천상 물길을 타야 할 놈일세.”
그의 말에 담천우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도선주를 바라봤다.
저놈의 물길 어쩌고 천성 어쩌고 하는 건 완전 버릇이구만.
거기다가 송형욱이 저 놈은 안 되겠다 싶으니까 물귀신 작전을 써?
역시 첫 느낌 그대로 재수가 없는 놈이었다.
“말했잖아. 나 안 착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담천우 입가에는 어느새 나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나 좀 건드려줘.”
다 죽여 버리게.
역시 너무 지루한 건 질색이다. 가끔씩은 이렇게 심심풀이도 있어야지.
* * *
“쟤 뭐래는 거냐?”
털복숭이 도 선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낄낄낄. 저 녀석이 선주님을 아주 허당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이놈 이거, 이거. 쟤는 아무리 봐도 배짱이 두둑한 게 우리 과인데, 너무 대가 세단 말이지. 흐음, 그런데 너는 좀 맞아야겠다. 안 그래도 허튼 생각하는 놈들한테는 본보기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도 선주는 그러면서 송형욱 등을 노려보았다.
한 놈만 걸려봐라, 이런 눈빛으로.
그러자 송형욱은 진짜로 도망갈 생각이라도 했는지, 죄지은 사람 마냥 흠칫했다.
“어라? 진짜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었어? 요것들 요망하네. 하긴 지난번 상단에서도 야반도주한 이력도 있고 하니까. 흐음,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요놈들 중에 본보기로 하나는 죽여야겠는데…….”
“아이고. 우리 선주님, 또 이러신다. 여기는 남의 이목도 있는데 죽이면 안 되지요.”
“그래, 네 말도 맞다. 일단 잡아서 족쳐 놓고, 그중에서 제일 말을 안 듣는 놈만 물에다 던져야겠어.”
많이 해본 장단인 듯 도선주와 부하의 대거리가 환상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송형욱은 그제야 털썩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아이고, 도 선주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희들 덕분에 이번에 큰 이문을 남기게 되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렇기는 그렇지.”
송형욱의 말에 도 선주는 살짝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들이 아니었으면 이런 알짜배기 소문을 접하지도 못했을 테고. 그런데 말이야, 건방지게 나한테 몫을 떼 달라는 둥의 이딴 소리를 했단 말이지.”
“그, 그러니까 그건 말실수였습니다. 저희가 어찌 도 선주님께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거참. 기네, 길어.
담천우는 슬슬 따분해졌다.
“어이, 거기. 노예선을 타든지 말든지 그건 관심 없고, 송찬 그 인간이 오기 전에 빨리 끝내자고.”
“……허참.”
담천우의 말에 노예 예비후보들을 데리고 농담 따먹기를 하던 도 선주와 부하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때, 도 선주의 부하 하나가 화를 참지 못하고 배 위에 나뒹굴고 있던 반월도를 집어 들었다.
“얌마, 너 죽고 싶어?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선주님, 이 새끼는 도저히 안 되겠는데요. 본보기 삼아서 죽이시지요.”
어, 그래. 나야 좋지.
그의 말에 담천우는 반색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 본보기다.
따악.
풀썩.
“……어?”
순간 도 선주와 사내들은 할 말을 잊은 채 멍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목이라도 날릴 것 같았던 부하가 머리를 싸맨 채 바닥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하냐, 쟤?”
“선주님, 강치가 기절… 아니 죽었는뎁쇼?”
“뭐어?”
깜짝 놀란 도 선주는 재빨리 다가가서 부하를 살펴봤다.
철퇴에라도 맞은 듯이 깊게 함몰된 이마.
그것을 보고 도 선주는 침음을 삼켰다.
“도대체 누가… 설마…….”
도 선주가 자신을 돌아보자 담천우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 나야.”
그 순간, 도 선주의 안색이 역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시꺼멓게 변했다.
“아, 아니 어떻게…….”
“뭐 그냥 때려줬지.”
그러면서 담천우는 그들에게 산뜻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마치 악마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어서 오라고. 나 심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