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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뜻하지 않은 행운







일주일 뒤.

“휴우, 이제 어느 정도는 되었군.”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담천우는 눈을 떴다.

본격적으로 몸을 추스르기로 작정한 지 딱 칠 일째.

그간 담천우의 신경은 오로지 회복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확실히 육양심법이 효과가 좋아.’

일주일 만에 뒤틀려있던 온몸의 근육과 하단전의 혈맥이 안정되었는데, 이것은 오로지 육약공 그러니까 속칭 육양심법이 해낸 일이었다.

의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믿지 않을 일이었다.

폭혈공을 쓰고도 살아남는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니까.

괜히 생전의 힘을 두 배로 늘려주는 금지된 사술이 아니었다. 생명을 담보로 해야만 가능한 악마의 사술, 그것이 폭혈공이었다.

그런데 그 폭혈공으로 갈가리 찢긴 심신을 이리도 안정시킨 것이, 저잣거리에서 삼재심법 다음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가, 삼재심법보다도 더욱 쓰레기 취급을 받는 육양심법이라니.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걸 보면 태을도문의 무공이 좋기는 좋아.’

육양공은 본래 도교 무공의 총본산이라고 불리는 태을도문에서 유래되었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괄시를 받는 이유는 단 하나, 적공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담천우는 알고 있었다.

태을도문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육양공을 왜 그렇게 민간에 무료로 배포했는지를.

육양공은 적공을 위한 심법이 아닌 들뜬 심신과 혈맥을 치유하는, 한마디로 주화입마 증상을 치유하는 데에 탁월한 요상법이었다.

담천우가 이 육양공의 효능을 깨닫게 된 건 천마교주의 신분이 아닌 마령단주이자 마도라고 불렸을 당시, 무공에 미쳐서 말도 안 되는 무공들을 조합하다가 주화입마 직전까지 가는 일을 여러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요상에 탁월한 도가심법을 찾다가, 우연히 이 육양공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육양공의 역할은 여기까지.”

육양공은 심신의 안정과 하단전 혈맥에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중단전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지난 일주일간 그것을 시험해 보았지만, 오늘로서 담천우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 태을도문에라도 찾아가서 다른 요상법을 내놓으라고 해봐야 하나?’

조금 답답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손상된 중단혈의 원인도 알았고, 치료방법도 육양공 같은 요상법이 있으면 된다는 것도 알았는데, 당장은 구할 방도가 없었다.

‘한번 복기를 해보자.’

담천우가 알고 있는 무공들, 그것들을 살피다 보면 뭔가 다른 결론이 나올지도 몰랐다.



일단 중원의 무공은 하단전에 그릇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명문대파나 작은 무관이나 그것은 똑같았다.

하단으로 기둥(틀)을 만들고 중단에서 마음을 바로 세운다. 그리하여 천지조화의 법도를 깨달았을 때 상단을 열게 된다.

중원무림에서는 하단에 전(田)을 일구는 하단기론이 대세였다. 이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이해하기도 쉽고 빠르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공부란 뜬구름 잡기 일색이니 후인들에게 전달하기도 어렵고, 일단 담천우조차도 하단기론에 속해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화경의 극에 이르러서는 문제가 생겨 버린다. 그때쯤 되면 하단을 넘어서 중단을 넘나드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오기조원이라는 뜻 자체가 오행의 기운을 대자연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중단이다.

어찌되었든 화경의 극에 이르면 손상된 중단전은 분명 담천우의 발목을 붙들 것이다.

한번 갔던 길이니만큼 화경의 극까지는 전생만큼은 안 걸릴 것이고, 문제점에 봉착하는 시점도 더욱 빨라지겠지.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니 충현이라는 놈한테 열이 뻗쳤다. 왜 이 미친놈은 중단혈만 주구장창 단련한 것일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충현 놈은 답이 없었다.

“흥!”

제깟 놈이 이렇게 나와도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중단전을 수련하는 문파에 가서 물어보면 되지 뭐.

제길… 이러다가 부적이나 그리고 잡귀나 잡으러 다니는 말코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갈 길이 머네.”

담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그리고 할 수 없는 것도 한다. 그게 진정 담천우다운 행동이었다.

전생에 비한다면 그래도 백 배, 아니 천 배는 나은 상황이었다.

그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지만, 지금은 전생의 기억이 그대로 있었다.

한번 검증된 길은 그대로만 가면 된다.

천일령원기공.

그래,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하단전의 축기공이자 담천우의 독문심법은 현생에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이제부터 적공을 할 건데, 방해하지 마라.”

[…….]

괜스레 시비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모래에 물이 스미듯 충현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진짜로 나와 영혼이 합쳐진 후에 존재감이 사라진 건가?

그런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심상공간에서 녀석의 기운이 느껴졌다. 좀 옅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담천우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축기 도중에 이 녀석이 방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천일령원기공은 마공답지 않게 안정적인 기공이었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방해하면 중간에 깨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두 시진 뒤.

소주천과 대주천까지 마치고 일어난 담천우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뭐, 뭐냐…….”

이럴 리가 없는데.

빌어먹을 하늘이 나한테 이럴 리가 없는데.

담천우의 하단전에는 반 갑자, 그러니까 약 삼십 년 치에 해당하는 내공이 가득 차있었다.

단 한 번의 축기만으로 말이다.

“미쳤네, 이거!”



* * *



쿡쿡쿡.

뭔가 몸을 건드리는 느낌에 담천우는 슬며시 눈을 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눈을 떴다. 그러자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꼬마 녀석이 나뭇가지로 자신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후응. 이 형아는 살아있기는 한 건가?”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 딴에는 신기했던 모양인지, 꼬마는 계속해서 나뭇가지로 툭툭 담천우의 몸을 건드렸다.

수련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아직은 정신을 잃고 있는 중이었기에 담천우는 참고 있어야만 했다.

“형아, 빨리 일어나야 되는데. 돈 잡아먹는 돈벌레 형아.”

“……쓰읍.”

순간적으로 뒷목을 잡고 일어날 뻔했을 정도로, 꼬마 녀석은 묘하게 복장 터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귀신흉내라도 낼까.

순간 충동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꼬마 녀석의 눈에 잔뜩 어린 짙은 호기심을 보니 겁을 먹지도 않을 것 같았다.

‘빨리 가라.’

그렇게 담천우가 팔자에도 없고 익숙하지도 않은 인내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돈벌레 형아, 송찬 대행수님이 많이 화났쩌요. 돈벌레 형아가 자꾸 이렇게 안 일어나면, 멍석에 말아다가 내다 버린대요.”

꼬마 녀석의 말에 담천우는 실로 기가 막혔다. 내다 버리다니.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참나. 담천우는 입맛이 썼다.

나도 제대로 살지는 못했고… 사람 죽인 기억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강호의 상도의가 이렇게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되는 거다.

전대 천마로서 담천우가 강호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꼬마의 복장 터지게 하는 말이 다시 들려왔다.

“형아가 석 달 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바람에 약값이, 그러니까… 어, 은자… 그러니까, 암튼 억만금이나 들었대요. 송찬 대행수님이 그랬어요.”

윽!

“그래도 우리 상단주님이니까 이렇게 환자를 안 버리고 있는 거라고 했어요.”

끄응…….

차라리 주먹으로 때려라.

“그러니까 돈벌레 형아, 빨리 정신 차려서 우리 상단주 누나 걱정 시키지 마요.”

끝끝내 복장을 뒤집어놓고 가는 꼬마였다. 탁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잔망스러운 꼬마의 발걸음이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슬며시 눈을 뜬 담천우는 침상 맡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바라봤다.

왠지 꼬마의 온기가 아직도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에이, 모르겠다. 누워 있는 김에 조금 더 누워있지 뭐.”



* * *



삐걱.

담천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무슨 날인지 유난히 방문자가 많았다.

누구인지 실눈을 뜨고 보고 싶었지만 참았던 것은, 발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한 명이 아니라 두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홍 의원, 어서 오시게.”

아, 의원.

담천우는 호흡을 반 박자 느리게 했다.

의원은 주섬주섬 침구를 챙기더니 대뜸 담천우의 손을 잡아왔다. 진맥을 하려는 것이었는데, 문득 의원이 움찔 놀라는 게 느껴졌다.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리 걱정할 것은 없었다.

마교에서도 많이 했던 짓이니까. 신진대사가 이렇게 느려지면 보통은 기식이 엄엄하다면서 오진을 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힘들겠지?”

의원의 맞은편 쪽에서 기대감이 실린 달짝지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담천우의 기억에도 있는 목소리였다.

나를 구할 때 극구 말리던 놈.

그리고 그 꼬마애가 말하던 대행수, 송찬이 바로 이놈일 터였다.

알고 보니 더욱 괘씸했다. 그 기대감 안에 뭐가 있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요놈아, 그렇게는 못해주겠다.’

담천우는 짐짓 진기에 힘을 보탰다.

이 정도면 의원도 조금 달리 판단할 것이다. 완전히 돌팔이만 아니라면.

과연 담천우의 생각대로였다.

“흐음.”

침음성을 흘리던 의원의 목소리가 더욱 진중하게 바뀌었다.

“응? 왜 그러는가?”

“이상합니다.”

“뭐가?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생각보다는 많이 회복되었습니다만… 혹시 환자에게 요 며칠간 특이한 증상은 없었습니까?”

의원이 대행수, 송찬에게 의문점을 묻는 사이, 담천우는 쾌재를 불렀다.

상황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는 의심받지 않는 선에서 게으름도 살짝 피워가며 회복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이 사람, 살아납니다!”

의원은 담천우의 예상보다도 더 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 아니 이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지난주까지만 해도 분명히 가망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랬죠. 선천진기를 다 태운 사람이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즉, 그 말은 천수를 다했다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서 담천우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천진기를 거론하는 것은 폭혈공의 폐해를 어느 정도는 꿰뚫어 봤다는 말이니까.

실력은 조금 있는 것 같았다.

“그, 그럼 치료를 더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서, 설마… 약값을 좀 더 받아내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만…….”

꽤나 모욕적인 언사임에도 홍 의원이라는 자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이 사람, 다 나았습니다.”

그의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담천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홍 의원은 그 모습을 여상하게 바라보다가 침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은, 의원으로서의 제 소임은 오늘까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에에엥? 아니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있는데, 그게 무슨…….”

“이 사람 일어나거든, 저한테 한 번 들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아, 아니 이렇게 가는 것인가? 아무런 조치도 안하고?”

“그걸 원하셨던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저 갑니다.”

“이보게, 홍 의원.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러는가? 에이, 그거 농담이었네.”

바쁜 일이 있는 듯 종종걸음을 치는 발과 그를 바삐 뒤쫓는 발걸음이 멀어질 때쯤, 담천우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하필이면 이런 촌구석에 실력 있는 의원이 있었다니.”

옛날에는 이렇게 꾀병을 부리면 마의 말고는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담천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꼬마 녀석의 말도 그렇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이제는 그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

그저 주구장창 쉬면서 심법만 수련했는데, 거둬들인 내공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무려 일 갑자의 내력. 정신을 차린 지 겨우 삼 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맨 처음에는 기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놈의 몸에는 폭혈공때문인지 온몸에 기이한 진기가 날뛰고 있었다. 원래는 폭혈공을 쓰면 죄다 바람 빠지듯 생기가 빠져나가는데, 이놈의 몸은 이상하게도 그 기운을 모두 가둬두고 있었다.

천일령원기공은 그 흩어진 진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였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석 달 동안 누워있었다라…….”

삐거덕.

오랜만에 근육을 움직이니 온몸이 벅찬 감동의 소리를 냈다.

“몸 상태가 아주 볼 만하네.”

타고난 근골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고, 몸 안에 내력이 충만하면 뭐하나.

그간의 병고로 인해 근육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진 듯 바짝 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