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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재생(再生)
왠지 익숙한 장면.
너무나도 세월이 흘러, 담천우조차도 잊고 있었던 그 자신의 기억이었다.
어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독해 보이는 얼굴.
바로 막 마졸로 들어갔을 때의 담천우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기억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졸, 마령, 마령단주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그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석환위, 각오는 되어 있겠지.”
기억 속의 담천우는 아직 젊었다.
갓 사십이 되었을 때 같은데, 그 무위만큼은 무척 놀라워서 이미 천하 십대 고수로 꼽히고 있던 칠십의 혈교주 석환위를 맞아서도 크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몇 백 초가 흐르는 동안에 용호상박으로 바뀌었다.
석환위는 예측할 수 없는 기기묘묘함으로 담천우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이미 수백 초가 흐르는 사이 예리한 담천우의 시선 앞에서 그의 약점이 낱낱이 파헤쳐 지고 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석환위.
그로서는 이제 겨우 초절정고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마도 따위에게 이렇게 밀릴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몇 백 초가 더 흘렀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석환위의 안색은 이미 까맣게 죽어있었다.
승기를 잡은 담천우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석환위가 다급한 손짓으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담천우는 두고 볼 것도 없이 일도를 날렸다.
그간 괴이한 사술에 시달렸던 탓에 손끝에는 인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번갯불에 갈라지듯 석환위의 한쪽 팔이 거짓말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석환위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석환위는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팔을 필사적으로 움켜잡았다.
그 시절의 담천우는 무자비하고 냉혹했다.
끝내 한칼로 목까지 깔끔하게 베어내 버렸다.
힘들었던 승부가 끝난 후, 담천우는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석환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때, 석환위의 떨어져 나간 손에 잡혀있던 자기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사십대의 담천우는, 뭔가에 홀린 듯 자기병 안에 들어있던 핏빛 액체를 마셨다.
* * *
파도와 같았던 기억의 파편이 지나갔다.
두 개의 정체성은 혼란을 야기했다.
나는 분명 담천우.
그런데 또 다른 하나의 기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꿈틀.
그 순간 생경한 맥동이 느껴졌다.
‘아하하하…….’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분명히 이건 심장소리.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어느새, 눈에 드리워졌던 검은 장막을 뚫고 옅은 빛이 들어와 있었다.
살았다. 산 것이다. 환혼술이 성공한 것이다.
혈교의 비고에서 확인된 기록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 대명제 앞에서 잠시간의 의문일랑 접어 두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생명의 맥동은 힘차지 못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겨우 살아났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담천우는 고함을 쳤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몸의 주인이 담천우가 아닌 것처럼.
‘살아야 돼!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담천우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쳤다. 아니, 애원했다.
그래도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굳으면서 차가워지고 있었다.
‘뭐냐? 너 혹시……?’
[…….]
담천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환혼은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몸은 일부러 죽음을 택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요?”
“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시퍼런 강물밖에는 안 보이는데요.”
그 순간, 절망의 구렁텅이에 한 가닥 동아줄이 내려온 듯했다.
낯선 이들의 대화. 이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으으으으.”
“저기 사람이 있잖아요. 어서 건져 주세요, 대행수.”
“예에? 진심입니까? 저 정도면 살아도 산 게 아닐 겁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이런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되죠.”
“하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건지지요.”
“같이 건져요. 물에 불어서 힘들 거예요.”
“안 됩니다, 아가씨. 이걸 보시면 한 일주일동안은 비위가 상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실 겁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이것 좀 보세요. 진짜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나요?”
“예? 그럴 리가요……. 어? 진짜네!”
“빨리 옮겨요. 어서 의원에게 보여야죠.”
“휴우…….”
“빨리요!”
“아가씨. 누차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이문을 중시하는 상인입니다.”
“이문도 사람 다음에 있는 거예요.”
“하아…….”
어떤 남자의 깊은 한숨과 함께 담천우의 몸이 들려지고, 곧 몸에는 두터운 천이 감겨졌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담천우의 의식이 깊은 수면 아래로 잠겨들었다.
* * *
타타타탁.
유등(油燈) 주위로 날아다니는 나방들만이 활기찬 야밤의 방안.
“끄응…….”
작은 신음과 함께 고요하던 방안의 정적이 깨졌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담천우의 눈꺼풀이 어느 순간 스르르 열렸다.
담천우는 신기한 듯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진… 짜 살아난 건가?”
목에 뭔가 걸린 듯이 탁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저 허황된 소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담천우가 죽기 전에 큰소리를 쳤던 것은 반쯤은 허장성세였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렇게 보란 듯이 살아있었다.
감격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그 생각에 반발이라도 하듯 우웅 하고 가슴이 울렸다.
* * *
담천우는 신경질적으로 가슴 쪽을 노려보았다.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탓에, 몸의 통제권을 빼앗아 오느라 더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녀석.’
몸의 원래 주인은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그 놈의 이름은 충현.
명호는 북방사신으로서, 당대제일의 고수였던 담천우조차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을 정도로 강력한 무공을 지닌 고수였다.
그 무위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무려 세외팔신 중에 하나로 불리기도 했으며, 호사가들 사이에는 능히 강호 백대고수에 꼽힐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자식.”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니 담천우는 열이 받아서 욕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천마인 내게 대항하다니.
그러고 보면 대단한 놈이기는 했다. 초지일관 죽으려고 하던 놈이었으니까.
설득도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불리한건 담천우 쪽이었다.
어떻게든 심상공간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일 뿐.
그런데 그렇게 좁혀지지 않는 간극 속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이질적인 두 존재, 담천우와 충현의 영혼이 서서히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히 기함을 했지만,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담천우는 천마도 담천우의 성향을 주로 가지고는 있지만, 북방사신 충현의 기질도 일부 섞인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영혼이 섞여 혼탁해진 다음에야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그것을 담천우는 몸의 통제권이 자신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빌어먹을. 환혼을 시켜주려면 제대로 시켜주던가. 어디서 이딴 놈한테…….”
넋두리 아닌 넋두리였지만, 사실상 살아난 것을 빼고는 모든 게 최악이었다.
지금의 몸 상태는 안 봐도 뻔한 게, 폭혈공으로 몸속의 진기가 바짝 말라버렸을 터였다.
폭혈공으로 죽었는데, 폭혈공으로 거의 다 죽어가는 놈의 몸으로 옮겨오다니.
담천우는 구시렁대면서도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크윽… 빌어먹을…….’
온몸을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격통이 밀려왔다.
“그나마 사지가 다 멀쩡히 달려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상태로 쥐 죽은 듯이 있으니, 들불처럼 일어났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담천우는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을 수 있었다.
가부좌를 한 이유는 일단 상황을 명확히 알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천우는 벌려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하단전은 그나마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기보다는 깨끗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간간히 그 주변으로 흐르는 혈맥이 조금 손상되어 있기는 했지만, 폭혈공을 썼다는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이정도 피해는 별 게 아니었다.
일단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데에 안도를 했지만, 의문은 그대로 남겨졌다.
우선 첫 번째. 북방사신이라면 꽤나 강력한 무인이었다. 그런데 왜 하단전에 아무런 기운도 담겨 있지 않을까.
“……중단전?”
담천우는 문득 중단전에 생각이 닿았다. 의심의 이유는 단순했다. 환상 속에서 본 이 녀석은 고구려라는 이족 출신. 그렇다면 중원인과는 다른 괘로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까?
찬찬히 내부를 관조하던 담천우는 허탈한 웃음을 쏟아냈다.
담천우의 의심이 맞았다. 강궁 쪽에 있는 중단전은 아주 곤죽이 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담천우는 욕지거리가 입에서 절로 새어나왔다.
강궁(심장)은 생기가 모여 있는 곳이기에 중원에서는 보통 이곳을 단련하지 않는다.
“왜 하필 여기를…….”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강궁 쪽을 다쳤다면 분명 몸에 무리가 갈 것이다.
중단혈. 중단전. 잡술.
이 세 가지 단어가 입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중단전은 그만큼 담천우에게 있어 생소한 단어였다.
문득 잡술이 떠오른 것은, 하단전을 수련치 않고 중단전부터 수련하는 문파가 주로 잡술을 연마하는 모산파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놈이 부적을 그리고 귀신을 부리는 놈이었다고?”
그런데 이상한 건, 환상 속에서 본 녀석의 모습은 분명 여느 무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없이 파괴적인 무공. 그것은 분명 도술이나 그런 류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놈. 충현이라는 놈은 진짜로 이해할 수가 없는 놈이었다. 기껏 살아났는데 죽으려고나 들고.
문득 담천우는 진짜로 중단전을 연단하는 문파를 찾아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뇌리에 먼저 스친 건 역시 모산파. 그 다음으로는 중귀모령파와 흑뢰도문.
죄다 좌도방문이라고 불리는 법술 쪽에 쏠린 문파였다. 그리고 중원에서는 제대로 된 무가문파로는 취급받지 못하고 있던 곳들이기도 했다.
‘충현 이놈이 정작 중요한 기억은 봉인을 해두었어…….’
영혼이 일부 합쳐지기는 했지만, 기억의 상당 부분은 넘어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공에 대한 부분은 꽁꽁 싸매놓은 것 같았다.
‘쪼잔한 잔존사념 같으니.’
어찌되었든 좋다. 하단전을 익히지 않았기에, 하단전의 혈맥이 뭉개지지 않은 점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몸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만.’
비록 지금은 폭혈공의 부작용 때문에 뼈만 남은 듯 앙상했지만, 타고난 근골은 최상. 아니 최최상급이었다.
이건 일천년에 한번 볼까말까 하다는 천무지체가 분명했다.
사실 근골로만 따지면 전생에서 천마라고 불렸던 자신보다도 더 좋았다.
담천우가 비록 역대 최강의 천마로는 불렸지만, 근골만큼은 역대 최강이 아니라 평범에 가까웠으니까.
“좋아. 이정도면 괜찮은 상황이야.”
담천우는 이번 생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리는 금물. 정양이 우선이니까.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서 끝내는 적의 목을 움켜쥘 것이다.
왠지 익숙한 장면.
너무나도 세월이 흘러, 담천우조차도 잊고 있었던 그 자신의 기억이었다.
어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독해 보이는 얼굴.
바로 막 마졸로 들어갔을 때의 담천우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기억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졸, 마령, 마령단주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그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석환위, 각오는 되어 있겠지.”
기억 속의 담천우는 아직 젊었다.
갓 사십이 되었을 때 같은데, 그 무위만큼은 무척 놀라워서 이미 천하 십대 고수로 꼽히고 있던 칠십의 혈교주 석환위를 맞아서도 크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몇 백 초가 흐르는 동안에 용호상박으로 바뀌었다.
석환위는 예측할 수 없는 기기묘묘함으로 담천우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이미 수백 초가 흐르는 사이 예리한 담천우의 시선 앞에서 그의 약점이 낱낱이 파헤쳐 지고 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석환위.
그로서는 이제 겨우 초절정고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마도 따위에게 이렇게 밀릴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몇 백 초가 더 흘렀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석환위의 안색은 이미 까맣게 죽어있었다.
승기를 잡은 담천우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석환위가 다급한 손짓으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담천우는 두고 볼 것도 없이 일도를 날렸다.
그간 괴이한 사술에 시달렸던 탓에 손끝에는 인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번갯불에 갈라지듯 석환위의 한쪽 팔이 거짓말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석환위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러면서도 석환위는 멀리 떨어져 나가려는 팔을 필사적으로 움켜잡았다.
그 시절의 담천우는 무자비하고 냉혹했다.
끝내 한칼로 목까지 깔끔하게 베어내 버렸다.
힘들었던 승부가 끝난 후, 담천우는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석환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때, 석환위의 떨어져 나간 손에 잡혀있던 자기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사십대의 담천우는, 뭔가에 홀린 듯 자기병 안에 들어있던 핏빛 액체를 마셨다.
* * *
파도와 같았던 기억의 파편이 지나갔다.
두 개의 정체성은 혼란을 야기했다.
나는 분명 담천우.
그런데 또 다른 하나의 기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꿈틀.
그 순간 생경한 맥동이 느껴졌다.
‘아하하하…….’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분명히 이건 심장소리.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어느새, 눈에 드리워졌던 검은 장막을 뚫고 옅은 빛이 들어와 있었다.
살았다. 산 것이다. 환혼술이 성공한 것이다.
혈교의 비고에서 확인된 기록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 대명제 앞에서 잠시간의 의문일랑 접어 두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생명의 맥동은 힘차지 못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겨우 살아났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담천우는 고함을 쳤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몸의 주인이 담천우가 아닌 것처럼.
‘살아야 돼!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담천우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쳤다. 아니, 애원했다.
그래도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굳으면서 차가워지고 있었다.
‘뭐냐? 너 혹시……?’
[…….]
담천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환혼은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몸은 일부러 죽음을 택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요?”
“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시퍼런 강물밖에는 안 보이는데요.”
그 순간, 절망의 구렁텅이에 한 가닥 동아줄이 내려온 듯했다.
낯선 이들의 대화. 이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으으으으.”
“저기 사람이 있잖아요. 어서 건져 주세요, 대행수.”
“예에? 진심입니까? 저 정도면 살아도 산 게 아닐 겁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이런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되죠.”
“하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건지지요.”
“같이 건져요. 물에 불어서 힘들 거예요.”
“안 됩니다, 아가씨. 이걸 보시면 한 일주일동안은 비위가 상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실 겁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이것 좀 보세요. 진짜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나요?”
“예? 그럴 리가요……. 어? 진짜네!”
“빨리 옮겨요. 어서 의원에게 보여야죠.”
“휴우…….”
“빨리요!”
“아가씨. 누차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이문을 중시하는 상인입니다.”
“이문도 사람 다음에 있는 거예요.”
“하아…….”
어떤 남자의 깊은 한숨과 함께 담천우의 몸이 들려지고, 곧 몸에는 두터운 천이 감겨졌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담천우의 의식이 깊은 수면 아래로 잠겨들었다.
* * *
타타타탁.
유등(油燈) 주위로 날아다니는 나방들만이 활기찬 야밤의 방안.
“끄응…….”
작은 신음과 함께 고요하던 방안의 정적이 깨졌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담천우의 눈꺼풀이 어느 순간 스르르 열렸다.
담천우는 신기한 듯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진… 짜 살아난 건가?”
목에 뭔가 걸린 듯이 탁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저 허황된 소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담천우가 죽기 전에 큰소리를 쳤던 것은 반쯤은 허장성세였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렇게 보란 듯이 살아있었다.
감격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그 생각에 반발이라도 하듯 우웅 하고 가슴이 울렸다.
* * *
담천우는 신경질적으로 가슴 쪽을 노려보았다.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탓에, 몸의 통제권을 빼앗아 오느라 더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녀석.’
몸의 원래 주인은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그 놈의 이름은 충현.
명호는 북방사신으로서, 당대제일의 고수였던 담천우조차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을 정도로 강력한 무공을 지닌 고수였다.
그 무위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무려 세외팔신 중에 하나로 불리기도 했으며, 호사가들 사이에는 능히 강호 백대고수에 꼽힐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자식.”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니 담천우는 열이 받아서 욕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천마인 내게 대항하다니.
그러고 보면 대단한 놈이기는 했다. 초지일관 죽으려고 하던 놈이었으니까.
설득도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불리한건 담천우 쪽이었다.
어떻게든 심상공간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일 뿐.
그런데 그렇게 좁혀지지 않는 간극 속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이질적인 두 존재, 담천우와 충현의 영혼이 서서히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히 기함을 했지만,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담천우는 천마도 담천우의 성향을 주로 가지고는 있지만, 북방사신 충현의 기질도 일부 섞인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영혼이 섞여 혼탁해진 다음에야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그것을 담천우는 몸의 통제권이 자신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빌어먹을. 환혼을 시켜주려면 제대로 시켜주던가. 어디서 이딴 놈한테…….”
넋두리 아닌 넋두리였지만, 사실상 살아난 것을 빼고는 모든 게 최악이었다.
지금의 몸 상태는 안 봐도 뻔한 게, 폭혈공으로 몸속의 진기가 바짝 말라버렸을 터였다.
폭혈공으로 죽었는데, 폭혈공으로 거의 다 죽어가는 놈의 몸으로 옮겨오다니.
담천우는 구시렁대면서도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크윽… 빌어먹을…….’
온몸을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격통이 밀려왔다.
“그나마 사지가 다 멀쩡히 달려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상태로 쥐 죽은 듯이 있으니, 들불처럼 일어났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담천우는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을 수 있었다.
가부좌를 한 이유는 일단 상황을 명확히 알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천우는 벌려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하단전은 그나마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기보다는 깨끗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간간히 그 주변으로 흐르는 혈맥이 조금 손상되어 있기는 했지만, 폭혈공을 썼다는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이정도 피해는 별 게 아니었다.
일단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데에 안도를 했지만, 의문은 그대로 남겨졌다.
우선 첫 번째. 북방사신이라면 꽤나 강력한 무인이었다. 그런데 왜 하단전에 아무런 기운도 담겨 있지 않을까.
“……중단전?”
담천우는 문득 중단전에 생각이 닿았다. 의심의 이유는 단순했다. 환상 속에서 본 이 녀석은 고구려라는 이족 출신. 그렇다면 중원인과는 다른 괘로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까?
찬찬히 내부를 관조하던 담천우는 허탈한 웃음을 쏟아냈다.
담천우의 의심이 맞았다. 강궁 쪽에 있는 중단전은 아주 곤죽이 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담천우는 욕지거리가 입에서 절로 새어나왔다.
강궁(심장)은 생기가 모여 있는 곳이기에 중원에서는 보통 이곳을 단련하지 않는다.
“왜 하필 여기를…….”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강궁 쪽을 다쳤다면 분명 몸에 무리가 갈 것이다.
중단혈. 중단전. 잡술.
이 세 가지 단어가 입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중단전은 그만큼 담천우에게 있어 생소한 단어였다.
문득 잡술이 떠오른 것은, 하단전을 수련치 않고 중단전부터 수련하는 문파가 주로 잡술을 연마하는 모산파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놈이 부적을 그리고 귀신을 부리는 놈이었다고?”
그런데 이상한 건, 환상 속에서 본 녀석의 모습은 분명 여느 무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없이 파괴적인 무공. 그것은 분명 도술이나 그런 류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놈. 충현이라는 놈은 진짜로 이해할 수가 없는 놈이었다. 기껏 살아났는데 죽으려고나 들고.
문득 담천우는 진짜로 중단전을 연단하는 문파를 찾아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뇌리에 먼저 스친 건 역시 모산파. 그 다음으로는 중귀모령파와 흑뢰도문.
죄다 좌도방문이라고 불리는 법술 쪽에 쏠린 문파였다. 그리고 중원에서는 제대로 된 무가문파로는 취급받지 못하고 있던 곳들이기도 했다.
‘충현 이놈이 정작 중요한 기억은 봉인을 해두었어…….’
영혼이 일부 합쳐지기는 했지만, 기억의 상당 부분은 넘어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공에 대한 부분은 꽁꽁 싸매놓은 것 같았다.
‘쪼잔한 잔존사념 같으니.’
어찌되었든 좋다. 하단전을 익히지 않았기에, 하단전의 혈맥이 뭉개지지 않은 점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몸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만.’
비록 지금은 폭혈공의 부작용 때문에 뼈만 남은 듯 앙상했지만, 타고난 근골은 최상. 아니 최최상급이었다.
이건 일천년에 한번 볼까말까 하다는 천무지체가 분명했다.
사실 근골로만 따지면 전생에서 천마라고 불렸던 자신보다도 더 좋았다.
담천우가 비록 역대 최강의 천마로는 불렸지만, 근골만큼은 역대 최강이 아니라 평범에 가까웠으니까.
“좋아. 이정도면 괜찮은 상황이야.”
담천우는 이번 생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리는 금물. 정양이 우선이니까.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서 끝내는 적의 목을 움켜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