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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 다음 목표는 당신이야




중량을 빼기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높게 쌓여 있던 중량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바닥 고물상인 누리가 600톤 이상이라는 고철을 쌓아 놓기는 힘들었다.
5일 동안 뺀 중량의 무게는 약 520톤.
금액으로 따지면 1억 6,000만 원이 넘는 고철이었다.
여기서 선입금을 제외하면 약 1억 3,000만 원.
하지만 이 금액으로도 안심하기는 힘들었다.

“오늘부터 경량 뺍니다. 경B부터 경A까지 모두 털어 낼 거니까,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나머지 중량은 어떻게 하시려고… 빼는 김에 다 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진준식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지만, 이시우는 절대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왜냐고?
고철을 모두 빼 버리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고철 생성으로 만들어진 고철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의 고철은 반드시 남겨 둬야만 했다.
꼭 그것만이 이유인 것은 아니었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했다.
손님에게도 어느 정도 보일 만한 물건이 있어야 했다.

“아니요. 어느 정도 고철을 남겨 놔야 손님들도 ‘고물상이 크구나’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
“눈대중으로 보면 약 30톤에서 40톤 정도 남았으니까… 한 20톤만 더 빼면 될 것 같네요. 오늘 오는 방통차에는 모두 경량만 상차할 거예요.”
“그럼 전 중량을 상차해서 가져가면 되겠군요.”
“네. 경 A 위주로 상차할 거니까, 강 부장님은 중량 일부분하고 경B만 납품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침 7시 30분.
오늘도 평소보다 한 시간 반가량 일찍 출근한 강필중이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럼 전 중량부터 상차하겠습니다.”
“네. 오늘 8시 30분부터 들어오라고 했으니, 상차할 시간은 넉넉할 거예요.”

중량을 대부분 뺐다.
그리고 지난주에 약 120톤에 이르는 경량 B급을 뺀 상황.
이제 온전하게 남아 있는 고철은 경A뿐이었다.
본래라면 네 개의 고철을 등급으로 나누어 분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장성우는 가장 돈이 되는 중량 A등급을 중량 B와 마구잡이로 섞어 놓았다.
따로 고를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을 만들어 놓은 상황.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중B와 중A가 섞여 있는 상태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모든 고철을 빼고 나면, 그땐 당신 차례야, 장성우.’

중량만 1억 3,000.
그리고 지난주에 넘긴 경B만 해도 3,000이었다.
마지막으로 넘길 경A와 경B를 생각하면 훨씬 더 큰 금액을 유지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 터.
더 케이 베스틸.
그리고 장성우.
이 둘이 아버지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놈들이었다.

‘절대 용서 못해. 너희가 한 짓 그대로 돌려줄게.’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쉬웠다.
더 케이 베스틸이 자금으로 누리를 말려 죽이려 했듯이 이시우도 똑같이 자금으로 싸워 주면 그만이었으니.

‘일주일만… 딱 일주일만 더 지나면 이 근방에 있는 고철들을 쓸어 올 수 있어.’

기다리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일주일 약간 넘는 시간.
준비를 마치고 이제 누리 리싸이클링이 성장해야 할 시기였다.

***

텅 비어 있는 마당.
중량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고철을 거의 다 빼냈다.
경량 A, B등급.
각 등급은 20원씩의 차이를 보였다.
현 시점 제철소로 직접 납품을 보낸다면.
중량 B가 350원, 경량 A는 330원, 경량 B는 310원이라는 차이를 보였다.

“고철이 없는 마당을 보는 것도 진짜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사장님.”
“그러게요. 속이 다 후련하네요.”

나란히 서서 고철장을 바라보는 이시우와 강필중.
두 사람은 나란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전 현장 위주로 영업을 돌까 합니다.”
“명산으로 출근하는 건 그만하시려고요?”
“네. 빠져나간 물건을 다시 채워 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한동안은 그냥 연락이 오는 곳만 고철을 가져올 생각이에요.”

지금 같은 시기에 고철을 쌓을 준비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고철 단가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다시 300원 정도로 떨어지면 좋으련만. 그럼 걱정하지 않고 물건을 다시 쌓아 두기 시작할 텐데 말이야.’

이번 거래로 누리가 얻은 수익은 2억 5,000 정도.
아버지가 얼마를 고철에 투자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투자한 금액보다 더 큰 돈을 벌었다는 것이었다.

“흐음, 확실히 빈자리를 다시 채울 시기는 아니긴 합니다.”
“2억이 넘는 운영 자금이 들어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요? 더 케이와 거래하는 고물상 위주로 물건을 빼앗아 올 생각이에요.”
“이제 전쟁이겠군요.”
“그리고 문 대표님과 상의한 결과, 다음부터 저희가 직접 제철소로 납품하기로 했어요.”

명산철제에 납품하는 것보다는 제철소로 들어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다만, 운송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철소로 한 차 들어가면 운송비로 30만 원이 깨졌다.
거기다 코드를 빌리는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중고로라도 방통차를 구입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길게 보면 그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방통차를 구입하는 것도 큰돈이 들지만, 기사님을 구하는 것도 힘들죠. 차라리 어느 정도 자리를 다질 때까진 명산의 도움을 받는 게 나아요.”

방통차는 제법 비쌌다.
중고 차량이라 해도 1억이 훌쩍 넘는 가격.
이번에 번 돈 모두를 쏟아부어야 했다.
물론 케피탈을 통해 할부로 살 수도 있었지만.

‘하지만 다 빚이야. 멀리 보면 강 부장님의 말처럼 방통차를 매입하는 게 이득처럼 보이지만…….’

방통 기사에게 매달 줘야 하는 돈은 약 400만 원.
그리고 전부 할부로 산다고 해도 방통차를 구입하면 매달 500이라는 유지비가 들어가게 된다.
방통차를 구입하지 않고 사업자를 가진 기사를 활용하면 하루 한 대씩.
한 달에 30대를 평균으로 보면 약 900만 원이라는 운송비를 지불해야 했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기사의 숙련도 자체가 달랐다.
월급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기사들은 차량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차가 한 번 고장이 나면 한 번에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깨지기도 했다.
사실 운송업을 하는 기사들이 큰돈을 번다고 해도 차량을 수리하는 데 꽤 큰 금액을 들여야 했다.
중고 방통차를 구입하는 순간, 차량을 고치는 금액이 만만치 않을 터.
그럴 바엔 차라리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업자를 지닌 기사들에게 맡기는 게 나았다.

“현장에서 빼 달라고 연락이 오지 않는 이상, 강 부장님은 계속 명산으로 출근하세요. 진 이사님께 더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해요.”
“알겠습니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단가 차이 때문에라도 손님들은 무조건 누리 리싸이클링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이 근방에 있는 고물상들의 물건을 가져올 생각은 없었다.
우리자원이야 누리 리싸이클링으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있기에 물건을 받아준다고 했을 뿐이다.
이 근방에 있는 고철들을 가져오는 순간, 그들에게 양보해야 할 게 생길 터.
거래라는 것은 함부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저도 이제 슬슬 밖으로 돌아다녀야죠. 언제까지 마당에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럼 마당은…….”
“박 부장님 계시잖아요. 어차피 계좌로 돈을 보내 주면 될 일이라 굳이 고물상에 현금을 놔둘 필요는 없죠.”

이시우가 사장이 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이제 누리 리싸이클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굳이 사장인 그가 마당에 있지 않아도 손님들은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강필중을 명산으로 보내고 사무실로 들어온 이시우가 눈을 감았다.
30톤이라는 무게를 달성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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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생성>(lv. 2)
하루 2,000㎏ 생성 가능.

제한.
└ 길이 : 1m 50㎝
└ 무게 : 30㎏(개당)

승급 조건.
└ 고철 생성으로 80,000㎏(80t)을 생성 시 lv. 3로 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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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할 수 있는 톤수가 두 배로 뻥튀기 되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이 조금 더 어려워졌다.
지금 능력대로라면 한 달에 60톤을 생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20톤을 채우려면, 10일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던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만들 수 있는 톤수가 늘어나는 대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시기가 점점 늦춰지는 시스템인가?’

솔직히 이시우는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고철 생성이라는 능력 자체만으로도 사기라고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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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시>(lv. 1)
한달 주기로 고철의 상승과 하락 폭을 알 수 있습니다.

등록된 제철소 : [대한철강]
[현재 고철 단가]
중량 B등급 : 350원.
중량 A등급 : 355원.
경량 B등급 : 310원.
경량 A등급 : 330원.

[미래 고철 단가]
중량 B등급 : 310원.
중량 A등급 : 315원.
경량 B등급 : 270원.
경량 A등급 : 2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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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자 미래시의 등록된 단가가 새롭게 변화했다.
사장이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40원의 단가가 올랐으나.
다음 달부터는 40원이라는 단가가 하락하게 될 터.

‘단가가 30원이 떨어지는 순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물건을 쌓아 놔야 해. 30원까지는 들어오는 족족 명산으로 보낸다.’

한 차가 쌓이는 순간, 바로 명산에 넘겨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이었다.
단가가 30원 정도 떨어지는 순간부터 다시 마당에 쌓아놔야 했다.
10원의 차이야 어느 정도 감수를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다만, 떨어지는 단가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몰랐다.

‘어쩌면 다시 세 달에서 네 달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쌓아 놔야 할 시점부터 최대한 유지비용을 모아야 해.’

그래야 버틸 힘이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머리싸움이었다.
미래시가 한 단계 더 상승하기 위해선 고철 생성을 3레벨까지 올려야 했다.
적어도 40일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야만 가능한 일.
이시우는 지금부터 최대한 보유 자금을 높여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고철을 사들이는 걸 멈출 수는 없지. 대신 바로바로 명산에 넘겨서 리스크를 줄여야 해.’

4∼5개월 동안 쌓아 놓은 고철은 모든 등급을 포함해서 1,000톤이 약간 넘었다.
이시우는 한 달에 1,000톤이라는 무게를 납품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한 무게를 채우기 위해서는 이 근방에 있는 모든 고철을 끌어모아야 했다.

‘적어도 이 근방을 내 구역으로 만들어 내야만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불청객이 찾아왔다.
물건을 빼는 중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
바로 장성우였다.
괜히 그가 사무실로 발걸음을 할까 봐 이시우는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돈 좀 벌었나 보지?”
“무슨 일로 오셨죠? 피차 얼굴 볼 일이 없는데 말이죠.”
“돈 좀 벌었다고 아주 시건방을 다 떠는구나.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누리는 바닥 고물상이 어울려.”

정말 어떻게 해야 이렇게까지 얄미울 수 있는지.

“이 정도 되는 평수를 가지고 바닥 고물상으로 머무는 게 이상한 거였죠.”
“풋,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건방을 떨 수 있을까?”
“글쎄요.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죠.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어요?”
“우리자원 사장이 우리와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하던데, 그 뒤에 네가 있다고 들어서 말이야.”
“아, 그래요? 글쎄요? 그냥 우리자원 사장님이 찾아와서 고철을 넘기고 싶다고만 해서, 저는 잘 모르겠네요.”

당연히 이시우는 알고 있었다.
사해진이 갑자기 찾아와 더 케이 베스틸과 거래를 끊었다며 고철을 넘기고 싶다고 한 것도 모두 예상 범주 안이었다.
이시우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자, 장성우가 얼굴을 구겼다.

“우리자원 하나 가져간다고 해서 뭐가 바뀔 거 같아? 더 케이와 맞붙을 생각은 아니겠지?”
“못할 것도 없죠. 쫄리면 더 케이도 단가를 올리시던가요.”
“하,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그냥 놔두려고 했는데, 먼저 시작한 건 너다.”
“먼저 시작한 게 저라고요? 먼저 시작한 건 장 부장님과 더 케이죠. 말은 똑바로 하세요.”

치칙―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마치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성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이시우가 명산철제를 뒤에 두고 있더라도 더 케이 베스틸은 DS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보다 언제까지 제게 반말을 하실 생각입니까? 전 그래도 장 부장님을 존중하려고 존대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면 그때 생각해 보지.”

잊을 만하면 찾아와 염장을 지르는 장성우.
옛정?
그런 건 이미 그가 떠나면서부터 버렸다.
그가 더 케이 베스틸에 자리 잡는 그 순간부터 그는 그저 적일뿐이었다.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가시죠.”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주고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
“글쎄요? 굳이 커피까지 대접할 가치가 있을까요?”

장성우에게는 커피도 아까웠다.
싸늘한 이시우의 말에 장성우가 몸을 돌렸다.
그냥 오늘은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찾아왔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민원처리는 수습했는지 모르겠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갈 텐데 말이야. 후후.”
“제가 알아서 해요. 이제 누리에 신경 끄시죠. 떠나신 분이 왜 이렇게 미련을 가지고 찾아오시는지.”

여유로운 태도와는 다르게 장성우는 속이 쓰렸다.
누리의 마당에 있던 그 수많은 고철들.
만약 이시우를 제대로 설득해서 더 케이 베스틸이 이곳을 인수했더라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었을 터였다.

“미련? 누리 따위에 미련이 있을 리가 있나. 그만두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녔던 곳인데 말이야.”
“그럼 이제 관심 좀 꺼 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말하는 꼬락서니하곤. 안 그래도 갈 거다. 아, 그리고 곧 더 케이가 이 근방에 고물상 하나를 인수할 것 같아서 말이야. 종종 얼굴을 볼 것 같은데?”

반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오, 그거 잘됐네요. 더 케이가 제대로 된 투자를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이제 기대해도 좋을 거야.”
“장 부장님도 기대하세요. 다음 목표는 장 부장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