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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 중량을 뺄 시간




12일부터 16일.
총 5일 동안 경량을 명산에게 넘긴 실중량은 120톤 정도였다.
부지런하게 하루 두 차씩 넘겼음에도 경량은 아직도 꽤 많은 양이 쌓여 있었다.
일주일의 하루를 시작하는 날.
4월 17일, 월요일 아침 8시부터 출근한 강필중이 뿌듯한 표정으로 고철장을 바라보았다.

“뭘 보고 계세요?”
“그냥… 고철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경A도 함께 빼면 시간이 빠듯할지도 모르겠군요.”
“뭐, 일단 중량부터 빼고 경량은 나중에 넘겨야죠. 지금 중요한 건 중량이니까요. 하루 세 차씩 방통차가 오고, 강 부장님께서 집게차로 함께 나르면 생각보다 금방 뺄 수 있을 거예요.”

하루에 세 대.
거기다 명산에서 운영하는 집게차 두 대도 함께 붙기로 결정되었다.
강필중 역시 집게차로 고철을 명산에 직접 납품을 들어가야 하는 시기였다.
오전 중에 방통차 상차를 끝내고 나머지 시간에는 집게차로 실어 나르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방통차 세 대는 하루 75톤까지 적재할 수 있는 대수였다.

“뭐어, 당장 단가가 떨어지겠습니까?”

아직 남은 시간은 7일.
일주일이 더 남아 있었다.
다만, 한 달 주기로 확인할 수 있는 미래시로는 자세한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최대한 24일이 오기 전에 빼는 대로 빼 봐야지.’

단가가 더 오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단가가 유지되거나 떨어질 확률이 더 높았다.
350원이라는 단가가 오랫동안 유지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빠앙―!
그때, 고물상으로 방통차 한 대가 들어왔다.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45톤 트럭이 안으로 들어와 계근대에 갖다 대자, 이시우가 다가갔다.

“공차 계근해 드릴게요. 잠시 만요.”

지난주에 온 기사들 중 하나였다.
이시우가 상차를 하느라 제대로 대화를 하진 못했지만,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마당에 계시는 겁니까, 강 부장님?”
“그럴 것 같네요. 집게차로 물건을 명산 측에 납품해야 할 것 같아서요.”

밝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기사가 중량이 쌓여 있는 고철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은 더 걸릴 수도 있겠는데요?”
“뭐어, 최대한 빼 봐야죠. 사장님께서 결정하실 문제라서요. 공차 계근이 되면 반듯하게 주차해 주세요, 기사님.”
“네, 강 부장님.”

띠리링―
종소리가 울리자 기사가 바로 차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차를 여러 번 움직여 중량을 편하게 실을 수 있도록 주차했다.
뒤에서 강필중이 수신호를 해 주며, 차량이 반듯하게 서는 것을 도와주었다.
계근을 하고 나온 이시우가 목장갑을 끼며 목을 돌렸다.

‘드디어 품에 안고 있던 자식을 내보내야 할 때가 왔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품에 안고 있던 고철이었다.
계륵 같은 녀석들은 이제 보물로 탈바꿈될 터였다.

“사무실 좀 봐 주세요, 강 부장님.”
“네, 사장님.”
“두 분 출근하시면 어제 하던 거 마무리하면 될 거라고 전해 주시고요.”

08굴삭기.
보통 작은 고물상에는 굴삭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있어도 04굴삭기 정도.
텐이라 불리는 대형 굴삭기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게 08굴삭기였다.
가진 힘과 더 길게 뻗을 수 있는 텐 굴삭기.
물론 08굴삭기로도 상차는 수월하게 가능했다.

우웅―

RPM.
차량으로 따지면 기어로 따질 수 있었다.
힘을 끝까지 내냐, 아니면 중간까지의 힘을 내냐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였다.
차량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시동을 걸어 두고 워밍업을 해 둔 상태였다.
이시우는 조종석에 올라와 RPM을 올리고 굴삭기 작동을 시작했다.
일단 중요한 것은 굴삭기의 꽁무니가 차량이 닿지 않을 정도로 회전 반경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공간이 있어야 굴삭기를 마음대로 회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차근차근 해 볼까?’

경량을 상차하는 것과 중량을 상차하는 것은 달랐다.
애초에 고철 하나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피가 작은 대신, 그만큼 무게가 나가는 중량.
그 반대로 부피가 크고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경량.
경량의 경우에는 망치질을 해야 하지만, 중량의 경우에는 그냥 차곡차곡 상차만 해도 원하는 무게가 나올 거라고 진준식이 조언해 주었다.

상차를 시작한 지 40분, 수북하게 올라온 고철을 확인한 기사가 이시우가 탑승한 굴삭기로 다가왔다.

“이제 그만 실어도 될 것 같습니다, 대표님.”
“예. 일단 중량 한 번 달아 보세요.”

그 말과 함께 이시우가 굴삭기에서 내려와 주변에 떨어진 고철을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당일을 하던 박태문과 최문식도 서둘러 달려왔다.

“오라이!”

툭툭―
바닥 정리가 끝난 뒤, 박태문이 차량을 손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총중량 4만 2,900㎏.
아슬아슬하게 중량이 맞춰졌다.
보통 과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총중량을 43톤 이상으로 실으면 안 됐다.
이번 차량에 실린 고철은 총 2만 5,180㎏이었다.
이 한 차에 무려 800만 원에 이르는 가치를 지닌 고철이 적재된 셈이었다.

“다음 차 바로 들어오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기사는 계근을 마치고 구석에 차를 대 놓고 다음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상차.
이시우가 상차를 하는 속도라면 하루 세 대는 금방 실을 수 있었다.

‘내가 재능이 있는 건가? 아니면 고철이 좋아서 그냥 퍼 담아서 일찍 끝난 건가…….’

아무리 경험이 많은 굴삭기 기사라 해도 보통은 한 시간이 걸려야 끝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40분 만에 상차를 끝내 버렸다.
지난주 경량을 상차하면서 감각을 익혔고, 이번 주 중량을 상차하면서 되도록이면 빠르게 적응을 하려 했다.

‘경량보다 중량이 더 상차하기 쉽네.’

하지만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다음 차량이 들어오자마자 이시우는 상차를 시작했다.
아까와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왔을 때, 그는 굴삭기를 멈추었다.
하지만 계근을 하자 아까보다 1톤이라는 중량이 더 나갔다.

“1톤 정도만 내리면 될 것 같은데요?”
“차 대 주세요. 바로 내려 드릴게요.”

만약 이 차가 제철소로 들어가는 차량이라면,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이 차는 명산철제의 마당으로 갈 차량이었다.
고속도로로 꼭 이동하는 게 아니라 국도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 말은 과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적재 가능한 중량을 넘는다면 차량에 무리가 갈 수도 있었다.
때문에 기사들은 최대한 중량을 맞추고 싶어 했다.
이시우는 차량 맨 뒤에 있는 고철을 집게로 집어 고철장으로 다시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수평을 맞추는 작업을 다시 해야만 했다.
굴곡이 있다면 고철은 굴러 떨어지게 될 테니까.
20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 다시 계근대로 올라간 차량.
어느 정도 중량이 맞춰졌다.
4만 3,300㎏.
아까 4만 4,200㎏이었으니 약 1톤 가까이를 내려야만 했다.

“국도로 갈 거라 43톤 넘어도 됩니다. 그럼 다음 차 들어오라 전하겠습니다, 대표님.”
“네, 그렇게 하시죠. 고생하셨습니다. 운전 조심하세요.”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차량이 망가지지 않게 집게가 들어가지도 않았으니까.
거기다 방통 안에서는 집게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감으로 어느 방통의 깊이를 가늠해야 했다.
1톤에 달하는 고철을 차에서 내리기 위해선 세 집게 정도 집어야 하는데, 고철이 잘못해서 떨어지면 차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극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다음 차가 안으로 들어오자 이시우가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았다.

“잠깐 쉬었다 가시죠, 기사님.”
“알겠습니다. 차만 대 놓겠습니다, 대표님.”

사무실로 들어온 이시우는 종이컵에 물을 가득 담아 벌컥벌컥 마셨다.

“하아, 이제 마지막 차네요.”
“힘들어 보이십니다.”
“상차하는 일이 영 적응이 안 돼서요. 경량은 상차하기 수월했는데, 중량의 경우에는 맞춰서 상차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하다 보면 적응이 되실 겁니다. 아니면 포크레인 기사를 구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다 돈이라서요. 그냥 제가 몸을 때우는 게 나아요, 강 부장님.”

규모가 큰 고물상이라면 굴삭기 기사를 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힘들다고 기사를 구할 수도 없었다.
바쁜 건 아주 잠시일 테니까.
10분 정도 사무실에 앉아 휴식을 취한 이시우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마지막 상차.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집게차로 명산에 납품을 하도록 자리를 만들어 줘야 했다.

‘하루 100톤 이상 뺀다면… 아마 6일이면 다 빼지 않을까? 물론 경량이 남아 있지만, 그건 쉬엄쉬엄 빼면 되니까. 이제 고철 생성 다음 단계까지 6일 정도 남았네.’

이시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철 생성을 이용해 하루 1톤씩 꾸준하게 만들어 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30톤의 중량 중 남은 중량은 단 6톤.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굴삭기 조종석에 들어온 이시우가 문을 닫았다.

마지막 상차 역시 한 번에 중량을 맞추진 못했다.
그 전 차량보다 중량이 더 나가는 모습에 이시우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두 번의 왕복 끝에 간신히 무게를 맞춘 이시우가 큰 자석을 집게로 쥐었다.
자석이 연결되고 발판을 밟자, 자석에 우수수 고철들이 붙기 시작했다.
집게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고철장을 정리하는 굴삭기.
모든 정리가 끝난 뒤, 이시우가 굴삭기를 한쪽으로 이동시켜 놓고 시동을 껐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났네요.”
“공차 달겠습니다, 사장님.”

집게차의 시동을 걸어 놓고 10분 정도 놔두었다.
모든 기계는 워밍업이라는 것을 해 줘야 했다.
누리의 집게차가 계근대에 올라왔다.
띠리링―
종소리가 들리자 강필중이 중량 고철이 있는 쪽으로 주차했다.
우우웅―
부드럽게 움직이는 집게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이시우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상차를 하는 걸 볼 필요는 없었으니까.

‘오늘 세 차 전부 합쳐서 76톤을 넘은 건가?’

세 대의 총중량은 7만 6,030㎏이었다.
오늘 방통차에 상차한 금액은 2,400만 원 가량.
그 돈을 가지고 명산에서 받은 3,000만 원의 선입금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지난주에 뺀 경량으로도 운영비는 충족되니까.

‘명산에서 들어올 집게차 두 대를 포함하면 오늘 100톤은 가뿐히 넘기겠지. 그럼 선입금 모두를 까고도 남을 금액이니.’

중량 230원∼240원에 구입하여 320원에 넘기는 일이었다.
80원에서 90원의 이득을 보았다.
이 정도라면 몇 개월 동안 마당에 고철을 쌓아 놓은 보람이 있었다.
운송비는 명산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니, 순이익으로 따지면 약 50원을 이득 볼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제 숨통 좀 트이겠네. 하아…….”

살았다는 안도.
운영금이 딱 1,000만 원 정도 남은 상태에서 다시 위로 올라갈 기회가 주어졌다.

‘아버지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자금 압박을 받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최소한의 자금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 아버지가 얼마나 걱정을 했을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시우도 운영 자금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가슴을 졸였으니까.
다행히 명산의 지원 덕분에 버텼다.

빵―!

강필중이 상차를 하는 도중, 고물상 안으로 집게차 한 대가 들어왔다.
5톤차보다 더 큰 차량이었다.
계근대에 차량을 세운 뒤, 운전석에서 내린 이는 진준식이었다.
진준식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진 이사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네요?”
“하하, 집게차 기사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요.”

비록 직급은 이사였으나 그는 부대표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몰랐을 때, 그가 직접 집게차를 끌고 처음 왔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위치를 알고 나서 꽤나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한 대는 아직 안 왔나요?”
“아니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강 부장님께서 상차를 하시는 것 같군요.”
“곧 끝날 거예요. 일단 차를 계근대에서 빼 주세요.”
“알겠습니다.”

걱정하던 운영비에 대해선 이틀이면 해결될 일이었다.
하루 100톤에 달하는 중량 고철을 내보낸다면 딱 3,000만 원이라는 금액이 넘게 들어오게 될 테니까.

‘이제 돈을 벌 일만 남은 건가?’

물론 하루 들어오는 고철의 양도 있었다.
하지만 3,000만 원의 선입금만 제외하게 된다면, 나머지 금액들은 온전히 운영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더 이상 문재신에게 자금에 대한 부분을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이제 곧 내가 사장이 된 지 한 달이 지나는 시점이야. 고철 생성 능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다음 달 고철 단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기도 하고. 이날만을 한 달 동안 기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