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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된다
장성우.
더 케이 베스틸은 그 다음이었다.
누리 리싸이클링에 그만큼 똥을 싸지르고도 더 케이 베스틸에 자리 잡는 꼴은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장성우가 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더 케이 베스틸에서도 알고 있을 거라는 점.
분명 장성우를 완벽하게 믿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사냥개는 늙거나 다치면 버려지게 되어 있었다.
표현이 거칠지만, 실제로 더 케이 베스틸에서는 장성우를 사냥개,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장성우를 사람으로 대하던 아버지에게 감사하지 못할망정 뒤통수나 때리다니.
참으로 눈썰미가 부족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었다.
“10년을 더 굴러도 넌 절대 나를 못 이겨.”
장성우는 이시우가 고물상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자신이 다 알려 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다음 목표가 자신이라는 말에도 그는 태평하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말에 이시우가 실소를 지었다.
“더 케이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네요.”
이런 사람을 비싼 월급을 주며 데려간 더 케이 베스틸.
지저분하게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마음이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 이시우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업체였다면 절대 그를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 네 아버지 얼굴에 침 뱉기인 건 알고 있냐?”
“어라?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제 말을 인정하시나 보네요? 뭐, 아버지가 당신 같은 사람들 계속 데리고 있으려 한 것은 솔직히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놈의 정이 뭔지… 그런 정을 걷어찬 게 뻔뻔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으세요?”
“불효자 녀석.”
“네네, 맞아요. 저는 불효자고 장 부장님은 더러운 배신자죠. 뭔 말이 그렇게 많으세요? 가신다면서요. 빨리 가세요.”
그 말에 장성우가 얼굴을 붉혔지만, 이시우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멀리서 뭐라고 떽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이시우가 사무실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던 장성우는 몸을 홱 돌렸다.
‘하여간 싸가지 없게 말만 잘해. 그래도 다행이지. 우리자원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더 케이 대표도 가만히 있었을 텐데 말이야.’
누리 리싸이클링을 인수하기 위해 준비한 자금.
이시우의 설득이 실패하면서 더 케이 베스틸은 그 자금을 고스란히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런 우리자원의 통보.
거래처 한 곳이 떨어나간다고 해도 더 케이 베스틸에는 딱히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누리 리싸이클링이 치고 올라오는 순간,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막 올라오는 새싹을 밟아 주기 위해 더 케이 베스틸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건 누리와 가까운 곳에 고물상을 인수하는 것.
그리고 그 고물상의 사장으로 장성우로 지정하고자 했다.
‘넌 절대 내 인맥을 넘지 못해. 아무리 기를 써 봤자, 시간이 지나도 내 아래일 거다.’
그는 10년 동안 이 근방에서 활동해 왔다.
그에게는 다양한 인맥이 있었다.
누리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많았고, 민원이라는 요소는 그중 한 가지일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는 순간, 모든 거래처를 차단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비철들을 어디에 넘기는지 몰라도 이 근방에서 내가 모르는 업체는 없지.’
그는 모르고 있었다.
더 에스란 업체는 더 케이 베스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그것도 모른 채 그는 누리 리싸이클링과 거래하는 거래처를 압박을 통해 중단시킬 목적이었다.
어차피 고철을 주업으로 삼은 고물상에 입장에서는 비철을 넘기는 거래처가 중요한 일이었다.
자기합리화를 통해 기분이 다시 좋아진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누리 리싸이클링을 벗어났다.
***
사무실로 들어온 이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 케이가 이 근방으로 온다고? 그럼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저 인간이 담당자가 되겠지.’
잠깐 생각을 하며 사무실에 앉아 있던 이시우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장성우가 나간 자리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박태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요리조리 손짓하고 있는 그 덕분에 이시우가 피식 웃었다.
“박 부장님.”
“네, 사장님.”
이시우의 부름에 입구에 서 있던 박태문이 달려왔다.
“잠시 외출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당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히 일 보고 오시죠.”
“고철 단가는 잘 알고 계시죠?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전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샤워실로 들어간 이시우는 오랜만에 작업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한 달 가까이 이시우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일을 마쳐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고물상에 상주했다.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은 이시우가 사무실에 있는 승용차 키를 손에 쥐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랜만에 승용차에 오른 이시우가 명산철제의 주소를 네비에 입력했다.
문재신이 종종 찾아오는 일이 있어도 이시우가 직접 명산으로 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출발하기 전, 혹시 길이 엇갈릴 수도 있기에 이시우가 문재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 대표님.]
“대표님, 지금 가게에 계십니까?”
[예, 오늘은 마당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오늘은 제가 대표님을 찾아뵐 일이 있어서 마당으로 가려고 합니다. 시간되십니까?”
[이 대표님이 오신다면 시간을 비워 놔야죠. 본사 마당으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소 보내 드릴까요?]
“주소는 강 부장님께 전달받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시우는 승용차를 끌고 명산철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용인시 바로 옆에 있는 수원시.
마당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강필중이 주차장에서 이시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진 이사님.”
강필중의 옆에는 진준식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다녔으며, 진준식은 최대한 강필중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어쩐 일로 방문해 주셨습니까? 일이 있으면 제가 찾아가도 되는데.”
“항상 고물상으로 와 주시니, 저도 한 번 방문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이제 바쁜 일정이 끝났으니, 마당에 있는 것도 줄여야죠.”
“잘 오셨습니다.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마어마한 규모.
산 하나를 통째로 설계한 곳이었다.
언뜻 보았을 때, 1만 평은 족히 넘어가는 크기였다.
이시우가 명산철제의 마당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직접 와 보니, 규모가 차원이 다르네요.”
“한 달에 제철소로 납품하는 톤수만 해도 1,000톤이 훌쩍 넘어가니까요. 고철을 보관할 수 있는 마당의 크기도 중요하죠.”
굴삭기만 해도 스쳐지나가는 것만 해도 세 대가 넘었다.
그것도 집게가 달려 있는 굴삭기.
그리고 고철을 절단하는 가위가 달려 있는 굴삭기도 있었다.
“절단 가위는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길로틴이 있어서 그런지,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엔 참 많이 사용했는데…….”
“그래도 절단 가위 하나 있으면 편하긴 하죠.”
“맞습니다. 길로틴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길이가 있으니까요. 그에 맞춰 재단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진준식과 이야기를 하던 이시우는 그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문재신이 깔끔한 복장을 입고 사무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직원이 여섯 명 정도 있었다.
“진작 와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이시우는 문재신을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진준식이 직접 커피를 타서 가져와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놓았다.
진준식이 방을 나가려 하자, 이시우가 그를 불렀다.
“진 이사님도 잠시 앉으시죠.”
“아, 예. 대표님.”
진준식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이시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더 케이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대표님.”
“장성우 부장이겠군요.”
“맞습니다. 누리 근처에 고물상 하나를 인수했다고 하더군요.”
“흐음, 더 케이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받아쳐 주려고 합니다.”
장성우처럼 비겁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정정당당하게, 그리고 한 치의 부끄럼 없이 장성우를 상대로 제대로 이기고 싶었다.
“저희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단가 경쟁이 심화될 거고, 그렇게 되면 누리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고철을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의 텀이라도 있다면, 단가 경쟁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빈틈을 매우기 위해서라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더 케이가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니, 누리 입장에서도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 그 격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아쉬운 일이었다.
이대로 제철소로 보내기에는 질이 너무 좋았으니까.
물론, 운송비가 들지 않고 코드 수수료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문재신의 입장에선 좋은 고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럼 이건 어떻겠습니까? 제철소로 들어가는 단가의 딱 10원을 빼고 맞춰 드리겠습니다. 340원이라는 단가에 저희가 누리의 고철을 매입하겠습니다.”
진준식과 상의를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고철을 다루는 직업을 지닌 사람들은 문재신의 결정에 의아함을 보일 터.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질 나쁜 고철들과 누리의 고철들을 적당히 섞어서 길로틴으로 찍어 낸다면, 그만큼 이득이었으니까.
보통 중량의 물건에 경A를 섞는 것을 등급 따먹기라 불렀다.
경A를 중B로 팔아먹을 수 있다면 20원을 더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 길로틴으로 찍어 내는 GS등급은 20원 정도 더 단가를 받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명산으로 물건을 보내죠.”
“감사합니다, 대표님.”
“제가 감사해야 해야죠.”
운송비를 들이지 않고도 제철소로 보내는 단가로 주겠다는 말.
현 시점에서 이시우에게 큰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던 이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가도 되니,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진 이사?”
“네,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이시우는 문재신에게 받은 주소를 입력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진준식과 강필중.
그렇지 않아도 이시우는 걱정했다.
혹시나 다른 업체에서 왔다고 무시받지는 않을까 말이다.
하지만 이시우가 본 강필중은 명산의 직원들과 잘 섞여 지내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강 부장님을 보내 놓고 한 번도 오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이시우는 더 에스에 도착해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생소한 젊은 손님이 차에서 내리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달려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 이시우라고 합니다.”
이시우는 더 에스 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공 부장의 비리를 파악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고물상 대표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젊은 사장이었어?’
김인식은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 덕분에 공 부장의 비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젊은 사장인지 몰랐다.
“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 그래도 김인식이 이시우가 오면 바로 안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남자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자, 김인식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중이었다.
“사장님,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인식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명산 대표님께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제 방으로 가실까요?”
“네, 그러시죠.”
공 부장에 대해서 짧게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 할 거래에 대해서도 상의를 했다.
“혹시 더 케이라는 업체를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이 바닥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좁았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건너 건너로 알고 있었으니까.
“더 케이의 비철을 가져가는 업체가 저희와 거래를 하는 곳입니다.”
보통 비철은 압축을 해서 공장으로 보낸다.
특히 알루미늄의 경우엔 사각형으로 압축하여 대량으로 공장에 납품하는 게 기본 상식이었다.
“사실 문 대표님께 대표님과 더 케이와의 관계를 들었습니다.”
김인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특히나 고물상이라는 업종은 한 번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퍼져 나갈 정도였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왔습니다. 듣기로는 누리 주변에 더 케이가 고물상 하나를 인수했다고 하더군요.”
“길들이기로 보입니다. 사실 대표님의 능력을 보면 더 케이의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죠. 구역이 겹치는 이상 부딪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고철을 하는 업종은 비철도 중요합니다.”
사실 고철보다 그곳에서 나오는 비철을 판매함으로 얻는 순이익이 더 컸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더 에스가 관여한다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표님께서 원하신다면 더 케이를 압박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업체의 이름은 비슷했다.
하지만 하는 업종은 완전히 달랐다.
서로 간에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절 서로 관여하지 못 했으니까.
하지만 더 케이와 거래하는 업체보다 더 에스가 위에 서 있었다.
이시우가 원한다면 더 케이와 거래하는 업체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굳이 압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대표님께서 누리와 거래를 이어 나간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거래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리가 더 에스를 배신하지 않는 한, 거래는 계속 이어 나갈 테니까요.”
장성우.
더 케이 베스틸은 그 다음이었다.
누리 리싸이클링에 그만큼 똥을 싸지르고도 더 케이 베스틸에 자리 잡는 꼴은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장성우가 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더 케이 베스틸에서도 알고 있을 거라는 점.
분명 장성우를 완벽하게 믿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사냥개는 늙거나 다치면 버려지게 되어 있었다.
표현이 거칠지만, 실제로 더 케이 베스틸에서는 장성우를 사냥개,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장성우를 사람으로 대하던 아버지에게 감사하지 못할망정 뒤통수나 때리다니.
참으로 눈썰미가 부족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었다.
“10년을 더 굴러도 넌 절대 나를 못 이겨.”
장성우는 이시우가 고물상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자신이 다 알려 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다음 목표가 자신이라는 말에도 그는 태평하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말에 이시우가 실소를 지었다.
“더 케이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네요.”
이런 사람을 비싼 월급을 주며 데려간 더 케이 베스틸.
지저분하게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마음이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 이시우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업체였다면 절대 그를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 네 아버지 얼굴에 침 뱉기인 건 알고 있냐?”
“어라?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제 말을 인정하시나 보네요? 뭐, 아버지가 당신 같은 사람들 계속 데리고 있으려 한 것은 솔직히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놈의 정이 뭔지… 그런 정을 걷어찬 게 뻔뻔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으세요?”
“불효자 녀석.”
“네네, 맞아요. 저는 불효자고 장 부장님은 더러운 배신자죠. 뭔 말이 그렇게 많으세요? 가신다면서요. 빨리 가세요.”
그 말에 장성우가 얼굴을 붉혔지만, 이시우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멀리서 뭐라고 떽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이시우가 사무실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던 장성우는 몸을 홱 돌렸다.
‘하여간 싸가지 없게 말만 잘해. 그래도 다행이지. 우리자원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더 케이 대표도 가만히 있었을 텐데 말이야.’
누리 리싸이클링을 인수하기 위해 준비한 자금.
이시우의 설득이 실패하면서 더 케이 베스틸은 그 자금을 고스란히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런 우리자원의 통보.
거래처 한 곳이 떨어나간다고 해도 더 케이 베스틸에는 딱히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누리 리싸이클링이 치고 올라오는 순간,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막 올라오는 새싹을 밟아 주기 위해 더 케이 베스틸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건 누리와 가까운 곳에 고물상을 인수하는 것.
그리고 그 고물상의 사장으로 장성우로 지정하고자 했다.
‘넌 절대 내 인맥을 넘지 못해. 아무리 기를 써 봤자, 시간이 지나도 내 아래일 거다.’
그는 10년 동안 이 근방에서 활동해 왔다.
그에게는 다양한 인맥이 있었다.
누리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많았고, 민원이라는 요소는 그중 한 가지일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는 순간, 모든 거래처를 차단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비철들을 어디에 넘기는지 몰라도 이 근방에서 내가 모르는 업체는 없지.’
그는 모르고 있었다.
더 에스란 업체는 더 케이 베스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그것도 모른 채 그는 누리 리싸이클링과 거래하는 거래처를 압박을 통해 중단시킬 목적이었다.
어차피 고철을 주업으로 삼은 고물상에 입장에서는 비철을 넘기는 거래처가 중요한 일이었다.
자기합리화를 통해 기분이 다시 좋아진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누리 리싸이클링을 벗어났다.
***
사무실로 들어온 이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 케이가 이 근방으로 온다고? 그럼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저 인간이 담당자가 되겠지.’
잠깐 생각을 하며 사무실에 앉아 있던 이시우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장성우가 나간 자리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박태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요리조리 손짓하고 있는 그 덕분에 이시우가 피식 웃었다.
“박 부장님.”
“네, 사장님.”
이시우의 부름에 입구에 서 있던 박태문이 달려왔다.
“잠시 외출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당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히 일 보고 오시죠.”
“고철 단가는 잘 알고 계시죠?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전화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샤워실로 들어간 이시우는 오랜만에 작업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한 달 가까이 이시우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일을 마쳐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고물상에 상주했다.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은 이시우가 사무실에 있는 승용차 키를 손에 쥐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랜만에 승용차에 오른 이시우가 명산철제의 주소를 네비에 입력했다.
문재신이 종종 찾아오는 일이 있어도 이시우가 직접 명산으로 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출발하기 전, 혹시 길이 엇갈릴 수도 있기에 이시우가 문재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 대표님.]
“대표님, 지금 가게에 계십니까?”
[예, 오늘은 마당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오늘은 제가 대표님을 찾아뵐 일이 있어서 마당으로 가려고 합니다. 시간되십니까?”
[이 대표님이 오신다면 시간을 비워 놔야죠. 본사 마당으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소 보내 드릴까요?]
“주소는 강 부장님께 전달받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시우는 승용차를 끌고 명산철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용인시 바로 옆에 있는 수원시.
마당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강필중이 주차장에서 이시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진 이사님.”
강필중의 옆에는 진준식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다녔으며, 진준식은 최대한 강필중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어쩐 일로 방문해 주셨습니까? 일이 있으면 제가 찾아가도 되는데.”
“항상 고물상으로 와 주시니, 저도 한 번 방문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이제 바쁜 일정이 끝났으니, 마당에 있는 것도 줄여야죠.”
“잘 오셨습니다.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마어마한 규모.
산 하나를 통째로 설계한 곳이었다.
언뜻 보았을 때, 1만 평은 족히 넘어가는 크기였다.
이시우가 명산철제의 마당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직접 와 보니, 규모가 차원이 다르네요.”
“한 달에 제철소로 납품하는 톤수만 해도 1,000톤이 훌쩍 넘어가니까요. 고철을 보관할 수 있는 마당의 크기도 중요하죠.”
굴삭기만 해도 스쳐지나가는 것만 해도 세 대가 넘었다.
그것도 집게가 달려 있는 굴삭기.
그리고 고철을 절단하는 가위가 달려 있는 굴삭기도 있었다.
“절단 가위는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길로틴이 있어서 그런지,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엔 참 많이 사용했는데…….”
“그래도 절단 가위 하나 있으면 편하긴 하죠.”
“맞습니다. 길로틴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길이가 있으니까요. 그에 맞춰 재단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진준식과 이야기를 하던 이시우는 그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문재신이 깔끔한 복장을 입고 사무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직원이 여섯 명 정도 있었다.
“진작 와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이시우는 문재신을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진준식이 직접 커피를 타서 가져와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놓았다.
진준식이 방을 나가려 하자, 이시우가 그를 불렀다.
“진 이사님도 잠시 앉으시죠.”
“아, 예. 대표님.”
진준식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이시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더 케이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대표님.”
“장성우 부장이겠군요.”
“맞습니다. 누리 근처에 고물상 하나를 인수했다고 하더군요.”
“흐음, 더 케이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받아쳐 주려고 합니다.”
장성우처럼 비겁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정정당당하게, 그리고 한 치의 부끄럼 없이 장성우를 상대로 제대로 이기고 싶었다.
“저희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단가 경쟁이 심화될 거고, 그렇게 되면 누리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고철을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의 텀이라도 있다면, 단가 경쟁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빈틈을 매우기 위해서라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더 케이가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니, 누리 입장에서도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 그 격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아쉬운 일이었다.
이대로 제철소로 보내기에는 질이 너무 좋았으니까.
물론, 운송비가 들지 않고 코드 수수료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문재신의 입장에선 좋은 고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럼 이건 어떻겠습니까? 제철소로 들어가는 단가의 딱 10원을 빼고 맞춰 드리겠습니다. 340원이라는 단가에 저희가 누리의 고철을 매입하겠습니다.”
진준식과 상의를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고철을 다루는 직업을 지닌 사람들은 문재신의 결정에 의아함을 보일 터.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질 나쁜 고철들과 누리의 고철들을 적당히 섞어서 길로틴으로 찍어 낸다면, 그만큼 이득이었으니까.
보통 중량의 물건에 경A를 섞는 것을 등급 따먹기라 불렀다.
경A를 중B로 팔아먹을 수 있다면 20원을 더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 길로틴으로 찍어 내는 GS등급은 20원 정도 더 단가를 받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명산으로 물건을 보내죠.”
“감사합니다, 대표님.”
“제가 감사해야 해야죠.”
운송비를 들이지 않고도 제철소로 보내는 단가로 주겠다는 말.
현 시점에서 이시우에게 큰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던 이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가도 되니,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진 이사?”
“네,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이시우는 문재신에게 받은 주소를 입력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진준식과 강필중.
그렇지 않아도 이시우는 걱정했다.
혹시나 다른 업체에서 왔다고 무시받지는 않을까 말이다.
하지만 이시우가 본 강필중은 명산의 직원들과 잘 섞여 지내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강 부장님을 보내 놓고 한 번도 오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이시우는 더 에스에 도착해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생소한 젊은 손님이 차에서 내리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달려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 이시우라고 합니다.”
이시우는 더 에스 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공 부장의 비리를 파악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고물상 대표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젊은 사장이었어?’
김인식은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 덕분에 공 부장의 비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젊은 사장인지 몰랐다.
“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 그래도 김인식이 이시우가 오면 바로 안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남자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자, 김인식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중이었다.
“사장님,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인식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명산 대표님께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제 방으로 가실까요?”
“네, 그러시죠.”
공 부장에 대해서 짧게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 할 거래에 대해서도 상의를 했다.
“혹시 더 케이라는 업체를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이 바닥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좁았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건너 건너로 알고 있었으니까.
“더 케이의 비철을 가져가는 업체가 저희와 거래를 하는 곳입니다.”
보통 비철은 압축을 해서 공장으로 보낸다.
특히 알루미늄의 경우엔 사각형으로 압축하여 대량으로 공장에 납품하는 게 기본 상식이었다.
“사실 문 대표님께 대표님과 더 케이와의 관계를 들었습니다.”
김인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특히나 고물상이라는 업종은 한 번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퍼져 나갈 정도였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왔습니다. 듣기로는 누리 주변에 더 케이가 고물상 하나를 인수했다고 하더군요.”
“길들이기로 보입니다. 사실 대표님의 능력을 보면 더 케이의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죠. 구역이 겹치는 이상 부딪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고철을 하는 업종은 비철도 중요합니다.”
사실 고철보다 그곳에서 나오는 비철을 판매함으로 얻는 순이익이 더 컸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더 에스가 관여한다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표님께서 원하신다면 더 케이를 압박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업체의 이름은 비슷했다.
하지만 하는 업종은 완전히 달랐다.
서로 간에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절 서로 관여하지 못 했으니까.
하지만 더 케이와 거래하는 업체보다 더 에스가 위에 서 있었다.
이시우가 원한다면 더 케이와 거래하는 업체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굳이 압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대표님께서 누리와 거래를 이어 나간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거래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리가 더 에스를 배신하지 않는 한, 거래는 계속 이어 나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