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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 경량 상차




다음 날.
이시우는 새벽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나왔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곧바로 고철장으로 걸어갔다.

‘워밍업을 할 시간이야. 오늘부터 시작이네. 후우…….’

이시우는 고철 생성 능력으로 고철을 만들어 내고 굴삭기의 시동을 걸었다.
꽤 연식이 많은 굴삭기였기에 사용 전에 워밍업이라는 것을 해 줘야만 했다.
워밍업이란 유압이 곳곳에 잘 흘러들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사람에게 있어 피와도 같은 요소가 유압유였다.
이 유압이라는 것이 굴삭기가 제대로 동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이시우는 집게를 여러 번 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붕대를 움직였다.
좌우 회전을 통해 유압유가 더 잘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약 30분의 워밍업을 마치고 그는 본격적으로 조이스틱을 움직였다.

만들어 놓은 철근을 잘 섞고, 경량 위에 집게를 올려놓은 이시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고물상의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어제 진준식은 8시에 차가 도착할 것이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리고 현재 시각은 7시 50분.
이제 10분만 더 지나면 차량이 들어올 터였다.
이시우는 굴삭기에서 내려와 사무실 앞에 섰다.
그리고 55분쯤 되었을 때, 45톤 방통 차량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방통 차량이란 집게차처럼 많은 고철을 적재하기 위해 개조한 차로, 집게가 없는 대신 양쪽 문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계근대에 차를 딱 맞춰 세워 두고 기사가 내리자, 이시우가 살갑게 인사했다.
그는 고철을 나르는 기사 중 하나로 명산철제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방통 기사들은 개인 사업자였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기사는 조금 긴장한 듯한 말투였다.
이곳에 오기 전, 진준식으로부터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실수하지 말라는.
아무리 이시우가 다른 고물상의 대표들보다 어리다고 해도 결코 무시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꼼꼼하고 차분한 진준식이 이토록 경고할 만한 이유가 조금 궁금했지만, 기사는 굳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문제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공차 계근할게요.”
“네, 대표님. 오늘 경량부터 상차한다고 들었는데…….”
“네, 바로 실어 드릴 거예요.”

이시우는 공차 계근을 하고 미리 경량 앞에 가져다 놓은 굴삭기에 올라갔다.
처음 상차를 하는 것이었으나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냥 집게로 퍼 담아 상차를 한다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시우의 생각처럼 상차는 쉽지 않다.
특히 경량을 실을 때는 더더욱.

“스톱!”

굴삭기 앞으로 차를 주차한 기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차가 처음이라고 진 이사님께 들었습니다만.”
“네. 처음이라 한 번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으… 웬만하면 운전석이 있는, 탑 쪽으로는 회전을 자제하셔야 합니다.”

기사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지만, 그 정도는 기본이었다.
운송업으로 직업을 삼은 자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재산은 차량이었다.
기사의 부탁이 이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굴삭기로 올라갔다.
고철들이 엄청나게 높이 쌓여 있었다.
원하는 곳에 집게를 박는 것도 기술이었다.
이윽고 붕대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렁거리는 집게.
집게는 고철 더미의 가장 위쪽, 그보다 살짝 아래를 잡은 뒤 오므렸다.
그러자 꽤 많은 고철이 딸려 왔다.
위에 쌓인 고철이 우르르 무너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고철들은 정확하게 굴삭기 궤도가 있는 곳까지 덜어졌다.
자칫 잘못해서 고철이 조종석 창문을 뚫게 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항상 안전에 유념해야 했다.
그리고 이시우는 그 방면에 있어서 철저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우우웅―
처음 하는 상차였지만, 이시우는 어깨너머로 본 것들이 많았다.
그는 집게로 한 움큼 고철을 집어 방통차의 가장 앞으로 이동시켰다.
그러고는 집게를 회전시켜 방통 안에서 고철이 동그랗게 뭉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경량을 방통에 적재했다.

40분 정도가 흐르자 방통 위로 고철이 수북하게 쌓였다.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이 많은 고철들을 상차하기 위해서는 망치질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중량 고철 중 무거운 고철로 방통 위를 찍으며 압축하는 작업.
다만, 자칫 잘못하면 차량이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이시우는 정확하게 집게로 망치가 될 고철을 집고 방통 위까지 수북하게 올라온 경량을 위에서 찍었다.
꾸욱―
그렇게 아무런 문제도 없이 모든 상차가 마무리되었다.
이시우는 후련한 표정으로 굴삭기에서 내려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고철들을 다시 고철장으로 집어 던지고 있자, 기사가 사무실에서 나와 달려왔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요, 대표님.”

보통 상차를 하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하지만 이시우는 단 40분 만에 상차를 끝내 버렸다.
재능이라면 재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만져 와 굴삭기의 숙련도가 높은 덕도 있었다.

“물건 내리고 바로 오시죠. 오늘 최대한 상차를 하고 싶네요.”
“하루 두 대씩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두 대 맞아요. 상차를 끝내고 저도 제 일을 해야죠.”
“아, 알겠습니다.”

너무도 능숙하게 일을 끝낸 탓에 기사는 순간 이시우가 전문 기사라고 착각했다.
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제야 그가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임을 깨달은 그는 허겁지겁 대답했다.
이시우는 차량에 올라가 있는 고철들을 바라보았다.
총 1만 2,560㎏.
경량 B이긴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많은 양을 상차하지 못했다.
쉽게 찌그러지지만, 부피가 큰 만큼 원하는 무게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기사가 계근대에서 차를 빼고 위로 올라가 망을 씌웠다.
맞춤 제작된 망으로 고철들을 꽁꽁 둘러싼 기사가 다시 이시우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 차가 바로 들어올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사님이 또 오시는 게 아닌가요?”
“네. 전 다음 일정이 있어서… 다음 기사에게 빨리 오라고 말은 해 놓겠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물건을 실은 첫 차가 떠난 뒤, 30분이 흘러서야 다음 차량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재발리 계근을 해 주고 굴삭기에 오른 이시우가 차근차근 물건 상차를 시작했다.
오전 중으로 상차를 마무리하면, 손님을 받는 데 지장이 없을 테니까.
다행히 손님들은 아침 일찍 오지 않았으니까.
새벽에 활동하는 도보꾼들이었으나, 이시우 혼자 고물상의 아침을 책임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최대한 직원들이 출근한 뒤에 오고자 시간 조정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급할 때는 이시우가 문을 열자마자 물건을 내리고 가긴 했지만, 오늘은 다행히 보도꾼들이 아침 일찍부터 오는 일은 없었다.
이시우는 서둘러 다음 차의 상차까지 마무리했다.
오늘 총 톤수는 2만 5,480㎏이었고, 662만 4,800원이라는 금액이 들어왔다.

‘하아, 이제 숨통이 좀 트이겠네.’

보유 자금이 거의 다 떨어진 지금, 오늘 일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이제 주변을 정리하고자 고철을 주워 경량 쪽으로 집어 던지고 있자, 출근한 박태문과 최문식이 그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뭘요. 고생은 기사분들이 더 하셨죠. 전 마저 정리하고 사무실에 있을게요.”
“네, 사장님. 그럼 저희는 고철을 마저 잘라 놓겠습니다.”
“되도록 포크레인이 움직이는 곳에 있지 마세요.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잘라야 하는 건 멀찍이 빼놨으니까요. 집게차로 작업할 테니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사장님.”
“알겠어요. 믿고 있을게요. 아, 그리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으면 계근 좀 해 주세요. 고철을 쳐 올리고 자석질도 해야 해서요.”

고철을 뺀 곳, 움푹 파인 모습을 이시우가 바라보았다.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고철장.
이 고철들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손해를 보고 고철을 더 케이 베스틸에 넘길 수는 없으니까.

‘장성우…….’

괜히 그 때문에 아버지가 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열불이 났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 낸 이시우가 굴삭기 조종석으로 올라갔다.
내일 상차할 물건을 미리 한쪽으로 빼놔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꽤 높게 쌓여 있는 고철을 바라보았다.

‘시작해 볼까?’

***

고철장을 정리하고 굴삭기에서 내려온 이시우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 전 등급 20원 인상합니다. 업무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명산철제에서 온 문자였다.
물건을 빼기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단가 상승 문자를 받았다.
340원으로 오르고 시간의 텀을 두고 350원이 될 줄 알았으나, 곧바로 20원의 단가가 올른 것이었다.

‘그럼 관건은 350원이라는 금액에서 더 올라갈지, 아니면 떨어지게 될지가 문제겠네. 이미 고철을 빼기 시작했으니, 크게 상관없지만.’

어차피 현장은 고철 단가가 오르든 떨어지든 뺄 시기를 미루지 못한다.
고물상이야 오를 때까지 속된 말로 ‘존버’를 할 수 있으나, 현장은 그렇지 못했다.
이시우는 한결 편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기지개를 켜며 마당을 감싸고 있는 햇빛을 느끼고 팔로 눈을 가렸다.

‘모든 고철을 빼면 얼마나 나오려나?’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듯 이시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로 걸어갔다.

***

30분 뒤, 마당 안으로 문재신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대표님, 단가 인상 문자 받으셨습니까?”

사무실에서 세금 계산처를 처리하고 있던 이시우.
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오는 문재신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350원이 됐네요?”
“이번 주 배차, 모두 취소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20원의 이득을 볼 수 있었으나, 그 금액 때문에 명산철제와의 약속을 깰 생각은 없었다.

“배차는 그대로 놔두시죠. 어차피 빼기로 한 거지 않습니까?”
“20원을 더 벌 수 있는 일입니다. 다음 주까지만 기다리면…….”
“지금부터 빼는 게 맞습니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 자칫 시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굴삭기가 고장 나거나, 아니면 명산철제의 일정이 어긋나게 된다면 큰일이었다.
굴삭기의 고장이야 우발적인 것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명산철제의 일정이 어긋나는 것 정도는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보통 단가가 오르면 그동안 기다리던 고물상에서 요청을 했다.
물건을 빼 달라고.
이미 330원이 되었을 때 물건을 뺀 고물상이 대다수겠지만, 빼지 않고 기다린 곳도 있을 터였다.
때문에 명산철제의 일정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배차 문제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있고요. 지금 같은 시기에 대부분의 고물상에서 물건을 빼려 할 테니까요.”
“흐음…….”
“다음 주부터 강 부장님도 집게차를 이용해 명산에 납품을 시작할 겁니다. 솔직히 말해 저 많은 양을 한 번에 빼내려면 일주일도 부족할 겁니다.”

하루에 운송할 수 있는 톤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차량을 보내더라도 문제는 상차를 할 수 있는 굴삭기가 한 대뿐이라는 데 있었다.

“확실히 그 문제도 있군요. 오늘부터 고물상들이 물건을 빼 달라고 전화가 올 테니까요.”
“서로 일정을 조율하며 양보를 해 줘야지, 제 생각만 주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냥 이번 주는 약속한 것처럼 경량 위주로 빼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신은 이시우가 고철을 빼는 것을 중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달려왔다.
명산철제에서 운영 중인 차량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거기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제철소로 납품까지 들어가야 하는 상황.
운송 기사들은 대부분 제철소 납품을 선호하지 고물상에서 마당으로 가져오는 이적을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철소로 들어가면 운송비를 30만 원이나 더 받을 수 있으나, 이적을 하게 되면 10만 원으로 운송비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음 주에 중량을 뺄 땐 방통차는 물론이고, 명산의 모든 집게차가 달라붙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근데 일정이 맞춰질까요?”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저희가 거래하는 고물상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명산철제는 대상이긴 했으나, 고물상과 거래를 되도록 하지 않는 업체였다.
명산이 물건을 가져오는 곳은 대부분 공장이나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고물상과의 거래를 완벽하게 끊어 낼 수는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가장 물건이 많이 나오는 곳은 결국 고물상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확실한 신뢰 관계와 물건이 깨끗하다는 전제 아래에 명산철제는 거래를 주도해 왔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업체들이 지난주부터 빼기 시작해서 물건의 대부분을 뺐습니다. 저희 측에 코드를 받고 제철소로 직접 들어가는 고물상도 꽤 많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다른 것보다 먼저 명산의 일정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