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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 목표치는 아니지만




다행히 감춰 둔 철근을 그 다음 날에 꺼낼 수 있었다.
무려 한 시간이나 작업하며 신중하게 고철을 숨겼으니까.
직원들은 고철 틈에서 나오는 철근 뭉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철사로 철근을 한 다발씩 묶어 따로 위치를 지정해 내려놓았다.

그렇게 이시우가 누리의 사장이 된 지 10일이 지났을 때.
진준식의 예상처럼 10원의 단가가 상승했다.
그리고 한 주하고 조금 더 흐른 지금, 10원이라는 단가가 더 올라갔다.
강필중은 현장을 위주로 영업을 뛰었으며, 3일에 한 번 꼴로 5∼10톤 정도의 물건을 가져왔다.

‘이제 20원만 더 오르면 돼.’

이시우가 사장이 된 지 3주 차.
20원이라는 금액이 올랐지만, 아직 부족했다.

4월 10일.
이시우는 직원들의 월급을 무사히 전달했다.
10일 동안 모아 놓은 5톤의 철근을 중고 자제 업자에게 넘겼다.
본래라면 10톤이 되어야 하겠지만, 너무 많은 양이 나와서는 안 됐다.
10톤의 딱 절반.
5톤 정도 되는 양을 넘기고 300만 원이라는 돈을 받았다.
이는 모두 강필중의 월급으로 지급되었다.
그리고 비철을 넘겨받은 돈까지 해서 박태문과 최문식의 월급을 가까스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하루에 고물상이 고철을 들이는 데 드는 금액은 약 100만 원이 넘었다.
하지만 강필중이 영업을 해서 고철을 가져오는 날이면 300만 원이라는 금액을 훌쩍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4,000만 원이라는 자금은 금방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한 다음 날.

“이제 버티기 힘들 것 같네요. 강 부장님.”

강필중은 이시우의 힘없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강필중이 일주일에 가져오는 고철은 20톤 정도.
지금 20원이 오른 단가로 500만 원이라는 금액이 매주 나갔다.
현장에서 가져오는 물건뿐만 아니라 도보꾼들이 가져오는 양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고철에서 비철을 최대한으로 골라내고 손님들이 가져온 비철을 바로바로 더 에스에 넘기는 식으로 버텨 왔다.
이제 남은 돈은 1,000만 원 남짓.
현장에서 가져오는 고철만 매주 500만 원에 도보꾼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700만 원이 넘었다.
그렇게 매달 나가는 돈은 약 1,000만 원.

“자금이 1,000만 원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합니다.”
“단가가 20원이 올랐죠. 한 주만 더 지켜보고 싶어도… 보유 자금이 간당간당하니까요.”
“이 정도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사장님.”
“진 이사님께 고물상에 방문을 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이시우로서는 단가가 20원이 더 오른다는 사실을 알지만, 도저히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명산철제로부터 선입금을 더 받을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넘긴다고 해도 절대 손해는 아닙니다.”
“그렇겠죠. 지금부터 빼면서 단가의 추이를 보면 되니까요.”

사실 350원의 단가가 완성되었을 때, 고철을 빼기 시작하면 늦게 된다.
고철의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뺄 수 있는 톤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시우의 말을 전해 들은 강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엄청 잘 견딘 겁니다. 사장님의 수완이 없었다면 솔직히 지난주부터 뺐어야 했을 겁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 주시니 힘이 나네요. 그래도 잘 버텼으니 후회는 없어요.”

이시우는 씨익 웃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리면, 빚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확실한 정보라지만, 빚을 지면서까지 버티고 싶지는 않았다.
14일.
딱 2주만 더 버티면 350원이 될 수 있었다.
정확히 4월 24일에 단가가 350원이 된다고 알고 있으니까.

“진 이사에게 사장님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

똑똑―
진준식이 노크를 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문재신이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누리 측에서 물건을 뺄 것 같습니다.”
“벌써? 흐음, 하긴 3,000만 원의 자금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지.”
“그래도 이 정도까지 버틸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이 버틸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지금 누리로 갈 생각인가?”
“네. 이 대표님께서 요청을 하셨으니, 바로 갈 생각입니다.”
“나도 같이 가지. 이 대표님의 생각을 한번 들어 보고 싶거든.”

문재신은 진준식과 함께 누리 리싸이클링으로 이동했다.
그가 고물상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시우는 고철장 앞에 서 있었다.
약간은 시무룩한 표정.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재신과 진준식을 발견한 이시우가 표정을 지우고 환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진준식은 지난주에 방문했을 때보다 확연하게 늘어난 고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도 함께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진 이사와 함께 왔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이시우가 두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음료수를 종이컵에 따라 두 사람에게 내주었다.

“오늘은 커피가 아니군요.”
“매번 똑같은 것만 내오면 질릴 거 같아서요. 음료수를 찾는 손님분들도 많고요. 그보다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대표님, 만약 자금이 넉넉하셨다면, 고철을 지금 빼셨을 겁니까?”

문재신은 누리 리싸이클링의 자금에 문제가 생긴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빼지 않을 겁니다.”
“흐음, 고철 단가가 얼마까지 올라갈 거라 예상하고 계십니까?”

문재신의 물음에 이시우는 고민했다.
말을 해 줘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뗄지.
고민하던 이시우가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350원. 그 정도 단가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0원은 더 오를 거라 예측하시는군요.”
“그냥 감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단가가 올라가지 않습니까?”
“흐음…….”
“솔직히 말해 340원이 되었을 때 빼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가 않아서요.”

350원까지 올라간다면, 340원이 되었을 때부터 빼는 게 맞았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는 지금, 꼭 340원을 고수할 필요는 없었다.

“흐음…….”
“그리고 지금 빼도 손해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득이죠.”
“그렇군요.”
“진 이사님, 내일부터 물건 뺄 준비하시죠. 이번 주에는 쉬엄쉬엄 빼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시우의 말에 진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진준식은 얼떨떨했다.
설마 이 어린 대표가 이 정도로 단가를 예측할 수 있을지는 몰랐으니까.
반신반의라는 말조차 필요 없었다.
그는 단가가 한 번 오르고 더 이상 오르지 않거나 당연히 떨어질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시우의 예상대로 단가는 한 번 더 올랐다.

“대표님, 아마 45톤 방통차를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포크레인으로 대표님께서 직접 상차를 하셔야 하는데… 흐음, 아니면 진 이사를 이곳에 상주시키겠습니다.”
“아닙니다. 바쁘신 분을 여기에 잡아 두고 있을 수는 없죠. 제가 상차를 하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기름값은 저희 측에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명산이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만… 10원의 단가를 더 추가로 주시겠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보통 기름값을 계산할 때, 10원을 더 측정했다.

“대표님께서 주신 정보에 대한 대가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보라니… 설마 아까 말한 제 예상 말입니까? 제 말이 다 맞지는 않을 겁니다.”
“하하, 상관없습니다. 제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해 버리죠, 뭐.”

330원의 단가를 보이고 있을 때, 310원에 가격을 쳐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명산철제의 입장에서는 손해일 수밖에 없었다.
20원의 이득 중 운송비 10원을 빼면 명산철제가 얻는 이득은 단 10원뿐이었다.

“저는 지금도 명산에 넘기는 고철 단가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300원 그대로 단가를 유지하시죠. 대신, 받은 선입금은 다음 주부터 제외했으면 합니다.”

자금이 없어서 미리 빼는 만큼, 선입금을 제외한다면 한 주를 버틸 힘이 없게 된다.
이시우의 요청에 문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

그렇게 내일부터 고철을 빼기로 결정되었다.
문재신은 차량에 탑승해 눈을 감았다.

‘350원까지 올라간다라…….’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 그에게 진준식이 운전하며 말을 걸었다.

“이 대표님의 예상을 믿으십니까?”
“아니, 340원까지는 올라갈 것 같은데… 과연 350원까지 올라갈까?”
“그럼 저희도 지금 물건을 뺄 준비를…….”
“아니. 340원에 오르는 순간부터 빼도록 하지.”

오늘은 화요일.
내일은 수요일이었다.
하루 한 차나 두 차씩 뺀다고 해도 45톤 방통에 실을 수 있는 중량은 25톤이 한계였다.
토요일까지 물건을 빼면 100톤 정도 되는 물건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시우가 내건 조건 하나가 더 있었다.
이번 주에는 경량을 우선적으로 빼자는 조건.
중량은 25톤 중량을 적재할 수 있지만, 중량은 끽해 봤자 10톤 정도 되는 물량밖에 적재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감이야. 340원까지는 무조건 올라갈 것 같으니, 그렇게 하자고.”

***

두 사람이 나가자, 이시우가 마당으로 나왔다.

“내일부터 물건 뺄 거예요, 부장님.”
“드디어 물건이 나가는군요.”

강필중은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이도운 전 대표가 운영했을 때, 네 달이나 넘도록 나가지 못한 고철이었다.
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시우가 사장이 되고부터 고철 단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꽤 오래 버텼잖아요. 더 버티고 싶어도 이젠 한계예요.”

이시우는 아쉬운 눈빛으로 고철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는 만족하기로 했다.
만약 명산철제로부터 3,000만 원이라는 자금을 지원받지 못했더라면, 진작 빼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이시우의 씁쓸한 얼굴에 최문식이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사장님이니까 이 정도로 버틴 거라 생각합니다.”
“하하하, 고마워요. 고철 한 번 쭉 빼고 나면 할 일이 더 많아질 거예요. 고철 정리가 끝나면 제대로 분류해서 쌓아야 하니까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330원.
만족스러운 단가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불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분명 다음 주면 10원이 더 올라. 무조건. 그리고 340원일 때 중량을 빼면 돼.’

고철 생성으로 만들어 놓은 20톤.
그중 5톤은 중고 자제 업자에게 넘겼으니, 17톤이라는 무게가 순수익으로 잡힐 터였다.
510만 원.
명산철제에 고철을 넘기면 벌게 될 돈이었다.
그리고 이미 앞서 300만 원이라는 돈을 벌었기에 20일 동안 이시우가 번 돈은 순이익만 810만 원이었다.

‘고철 생성으로 직원들 월급은 벌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지. 그보다 궁금하네. 과연 다음 단계에 오르면 어떤 점이 변하게 될지 말이야.’

이시우는 1레벨에서 2레벨로 오른다면, 아마 생성할 수 있는 톤수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니면 제한이 일부분 풀리게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고철이 아닌 비철을 생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을 텐데, 라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비철을 생성하려 하자…….
‘고철 생성 능력의 레벨이 부족합니다’라는 글귀만 보일 뿐이었다.

‘레벨을 얼마나 올려야 비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