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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더 에스 대표이사




문재신은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다만 어린 이시우와 아끼는 부하인 진준식이 앞에 있어 그것을 참고 있을 뿐.
문제야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아무런 문제가 없겠는가.
하지만 설마 첫날에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진 이사, 공 부장한테 전화해.”
“네, 대표님.”

진준식이 공태식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문재신은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사무실입니다, 형님.]
“주소 보내 줄 테니까, 거기로 와.”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공 부장이 아주 제대로 사고를 쳤어.”
[네?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형님.]

지금 문재신이 통화한 사람은 더 에스의 대표이사였다.
문재신과 그는 서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였다.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오기도 했고, 더 에스의 대표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전화를 끊은 문재신이 진준식을 바라보았다.

“바로 오겠답니다, 대표님.”
“공 부장의 변명을 한번 들어 보시죠, 이 대표님.”

안 봐도 빤했다.
증거가 없는 이상 공태식은 끝까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거짓말을 할 게 분명했다.
30분 정도가 흐르자, 공태식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진 이사님, 저 왔습니다.”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는지 공태식이 뻔뻔하게 인사를 건넸다.
진준식이 옆으로 살짝 비켜서자,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문재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대,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공 부장.”
“바쁘실 텐데 여기는 왜…….”
“흐음, 왜일까요? 제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공태식은 진준식만 어떻게든 잘 설득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재신이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모, 모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저 젊은 대표에게 어떤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절대 모르는 일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영악하지 못한 사람이 영악한 척을 하면 티가 난다.
문재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아직 이시우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조차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공태식은 불안한 표정으로 강력하게 부정했다.

‘설마 명산철제 대표님께서 행차하리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겠지.’

잠시 후, 평상복을 입은 중년인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곧장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바로 더 에스의 대표이사 김인식이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그 전에 먼저 누리 대표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아, 안녕하십니까? 더 에스의 대표 김인식이라고 합니다.”

김인식은 이시우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이시우는 명함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누리 리싸이클링 대표 이시우라고 합니다.”
“음, 저희 공 부장이 사고를 쳤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김인식은 문재신과 만나 술을 한잔 기울였다.
문재신이 잔뜩 들떠서 마음에 맞는 젊은 대표 하나를 만났다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이렇게 기쁜 듯이 말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젊은 대표가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언제 한번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언제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것이 될 줄은 몰랐다.

“제게 공 부장이 제안을 하시더군요. 공인 계량소에 계근을 하자고요.”
“예? 보통 공인 계량소에 계근을 요청하는 건 저희 측이 아닙니다만…….”

굳이 불필요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대부분의 고물상 사장들은 거래하는 상대를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해당 고물상에서 계근을 하곤 했다.
현장에서 계근대가 없거나, 고물상 쪽에서 먼저 요구하지 않는 이상 공인 계량소를 이용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공인 계량소에서 계근을 해 주면 단가를 100원 더 올려 준다고 하던데, 혹시 공 부장이 단가에 관한 권한도 가지고 있습니까?”
“거짓말입니다, 대표님!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시우의 말에 공태식이 강하게 부정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김인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이봐 공 부장, 왜 이 대표님께서 굳이 공 부장이 하지도 않은 행동을 내게 말한다고 생각하나?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 그게… 안 그래도 제가 첫날에 이 대표님께 실수를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보복이 분명합니다.”

그 말에 김인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실수를 했길래?”
“제가… 이 대표님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를 전했습니다.”
“무시라…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도 되지 않는 사람이 한 업체를 이끄는 대표님을 무시했다?”
“죄송합니다. 젊은 사장님은 처음 상대해 봐서…….”

문재신에게 이시우의 경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고물상 일을 했으며 그 연륜이 만만치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사실은 둘째 치더라도 아무리 어리다 해도 고물상을 책임지는 대표였다.

“그날 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 대표님께서 실수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단가만 제대로 받으면 그만이라는 말도 하셨습니다, 김 대표님.”

이시우는 고작 그런 일로 보복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말해 주기라도 하듯 진준식이 말했다.
그의 말에 김인식이 물었다.

“진 이사, 자네가 보기에 이 대표님께서 이런 일로 누군가에게 보복을 가하실 분이라 생각하나?”
“아닙니다. 절대 아니라고 제가 확실하게 공증을 설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진준식의 모습에 공태식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니, 진 이사님. 같은 영업 사원으로서 제 입장을 생각해 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어떻게 해서든 살 길을 찾고자, 같은 영업 사원이라는 말로 진준식의 동질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진준식이 아니라 문재신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공 부장, 같은 영업 사원이라 말하지 말게. 진 이사는 단순한 영업 사원이 아니라 명산의 부대표니까 말일세.”
“…….”

대표인 문재신이 없을 때, 명산철제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고작 영업부장인 공태식과 진준식은 영업 사원이라는 말에 한데 묶일 수 없었다.

“후우, 정말 쉬지 않고 잘못을 만들어 내는군. 형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진 이사, 미안하네. 그리고 이시우 대표님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이시우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김인식은 공태식이 영업일을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게 상대 업체의 컴플레인이 늘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은 식구라는 생각에 끌어안고 가려 했다.
하지만 오늘 공태식은 선을 넘어 버렸다.

“사장님, 저 진짜 억울합니다.”
“그 입 다물어. 내가 그동안 공 부장이 거래하던 업체들을 한번 방문해 볼까? 거래소 하나하나 찾아가서 장부도 뒤져 보고?”
“그건…….”
“그래, 다 좋아. 영업하면서 조금씩 가져가는 돈도 있어야 하니까,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정도껏 날뛰어야지.”

김인식은 혀를 쯧 찼다.
하필 건드려도 누리 리싸이클링의 대표 이시우란 말인가.
이시우가 더 성장해 훌륭한 대표가 되었으면 한다고, 자기가 키워 볼 거라며 기쁜 듯이 말하던 문재신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도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사장님…….”
“한 업체의 대표를 무시하고, 심지어 거짓말로 몰아가려 해?”
“저 억울합니다.”
“끝까지 잡아떼겠다, 이 말이지? 알겠어.”

김인식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때, 고물상으로 집게차 한 대가 들어왔다.
아까 물건을 가져간 집게차였다.
대충 마당에 차를 세워 두고 급하게 운전석에서 내려오는 기사.
그가 사무실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김 기사, 나하고 함께 한 시간이 얼마지?”
“한 7년 정도 됐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랬나?”
“예?”
“이해해. 어머니가 아프셔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 그렇지, 고작 3년도 안 된 공부장과 손을 잡고 물건을 빼돌리면 안 되지.”

도저히 공태식 혼자서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공태식과 함께 물건을 빼돌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김인식의 싸늘한 목소리에 기사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김 기사님, 제대로 말 좀 해 주십시오. 제가 물건을 빼돌렸습니까?”

그때, 공태식이 다급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기사는 자신과 손을 잡고 함께 물건을 빼돌린 공범이었다.
그도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과 일관된 주장을 해야 했다.

“약속하지. 제대로만 말해 준다면 이 일에 대해서 그 어떠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주겠네, 김 기사.”
“…….”
“7년을 함께 고생한 사람의 편을 들겠나, 아니면 고작 3년을 함께한 자의 편을 들겠나?”

결국 김 기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다 이해해. 그동안 일이 바빠 내가 김 기사에게 신경을 제대로 써 주지 못했으니까.”
“안 그래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대표님을 속이고 큰 피해를 안겨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김 기사는 거짓말을 하면 티가 많이 나지. 얼굴이 어둡던데, 이 일 때문이었나?”
“속여서 죄송합니다.”

기사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는 그동안 양심에 찔리는 일들을 저지르면서 수없이 많이 고민했다.
이 일을 김인식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렇지 않아도 공태식은 함께 부정을 저지른 김 기사를 협박했다.

“공 부장이 그랬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저도 피해를 입을 거라고… 대표님께 말을 하더라도 모든 걸 제게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떠나면 그만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아, 내가 머리만 까만 짐승을 거뒀군.”

솔직하게 말하는 기사의 이야기에 공태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거짓말입니다! 김 기사가 거짓말을 해서 제게 다 뒤집어…….”
“닥쳐, 이 새끼야! 그러니까 기회를 줬을 때 솔직하게 말했어야지! 거래하시는 대표님 두 분을 놓고 얼마나 더 쪽팔린 짓을 하려는 거야!”
“사장님!”
“입 다물어! 후우… 이 대표님, 혹시 이 사람이 더 실수를 한 게 있습니까?”

그 질문에 이시우 대신 진준식이 나섰다.
그러고는 이시우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김인식에게 전했다.
아랫사람 대하듯 대표를 부려먹었다는 말, 뒷짐 쥐고 구경했다는 말 등.
김인식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실수를 해 버렸다.

“이 대표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 거래를 마치면, 더 거래를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후우, 이런 일을 겪고도 더 거래를 이어 나가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사실 공태식을 보내는 게 아니라 김인식이 직접 왔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많았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 드려 거듭 죄송합니다.”
“괜히 제가 일을 키워 대표님께 무례를 저지른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김인식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이시우는 감사를 받아 마땅했다.
그 덕분에 업체를 좀먹는 도둑놈을 잡았으니까.

“업체에 대표로서 감사한 일입니다. 일단 저희가 영업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다시 찾아와 제대로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업체 간에 신뢰는 아주 중요하죠. 더군다나 저희 측에서 큰 잘못을 한 마당에 제대로 사과 없이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