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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 장성우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줄은 몰랐네?




약속한 것처럼 더 에스란 업체 측의 집게차가 고물상으로 들어왔다.
기사는 차를 계근대에 올려놓고 내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으며 그늘이 져 있었다.
이시우가 공차 계근을 하고 벨을 눌렀다.
안으로 들어온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저어, 커피 한 잔만 마시고 해도 될까요?”

기사가 양해를 구하자, 이시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커피를 타 주었다.
그렇게 한 잔을 마신 뒤, 집게차를 들여 올 때쯤 정장 차림의 공태식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커피 한 잔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까 집게차 기사와 별다를 게 없는 주문이었지만,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첫 만남도 그렇게 좋지 않아서인지, 이시우는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내색하지 않고 커피를 타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기사님 한 분만 오신 거예요?”
“네. 여기에 상주하시는 마당지기가 둘이나 있어서 따로 더 데리고 오진 않았습니다.”
“……?”

보편적으로는 고물상의 직원들이 물건을 뜨러 오는 기사를 도와주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회사의 사정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연하게 요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당지기라니요. 마당을 책임지는 부장님과 차장님이십니다.”
“뭐어… 그거나 저거나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시우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을 확 구겼다.
박태문과 최문식이 마당을 관리하는 사람이기는 했으나 엄연히 직책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마당지기라 칭하며 아랫것들을 대하듯 말하는 공태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분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오신 김에 기사님을 도와주시죠, 부장님.”

이시우의 말에 공태식도 인상을 팍 구겼다.
자신이 영업 사원이지 현장에서 땀이나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지 않은가.
그는 그런 이들과 자신이 근본적으로 틀리다고 생각했다.

“하… 김 기사님, 혼자 할 수 있죠?”
“네에, 부장님.”

눈치를 보며 대답하는 기사의 모습에 이시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목장갑을 끼고 기사에게 말했다.

“안내해 드릴게요. 자잘한 비철 정리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들어오세요.”
“아닙니다. 제가 해도…….”

당황한 듯한 기사의 목소리에 이시우가 말을 끊었다.

“혼자서 오르락내리락하면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그제야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신속함이 중요했다.
물건의 상차가 늦어질수록 고물상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편함을 안겨 줄 테니까.
이시우는 뒷문을 열고 집게차를 안내했다.
마당에 있던 박태문이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사장님, 저랑 문 차장이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산소로 고철을 자르는 일이 더 중요해요. 여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손님이 오면 계근만 좀 해 주세요.”

공태식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박태문과 최문식에게 일을 시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큰 고철을 산소로 자르는 일.
고철은 부피가 크면 클수록 단가가 떨어졌다.
그렇기에 고철을 잘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했다.
가스와 산소.
가스로 불을 붙이고 산소로 화력을 높이는 구조였다.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경력자가 하는 편이 좋았다.
박태문이 굴삭기로 부피가 큰 물건들을 꺼내면 최문식이 산소로 고철을 잘라낸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아야 했다.
이시우는 산소를 잘 사용하지 못했기에 두 사람에게 이 작업을 전부 맡겨야 했다.

“일단 A부터 실으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B는 조금밖에 없으니까, 위에 살짝 올려서 가면 내리는 데 편하실 거예요.”
“아,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우, 아무래도 다른 거래처를 구해야 될 것 같네. 영업부장이 저 사람이니까 계속 고물상으로 올 거 아니야.’

직업에 귀천이 없듯, 직급에도 귀천이 없다.
물론 각자 하는 일은 다르겠지만.
상황이 급하면 영업을 하는 사람이 집게차를 몰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강필중은 고물상의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비록 집게차 기사로 일하더라도 따로 일이 없으면 마당에서 여러 일을 도맡아 했다.
대표인 이시우가 장갑을 끼고 나섰음에도 공태식은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상차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물건을 상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아 하니 공태식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듯했다.
상차를 하기 전, 마대에 담겨 있는 자잘한 물건들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기사의 옆에 붙어 일을 도와주면서 이상한 물건들을 확인해 봐야 했다.
저렇게 멀찍이 떨어져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비철에 대해서만 알지, 현장과 관련된 일은 나보다 더 모르네.’

위잉―
집게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시우가 뒤로 물러났다.
밑에 있어 봤자 위험했고, 기사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집게가 대충 큰 물건을 집고, 다음으로 마대를 차곡차곡 상차를 시작했다.
자잘한 물건을 담아 놓은 500㎏ 마대가 쏟아지면 하차를 하는 데 지장이 생긴다.
그렇기에 마대만 따로 차곡차곡 쌓아 넘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집게 기사의 기술이었다.
어느덧 알루미늄 A의 상차를 끝냈다.
기사가 집게를 오므렸다.
그리고 집게 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잘한 비철을 넣어 줬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자 한 차가 완성되었다.

“아… 양이 좀 많네요. 아무래도 나머지 물건은 오늘 오후에 다시 실으러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꽤 오랫동안 모은 거니까 어쩔 수 없죠.”

이시우와 기사가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태식이 다가왔다.

“다음 일정이 있는데, 그냥 다 실고 갈 수는 없어요? 이봐, 김 기사. 어때? 가능할 거 같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장님.”
“흐음, 아무래도 오늘은 한 번 더 오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공태식의 말에 이시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나머지 물건은 내일 하죠.”

물건 상차를 끝내고 차량이 계근대에 올라갔다.
이시우는 계근표를 만들었다.
3,120㎏.
총 561만 6,000원이었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물건을 빼면 1톤을 가까스로 넘기는 게 알루미늄 A였다.
알루미늄은 고철보다 가볍고 부피도 꽤 컸기에 아무리 차곡차곡 쌓는다 해도 한 차에 4톤 이상 적재하는 것은 힘들었다.

계근을 마치고 공태식이 기사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이시우가 사무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족한 자금을 채우기에는 모자라겠지만, 당장 급한 불은 끌 수가 있을 테니까.
직원 세 명의 월급은 거의 1,000만 원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세 사람에게 월급을 줘야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머지 비철을 빼면 직원들 한 달 월급 정도는 나오겠네. 그래도 다행이지.’

그때, 기사를 먼저 보내고 공태식이 비장한 눈빛을 한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저어, 대표님.”
“네.”
“다음 물건부터 공인 계량소에서 계근을 했으면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바로 앞에 공인 계량소가 있던데, 거기서 계근을 하시죠.”
“싫습니다. 만약 더 에스의 계근대와 저희 계근대가 중량이 200㎏ 이상 차이가 난다면, 어느 정도 조정은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인 계량소에서 계근을 하는 건 제가 원치 않습니다.”
“계근 비용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저희 측에서…….”
“고작 만 원 때문에 제가 이러는 것 같습니까?”

공인 계량소에서 한 번 계근을 하는 데 1만 원이라는 돈이 소요된다.
물론 정확하게 계근을 할 수 있다면 이시우는 1만 원 정도야 감수할 수 있었다.

“…공인 계근소에서 계근을 하시면 100원을 더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상했다.
손해를 감수하고 공인 계량소에 계근을 부탁한다?

‘하, 장성우 같은 인간을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실어 보낸 물건은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거래하시고, 다음 물건부터는 가지러 오지 마시죠.”
“예?”
“제가 바보인 줄 아나 봅니다, 공 부장님.”
“아니, 그게 아니라…….”

이시우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물건을 빼돌리는 방식.
공태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빤했다.
공인 계량소로 이동하기 전에 물건을 따로 빼돌릴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공인 계량소에 물건을 내리고 계근을 할 수도 있었다.

“절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정 이상하다면 공인 계근소로 같이 오셔도 됩니다.”
“굳이 공인 계량소를 고수하는 이유가 뭡니까? 거기나 우리 계근대나 중량은 비슷할 텐데.”
“대표님.”
“저도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빼돌리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해도 봤고요. 지금 공 부장님께서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지금 말 다하셨습니까?”

공태식은 장성우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겉으로는 허세만 가득하면서, 속은 썩을 대로 썩은 작자들.
이시우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이미 장성우로 인해 피를 수없이 많이 봐 왔는데, 설마 이렇게 또 벌레가 꼬일 줄은 몰랐다.

“나가시죠. 진 이사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아마 이해해 주실 겁니다.”
“아니, 설마 진 이사님께 이 사실을 말하려는…….”
“왜요?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한 제안은 잊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왜요?”
“그으… 단가를 100원 더 올려 드리겠습니다.”

공태식은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돈으로 상대의 입을 막는 행동.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이시우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진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 대표님.]
“진 이사님, 죄송하지만 조금 문제가 생겨서 그러는데, 혹시 고물상으로 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3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공태식 같은 자들은 대화를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때의 상황만 모면할 뿐이니까.
이시우가 핸드폰을 드는 행동에 다급하게 공태식이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공태식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 대표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가 왜요?”
“저도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제게 하던 것처럼 그렇게 떳떳하시다면 진 이사님께도 똑같이 하시면 되잖아요.”

이시우에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공태식은 다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발뺌할 생각이었다.
설마 진준식이 이 어린놈의 말을 믿어 줄까 싶은 것이었다.
증거도 없었고.
공태식이 도망치듯 떠나고 20분 후, 진준식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의외인 점은 진준식뿐만 아니라 문재신도 함께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시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제라니… 무슨 일입니까? 진 이사와 통화할 때, 옆에 있어서 저도 같이 왔습니다.”
“발걸음을 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만.”

문재신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시우의 심각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는 이시우와의 관계가 깨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더 에스라는 업체를 연결시켜 준 것이었다.
이시우는 공태식이 한 말들을 그대로 전달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준식과 문재신의 표정이 점점 딱딱해져 갔다.

“후우, 이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진 이사,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네, 대표님.”
“내 그 사람이 영 별로인 것 같더니… 참으로 어리석군, 어리석어.”
“제가 더 신중하게 업체를 선정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물론 당장을 보면 공태식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득이었다.
그만큼 부수적으로 얻는 수입이 많아질 테니까.
하지만 이시우는 그렇게 남들을 속여 가며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에게, 아버지에게 떳떳한 고물상 사장이고 싶었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도 저에게는 손해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서까지 거래처를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문재신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이시우를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
공태식의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면 들어오는 부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양심을 위해서 그것을 거절하고 이를 고발하는 용기까지 보여 주다니.
아무리 봐도 대단한 청년이었다.

“아주 당연하게 정장을 입고 와서 박 부장님과 최 차장님을 부려먹으려 하더군요.”

말을 하면서도 이시우는 조금 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괜히 장성우와 공태식이 오버랩되면서 화가 넘치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재신은 그런 그를 이해했기에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제 직원들이고 제가 월급을 드리는 분들입니다. 차마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이시우가 참고 박태문과 최문식을 불러다 일을 시켰으면, 두고두고 이를 후회했을 것이다.
거래처 간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도 않는 공태식의 행태에 진준식이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진 이사님께서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잘못은 그 사람이 했죠. 제가 나서서 기사님이랑 비철을 정리할 때도 그 사람은 뒤에서 팔짱만 끼고 지켜보고 있더군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입고 온 정장을 더럽히기 싫었나 보죠.”

진준식은 물론, 문재신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상전이라도 된 것마냥 거래처의 대표를 부려먹는 모습이라니.

“아…….”
“사실 진 이사님이 소개시켜 준 곳이니, 거기까지는 참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제 사람 챙기고 떳떳하게 돈만 벌 수 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공인 계량소에서 계근을 하자고 제시하면서 단가를 100원을 올려 주겠다고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
“제게 선의를 베풀어 주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뒤끝이라 해도 좋고, 일러바치는 꼴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시우는 장성우 같은 작자들이 설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들로 인해서 피해를 입는 업체가 없었으면 했고.
다행히 문재신과 진준식의 눈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