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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알루미늄 거래처를 구하다




다음 날.
이제는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능력으로 철근을 만들어 둔 이시우가 사무실에 앉았다.
7시 30분, 강필중과 함께 들어오는, 이제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명산철제의 이사, 진준식이 사무실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주시면 감사히 마시죠.”

이시우가 커피를 타서 그에게 건넸다.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아, 강 부장이 비철을 처리할 업체가 없냐고 물어봐서요. 제가 대표님께 알루미늄을 처리하는 업체 하나를 알려 드릴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강필중은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에 고물상에 대해서도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 이시우가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그가 빠르게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업체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저희와 거래하는 업체가 하나 있습니다. 가격도 괜찮고 그렇게 깐깐하지 않아서 대표님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고철이 더 늘어났군요.”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진준식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고철장에 쌓여 있는 고철의 양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어느새 늘어난 고철을 확인하고 그가 걱정했다.

“고철이 많이 들어오는 건 좋지만… 유지비가 상당하겠군요.”
“버틸 수 있는 대로 버텨 보려 합니다.”
“으음, 다음 주 중으로 20원 정도가 오를 것 같습니다. 자금이 부족해지면 힘드니까, 단가가 오르면 한 번 빼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단 상황을 보고 결정하려고요.”

안 그래도 진준식의 말대로 한 번 빼야 할 시점은 찾아오게 되어 있었다.
버티고 싶어도 자금이 많지가 않으니까.

“혹시라도 자금이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해 주십시오. 저희 대표님께서 필요한 금액만큼 선입금을 드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 정말이지… 대표님께는 항상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만든 것도 대표님의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저희 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누구를 믿고 일을 진행시키는 건 오랜만에 봅니다.”
“그런가요?”
“네, 정말입니다. 자부심을 느끼셔도 됩니다.”

이시우와 알게 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인 문재신은 이시우가 요청하는 금액대로 지원을 해 줄 생각이었다.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눈빛을 보니 진심이었다.
만약 그때 누리에 고철이 쌓여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거라고 진준식은 생각했다.
지금 누리 마당에 쌓여 있는 고철만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충분히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고철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의 생각이 맞았어. 고물상 영업을 재개한 지 3일 만에 티가 날 정도니까.’

어제 현장에서 가져온 고철만 해도 10톤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의 눈에도 마당에 쌓여 있는 고철의 양이 늘어난 게 티가 났다.
단번에 고철의 양이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을 눈치챈 진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상당한 양의 고철을 가져온 이시우의 수완을 대단하다고 여겼으니까.


“선입금을 더 받으면 제가 염치가 없을 거 같아서요. 지난번에 뺀 고철도 따로 지급받았고… 그저 죄송할 따름이에요.”
“그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는 건 저희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너무 괘념치 마세요.”

한 해의 순이익만 해도 10억이 넘어가는 대형 업체가 바로 명산철제였다.
1년에 대한제철로 납품하는 고철의 양만 해도 1만 톤이 훌쩍 넘었다.
명산철제의 입장에서 보면 누리 리싸이클링은 아직 작은 업체였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상당했다.

“전 대표님을 믿습니다.”
“단가가 오른 뒤에 다시 한번 방문해 주세요.”

적어도 고철 단가가 340원이 될 때까지는 버텨야 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루미늄 업체의 영업 사원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금방 도착할 테니, 그동안 저하고 물건 단가에 대해 상의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 마당으로 평상복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진 이사님.”
“왔어? 생각보다 늦었네.”
“차가 좀 막혀서요. 아, 안녕하십니까. 전 ‘더 에스’라는 업체의 영업 부장 공태식이라고 합니다.”
“이시우입니다.”

두 사람은 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이시우는 그를 데리고 알루미늄이 쌓인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는 물건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공태식은 피스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작업된 알루미늄을 확인했다.

“꽤 많네요. 그리고 양은의 양도 충분한 거 같고.”
“그런가요?”

공태식은 아쉽게 느껴졌다.
이시우가 약간 어리버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진준식만 없었다면 말로 잘 구워삶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공태식의 표정을 확인한 진준식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대표라 하더라도 이시우는 만만치 않은 자였다.
부디 공태식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랐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실까요?”

이시우는 둘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새로운 손님이 왔으니, 커피 대접은 당연한 일.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하루에 커피 30잔 이상을 마셔야 할 때도 있었다.

“물건은 괜찮을 거예요.”
“아, 그래도 안쪽까지 다 확인을 해 봐야 단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철보다 더 복잡한 것이 비철이었다.
공태식의 곤란하다는 표정에 이시우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판양은도 따로 뒀고, 순수한 알루미늄만 작업을 해서 모아놓은 거라 물건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아, 판양은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 줄은 몰랐군요.”

마치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다는 말.
한 업체의 대표에게 하기에는 충분히 무례한 말이라 진준식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공 부장.”
“아, 죄송합니다.”
“내가 아니라 이 대표님께 사과해야지.”

진준식의 싸늘한 말에 공태식이 이시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고철을 주로 취급하는 곳은 비철도 어느 정도 알았다.
다만 세세하게 모를 뿐이지.

“주물 양은은 물론이고, 양은도 A급과 B급으로 구분해서 분리를 해 놨습니다. 샷시도 웬만한 것들은 다 작업을 해 놔서 B급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부장님.”
“아아… 그렇군요. 일단 죄송합니다. 제가 대표님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단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아버지가 항상 중요시 하던 것.
그건 비철에 관련된 사항이었다.
고철을 골라 봤자 20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비철은 아니었다.

“A급 알루미늄은 현재 1,700원 정도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B급의 경우엔 1,300원이고요.”
“흐음, 생각보단 정직한 가격이네요.”

알루미늄의 단가는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그 가격이 유지되거나 조금의 조정만 있을 뿐.

“양을 보니 100원 정도 더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800원이라… 계산서를 뗀 금액이겠죠?”
“네, 맞습니다.”
“그럼 양은의 단가는 어느 정도 하죠?”

이시우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티를 내지 않는 것도 거래의 한 방법.

“B급 양은은 1,100원, A급 양은은 1,400원. 그리고 주물 양은은 1,700원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배차해 주시죠.”

어차피 줄다리기를 해 봤자, 다른 대안은 없었다.
단가만 맞으면 넘긴다는 게 이시우의 마인드였다.
거래를 하자는 말에 공태식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계근은 무조건 저희 측 중량으로 하시죠.”
“물론이죠.”

가끔 이런 업체가 있었다.
고물상 무게를 믿을 수가 없다며 공인된 계량소에서 무게를 달자는 업체들.
더 케이 베스틸이 그랬다.

‘그래서 피 봤지.’

공인 계량소를 하면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곳도 많았다.
무게를 달고 단가를 말하면서 영업하는 곳이 대다수였으니까.
근처에 있는 공인 계량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고물상과 같이하다 보니, 그 공인 계량소의 주인과 더 케이 베스틸의 대표가 친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심증에 불과하지만, 당연히 장난질을 했을 것이었다.
이렇게 보니 더 케이 베스틸은 질이 참 안 좋았다.

“그럼 내일 배차를 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공태식은 그 말을 끝으로 인사하고 고물상을 떠났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진준식이 혀를 찼다.

“저 친구가 다른 때는 참 좋은데… 만만하다 싶으면 바로 무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야 물건만 제값에 받고 넘기면 그만이죠.”

항상 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괜한 것에 흥분한 상태로 상대와 거래를 한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다만, 이번에는 상대가 먼저 실수를 한 덕분에 계근 문제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혹시 신주나 동을 다루는 업체도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이왕 도와주시는 김에 그것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업체에 말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보내고 나니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다가왔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과 시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강현석이 들어왔다.

“강 사장님, 오셨어요?”
“응. 오늘은 경량이야. 아쉽게도 질이 그렇게 좋지는 않고. 생활 고철 위주라서.”
“흐음, 생활 고철 단가가 많이 떨어진다는 거 아시죠?”
“물론이지. 적당히 가격 쳐 줘.”
“네. 일단 차부터 대세요.”
“가벼운 물건들이라 그냥 손으로 밀어 버리면 될 것 같아. 최씨하고 박씨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계세요.”
“두 사람이 나오면 같이 내릴게.”

때마침 박태문과 최문식이 작업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강씨, 왔어?”
“어. 물건이나 내려 줘.”
“차 대. 어? 생활 고철이네?”
“계속 마당에 굴러다녀서 정신없게 하길래 오는 김에 가져왔어.”
“잘 왔어. 문 차장, 차 안내해.”

생활 고철이란 젓가락이나 선반 같이 얇은 고철을 말했다.
아연으로 도금이 되어 있거나 고무에 감싸여 있는 고철들.
경량보다 한참 질이 떨어지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경량에 생활 고철을 섞는 곳이 많았지만, 누리 리싸이클링은 아니었다.
생활 고철을 따로 모아 최대한 감량을 맞지 않도록 조치했으니까.
물건을 내리고 차량이 계근대로 돌아왔다.
강현석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얼마 안 나왔지?”
“300 나왔어요. 단가는 180원이에요.”
“알아서 쳐 줘. 생활 고철은 기대도 안 하니까.”

5만 4,000원을 그에게 내준 이시우가 미소를 지었다.

“요새 고철이 잘 안 나오나 봐요?”
“나오긴 나오지. 그런데 다들 고철이 돈이 되는 걸 아니까 꽁짜로는 안 줘. 고철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 하면서 아는 척을 하더라고.”
“오히려 더 잘 모르니까 그러는 거예요. 너무 괘념치 마세요.”
“그나마 기존에 거래하는 곳은 꾸준하게 나한테 주니까 다행이지 원.”

도보꾼들에게도 거래처라는 게 존재했다.
작은 공장들, 고물상에 넘길 수 있는 만큼 고철이 나오지 못하는 곳을 중심으로 그들은 움직였다.
이들이 없으면 고물상도 유지될 수 없었다.
때문에 도보꾼과 고물상은 서로 상생을 하는 관계였다.

“그래도 강 사장님이 수완이 있으니까, 이렇게 자주 오실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아마 내일 파지를 가져올 것 같아. 파지 가격은 그전하고 동일하지?”
“네. 고철만 단가를 올렸으니까요. 파지를 많이 하는 곳이면 단가를 올리겠는데, 아시다시피 파지는 거의 취급을 잘 안 하잖아요.”
“알지. 파지는 뭐… 부피만 차지하지 돈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파지를 받게 되면 어르신들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서 반사 신경이 다소 떨어지다 보니,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파지는 단골들이 가져오는 것만 받았다.

“그래도 파지 있으면 가져오세요. 강 사장님 가져오는 건 다 받아드릴 수 있어요.”
“하하하, 특별 취급을 해 주는 거야? 기분이 영 나쁘지만은 않은걸? 고마워. 그럼 이따 올 수 있으면 올게.”

강현석이 기분 좋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런데 손님들은 여전히 없어? 내가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돌리긴 했는데 말이야.”
“아, 그러셨어요?”
“그럼. 여기가 잘돼서 계속 남아 있어야 나도 물건을 내려놓을 수 있잖냐.”

이시우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었다.
누리 리싸이클링을 위해 영업을 뛰어 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손님은 많이 안 오세요. 재오픈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흐음, 좀만 기다려 봐. 이제 슬슬 손님들이 찾아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