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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 현장 고철




내릴 때 잘 구분해서 내려야 한다.
그래야 한 번 일해도 될 것을 두 번씩이나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강필중이 능숙하게 집게를 움직였다.
부드럽게 붕대를 사용해 레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굴삭기는 조종간이 조이스틱으로 되어 있지만, 집게차의 경우에는 레버로 조작했다.
집게와 붕대를 움직이는 레버는 총 다섯 개가 있었다.
제법 복잡하기에 숙련도가 요구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강필중은 마치 자신의 팔을 움직이듯 집게를 움직였다.
그 모습에 남자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봐도 잘한다니까.”

남자의 혼잣말에 이시우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집게차 일만 10년을 해 오신 분이니까요.”
“아, 아까는 제가 당황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유필성이라고 합니다.”
“이시우라고 해요.”
“어린 나이에 참 대단하십니다. 이만한 고철을 이 시기에 이만큼 쌓아 놓은 고물상도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굳이 아버지가 이 정도까지 모아 놨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가 그러셨지.’

쓸데없는 말까지 미주알고주알 손님들에게 하지 말라고.
어렸을 때, 이시우는 생각 없이 손님과 떠들다 상대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경고하며 혼을 냈다.
사장은 자신의 정보를 최대한 숨기고 상대의 정보를 가져와야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
그래서 이시우는 고물상에 오는 손님들에게 개인적인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 부장님과 꽤 친해 보이시던데…….”
“아, 전에 제가 있던 현장하고 저 친구의 전 직장하고 가까워서요. 전 담당자로, 필중이는 집게차 기사로 만나게 되면서 가끔 술 한잔하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분이시죠. 강 부장님은.”
“좋은 친구죠. 그래서 제가 고물이 나왔을 때, 저 친구부터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한 겁니다.”

이시우는 집게에서 내려지는 고철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꽤 질이 좋은 물건들.
물론 경량도 섞여 있었다.

“혹시 단가는 듣고 오셨나요?”
“아니요. 사장님이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다.”
“내리는 물건들을 보니, 경량도 꽤 많이 섞여 있는 것 같네요. 혹시 계산서 떼실 건가요?”
“네. 안 그래도 통장 사본하고 사업자 등록증 가져왔습니다.”

계산서를 떼는 것과 안 떼는 것, 그 둘의 단가 차이는 극심했다.
건축 쪽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고물상과 연결될 일이 많았다.

“단가는 철근 같은 물건을 살 때 현재 250원을 드립니다. 경량도 약간 섞여 있으니 240원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저야 바로 오케이죠. 후하게 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고철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마저 내리는 걸 보고 사무실에서 제대로 이야기하시죠, 담당자님.”
“네, 사장님.”

모든 고철을 내리고 마지막에 적재함 자석질까지 끝냈다.
집게를 빈 적재함에 내리자, 이현성이 발판을 밟고 적재함을 확인했다.
물건이 지저분했는지 깨끗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적재함에 흙이나 쓰레기가 많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여부가 결정되었다.

“비교적 깨끗한 편이네요.”
“네, 사장님.”
“공차 달아 주세요.”

이시우는 유필성과 함께 사무실로 걸어갔다.
그러자 집게를 받치는 역할을 하는 아웃스트링을 내리고 차량은 저울에 올라섰다.
강필중이 말한 것처럼 공차는 1만 3,450㎏ 정도 나왔다.

“5,440㎏나왔네요. 단가는 말한 것처럼 240원으로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5440*240.
130만 5,600원이었다.
꽤 큰 가격일지 모르겠지만, 고물상에게 이 톤수는 당연한 무게였다.
담담하게 계근표를 뽑아 유필성에게 내주었다.
그러자 유필성이 사업자 등록증과 통장 사본을 건넸다.

“세금 계산서는 오늘 중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네, 사장님. 아, 그리고 한 차 안 되게 더 있는데, 이건 다음에 가져가시는 건가요?”

조금 더 남았다는 소리에 이현성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강필중을 바라보았다.

“현장에 고철 얼마나 남았어요?”

이시우의 물음에 강필중이 현장에 남은 고철을 떠올렸다.

“흠, 반 차 이상은 될 겁니다.”
“그럼 담당자님, 어차피 치우는 거 오늘 마무리하시죠.”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야 좋죠.”

현장은 언제나 깔끔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 공무원들이 나올지 모르니까.
주변이 깨끗해야 공무원들에게도 책을 덜 잡힐 수 있었다.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네. 고생 좀 해 주세요.”

강필중은 유필성과 함께 사무실 박으로 나갔다.
가격이 올라가기 전에 떠올 물건이 있으면 바로바로 가져오는 게 좋았다.
두 사람이 나가자, 박태문과 최문식이 강필중이 내려놓고 간 고철에 달라붙었다.
고철 사이에 있을 비철을 골라내는 게 그들의 주 업무였다.

“부장님, 완전 노다지인데요?”
“그러게. 신주하고 스뎅이 많네. 다음 차 오기 전에 얼른 골라내자.”
“네!”

부지런해야 살아남는다는 말.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음 고철이 들어올 때까지 최대한 신속하게 비철을 골라내야 했다.
이시우는 목장갑을 착용하고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들에게 합류해 서둘러 비철을 골랐다.
그렇게 고른 비철들은 손님에게 보이지 않는 뒷마당으로 옮겼다.

‘물론 손님들도 고철 속에 비철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티 나게 골라 놓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편이 더 낫지.’

비철을 고르는 일이 마무리되자, 박태문과 최문식이 리어카로 비철들을 뒷마당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약 1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강필중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1만 7,850㎏.
아까보다 1톤 정도 못 미치는 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운송비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유필성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와 중량을 꼼꼼하게 적었다.

“아까보다 1톤 정도 적네요.”
“그러네요. 그래도 오늘 다 치워서 다행이죠.”

아까 가져온 물건보다 확실히 질이 더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결정한 단가를 올려 줄 생각은 없었다.
아까는 적재함 위에 보일 정도로 부피가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적재함 위로 올라올 수준은 아니었다.

‘경량이 좀 많았다는 뜻이었겠지.’

역시 이시우의 생각대로 아까보다 더 좋은 물건들이었다.
모든 고철을 내리고 공차 중량을 달기 위해 계근대로 올라온 차량.
1만 3,430㎏이 나왔다.
4,420㎏.
이번에도 역시 백만 원 정도 되는 물건이었다.

“단가는 똑같이 적용하겠습니다.”
“네.”
“그럼 오늘 가져온 두 차 더하면… 이 정도 금액이 나오네요.”

계근표에 총 금액을 수기로 적었다.
총 236만 6,400원.
톤수로 따지면 9,860㎏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요. 전 기껏해야 7톤 정도 될 줄 알았는데.”
“좋은 물건들도 섞여 있었잖아요.”
“한 달 전쯤인가? 여기를 몰랐을 때, 다른 고물상에서 뺀 적이 있어요. 그때하고 비교하면 단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산서를 때고 230원에 두 차 해서 7톤 정도가 나왔으니까요.”

한 달 전이라면 아마 20원 정도 더 단가가 좋았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0원을 줬다니.

“20원 정도 떨어졌어요.”
“아, 그럼 그때 여기로 넘겼으면 250원 정도 받을 수 있었겠네요.”
“아마 그렇겠죠?”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아쉽네요. 진즉에 저 친구한테 연락 한 번 해 볼걸…….”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유필성이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손해가 나지 않게 물건을 빼면 그만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현장에서 물건이 뺄 일이 있으면 필중이에게 연락해 놓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집게차를 본래 있던 곳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온 강필중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필성과 이시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단가는 만족해?”
“매우 만족.”
“그럼 다행이네.”
“다른 현장에도 말해 둘게. 원래 거래를 하는 고물상이 있는 현장은 어쩔 수 없겠지만, 신생 건축사들도 많이 들어와 있거든.”
“신경 써 줘서 고맙다.”
“내가 더 고맙지. 네 덕분에 좋은 곳을 알았으니까.”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꽤 오랫동안 사무실에 있던 유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마당을 빠져나갔다.

“전에 넘긴 곳에서 저울로 장난질을 쳤나 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단가도 후려쳤으면서 저울 장난까지 치다니.”

저울 장난.
이는 컴퓨터로 중량을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단가 전쟁이 가열되다 보면 고물상도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사야 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손해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저울 장난이었다.

“잘해 줬으니까 이제 저 녀석이 거래처를 물어 오겠죠. 아마 1년 정도 공사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하고 공사도 초반이니, 산업 단지만 잘 잡으면 걱정 없을 겁니다.”
“아무튼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그럼 저는 준비해서 명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미처 전해 주지 못한 물건.
밖에 세워져 있는 외제차의 키였다.

“이건…….”
“영업 사원이 허름한 차량을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욕해요. 이거 타고 다니세요. 어차피 제가 끌 것도 아니고 세워만 놓으면 노후되니까요.”
“감사합니다.”
“잘 끌고 다녀 주세요.”

차 키를 받은 강필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우의 말대로 영업을 하는 사람은 항상 깔끔하게 보여야 했다.
그 어떤 업무보다도 외견이 중요한 일이었다.

‘아버지 차지만…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산 차니까, 아까워하지 말자.’

아버지가 죽어라 3년 동안 꽤 큰 금액을 납부해 온 것은 사치를 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초라해 보이게 되는 순간, 영업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강필중이 샤워를 하고 고물상을 나갔다.
그 사이, 박태문과 최문식이 다시 비철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시우는 사무실을 나와 몸을 풀었다.

“정리 한번 해 볼까?”

강필중이 내려놓은 고철을 쳐 올리고 내릴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정리하는 와중에 강필중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경량을 골라냈다.
뭉툭한 기계로 일을 하다 보니 세심하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깔끔하게 분류해서 내린 거지.’

정리를 마치고 굴삭기 아래로 내려온 이시우가 고철을 바라보았다.
명산에서 받은 3,000만 원, 그리고 기존에 있던 1,000만 원.
총 4,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현장 물건을 떠 오게 된다면 그만큼 비축해 둔 돈의 소비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금 순환이 되어야 하는 일.
하지만 지금은 물건을 쌓아 놔야 했기에 자금을 돌리면서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한 달만 죽어라 버텨 보자. 직원들 월급도 챙겨 주려면 비철을 우선적으로 빼야 해.’

한 달에 나가는 고정 지출만 해도 1,0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이 땅이 이시우의 이름으로 된 곳이었기에 따로 대여금을 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월급, 굴삭기와 집게차, 그리고 앞으로 강필중이 끌고 다닐 외제차에 들어가는 기름값까지.
기타 지출들을 생각하면 허리띠를 꽉 졸라매야 했다.

‘40원이 오를 때까지만 최대한 버티자.’

이시우가 각오를 다지며 고철장을 바라보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미래시.’

이시우가 속으로 중얼거리자 번개를 맞고 얻은 두 가지 능력 중 하나인 미래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미래시를 이용해 단가를 확인한 것이 벌서 일주일 전이었다.

[한 달이 지나야 다음 단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긴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음 단가를 알게 되면, 레벨의 의미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