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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강필중의 소소한 진가?




약속대로 강현석은 집 마당에 내려 둔 고철을 연속해서 가져왔다.
따로 장비가 없는 강현석은 고철들을 손수 차에 적재해야 했다.
당연히 차에 적재하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만 강현석은 두 번을 더 왕복했다.
경량 두 차, 그리고 아침에 가져온 중량 한 차.
보도꾼이 이렇게 많은 양을 가져오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손님들이 확실히 없네.’

강현석을 제외하고 단 두 차만 더 왔을 뿐이었다.
다행이라면 두 차 중에 단골이 한 명 있다는 것 정도.
앞으로 그 단골은 내일부터 꾸준하게 다시 누리 리싸이클링으로 고철을 가져올 터였다.

“알륨미늄 작업 끝냈습니다, 사장님.”
“고생하셨어요. 그나저나… 비철을 가져가는 거래처도 다시 잡아야겠네요.”
“흐음, 마당을 걱정해서 나가지 못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손님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싶어서요.”
“하긴… 손님들도 새로운 사장님의 얼굴을 자주 봐 둬야 하니까요.”

손님들과 친해지는 것.
대부분의 손님들은 아버지 또래였다.
이시우가 어렸을 때부터 봐 온 이들도 있었지만, 분명 새롭게 단골이 된 이들도 있을 터였다.
그 부분에서는 박태문의 도움이 절실했다.

“어린놈이 사장님 소리 듣는 걸 분명 안 좋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이시우는 장담할 수 있었다.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이전에도 이시우는 종종 부모를 잘 만났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종종 듣게 될 거예요. 다른 고물상 사장들도 어떻게든 절 폄하하려고 할 거고요.”
“하긴… 그 인간들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제가 더 마당에 있으려 하는 것도 있어요. 제가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손님들도 그런 소리를 들어도 무시할 거 아니에요.”

이시우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그의 초연한 모습을 보고 박태문은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시우와 박태문, 그리고 최문식은 퇴근하기 전에 사무실에 모여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CCTV를 통해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굉장히 익숙한 모습에 이시우가 말했다.

“강 부장님 오셨네요.”
“필중이가요?”

바로 오늘부터 명산철제로 출근해 영업을 배우기로 한 강필중이었다.
강필중은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사장님.”
“이렇게 안 오셔도 되요. 그보다 일이 일찍 끝나셨네요?”
“오늘은 첫날이라 영업에 대한 기본적인 것만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월급을 받는 입장인데 하루에 한 번은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까?”

강필중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필중아, 나 부장으로 승급했다. 그리고 문식이는 차장이야.”
“오오, 어제 하루 빠졌는데, 바뀐 게 많네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같은 부장끼리 잘해 보자고.”
“네, 박 부장님.”

강필중은 흐뭇하게 웃으며 박태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이시우에게 강필중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진 이사의 말로는 다음 주 중으로 고철 단가가 10원에서 20원 정도 올라갈 것 같다고 합니다.”

한 달 사이에 40원이 오른다는 사실을 이시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시우는 크게 놀라는 척을 했다.

“생각보다 빨리 오르네요?”
“지금 쌓여 있는 고철의 양도 많긴 하지만, 최대한 끌어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동의해요. 근데 오늘부터 손님들을 받아서…….”

고물상이 물건을 받는 방식은 다양했다.
고물상으로 직접 오는 보도꾼들을 통하거나, 영업을 통해 공장이나 현장에서 가져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영업이 가능한 사람이 없었기에 누리 리싸이클링은 도보꾼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가 현장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장성우가 접근을 하고 있지만, 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현장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흐음…….”
“현장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장성우가 제시한 금액은 계산서를 떼고 중량이 230원이라고 하더군요. 완전 날로 먹겠다는 거죠.”

계산서를 뗀 금액이라면 누리 리싸이클링은 금액을 250원까지 맞춰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물건이 더 좋다면 10원은 더 올려서 매입할 생각이었다.

‘단가 경쟁에서는 우리가 유리해. 상대측의 단가를 알아내다니, 강 부장님을 영업부장으로 임명한 게 나쁜 판단은 아니었어.’

고물상의 단가는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필중은 그동안 집게차 일을 하면서 현장 사람들과의 친분 관계를 최대치로 올린 인물이었다.
그의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그럼 영업을 배우는 거는요?”
“진 이사와 같이 다니다가 짬이 날 때마다 현장을 돌아볼 생각입니다. 물론 영업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누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진 이사에게도 미리 양해를 부탁드렸습니다.”

강필중은 내일부터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경험들을 할 생각이었다.
진준식의 곁에서 직접 보고 배울 생각인 것이었다.

“단가는… 중량은 250원에서 260원으로 맞추고, 경량은 220원에서 230원으로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아요. 단, 계산서를 뗀 금액이에요. 계산서 없이 현금으로 거래를 하면 20원이 낮춰진다는 것도 알아 두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마쳐 고요해진 고철장 앞에 이시우가 서 있었다.
그는 심경이 복잡했다.
고물상이 무엇을 중요시 여기고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 준 사람이 아버지라면, 고철의 종류나 다양한 잡지식을 알려 준 사람은 장성우였다.
이시우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장성우는 알뜰살뜰하게 다양한 지식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시우가 굴삭기는 물론, 할 줄 아는 게 하나둘 늘어나게 되자, 그때부터 장성우의 견제가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라…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박태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장성우가 그토록 친절하게 하나하나 이시우에게 알려 준 것은 분명 자신의 일을 덜기 위해서일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어수룩한 이시우를 제대로 부려먹기 위해서.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시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장성우를 품에 안았을까?
아니면 버렸을까.

***

이시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고철 생성 능력을 사용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능력만큼은 하루에 한 번 무조건 사용해야 했다.
30일 동안 꾸준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고철은 무려 30톤이나 쌓이게 된다.
현재 거래되는 금액으로 따지자면 870만 원에 달하는 양이었다.

‘아직도 얼떨떨하단 말이지. 혹시 나 이미 번개 맞고 죽었는데, 미련 남아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이시우는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눈앞에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정말로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능력은 자신에게 있어 큰 기회였다.
이시우는 고철들을 정리한 뒤, 문을 활짝 열었다.
아침 8시가 되기 전, 강필중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간 그가 마당에 있는 이시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명산으로 출근 안 하세요?”
“오후에 가기로 했어. 아직 일 시작 안 했으니까 말 편하게 한다?”
“물론이죠.”
“요 앞에 만들어지고 있는 산업단지 알지? 거기 현장 담당자가 나하고 친분이 좀 있거든. 그쪽에서 오늘 물건 좀 빼 달라고 연락이 왔어. 그래서 내가 직접 집게차 끌고 가서 현장 담장자하고 대화 좀 해 보려고.”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강필중.
그의 설명에 이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물건 떠 오면서 담당자도 같이 올 거야. 그때 인사하면 돼.”
“벌써부터 한 건 하시는 거예요?”
“부지런해야지. 시우, 네게 돈을 벌어다 주려면 아직 멀었어.”

강필중은 애틋한 눈빛으로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이시우는 비록 어리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알았다.
그가 명산철제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을 때, 강필중은 마음속으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최선을 다해 널 최고의 자리까지 올려 줄게.’

다시는 이시우가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고물상이란 업종으로 대기업의 반열에 오른 곳은 없었다.
대기업은 고사하고, 기업이라 칭하는 곳도 없었다.
이 바닥에서 기업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제철소들뿐이었다.

“고마워요, 부장님.”
“고맙기는 무슨. 월급을 받으면 그만큼은 최선을 다해야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올게.”
“네.”

사무실로 들어가 집게차의 시동을 걸어 둔 강필중이 작업복으로 꺼내 들었다.
가슴팍에 ‘누리’라 수놓아진 옷.
상의와 하의가 하나로 만들어진 작업복이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편의성과 소속감을 위해 이도운 전 대표가 맞춤 제작을 한 것이었다.
그 옷을 오늘도 강필중은 뿌듯한 얼굴로 갈아입었다.

부르릉―

“다녀오겠습니다. 사장님.”
“운전 조심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네!”

출발 전에 차량의 문을 열고 강필중이 인사했다.
이시우 역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차량이 마당을 벗어나고, 홀로 남게 된 이시우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8시 30분.
이시우는 사무실에서 어제 들어온 고철의 톤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최문식이 고물상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오늘만큼은 절대 늦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30분 일찍 출근했다.

“저 왔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이러다 경쟁이 붙어서 전처럼 7시에 출근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박태문은 성격이 괄괄했다.
무엇보다 경쟁심이 무척이나 강했다.
분명 오늘 최문식이 자신보다 일찍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일은 더 빨리 올지도 몰랐다.

“그러지 마세요. 기껏 결정한 출근 시간이 엉망이 되잖아요, 차장님.”
“그렇다고 매일같이 제가 놀림을 들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제가 부장님께 말할게요. 10분 정도 빨리 오는 건 이해하지만,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건 아니라고요.”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온 최문식이 스트레칭을 하며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이시우는 그를 위해 커피를 한 잔 타서 건네주었다.
최문식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커피를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라? 집게차는 어디 갔습니까, 사장님?”
“아, 강 부장님이 아침 일찍 오셔서 끌고 가셨어요. 현장에서 물건을 떠 온다고요.”
“역시 필중 형님이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박태문까지 출근하면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8시에 집게차를 끌고 현장으로 나간 강필중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고물상으로 복귀했다.
마당으로 들어와 계근대에 차를 올려 둔 그가 문을 열고 나왔다.

“다녀왔습니다.”
“어떤 물건인가요?”
“경량하고 중량하고 섞여 있긴 한데, 중량의 비중이 더 큽니다, 사장님.”

강필중이 사무실로 들어와 어떤 물건인지 설명을 하고 있을 때, 고물상 안으로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아마 강필중이 말한 현장 담장자일 확률이 컸다.
마당을 가로질러 사무실의 앞까지 온 남자가 종이에 계근 판대에 나온 숫자를 적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이시우라는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보성건축의 담장자입니다.”
“어서 오세요, 담당자님.”
“생각보다 톤수가 꽤 많이 나가네요. 다른 고물상에 물건을 줬을 때는 이 정도 중량은 안 나왔는데… 혹시 공차 중량이 어떻게 돼?”

남자가 고개를 돌려 강필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보편적으로 13.4톤에서 13.5 정도 나와. 자석까지 실려 있으니까, 아마 그 정도 나올 거야.”

컴퓨터에 나타난 숫자는 1만 8,890㎏.
공차를 재 봐야겠지만, 약 5,500㎏ 정도 나오는 무게였다.

“그때도 이 정도 물건을 실었던 것 같은데?”

조금은 깐깐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건축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철의 중량은 아주 중요했다.

“그래? 고물상마다 저울의 차이는 있으니까.”
“그때 4톤 정도 나왔었거든? 흐음, 뭐 이건 이미 지나간 거니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오자마자 중량을 보고 얼굴이 굳어지는 남자.
강필중이 그전에 근무하던 고물상에서 알게 된 인물로 가끔 만나 소주 한잔하는 사이로 발전한 친구였다.

“사장님, 일단 물건을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네, 내리면서 확인하면 되니까요. 경량과 중량을 따로 내려놔야 하는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