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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누리 리싸이클링 재오픈
어느 정도 마당 정리가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이시우는 누리 리싸이클링의 오픈 일정을 결정했다.
“당장 내일이요?”
“힘들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손님들의 전화번호부가 장 부장에게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 더 케이로 넘어갔거나 주변 고물상으로 넘어갔을 텐데…….”
강필중은 우려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손님들을 관리하는 일은 장성우가 도맡아 했다.
손님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그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손님들을 회유하고도 남을 사람이지. 하지만 더 케이까지 갈 손님들은 없을 거다. 주변 고물상으로 이동한 분들은 있겠지만.’
이시우는 그런 강필중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손님이 올 때까지 오픈 시기를 늦출 수는 없었다.
“괜찮을 거예요. 내일 오픈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봐야죠.”
“후우, 맞습니다. 언제까지 주변 고물상에게 끌려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단가 조정을 할 생각이에요. 더 케이에서 고물상에서 받는 금액을 올려 봤자 한계가 있죠. 하지만 저희는 아니잖아요?”
“명산철제가 뒤에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승산은 있었다.
고철 가격이 오르기 전에 최대한 고철을 쌓아 놔야 했지만, 이시우는 한 달 후에 가격이 얼마나 올라갈지 알고 있었다.
무려 40원이 상승을 할 예정이었다.
“오픈하고 한동안은 마당에 상주할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사장님.”
***
다음 날.
누리리싸이클의 문이 활짝 열렸다.
비록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기존에 열던 대로 7시부터 오픈했다.
새벽부터 움직이는 도보꾼들을 위해서라도 일찍 문을 열어야만 했다.
이시우는 어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서 고철을 생성시켜 놓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 한 귀퉁이에 철근을 만들어 놓고 모두 정리해 두었다.
빵―!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고물상 안으로 들어오는 낡은 포터 한 대가 들어왔다.
고철을 잔뜩 적재해 놓은 포터는 계근대 위에 멈추었다.
그리고 흙투성이의 작업복을 입은 중년인이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다가왔다.
“언제 오픈한 거야?”
“아, 강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래처를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손님.
고철이든, 비철이든, 파지든 간에 무조건 그는 누리로 물건을 가져오는 VIP였다.
행색은 비루했지만, 결코 무시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차량을 끌고 고철을 가져오는 보도꾼의 경우에는 하루를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니었다.
한 달에 일반 회사원들이 버는 돈보다 더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장 이사가 고물상 정리한다고 말해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그만뒀어요.”
“그건 알지. 장 이사가 전화해서 그으… 뭐시냐. 더 케이? 그쪽으로 오면 단가를 더 준다고 했거든.”
예상한 대로였다.
장성우는 이미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려놓은 상태였다.
“어휴, 어떤 미친놈이 거기까지 가? 기름값은 생각 안 하나. 쯧.”
“그렇긴 하죠.”
“그렇다고 다른 고물상은 별로 가고 싶지 않고. 사장부터 싹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하하, 아무튼 잘 오셨어요.”
“혼자 있는 거야?”
“네, 직원분들은 9시 출근이에요. 아침에는 저 혼자 고물상을 보려고요.”
강 사장, 강현석은 새삼 반갑다는 표정으로 누리 리싸이클링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들르지 못한 것은 고작 5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강현석이 오랜 시간 동안 거래를 해 오던 고물상이었다.
항상 정직했으며 초라한 그를 반겨 주는 유일한 공간.
“그럼 완전히 고물상을 이어받기로 한 거야?”
“네, 그러기로 결정했어요. 아버지가 고생해서 일군 곳이잖아요.”
희미한 미소를 짓는 이시우.
그 모습을 보고 강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부사장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손님들은 이시우를 예뻐했다.
어린 그가 아버지를 돕겠다고 일을 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대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에요?”
“철근! 오늘 물건 좋다?”
“그래요? 사장님이 가져오는 물건은 다 좋아서 그냥 좋다고 하면 구분이 안 되는걸요?”
“흐흐, 이 사장이 워낙 깐깐했어야지. 지저분한 고철을 가져오면 어찌나 잔소리를 그렇게 해 대는지… 그러다 보니 깔끔하게 물건을 가져오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지 뭐냐.”
아버지는 깐깐했다.
하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물건이 지저분하면 손님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단가를 떨어뜨리거나 감량을 하지 않는 선에서 받아줬다.
“일단 차 좀 대 주세요. 포크레인으로 내려 드릴게요.”
“오케이!”
이시우는 굴삭기로 달려가 시동을 켰고, 강현석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1t 트럭 적재함의 문을 땄다.
세 방향으로 문을 다 딴 강현석은 이시우에게 손짓했다.
그가 주는 신호를 확인한 이시우는 천천히 굴삭기를 작동했다.
집게로 물건을 내리다 보니 차가 망가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차량을 최대한 망가트리지 않고 내리는 것도 기술.
집게는 최대한 RPM을 떨어트린 상대에서 천천히 이동한 뒤, 운전석 앞부분에 있는 고철 무더기를 집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적재함을 쓸었다.
이렇게 쓸어서 내리는 것은 고철을 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편하기도 편할 뿐더러 안정성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우웅―
우르르―
철근들은 적재함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큼직큼직한 고철들이 해결이 되자, 이시우는 굴삭기에서 내려왔다.
이제 남은 고철은 손으로 내리는 게 더 편할 터였다.
“역시 깔끔하게 내리네.”
“저도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잖아요. 중간에 5년 쉬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기억하고 있죠.”
“이게 5년을 쉰 손놀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구만. 다른 고물상들은 본받아야 해. 자기 재산 아니라고 차가 망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거든.”
“직업 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네요.”
“기본적인 배려가 부족한 걸 수도 있고.”
이시우는 자잘한 고철들을 손으로 집어 던졌다.
그렇게 고철들을 비운 차량이 다시 계근대 위에 주차되었다.
총 중량과 공차 중량을 빼면 실중량이 나온다.
이때, 운전자가 차량에서 내리는지, 아니면 타고 중량을 재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이시우는 강현석이 차에서 내리자 벨을 눌렀다.
띠리링―
계근이 되었다는 신호.
벨소리를 들은 강현석은 다시 운전석에 앉은 뒤 차량을 사무실 앞으로 주차했다.
그 사이, 이시우는 빗자루를 들고 흙이 있는 적재함을 쓸었다.
“몇 톤이야?”
“딱 2톤 나왔어요.”
“기가 막히게 중량 맞춰 왔지?”
“사장님의 실력이야 제가 언제나 인정하는 부분이니까요.”
강현석은 사무실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커피를 탔다.
“계좌로 보내 드릴게요. 여기 계근표요.”
“응? 단가가 이상한데?”
평소 같으면 단가가 210원으로 적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240원으로 적혀 있었다.
고철의 무게가 2톤이라 가정했을 때, 다른 고물상에 넘기는 것보다 무려 6만 원이나 더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전의 고철 가격은 턱없이 낮았다.
이번 역시 더 케이 베스틸로 납품했다 하면, 260원으로 책정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납품 가격이 낮았기 때문에 누리 리싸이클링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산에 넘기는 가격은 290원.
손님들의 주머니를 충분히 채워 주고도 남는 가격이었다.
“오늘 10원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단가를 올려 드릴 생각이에요. 특히 자주 오시는 단골들은 그보다 10원을 더 올려 드리려고요.”
“그럼 남는 게 없지 않니?”
“괜찮아요. 거래처를 바꾸었거든요. 남는 거 없이 손해를 보면서 장사할 고물상은 없잖아요, 사장님.”
“하긴… 이런 부분에서는 나보단 네가 더 잘 알 테니 걱정하지 않으마. 아, 이제 이 사장이라 불러야지?”
“호칭은 사장님 편할 대로 해 주세요.”
편하게 호칭을 해 달라는 말에 강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도운의 뒤를 이어받아 고물상을 운영할 사장에게 그전처럼 야, 아니면 너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사장이 되자마자 수완이 좋네. 아주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단가가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지는데, 사장님은 우리 고물상으로 무조건 오시잖아요. 이제 저희도 보답해 드릴 때가 온 거죠.”
“고맙다. 박쥐 같은 인간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아마 몰려들 거야.”
“그걸 노리고 단가를 올린 거긴 해요. 그래도 다른 분들에게 이런 단가로는 못 드리죠. 사장님이니까 그 단가에 매입하는 거고요.”
이시우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단가를 절대 말 안 할게. 뭐, 나도 230원 받았다고 하면 되니까.”
“역시 말이 잘 통하시네요?”
“크크, 내가 이 바닥 몇 년 차인데?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야, 이 사장?”
“농담이죠.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기뻐요.”
“그래, 나도.”
2톤이라는 고철.
지금 이 물건으로 강현석이 가져가는 돈은 48만 원이었다.
“지금 바로 사장님 계좌로 보내 드릴게요.”
“천천히 해. 하루 이틀 거래하는 것도 아니고. 누리가 돈 떼먹는 곳이 아닌 건 나도 알아.”
“그래도 바로바로 보내 드리면 좋잖아요.”
이시우는 곧바로 핸드폰으로 계좌 이체를 해 주었다.
이미 기록되어 있는 계좌들이 있기에 수월하게 돈을 보낼 수 있었다.
“어,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 누리가 문을 닫은 5일 동안 계속 일을 쉬셨던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하루를 벌고 하루를 사는 입장인데, 어떻게 일을 쉬어?”
“그럼 그동안 고철들은…….”
“마당에 내려놨지. 이제 누리가 오픈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싹 다 가져와야지.”
강현석은 고철을 가져오는 족족 집 마당에 내려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고철들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처분할 시기가 오고 있었기에 고민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다른 고물상에 넘기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장 이사, 그 사람도 참 멍청하단 말이지. 직급도 부장으로 떨어졌고. 그냥 여기에 눌러앉아 있으면 일도 편하게 하고 눈치도 안 보고, 좋지 않나?”
“하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가 왜 그만두고 더 케이 베스틸로 이직했는지 알려 줄 수 없었다.
가벼운 감정 다툼이나 개인 사정이면 흘러가듯 말할 수는 있어도, 무척이나 예민한 내부 사정이기에 괜한 소문이 나는 것을 의식해서라도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사장도 속상할 텐데 더 말해서 뭐하겠어. 아무튼 오늘 한 세 번 정도는 더 올 테니까, 잘 받아줘!”
“네, 언제든 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강현석이 떠났고, 손님은 더 이상 없었다.
누리 리싸이클링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었다.
그리고 고물상을 접는다는 장성우에 말에 오던 손님들도 이곳을 들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오셨어요? 안 그래도 강 사장님 오셨다 가셨어요.”
“아, 강 사장이요? 하긴 그 양반이 다른 고물상으로 가는 건 말도 안 되긴 하죠. 매일같이 오면 다른 고물상 욕하기 바쁜 양반이니.”
“그래도 다행이죠. 오늘 세 번 정도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깔끔한 옷차림으로 출근한 박태문이 이시우의 말을 들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최문식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혹시 부장님 오셨습니까?”
“네, 한발 늦으셨네요.”
“이런… 내일부터는 부장님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문식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때, 때마침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박태문이 혀를 찼다.
“차장 주제에 부장보다 더 늦게 출근해?”
“저도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일부턴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부장님!”
이시우는 직급을 준 게 신의 한 수라 생각했다.
형님, 아니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던 두 사람이 상관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쁘게 느껴졌다.
이제 조금씩 체계가 갖춰져 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철을 마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손님들이 몰려오면 저희도 물건 살 돈을 미리미리 만들어 둬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늘 봐오던 강필중의 빈자리가 느껴지긴 했지만, 이시우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이 비철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비철 정리만 신경 써 주세요. 손님들을 받고 물건을 내리는 건,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가자고, 최 차장.”
“넵, 부장님!”
두 사람이 비철칸으로 장비를 챙겨 향했다.
비철도 등급이 나누어져 있었다.
피스가 박혀 있는 건 B급.
피스 없이 깔끔한 건 A급.
그리고 B급 알루미늄을 작업해서 A급으로 만드는 게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오늘은 속도 좀 올리자. 도대체 며칠째 비철을 잡고 있는 거냐?”
“마당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잖아요, 부장님.”
“그래도 더 열심히 해서 사장님께 돈을 만들어 줘야지. 그래야 월급을 받아도 떳떳하게 받지 않겠냐.”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이동했고, 그걸 바라보고 있던 이시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이시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과연 오늘 손님이 얼마나 오려나? 최대한 많이 와야 되는데…….’
어느 정도 마당 정리가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이시우는 누리 리싸이클링의 오픈 일정을 결정했다.
“당장 내일이요?”
“힘들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손님들의 전화번호부가 장 부장에게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 더 케이로 넘어갔거나 주변 고물상으로 넘어갔을 텐데…….”
강필중은 우려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손님들을 관리하는 일은 장성우가 도맡아 했다.
손님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그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손님들을 회유하고도 남을 사람이지. 하지만 더 케이까지 갈 손님들은 없을 거다. 주변 고물상으로 이동한 분들은 있겠지만.’
이시우는 그런 강필중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손님이 올 때까지 오픈 시기를 늦출 수는 없었다.
“괜찮을 거예요. 내일 오픈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봐야죠.”
“후우, 맞습니다. 언제까지 주변 고물상에게 끌려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단가 조정을 할 생각이에요. 더 케이에서 고물상에서 받는 금액을 올려 봤자 한계가 있죠. 하지만 저희는 아니잖아요?”
“명산철제가 뒤에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승산은 있었다.
고철 가격이 오르기 전에 최대한 고철을 쌓아 놔야 했지만, 이시우는 한 달 후에 가격이 얼마나 올라갈지 알고 있었다.
무려 40원이 상승을 할 예정이었다.
“오픈하고 한동안은 마당에 상주할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사장님.”
***
다음 날.
누리리싸이클의 문이 활짝 열렸다.
비록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기존에 열던 대로 7시부터 오픈했다.
새벽부터 움직이는 도보꾼들을 위해서라도 일찍 문을 열어야만 했다.
이시우는 어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서 고철을 생성시켜 놓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 한 귀퉁이에 철근을 만들어 놓고 모두 정리해 두었다.
빵―!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고물상 안으로 들어오는 낡은 포터 한 대가 들어왔다.
고철을 잔뜩 적재해 놓은 포터는 계근대 위에 멈추었다.
그리고 흙투성이의 작업복을 입은 중년인이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다가왔다.
“언제 오픈한 거야?”
“아, 강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래처를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손님.
고철이든, 비철이든, 파지든 간에 무조건 그는 누리로 물건을 가져오는 VIP였다.
행색은 비루했지만, 결코 무시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차량을 끌고 고철을 가져오는 보도꾼의 경우에는 하루를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니었다.
한 달에 일반 회사원들이 버는 돈보다 더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장 이사가 고물상 정리한다고 말해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그만뒀어요.”
“그건 알지. 장 이사가 전화해서 그으… 뭐시냐. 더 케이? 그쪽으로 오면 단가를 더 준다고 했거든.”
예상한 대로였다.
장성우는 이미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려놓은 상태였다.
“어휴, 어떤 미친놈이 거기까지 가? 기름값은 생각 안 하나. 쯧.”
“그렇긴 하죠.”
“그렇다고 다른 고물상은 별로 가고 싶지 않고. 사장부터 싹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하하, 아무튼 잘 오셨어요.”
“혼자 있는 거야?”
“네, 직원분들은 9시 출근이에요. 아침에는 저 혼자 고물상을 보려고요.”
강 사장, 강현석은 새삼 반갑다는 표정으로 누리 리싸이클링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들르지 못한 것은 고작 5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강현석이 오랜 시간 동안 거래를 해 오던 고물상이었다.
항상 정직했으며 초라한 그를 반겨 주는 유일한 공간.
“그럼 완전히 고물상을 이어받기로 한 거야?”
“네, 그러기로 결정했어요. 아버지가 고생해서 일군 곳이잖아요.”
희미한 미소를 짓는 이시우.
그 모습을 보고 강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부사장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손님들은 이시우를 예뻐했다.
어린 그가 아버지를 돕겠다고 일을 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대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에요?”
“철근! 오늘 물건 좋다?”
“그래요? 사장님이 가져오는 물건은 다 좋아서 그냥 좋다고 하면 구분이 안 되는걸요?”
“흐흐, 이 사장이 워낙 깐깐했어야지. 지저분한 고철을 가져오면 어찌나 잔소리를 그렇게 해 대는지… 그러다 보니 깔끔하게 물건을 가져오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지 뭐냐.”
아버지는 깐깐했다.
하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물건이 지저분하면 손님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단가를 떨어뜨리거나 감량을 하지 않는 선에서 받아줬다.
“일단 차 좀 대 주세요. 포크레인으로 내려 드릴게요.”
“오케이!”
이시우는 굴삭기로 달려가 시동을 켰고, 강현석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1t 트럭 적재함의 문을 땄다.
세 방향으로 문을 다 딴 강현석은 이시우에게 손짓했다.
그가 주는 신호를 확인한 이시우는 천천히 굴삭기를 작동했다.
집게로 물건을 내리다 보니 차가 망가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차량을 최대한 망가트리지 않고 내리는 것도 기술.
집게는 최대한 RPM을 떨어트린 상대에서 천천히 이동한 뒤, 운전석 앞부분에 있는 고철 무더기를 집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적재함을 쓸었다.
이렇게 쓸어서 내리는 것은 고철을 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편하기도 편할 뿐더러 안정성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우웅―
우르르―
철근들은 적재함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큼직큼직한 고철들이 해결이 되자, 이시우는 굴삭기에서 내려왔다.
이제 남은 고철은 손으로 내리는 게 더 편할 터였다.
“역시 깔끔하게 내리네.”
“저도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잖아요. 중간에 5년 쉬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기억하고 있죠.”
“이게 5년을 쉰 손놀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구만. 다른 고물상들은 본받아야 해. 자기 재산 아니라고 차가 망가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거든.”
“직업 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네요.”
“기본적인 배려가 부족한 걸 수도 있고.”
이시우는 자잘한 고철들을 손으로 집어 던졌다.
그렇게 고철들을 비운 차량이 다시 계근대 위에 주차되었다.
총 중량과 공차 중량을 빼면 실중량이 나온다.
이때, 운전자가 차량에서 내리는지, 아니면 타고 중량을 재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이시우는 강현석이 차에서 내리자 벨을 눌렀다.
띠리링―
계근이 되었다는 신호.
벨소리를 들은 강현석은 다시 운전석에 앉은 뒤 차량을 사무실 앞으로 주차했다.
그 사이, 이시우는 빗자루를 들고 흙이 있는 적재함을 쓸었다.
“몇 톤이야?”
“딱 2톤 나왔어요.”
“기가 막히게 중량 맞춰 왔지?”
“사장님의 실력이야 제가 언제나 인정하는 부분이니까요.”
강현석은 사무실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커피를 탔다.
“계좌로 보내 드릴게요. 여기 계근표요.”
“응? 단가가 이상한데?”
평소 같으면 단가가 210원으로 적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240원으로 적혀 있었다.
고철의 무게가 2톤이라 가정했을 때, 다른 고물상에 넘기는 것보다 무려 6만 원이나 더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전의 고철 가격은 턱없이 낮았다.
이번 역시 더 케이 베스틸로 납품했다 하면, 260원으로 책정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납품 가격이 낮았기 때문에 누리 리싸이클링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산에 넘기는 가격은 290원.
손님들의 주머니를 충분히 채워 주고도 남는 가격이었다.
“오늘 10원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단가를 올려 드릴 생각이에요. 특히 자주 오시는 단골들은 그보다 10원을 더 올려 드리려고요.”
“그럼 남는 게 없지 않니?”
“괜찮아요. 거래처를 바꾸었거든요. 남는 거 없이 손해를 보면서 장사할 고물상은 없잖아요, 사장님.”
“하긴… 이런 부분에서는 나보단 네가 더 잘 알 테니 걱정하지 않으마. 아, 이제 이 사장이라 불러야지?”
“호칭은 사장님 편할 대로 해 주세요.”
편하게 호칭을 해 달라는 말에 강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도운의 뒤를 이어받아 고물상을 운영할 사장에게 그전처럼 야, 아니면 너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사장이 되자마자 수완이 좋네. 아주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단가가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지는데, 사장님은 우리 고물상으로 무조건 오시잖아요. 이제 저희도 보답해 드릴 때가 온 거죠.”
“고맙다. 박쥐 같은 인간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아마 몰려들 거야.”
“그걸 노리고 단가를 올린 거긴 해요. 그래도 다른 분들에게 이런 단가로는 못 드리죠. 사장님이니까 그 단가에 매입하는 거고요.”
이시우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단가를 절대 말 안 할게. 뭐, 나도 230원 받았다고 하면 되니까.”
“역시 말이 잘 통하시네요?”
“크크, 내가 이 바닥 몇 년 차인데?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야, 이 사장?”
“농담이죠.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기뻐요.”
“그래, 나도.”
2톤이라는 고철.
지금 이 물건으로 강현석이 가져가는 돈은 48만 원이었다.
“지금 바로 사장님 계좌로 보내 드릴게요.”
“천천히 해. 하루 이틀 거래하는 것도 아니고. 누리가 돈 떼먹는 곳이 아닌 건 나도 알아.”
“그래도 바로바로 보내 드리면 좋잖아요.”
이시우는 곧바로 핸드폰으로 계좌 이체를 해 주었다.
이미 기록되어 있는 계좌들이 있기에 수월하게 돈을 보낼 수 있었다.
“어,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 누리가 문을 닫은 5일 동안 계속 일을 쉬셨던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하루를 벌고 하루를 사는 입장인데, 어떻게 일을 쉬어?”
“그럼 그동안 고철들은…….”
“마당에 내려놨지. 이제 누리가 오픈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싹 다 가져와야지.”
강현석은 고철을 가져오는 족족 집 마당에 내려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고철들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처분할 시기가 오고 있었기에 고민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다른 고물상에 넘기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장 이사, 그 사람도 참 멍청하단 말이지. 직급도 부장으로 떨어졌고. 그냥 여기에 눌러앉아 있으면 일도 편하게 하고 눈치도 안 보고, 좋지 않나?”
“하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가 왜 그만두고 더 케이 베스틸로 이직했는지 알려 줄 수 없었다.
가벼운 감정 다툼이나 개인 사정이면 흘러가듯 말할 수는 있어도, 무척이나 예민한 내부 사정이기에 괜한 소문이 나는 것을 의식해서라도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사장도 속상할 텐데 더 말해서 뭐하겠어. 아무튼 오늘 한 세 번 정도는 더 올 테니까, 잘 받아줘!”
“네, 언제든 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강현석이 떠났고, 손님은 더 이상 없었다.
누리 리싸이클링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었다.
그리고 고물상을 접는다는 장성우에 말에 오던 손님들도 이곳을 들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오셨어요? 안 그래도 강 사장님 오셨다 가셨어요.”
“아, 강 사장이요? 하긴 그 양반이 다른 고물상으로 가는 건 말도 안 되긴 하죠. 매일같이 오면 다른 고물상 욕하기 바쁜 양반이니.”
“그래도 다행이죠. 오늘 세 번 정도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깔끔한 옷차림으로 출근한 박태문이 이시우의 말을 들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최문식이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혹시 부장님 오셨습니까?”
“네, 한발 늦으셨네요.”
“이런… 내일부터는 부장님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문식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때, 때마침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박태문이 혀를 찼다.
“차장 주제에 부장보다 더 늦게 출근해?”
“저도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일부턴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부장님!”
이시우는 직급을 준 게 신의 한 수라 생각했다.
형님, 아니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던 두 사람이 상관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기쁘게 느껴졌다.
이제 조금씩 체계가 갖춰져 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철을 마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손님들이 몰려오면 저희도 물건 살 돈을 미리미리 만들어 둬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늘 봐오던 강필중의 빈자리가 느껴지긴 했지만, 이시우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이 비철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비철 정리만 신경 써 주세요. 손님들을 받고 물건을 내리는 건,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가자고, 최 차장.”
“넵, 부장님!”
두 사람이 비철칸으로 장비를 챙겨 향했다.
비철도 등급이 나누어져 있었다.
피스가 박혀 있는 건 B급.
피스 없이 깔끔한 건 A급.
그리고 B급 알루미늄을 작업해서 A급으로 만드는 게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오늘은 속도 좀 올리자. 도대체 며칠째 비철을 잡고 있는 거냐?”
“마당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잖아요, 부장님.”
“그래도 더 열심히 해서 사장님께 돈을 만들어 줘야지. 그래야 월급을 받아도 떳떳하게 받지 않겠냐.”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이동했고, 그걸 바라보고 있던 이시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이시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과연 오늘 손님이 얼마나 오려나? 최대한 많이 와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