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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 진짜 유산은 고철!




강필중이 명산철제로 출근하는 게 결정이 되었다.
각 직원들을 다 돌려보낸 뒤, 이시우와 문재신은 사무실로 들어와 마주보고 앉았다.

“대표님의 마음 잘 와닿았습니다.”
“누리를 지키고 싶기도 하지만, 절 믿고 남아 준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우철과 문재신의 인연으로 이어지던 관계였다.
하지만 오늘부터 문재신은 이시우와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결정을 내렸다.

“대표님, 고물상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많지만,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대다수입니다.”
“동감합니다.”
“전 대표님 같은 젊은 사람들이 고물상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고물상은 이제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가면 갈수록 젊은 사람들이 고물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점점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져만 가는 상황.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고물상 운영은 마냥 쉽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업종이지만, 제대로 된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금방 망하는 곳이 고물상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배움을 위해서 이시우가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강필중의 파견을 부탁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고물상이라는 사업을 무작정 달려들 수는 없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고물상을 하시지 않았더라면 이어받을 생각을 못 했을 테니까요”
“그렇겠죠. 이 직종이 워낙 진입 장벽이 높아야 말입니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정해진 틀에 따라 일하는 직업과는 달랐다.
몸으로 경험하고 손해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고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샜군요. 고물상 사업을 이어 가는 선배로서 하는 한탄이라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보다 어제 가져간 물건 값은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선입금을 받은 돈에서 제외할지, 아니면 받은 돈을 그대로 두고 새롭게 금액을 지불해야 할지를 묻는 것이었다.
보통은 선입금을 받은 상태에서 물건값을 새롭게 지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시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보통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표님께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고철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합니다.”
“이해합니다. 3,000만 원이라는 돈은 솔직히 말해 누리 마당에 있는 고철만 모두 처리하더라도 충분히 깔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3,000만 원이라는 금액이 크게 느껴질지 몰라도, 고물상 운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적어도 1억은 지니고 있어야 했다.

“중량이 7,270이었고, 경량이 5,230이었군요.”

절대 가벼운 금액이 아니었다.
명산에서 주기로 한 금액이 중량이 300원이었고 경량이 260원.
중량 218만 1,000원.
경량 135만 9,800원.
총 354만 800원이라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선입금을 제외하지 않고 새롭게 명산이 350만 원이라는 금액을 보내 주기로 결정되었다.

“다 해서 350만 원 정도 됩니다.”
“확답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한 달 안에 선입금을 되도록 빠르게 갚겠습니다.”

고물상과 고물상이 거래할 때, 단가에 큰 영향력을 주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세금 계산서.
세금을 처리해 주느냐, 안 해 주느냐에 따라 단가는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계산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해 드려야죠. 계산서를 하는 조건으로 내건 단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세금 계산서를 때냐 안 때냐에 따라 20원 정도 되는 단가의 차이를 보였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세금 계산서를 때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누리를 살리자고 명산에 피해를 안길 수는 없었다.

“여기, 사업자 등록증입니다.”
“사업자 등록증과 통장 사본입니다.”

명산과 누리는 모두 법인 회사, 개인적인 사업자가 아니었다.
법인 회사는 세금이 많이 나오는 것을 경계해야 했으며, 최대한 지출과 매출을 맞춰야 했다.
지출보다 매출이 늘어나는 순간, 세금은 거대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도꾼들에게 지급하는 현금은 본래라면 지출로 잡혀야 했으나, 계산서를 때지 못하는 이들이었기에 지출은 오히려 매출로 잡혀 버렸다.
법인 계좌에서 돈을 빼서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방법은 지출을 잡고 현금화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개인 사업자는 국가에서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법인은 아니었다.
매출대로 온전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도보꾼들이 현금으로 돈을 가져가는 순간, 세금에 대한 문제도 일어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탈세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법적인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너무 오랫동안 같은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있었기에 고칠 방법이 없었다.
사업자가 없는 이상 세금 계산서를 땔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상속세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이 땅이 전 사장님의 명의로 된 땅이라면…….”

문재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리 리싸이클링은 용인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기도 촌 동네에 있더라도 평수가 무려 1,000평이었다.
이도운의 개인 통장에 얼마 있지 않는다고 해도 땅이 문제였다.

“제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에 문재신이 처음으로 화들짝 놀랐다.

“네?”
“아버지께서 제가 성인이 된 시점에 증여세를 내고 제 명의로 돌리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증여세 때문에 한 번 고물상이 휘청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위기를 잘 넘겨서 다행이죠.”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이시우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다’라는 말만 할 뿐, 정확한 이유를 알려 주지 않았다.
단순히 물려주는 것뿐이라면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해도 괜찮았을 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언가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시우가 성인이 되자마자 명의를 바꾸었다.
이시우는 괜히 눈가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만큼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전 사장님께서 엄청난 결정을 하셨군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저도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굳게 닫혀 있는 사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여기는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 준 곳이었다.

“땅 가격이 참 많이 올랐죠. 하지만 대표님, 아무리 땅값이 크게 오르더라도 팔 생각이 없습니다.”
“흐음, 위치가 좋다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여유가 있을 때 팔고 옮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시우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문재신은 그의 눈빛을 보고 실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시우는 그의 잘못을 책하지 않고 가만히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문재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사장님이 대표님을 참 잘 가르쳐 주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만한 가격의 땅이라면 당장 팔 생각부터 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틀린 말은 아니죠.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은 맞으니까요.”

고물상.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유산이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이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저도 고물상 사장인가 봅니다. 현 시점에서 땅이나 고물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철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돈만 바라봤다면, 상속자에게 이 땅과 고물상이란 업체는 보물과도 같았다.
법인이라는 사업체를 판매하면 꽤 큰 금액을 받아낼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땅값까지 더한다면 아마 평생을 통틀어 이시우가 만져 본 가장 큰 돈이 될 터였다..

‘하지만 저 고철들도 같이 물려주셨으니까.’

이시우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힘이 되어 준 요소.
그것은 바로 고철이었다.
고물상에 물건이 없으면, 그건 끝을 의미했다.
거기다 고철 자체는 상속세라는 것이 없는 무형의 유산.

“보는 관점이 다르긴 하군요. 저도 아들 하나 있는데, 대표님 같은 마인드만 되더라도 걱정이 덜할 것 같습니다. 하하.”
“언제 한번 아드님을 이쪽으로 파견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같이 일하는 분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면 날수록 이 직업에 흥미를 느끼진 못할 테니까요.”

이시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문재신은 그 말에 큰 영감을 받았다.

‘호오, 괜찮은 제안이군.’

문재신의 아들은 현재 23살이었다.
그는 대학도 가지 않고 고물상에서 잔심부름이나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대로 일하라는 말도 듣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업체에 들어가 고생하는 것을 볼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고민하던 찰나에 이시우가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 주었다.

“만약 제 아들을 누리에 보내게 되면, 월급은 명산에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괜찮네요. 저도 또래의 친구 하나 생기고, 지원도 늘고 좋죠. 후후.”

이시우는 ‘설마 진짜로 그가 아들을 보내겠어’라는 생각에 가볍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강 부장님의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 이사가 영업에서 있어서 최고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예민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이사님께도 나중에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해야겠네요.”

문재신이 떠나자, 이시우는 마당에서 일하고 있던 최문식과 박태문을 불렀다.
그들에게 커피 한 잔을 타 주며 앉은 이시우.
박태문은 입을 꾹 다문 채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제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아니지만, 직원들이 앞에 있는데 고개를 숙이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박태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자신의 고개 한 번으로 강필중의 미래가 탄탄해진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직원들을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저는 월급을 지불할 수 있도록, 누리가 흔들리는 걸 막아야 하는 입장이에요.”
“이해는 합니다. 필중이 녀석이 제대로 영업을 배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니까요.”
“이해해 주세요. 이것 하나는 약속해 드릴 수 있어요. 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를 꼭 지킬게요.”
“알겠습니다.”
“이제 강 부장님이 없으니, 제가 할 일이 늘어나겠네요. 자, 커피 마저 마시고 일 시작해 볼까요?”

집게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빠졌다.
비록 지금은 외부에 떠올 고철이 없지만, 언제 어디서 외부로 나가 고철을 떠 와야 할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지. 내가 집게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누구 하나 빠지더라도 사장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
그의 말에 따라 이시우는 고물상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혔다.

“사장님.”
“네, 아저씨.”

대화를 듣고 있던 최문식이 나지막이 이시우를 불렀다.
강필중이 영업 쪽으로 간 이상,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제가 한번 집게차를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아저씨가요?”
“강 부장이 중요한 일 때문에 빠져서 마당에 저와 형님 둘이서 있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집게차로 물건을 내려주거나 외부로 물건을 떠 오기도 했죠.”

하나만 알고 있다고 해서 고물상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일은 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래서 최문식은 집게 차를 미리 배워 두었다.

“문식이가 집게차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탑니다, 사장님.”
“아, 진짜요?”
“네. 문식이가 집게차를 배울 땐, 저는 포크레인을 배웠습니다.”

재능 있는 직원들.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그들은 고물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지금에서야 빛을 발했다.

“아…….”
“저 포크레인 자격증도 있습니다.”

자격증 싸움에서 밀릴 수는 없는 일.
최문식이 박태문의 말이 끝나자 바로 말했다.

“저는 지게차 자격증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우리 고물상에 참 능력자들이 많네요. 안 그래요?”
“가장 떨어지는 녀석이 필중이죠.”
“흐흐, 그런가요?”

임금님이 없는 자리에서는 임금도 욕한다는 말이 있었다.
자리를 비운 강필중을 주제로 분위기를 띄운 박태문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게차도 못해, 포크레인도 못해. 솔직히 말해 녀석이 집게차를 배우지 않았다면 할 수 있는 건 마당지기뿐이었을 겁니다. 하하.”
“의외의 이야기를 듣네요.”

이시우는 그 후에도 두 사람과 가볍게 농담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쉬는 이 시간.
이시우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

“자, 이제 일어나서 일하죠. 그리고 이제 두 분의 직급도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언제까지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연장자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비록 사장이라 하더라도, 이시우는 예의 없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전 문식이보다만 높으면 됩니다.”
“형님, 집게차 기사는 기본 직급이 부장이라는 말도 모르세요?”
“이 녀석아, 양심을 챙겨라. 10년 이상 집게차 일을 해 온 필중이와 너는 다르잖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시우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박씨 아저씨는 부장, 최씨 아저씨는 차장으로 하시죠. 제가 명함도 준비해 드릴게요.”
“명함이요? 돈 아깝게 명함은 무슨…….”
“에이, 명함까지 바라지는 않습니다.”
“아니요. 두 분은 명함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제가 마당에 없으면, 오는 손님분들께 드릴 명함은 하나 있어야 하니까요.”

명함을 파는 데 큰 금액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직급이 들어간 명함을 받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일을 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는 것도 있고.’

“흐음, 괜찮은데…….”
“제가 두 분께 드리는 선물이라 생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