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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적재적소
갑작스런 이시우의 제안.
강필중의 당황한 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설마 자신에게 부장의 자리를 제안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사장님, 전 기사 생활만 하던 사람입니다.”
“그 오랜 기사 생활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셨고 지식을 쌓으셨죠.”
“사장님…….”
기쁜 마음, 부담스러운 마음, 여러 가지가 뒤섞인 심정으로 강필중이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이시우도 그가 부담스러워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 현장으로 나가 영업을 할 자신이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를 설득하기로 작정한 이상 제대로 밀어붙여야 했다.
“젊은 고물상 사장을 제대로 대우해 줄 만한 현장직이 있을까요? 마당을 책임지는 자리지만, 솔직히 말해 전 강 기사님께 영업을 맡기고 싶어요.”
아랫사람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를 어떻게 기용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사장의 몫이었다.
이시우는 오랜 시간 동안 강필중을 봐 왔다.
그는 직급도, 나이도 따지지 않고 언제든 살갑고 상황에 따라 정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영업직을 책임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자신이 없습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지금은 둘뿐이잖아요.”
“후우, 시우야. 난 자신이 없다.”
“저도 자신이 있어서 대표직을 이으려는 게 아니에요. 누리를 지키고 싶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거죠. 저를 도와주세요, 강 기사님.”
누리를 지키고 싶다.
강필중은 그 말에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마냥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러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던 눈빛이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시우, 네가 모른다고 하면 어떡해.”
“그렇지만 저랑 기사님이랑 같이 일해 본 적이 없잖아요.”
강필중과 최문식, 박태문이 누리 리싸이클링으로 들어올 때, 이시우는 이미 장성우 때문에 고물상에서 마음이 조금 떠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제대로 합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은 즉, 이 세 명은 이시우의 역량을 모르면서도 고물상에 의리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장성우 그놈이 자리를 비우면 항상 네가 대신하고는 했잖냐.”
“그거야… 아무리 장 부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물상이 엉망이 되는 꼴은 볼 수 없었으니까요.”
“후우, 아무튼 시우야, 나는 잘 모르겠다. 나 때문에 누리가 더 힘들어질까 봐 무서워.”
말 그대로 강필중은 두려웠다.
사실 의리로 남았다고는 하지만, 10년 넘게 일해 온 직장이 이대로 무너질까 봐 걱정되었다.
더 케이 베스틸과도 문제가 생겼고, 거래처도 없었다.
이대로 누리가 무너진다면, 그때 자신은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이시우는 위기를 잘 극복했다.
심지어 더 케이 베스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대형 업체를 새로운 거래처로 잡아왔다.
“에이, 힘들 게 뭐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장 부장보다는 잘할 거잖아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놈보다 일을 못하면 짐승이지, 그게 사람이냐.”
“그럼 뭐가 두려워요? 장 부장이 있을 때보다 힘들어질 수가 없지 않나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미 누리 리싸이클링은 최악을 경험했다.
강필중이 실수를 한다고 해도 그 최악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었다.
“영업을 성공하지 못해도 되요. 전 그저 강 기사님께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언제까지고 기사로서 지낼 수는 없었다.
나이가 더 든다면 자연스럽게 기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시우는 그 이후의 일에 대해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있었다.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이 넘었어. 새로운 걸 다시 익히고 배울 수 있을까?”
“왜 새로운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했던 거를 다시 복습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강필중은 이미 계약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철의 단가가 어느 정도인지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최문식과 박태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시우는 이 능력 있는 직원들을, 자신을 믿고 남아 준 직원들을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작은 고물상에 불과하지만, 이 세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생각이었다.
“전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어요. 저는 누리를 더 키우고 싶어요. 강 기사님은 어떠세요?”
“…….”
“제 비전을 지금 강 기사님께 말해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 포부 역시.”
뜨겁다.
강필중은 이시우의 눈빛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다 이런 건가 싶었지만, 금방 고개를 저었다.
확신과 믿음이 담겨 있는 이시우의 시선을 피할 수 없던 강필중은 이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줘.”
“물론이에요.”
“일주일, 그 안에 결정해서 말해 줄게.”
이시우는 이미 대답을 들은 것마냥 환하게 웃었다.
“이런 제안을 해 줘서 고마워. 신중하게 판단할게, 시우야.”
“신중하게 판단하지 말고 그냥 질러 버리세요.”
“하하하, 나도 그러고 싶지만, 고물상을 위해서라도 신중하게 판단해야지. 누리는 내게 있어서도 소중한 곳이거든.”
***
하루 일과가 끝나고, 사람들은 고물상을 정리하고 샤워까지 마쳤다.
직원들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이시우도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 앞에 나와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바로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회식 날이었다.
“준비 끝났어. 가자.”
강필중이 이시우에게 말했다.
편하게 말해 주는 그에게 이시우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식당으로 걸어갔다.
가까운 곳에 회집이 있었기에 차를 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회식을 하면서 술 한잔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네 사람이요. 광어하고 우럭, 그리고 매운탕 주세요.”
앉자마자 익숙하게 주문을 한 이시우.
이곳은 아버지와 가끔씩 오던 식당이었기에 횟집 사장님과도 알고 지내 왔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한… 5년 만이죠?”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간 후, 이곳에 방문해서 식사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가 여기 음식을 포장해서 가져온 기억은 있지만.
“이야기는 들었단다. 고물상은 네가 이어받은 거니?”
“네. 아무래도 아버지가 남기신 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안 놓이더라구요.”
“대견하네.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금방 준비해서 가져다줄게.”
“천천히 해 주셔도 되요. 아, 술 좀 가져갈게요.”
이시우는 소주 두 병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세 직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수저를 깔고, 소주잔과 손질된 당근, 그리고 쌈장을 가져와 세팅했다.
“한 잔 받으세요, 아저씨.”
이시우가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인 박태문에게 소주를 권했다.
그는 두 손으로 이시우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강 기사님께도 이야기했는데, 사적인 자리에서는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장과 직원의 벽이 무너지게 되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시우의 말에 박태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혀를 차며 강필중을 노려보았다.
“필중아, 사장님께서 그렇게 하자고 해도 말렸어야지.”
“그게… 형님…….”
“우리는 사장님이 지급하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다.”
규칙과 규율을 중요시 여기는 박태문답게 그는 엄한 표정으로 강필중을 혼냈다.
“직원과 사장 사이에 벽은 필요하죠. 하지만 저희가 그냥 직원과 사장 사이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전 아저씨들을 가족이라 생각해요.”
아버지가 떠났고, 이제 이시우에게 남은 가족은 없었다.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출산에도 문제가 생겼고, 아이와 산모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아이를 선택했고, 이 자리에 이시우가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담담한 표정으로 해 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이시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 일로 이시우를 책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이렇게 자라 줘서 고맙다고, 네 엄마도 분명 이 모습을 보았다면 기뻐할 거라고 덤덤히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
가족이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갑자기 자리가 숙연해졌다.
이시우는 잔에 스스로 술을 따르고는 단번에 들이켰다.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대하고 따르겠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언제 와도 저를 반겨 주고 그 자리에 계시는 게 가족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누리 리싸이클링도 제 가족이죠. 장성우 이사, 아니, 부장은…….”
이시우는 미간을 확 구겼다.
솔직히 이시우는 장성우가 남아 줬으면 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싫어하고 원망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남아 주기를 원했다.
이게 정이라면 미운 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가 저지른 온갖 비리들은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10년이나 보고 지내 왔기에 같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이시우는 결국 자신은 아버지 이도운의 아들이구나 싶었다.
“장 이사는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라, 시우야.”
강필중이 말했다.
“아니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분명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왜 사람이 그렇게까지 변했을까.
“장 부장을 생각하면 무서워요. 그 사람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말이에요.”
사람은 언젠가 변한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이들도 변할 수도 있었다.
“미리부터 겁먹지 마라, 시우야. 좀 더 우리를 믿어 주면 좋겠구나.”
“아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저씨들을 믿죠, 당연히. 저를 믿고 남아 주셨는데, 어떻게 그러지 않겠어요. 제가 변할까 봐 무섭다는 거예요.”
이시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
사업이 바빠지게 되는 순간, 이시우는 직원들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도 사람이고,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에 소홀해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전 누리를 더 키울 거예요. 절대로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누리가 커지고 바빠지게 된다면, 제가 아저씨들과 강 기사님을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이전보다는 소홀해지겠지.”
“물론, 사업이 승승장구할 거라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시우의 씁쓸한 목소리에 박태문이 잔에 따른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는단다. 장 부장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아니, 녀석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어. 본색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
“아저씨…….”
“맞는지 아닌지, 장성우 그놈만 알겠지. 하지만 40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놈은 사장님이 사라진다면 바로 떠났을 사람이야. 네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녀석은 떠났을 거라고.”
확신이 담긴 목소리.
이시우가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네가 너무 앞서 걱정하는 게 아닌가 싶구나. 우리 셋이 왜 누리에 남았다고 생각하니?”
장성우는 떠났지만, 그들은 남았다.
이시우는 그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닌가요?”
“물론 그 이유가 아예 없지는 않지.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맡길 정도로 우리는 바보가 아니란다.”
“그럼 어째서인가요?”
“너. 바로 이시우 너라는 인간 때문이야. 내가 말했지.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네 본질을 보고 남은 거야. 네가 진심으로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시간을 길게 두고 보자, 시우야.”
“아저씨…….”
“자, 한 잔 받아라.”
박태문이 미소를 지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이시우가 두 손으로 잔을 들자 박태문이 편안하게 술을 따라 주었다.
“너희도 받고.”
모두에게 한 잔씩 돌린 박태문이 잔을 들어 올렸다.
“새롭게 시작할 누리 리싸이클링을 위해서 한잔하자.”
“네, 형님.”
“네!”
박태문의 주도하에 네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
갑작스런 이시우의 제안.
강필중의 당황한 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설마 자신에게 부장의 자리를 제안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사장님, 전 기사 생활만 하던 사람입니다.”
“그 오랜 기사 생활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셨고 지식을 쌓으셨죠.”
“사장님…….”
기쁜 마음, 부담스러운 마음, 여러 가지가 뒤섞인 심정으로 강필중이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이시우도 그가 부담스러워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 현장으로 나가 영업을 할 자신이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를 설득하기로 작정한 이상 제대로 밀어붙여야 했다.
“젊은 고물상 사장을 제대로 대우해 줄 만한 현장직이 있을까요? 마당을 책임지는 자리지만, 솔직히 말해 전 강 기사님께 영업을 맡기고 싶어요.”
아랫사람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를 어떻게 기용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사장의 몫이었다.
이시우는 오랜 시간 동안 강필중을 봐 왔다.
그는 직급도, 나이도 따지지 않고 언제든 살갑고 상황에 따라 정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영업직을 책임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자신이 없습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지금은 둘뿐이잖아요.”
“후우, 시우야. 난 자신이 없다.”
“저도 자신이 있어서 대표직을 이으려는 게 아니에요. 누리를 지키고 싶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거죠. 저를 도와주세요, 강 기사님.”
누리를 지키고 싶다.
강필중은 그 말에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마냥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러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던 눈빛이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시우, 네가 모른다고 하면 어떡해.”
“그렇지만 저랑 기사님이랑 같이 일해 본 적이 없잖아요.”
강필중과 최문식, 박태문이 누리 리싸이클링으로 들어올 때, 이시우는 이미 장성우 때문에 고물상에서 마음이 조금 떠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제대로 합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은 즉, 이 세 명은 이시우의 역량을 모르면서도 고물상에 의리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장성우 그놈이 자리를 비우면 항상 네가 대신하고는 했잖냐.”
“그거야… 아무리 장 부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물상이 엉망이 되는 꼴은 볼 수 없었으니까요.”
“후우, 아무튼 시우야, 나는 잘 모르겠다. 나 때문에 누리가 더 힘들어질까 봐 무서워.”
말 그대로 강필중은 두려웠다.
사실 의리로 남았다고는 하지만, 10년 넘게 일해 온 직장이 이대로 무너질까 봐 걱정되었다.
더 케이 베스틸과도 문제가 생겼고, 거래처도 없었다.
이대로 누리가 무너진다면, 그때 자신은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이시우는 위기를 잘 극복했다.
심지어 더 케이 베스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대형 업체를 새로운 거래처로 잡아왔다.
“에이, 힘들 게 뭐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장 부장보다는 잘할 거잖아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놈보다 일을 못하면 짐승이지, 그게 사람이냐.”
“그럼 뭐가 두려워요? 장 부장이 있을 때보다 힘들어질 수가 없지 않나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미 누리 리싸이클링은 최악을 경험했다.
강필중이 실수를 한다고 해도 그 최악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었다.
“영업을 성공하지 못해도 되요. 전 그저 강 기사님께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언제까지고 기사로서 지낼 수는 없었다.
나이가 더 든다면 자연스럽게 기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이시우는 그 이후의 일에 대해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있었다.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이 넘었어. 새로운 걸 다시 익히고 배울 수 있을까?”
“왜 새로운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했던 거를 다시 복습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강필중은 이미 계약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철의 단가가 어느 정도인지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최문식과 박태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시우는 이 능력 있는 직원들을, 자신을 믿고 남아 준 직원들을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작은 고물상에 불과하지만, 이 세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생각이었다.
“전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어요. 저는 누리를 더 키우고 싶어요. 강 기사님은 어떠세요?”
“…….”
“제 비전을 지금 강 기사님께 말해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 포부 역시.”
뜨겁다.
강필중은 이시우의 눈빛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다 이런 건가 싶었지만, 금방 고개를 저었다.
확신과 믿음이 담겨 있는 이시우의 시선을 피할 수 없던 강필중은 이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줘.”
“물론이에요.”
“일주일, 그 안에 결정해서 말해 줄게.”
이시우는 이미 대답을 들은 것마냥 환하게 웃었다.
“이런 제안을 해 줘서 고마워. 신중하게 판단할게, 시우야.”
“신중하게 판단하지 말고 그냥 질러 버리세요.”
“하하하, 나도 그러고 싶지만, 고물상을 위해서라도 신중하게 판단해야지. 누리는 내게 있어서도 소중한 곳이거든.”
***
하루 일과가 끝나고, 사람들은 고물상을 정리하고 샤워까지 마쳤다.
직원들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이시우도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 앞에 나와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바로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회식 날이었다.
“준비 끝났어. 가자.”
강필중이 이시우에게 말했다.
편하게 말해 주는 그에게 이시우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식당으로 걸어갔다.
가까운 곳에 회집이 있었기에 차를 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회식을 하면서 술 한잔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네 사람이요. 광어하고 우럭, 그리고 매운탕 주세요.”
앉자마자 익숙하게 주문을 한 이시우.
이곳은 아버지와 가끔씩 오던 식당이었기에 횟집 사장님과도 알고 지내 왔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한… 5년 만이죠?”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간 후, 이곳에 방문해서 식사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가 여기 음식을 포장해서 가져온 기억은 있지만.
“이야기는 들었단다. 고물상은 네가 이어받은 거니?”
“네. 아무래도 아버지가 남기신 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안 놓이더라구요.”
“대견하네.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금방 준비해서 가져다줄게.”
“천천히 해 주셔도 되요. 아, 술 좀 가져갈게요.”
이시우는 소주 두 병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세 직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수저를 깔고, 소주잔과 손질된 당근, 그리고 쌈장을 가져와 세팅했다.
“한 잔 받으세요, 아저씨.”
이시우가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인 박태문에게 소주를 권했다.
그는 두 손으로 이시우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강 기사님께도 이야기했는데, 사적인 자리에서는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장과 직원의 벽이 무너지게 되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시우의 말에 박태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혀를 차며 강필중을 노려보았다.
“필중아, 사장님께서 그렇게 하자고 해도 말렸어야지.”
“그게… 형님…….”
“우리는 사장님이 지급하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다.”
규칙과 규율을 중요시 여기는 박태문답게 그는 엄한 표정으로 강필중을 혼냈다.
“직원과 사장 사이에 벽은 필요하죠. 하지만 저희가 그냥 직원과 사장 사이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전 아저씨들을 가족이라 생각해요.”
아버지가 떠났고, 이제 이시우에게 남은 가족은 없었다.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출산에도 문제가 생겼고, 아이와 산모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아이를 선택했고, 이 자리에 이시우가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담담한 표정으로 해 주던 아버지의 얼굴이 이시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 일로 이시우를 책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이렇게 자라 줘서 고맙다고, 네 엄마도 분명 이 모습을 보았다면 기뻐할 거라고 덤덤히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
가족이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갑자기 자리가 숙연해졌다.
이시우는 잔에 스스로 술을 따르고는 단번에 들이켰다.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대하고 따르겠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언제 와도 저를 반겨 주고 그 자리에 계시는 게 가족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누리 리싸이클링도 제 가족이죠. 장성우 이사, 아니, 부장은…….”
이시우는 미간을 확 구겼다.
솔직히 이시우는 장성우가 남아 줬으면 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싫어하고 원망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남아 주기를 원했다.
이게 정이라면 미운 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가 저지른 온갖 비리들은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10년이나 보고 지내 왔기에 같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이시우는 결국 자신은 아버지 이도운의 아들이구나 싶었다.
“장 이사는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라, 시우야.”
강필중이 말했다.
“아니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분명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왜 사람이 그렇게까지 변했을까.
“장 부장을 생각하면 무서워요. 그 사람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말이에요.”
사람은 언젠가 변한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이들도 변할 수도 있었다.
“미리부터 겁먹지 마라, 시우야. 좀 더 우리를 믿어 주면 좋겠구나.”
“아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저씨들을 믿죠, 당연히. 저를 믿고 남아 주셨는데, 어떻게 그러지 않겠어요. 제가 변할까 봐 무섭다는 거예요.”
이시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
사업이 바빠지게 되는 순간, 이시우는 직원들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도 사람이고,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에 소홀해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전 누리를 더 키울 거예요. 절대로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누리가 커지고 바빠지게 된다면, 제가 아저씨들과 강 기사님을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이전보다는 소홀해지겠지.”
“물론, 사업이 승승장구할 거라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시우의 씁쓸한 목소리에 박태문이 잔에 따른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는단다. 장 부장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아니, 녀석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어. 본색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
“아저씨…….”
“맞는지 아닌지, 장성우 그놈만 알겠지. 하지만 40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놈은 사장님이 사라진다면 바로 떠났을 사람이야. 네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녀석은 떠났을 거라고.”
확신이 담긴 목소리.
이시우가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네가 너무 앞서 걱정하는 게 아닌가 싶구나. 우리 셋이 왜 누리에 남았다고 생각하니?”
장성우는 떠났지만, 그들은 남았다.
이시우는 그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닌가요?”
“물론 그 이유가 아예 없지는 않지.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맡길 정도로 우리는 바보가 아니란다.”
“그럼 어째서인가요?”
“너. 바로 이시우 너라는 인간 때문이야. 내가 말했지.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네 본질을 보고 남은 거야. 네가 진심으로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시간을 길게 두고 보자, 시우야.”
“아저씨…….”
“자, 한 잔 받아라.”
박태문이 미소를 지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이시우가 두 손으로 잔을 들자 박태문이 편안하게 술을 따라 주었다.
“너희도 받고.”
모두에게 한 잔씩 돌린 박태문이 잔을 들어 올렸다.
“새롭게 시작할 누리 리싸이클링을 위해서 한잔하자.”
“네, 형님.”
“네!”
박태문의 주도하에 네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