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화 : 미래시




‘집게차 기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힘들고 고된 일이기도 했고, 기술까지 필요했다.
그런 일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젊은 사람은 없었다.
이시우처럼 아버지가 고물상을 하는 게 아니라면 배울 기회조차 없는 직업.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의 페이도 제법 센 편이었다.
거의 대기업 부장의 수준.
그럼에도 그들의 존재는 그만한 돈을 내고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기사님.”
“제가 힘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다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강필중은 어색한 존댓말로 말했다.
늘 반말을 하던 사람에게 존대를 하려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시우에게 계속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는 이 고물상의 사장이었고,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강필중의 의도와는 달리, 이시우는 불편했다.
이렇게라도 남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러 온 강필중이 고마웠고, 그런 그에게 고압적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될까?”
“그럼요.”

조심스럽게 묻는 그의 물음에 이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강필중은 충분히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편하게 말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또 예의를 갖추고 말할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렇게 해 주시는 편이 제 마음도 편해요.”
“그럼 일을 할 때 빼고는 편하게 말할게.”
“네.”
“그래서? 언제부터 고물상을 재오픈할 생각이야?”
“음, 이번 주 중으로 대표이사 변경하는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하려구요.”

이시우는 어제 신우철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최대한 신속하게 대표이사 변경 문제를 처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때문에 이시우는 늦어도 다음 주 중으로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대표이사가 되기 전에 문을 열어도 상관은 없지 않나?”
“그래도요. 한 일주일 정도만 더 쉬려고요. 더군다나 더 케이에서 거래 중단을 하겠다고 통보도 왔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거래처도 찾아야 되고… 일단 중요한 것부터 처리하려고요.”
“더 케이가? 참나, 염치도 없는 자식들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것도 알고 있어? 장 이사, 더 케이 부장으로 출근한다고 하더라. 나한테 거기 집게차 기사를 해 달라고 제안이 오긴 했는데, 싫다고 했어. 그 사람 얼굴을 다시 보기는 싫거든.”

장성우.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리 화가 나는 짓만 골라 하는지.
하지만 한편으로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이시우가 장성우를 싫어하는 것은 이 사업장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반 직원인 강필중이 장성우를 싫어할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사님은 왜요?”
“어휴, 일도 안 하고, 매일같이 전화만 하고, 잔소리만 지껄이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열이 받는데. 그 능력도 없는 작자가 사장님 후광 하나 믿고 날뛰는 것도 그렇고.”

역시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였다.
아니면 장성우가 한결같이 짜증나는 사람이거나.
그가 직장 내에서 얼마나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렇군요.”
“배차도 개판으로 하고… 생각 없이 일하는 게 티가 나던 사람이었으니까, 뭐. 아무리 내 상사라지만, 난 아직도 사장님이 왜 그렇게 장 이사를 감쌌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

그 부분 역시 이시우와 생각이 일치했다.
그저 10년이라는 정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거라고만 예상할 뿐이었다.

“그동안 함께해 온 세월이 있어서 그러신 걸 거예요.”
“쩝,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할게. 아, 그리고 박씨 형님하고 문석이도 다시 돌아올 거야. 내가 같이하자고 하면 올 사람들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고물상 운영하는 데만 전념해.”
“진짜요?”

당장 걱정이던 퇴직금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월급이 있긴 했지만, 고물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용해야할 금액이었다.

“장 이사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퇴사 신청도 안 했어. 네 의사부터 먼저 듣고 결정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한지, 강필중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를 전했다.
이시우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자 마음에 껴 있던 응어리가 단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이시우와 강필중은 사소하게 잡담을 하다 헤어졌다.
문을 열고 나가는 강필중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시우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직원이 많아지면 언젠가 내 능력이 들킬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그렇다고 이미 결정한 사항을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돌아오고 싶다는 직원들의 의사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 문제야, 뭐… 문을 일찍 닫으면 되지 않을까?’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끝나는 하루 일과.
자신의 능력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없는 마당에서 고철을 만들어 내야 했다.

‘업무 시간을 줄이자. 출근 시간을 늦추든, 퇴근 시간을 당기든. 어차피 난 고물상에 상주해야 하니까.’

사무실에서 나온 이시우가 CCTV가 비추지 않은 사각지대로 움직였다.
하루에 고철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는 이상,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능력을 활용해야 했다.

‘다 돈이잖아. 재정적으로 이미 문제가 생기고 있으니, 대비를 해 놔야지. 그래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물건도 사지.’

이시우는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지금은 아직 이른 아침.
손님도 없고, 직원들도 없었기에 마음 놓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근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시우는 다시 굴삭기 조종석에 올랐다.

철근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이시우의 핸드폰에 더 케이 베스틸에서 보낸 문자가 전송되었다.

― 3. 24, (목). 금일 입고분부터 전 등급 10원 인하합니다. 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철소가 대상에게 고철 단가 변경에 대해 알려 주고, 대상들이 중간상에게 통보하는 게 이 바닥에서는 일반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중간 고물상은 역시 그 밑에 있는 바닥 고물상에게 단가 일정을 통보하곤 했다.
하지만 이시우는 이 문자가 더 케이 베스틸이 자신에게 하는 경고라고 여겼다.
고철 가격이 떨어지니, 고물상을 이어받을 생각하지 말고 넘기라는 경고.

‘한 달 이내로 적어도 20원이 올라야 되는데… 아, 미래시!’

고철 생성을 말고도 각성한 또 하나의 능력.
미래시.
고철의 단가를 한 달 주기로 미리 알려 준다고 설명에 나와 있었다.

‘그래서… 미래시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사용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시우의 눈앞에 글귀들이 나타났다.

―――――――――――――――
<미래시>(lv. 1)
한달 주기로 고철의 상승과 하락 폭을 알 수 있습니다.

등록된 제철소 : [대한철강]
[현재 고철 단가]
중량 B등급 : 320원.
중량 A등급 : 325원.
경량 B등급 : 280원.
경량 A등급 : 300원.

[미래 고철 단가]
중량 B등급 : 350원.
중량 A등급 : 355원.
경량 B등급 : 310원.
경량 A등급 : 330원.
―――――――――――――――

이틀 후, 고철 가격이 10원 인하를 하게 된다면 중량 B등급 가격은 310원이라는 뜻.
그리고 정확히 한 달이 흘렀을 때, 40원 인상을 한다는 말이었다.

‘이제 됐어! 승산이 있어.’

이시우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현재 법인 사업체 계좌에 남은 돈은 1,000만 원.
법인 회사에 남은 잔고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은 그만큼 재정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적어도 물건을 사고 쟁여 놓기 위해서는 최소 1억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동안 장성우의 고집 때문에 이도운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빚은 없어서 다행이지. 후우, 과연 1,00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빨리 우리 물건을 받아 줄 수 있는 업체를 찾아야 해.’

이시우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 신우철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다.

― 내일 저녁에 약속 잡아 놨어. 대한 철강으로 들어가는 대상인데, 대표님이 흔쾌히 허락하셨다. 내일 저녁에 고물상으로 갈 거니까, 시간 비워 놔.]

‘고마워요. 삼촌…….’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신우철은 적당한 때에 새로운 거래처를 잡아왔다.
이제 그가 데려오는 대표를 설득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으셨으니까.’

돈이 우선이 아니라 신뢰가 우선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고물상은 갖은 편법으로 돈을 불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이었다.
고철에 쓰레기를 섞기도 하고, 지저분한 고철들도 많았다.
하지만 누리 리싸이클링의 물건만은 깨끗했다.
고의적으로 고철이 아닌 물건들을 섞는 일 따위는 일체 하지 않았다.

‘우리 고철을 보면 그쪽에서도 거래를 해 달라고 매달리게 될 테지. 거래를 트는 건 문제없어.’

필요한 일은 대충 처리했다.
이시우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뒤, 옷을 갖춰 입고 고물상을 나섰다.
사장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대학 문제도 처리해야 했다.
그는 미리 뽑아 놓은 자퇴서를 챙겨 차에 시동을 걸었다.
국산 중소형.
아버지의 차였다.
아버지는 국산 중소형 차량 한 대와 외제차 한 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평상시에 끌고 다니는 차량은 국산차였다.
다만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기선제압이 필요할 경우에는 외제차를 타고 나가고는 했다.
하지만 외제차의 경우에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영업을 할 때면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재정 상태가 힘듬에도 불구하고 외제차를 구입해야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지. 행색이 초라한 고물상의 사장들이 퇴근할 때면 고급 외제차를 끌고 퇴근을 한다고…….’

말 그대로 옛말이었다.
고철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없었을 때는 무료로 고물상에 물건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제철소의 단가가 대부분 공개되어 있었다.
도보꾼들이 오히려 고물상의 사장보다 단가를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세금 강화, 기타 등등의 요소로 고물상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 가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고되고 힘든 이 일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없지.’

다행인 것은 차량들과 지게차, 그리고 굴삭기의 할부가 끝나 고정적인 지출이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다 낡은 굴삭기가 얼마나 버텨 줄지는 모르지만…….’

무려 1992년식.
이제는 생산도 하지 않는 삼성의 굴삭기였다.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 온 녀석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한 이시우는 차량의 시동을 켜고 대학교로 향했다.

***

4일 만에 찾아온 대학교.
학생들이 풋풋함을 드러내며 돌아다니는 곳에 차를 끌고 나타난 이시우가 학과가 있는 건물에 주차했다.
자퇴를 신청한다고 학교 측에 미리 말해 둔 상황이었다.
이시우는 학과의 교수님들을 만나기 위해 건물 계단을 올랐다.

“선배!”

학과 사무실 앞에 선 이시우를 누군가 큰 목소리로 불렀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큰 눈망울을 달고 달려오는 후배 이연아의 모습에 보였다.

“아, 연아야.”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이시우의 상황을 학과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괜찮아.”
“좀 더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교는 왜…….”
“자퇴 신청서 제출하려고.”
“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내가 이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알바를 하고 수업을 듣느라 바쁘게 생활했던 나날들.
이시우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준 유일한 후배가 이연아였다.
준수한 외모와 성실함, 털털한 성격 때문에 학과에서 인기가 많던 이시우였지만, 정작 그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후배들과 자신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다시 얼굴을 보지 않을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선배님이 어디 있든 자주 보러 갈게요.”
“말이라도 고맙다. 언제 한번 용인에 놀러 와. 오면 밥 사 줄게.”
“네에…….”

이시우는 이연아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학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조교의 얼굴이 보였다.

“왔어?”
“네, 누나.”
“후우, 너 자퇴한다는 소리에 교수님들이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면 너도 놀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차기 학과장 이야기가 나오던 중에 이게 도대체…….”
“죄송해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래, 그게 어디 네 잘못이겠니. 이해해. 그냥 아쉬워서 그러지. 자퇴서는 처리했어?”
“아직요. 누나하고 교수님들한테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교수들은 이시우를 좋아했다.
외모도 외모거니와 연기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유명한 연기자가 제자 중에서 나올 거라며 술자리에서 기분 좋은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다가 학생답지 않게 싹싹하기까지.
싫어하려고 해도 싫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시우의 자퇴 소식이 알려지자 교수들은 실의에 빠져야만 했다.

“진짜 아쉽다. 나도 내 조교 생활 하는 동안 배우 하나 나오나 기대 많이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눈치 주는 거 아니야.”

조교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괜히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으니, 이시우도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져 갔다.
결정을 내렸으면, 더 이상 질질 끌지 말아야 했다.
이시우는 교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퇴서를 제출하고서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학과 사무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천천히 대학교 내부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쉽네. 그래도 내 꿈이었는데…….’

그는 뛰어난 연기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재능이 있었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의 꿈보다 아버지가 그동안 지켜 온 고물상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이시우는 차를 주차해 둔 학과 건물로 걸어갔다.
익숙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며 인사했지만, 이시우는 가볍게 손만 흔들 뿐, 더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괜히 미련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차에 키를 꽂고 문을 열자 저 멀리서 이연아가 뛰어왔다.

“선배.”
“연아야.”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싶어서요. 선배님이라면 어떤 일이든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좋은 말 해 줘서 고마워.”
“저어, 다음에… 다음에 또 볼 수 있겠죠?”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나 버리는 것도 아닌데, 영영 헤어지는 것처럼 울먹거리는 이연아의 모습에 이시우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리고 너 언제까지 선배라고 부를 거야? 다른 애들은 다 오빠라고 불러 주는데, 너만 선배라 부르는 거 알아?”
“…선배는 제게 특별하니까요.”

이연아보다 덜 친한 후배들도 이시우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연아 역시 이시우를 제외한 선배들에게 오빠나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유독 이시우에게만 선배라고 부르던 이연아이지만, 그는 그녀가 거리를 둘 목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선배라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네에, 오빠.”
“학교생활 잘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 연아야.”
“네, 꼭 다음에 또 봬요.”

이연아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이시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모습이 눈에 담길 때마다 미련이 점점 커지던 그였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 내고는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어느덧 이시우가 탄 차가 대학을 빠져나갔다.
그때까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연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말하지 못했네…….”

이연아는 쓸쓸한 듯 혼자 중얼거리고는 다시 학과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