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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타닥타닥.

마른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들리는 누군가의 말소리와 불의 매캐한 냄새가 그의 눈꺼풀을 들릴 듯 말 듯 뒤흔들었다.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차분하고 조금은 높다란 여자의 것이었다.

누굴까? 어느 겁 없는 성의 사용인이 왕의 침실에 들어와 있는 것도 모자라 감히 그 곁에서 조잘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저는 왜 이렇게 온몸이 무거운지…….

‘……게…… 야……?’

소아즈는 그 어느 때보다 제 눈꺼풀이 천 근 같다고 여기며 미간을 모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피로감에 낮은 신음을 흘린 그가 부스스 몸을 비틀자 곁에서 떠들어 대던 여자가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일어…… 가서…… 릭!’

여자는 다급한 듯이 말을 끝맺었다. 뭔가 바스락대는 소리. 실내는 아주 잠깐 동안 소란스럽다가 이내 정적에 휩싸였다. 여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잣말을 지껄이는 것은 아닐 테고, 조금 전까지 여자 이외의 누군가가 제 침실에 함께 있었다는 의미인데.

소아즈는 앓는 신음을 냈다. 쉴로스가 아니라면 에링켄 공작, 이 두 사람만이 그의 침실을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라는 께름칙함이 그의 뒷머리를 슬금슬금 감쌌다.

그래…… 뒷머리가 문제인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머리에 닿는 부분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마치 냉골 바닥에 모포 한 장 없이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게 정말로 이상해서 무거운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바닥을 더듬었다.

자신의 방, 아니, 그의 왕국에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사는 사람이 없었다. 사시사철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지리적 요인 탓에 파릴로드의 실내는 두꺼운 카펫이 작은 균열 하나 없이 바닥을 뒤덮고 냉기를 막았다. 그건 집이든 식당이든 푸줏간이든 별반 다르지 않았다.

“…….”

뭘까…… 놀랍게도 이건 진짜 그냥 땅바닥이었다. 황당해진 소아즈가 얇고 창백한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좁다란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천장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바위 틈 사이로 얽혀 있는 흙과 구불대는 나무뿌리들을 보니 흡사 어느 땅굴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천국은 생각보다 원시적인 곳이네.”

소감 한마디를 중얼거린 소아즈가 힘없이 팔을 들어 올려 손가락뼈가 멀쩡한지 확인했다. 아마 자신은 그때 죽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벼랑에서 떨어져 온몸이 산산조각 났는데 이렇게나 멀쩡히 살아 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니까 말이다.

죽어서 이미 유령이 된 몸이라지만 걸레짝이 된 몸을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건 아닐까 염려했는데 다행히 그의 뼈는 모두 알맞게 맞춰져 있었다. 부츠 속에 담긴 발가락까지 꼼지락대며 확인한 결과였다.

그는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상체를 낑낑대며 일으켰다. 사위는 날이 흐린 것치곤 밝은 편이었다. 장시간 한 자세로 누워 있던 탓에 뻐근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확인한 결과, 이곳은 역시 흙이 파여 생성된 작은 굴이었다. 두서없이 삐져나온 뿌리들과 암석들이 굴의 흙을 단단히 얽어매고 있는 듯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굴일지, 아니면 인공적으로 파 낸 굴일지 그건 좀 더 확인해 봐야 될 듯하나 결론부터 내리자면 사람이 살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도 터무니없이 비좁은 터라 다리를 굽힌 채였다. 만약 가로가 아닌 세로로 누워 있었다면 굴 바깥으로 발이 비죽 튀어 나가 동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걸 신경 써서 누군가 이렇게 눕혀 둔 것일 테지만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 전에 이곳은 너무나도 좁았다. 그나마 천장은 높은 편이라 다행히 상체를 구겨 접을 필요는 없었다.

점점 말끔해지는 정신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바깥에서 들어오는 차디찬 한기가 느껴졌다. 천국이라도 마냥 봄날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제 고향의 겨울이 우스울 정도로 굴 밖에서 휘날리는 굵직한 눈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인 추위를 느끼게 했다.

소아즈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 나서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천국이라는 확신도 없다. 슬슬 배도 고파 오고, 이런 감각들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자신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옥에 떨어진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마지막 일말의 자비가 베풀어져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가 굴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미운 놈 빵 하나 더 준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음…… 밀알 하나 없을 것 같은 곳이네.”

이런 굴속에 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스스로가 미친놈 같았는지 맥없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는 서늘한 정적. 슬그머니 웃음을 거둔 소아즈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굴 안쪽 가장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생물의 눈은 까맸다. 혹시나 맹수는 아닐까 하여 긴장한 소아즈가 바닥을 더듬어 무작정 잡히는 것을 손에 쥐었다. 이제 산짐승이라면 이승이든 저승이든 간에 진절머리가 났다.

의문의 눈동자는 그와 시선을 마주한 채 잠시간 침묵 속에 있었다. 행여 제게 덤벼들까 눈도 깜빡하지 않고 생물을 주시하던 소아즈는 그것에게서 조금 특이점을 발견했다. 아까는 분별력이 떨어져 몰라봤는데 이렇게 보니 생물의 덩치는 상당히 작았다. 어쩌면 고양이보다도 작은 몸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살금살금. 나지막이 몸을 숙인 눈동자가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하얀 털을 가진 족제비였다.

“휴…… 뭐야…….”

족제비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늑대가 아닌 것에 안도하며 숨을 내뱉자 작은 생물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겁 없이 한 뼘이나 가까이 다가온 족제비가 그의 주변에서 코를 킁킁댔다. 그 깜찍함에 가슴이 뭉클해져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으니 족제비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으음…….”

소아즈는 족제비를 쓰다듬었던 손을 낯설게 내려다보았다. 기분이 퍽 묘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뒤숭숭하고 알 수 없는 생소함에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온기가 남은 손바닥 안. 자비를 베풀었다고 하기에는 죽은 자에게 너무도 과분한 감각이었다.

“윽…….”

눈썹을 찡그린 소아즈가 천천히 돌아오는 정신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고비스에 출몰한다는 괴수의 토벌을 위해 산에 올랐고 죽지 않는 짐승들의 습격을 받아 도망치다 홀로 절벽에서 떨어졌다. 분명히 온몸이 아작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왜 살아 있는 거지?

혼란 속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던 소아즈가 작금의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이런 굴속에 눕혀 둔 것을 보아하니 적어도 지성이 있는 무언가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곤죽이 된 이 몸을 완벽히 치료해 놓았으며 그것은 이런 먹을 거 하나 없는 산중에서 족제비까지 키우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가느다란 시야에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있는 족제비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들기 전에 들려왔던 여자의 목소리가 어렴풋 기억났다.

“이런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니…….”

소아즈는 힘없이 웃으며 다시 한 번 족제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작아서 검지로만 쓰다듬어야 할 정도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시끄럽게 떠들던 여자를 찾았다. 어딘가 통하는 입구라도 있는 건지 여자는 그 짧은 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네 주인은 이런 곳에 혼자 살고 있는 거야?”

소아즈는 아무 말이 없는 족제비를 내려다보았다. 질문을 하긴 했으나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동물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고 그냥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뭐한 터라 자연스레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그새 어디로 간 거지?”

사라진 여자를 찾아 소아즈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제 보니 굴속에는 몇 가지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곁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낡은 것들뿐이라 이 극한 생활에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이런 산속까지 가져왔다는 건 꽤나 중요한 물건일 듯싶은데…….

무엇에 쓰는 용도일까 괜히 궁금한 마음이 물건을 집어라 부추겨 댔다. 호기심과 도덕심의 사이에서 번뇌하던 소아즈가 눈을 꼭 감았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건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어.

‘혼자 히죽대었다가 금방 인상을 찡그리는 꼴이 딱하구나. 내 너를 가엾이 여겨 치료를 해 주었건만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은 다 네 업이라 여기고 살아가도록 하라.’

“……!”

호기심과 도덕심의 치열한 갈등 속에 빠져 있던 소아즈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귀를 막았다. 그의 돌발 행동에 놀란 족제비 또한 뒤로 주춤 물러났다.

‘까, 깜짝이야! 너 얀마! 때리려 드는 줄 알았잖아!’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말을 더듬으며 화를 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저 외의 다른 누군가를 찾던 소아즈는 고요함에 표정을 굳혀 갔다.

분명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 동굴은 사람이 숨는다든가 하는,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애초에 아니었다. 바깥은 여전히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이 날씨에 누군가 굴 밖에서 말을 건다 해도 이렇게 생생히 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점은, 이 목소리가 제 귓가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꼭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 누구세요…….”

소아즈는 달처럼 창백한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예상외로 목소리는 그의 말에 재깍 대답하지 않았다. 마른침을 꼴깍 삼킨 그가 다시 한 번 어렵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유령이…… 설마, 그럴 리가…… 진짜 유령이세요……?”

횡설수설하며 두서없는 문장이었으나 이해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목소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원 같던 수초의 정적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그의 금빛 눈동자만이 잘게 흔들렸다.

아이러니한 점은 아무리 칼로 내리쳐도 죽지 않던 늑대들은 무섭지 않았는데 이미 죽은 유령은 무섭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던 그때, 드디어 기다려 마지않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 그것은 소아즈와 마찬가지로 적잖이 놀라 하고 있었다.

‘너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리니?’

소아즈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에 목소리는, 아니, 족제비 레오노엘은 몸을 팔짝 뛰며 경악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인간이 있으리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약 천 년 만에!

레오노엘은 심장이 벌렁벌렁했지만 앞발이 짧아 차마 가슴을 부여잡을 순 없었다. 그 대신 털을 빳빳이 세운 채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족제비의 말을 알아듣는 기괴한 인간은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무엇을 찾고 있는 양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제 목소리는 들리지만 그 소리의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어떻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인간이 어떻게?’

“저…… 저도 잘…….”

목적지를 잃은 채 금빛 눈동자를 깜빡이던 소아즈가 창백한 입술을 뗐다. 유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제게 화가 난 건지 퍽 날카롭게 대꾸했다.

‘혹 내 앞에서 어쭙잖은 잔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면 당장 그만두는 게 좋아.’

“잔……재주요?”

잔재주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맹세코 결백했다. 죽었다 살아나는 바람에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기이한 힘을 얻어 버린 것이라면 말이 되지만 딱히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아즈는 유령에게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몸을 쭈뼛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대충 상상이 갔다. 반쯤 썩은 시신의 모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유령…… 그 무시무시한 형상을 떠올리고 나니 전신의 솜털이 오스스 솟은 기분이라 차마 내색은 못 하고 그저 손등으로 뺨을 문질렀다.

차라리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족제비라고 여기는 것이 훨씬 덜 무서우리란 생각이 미치자 그의 시선이 냉큼 바닥으로 떨어졌다. 레오노엘은 당연히 기겁했다.

‘뭐야!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뜬금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아즈 때문에 기겁한 그녀가 몸을 숨기 듯 바위 뒤에 숨었다. 잔뜩 성이 난 레오노엘은 머리만 빼꼼 내민 채 그를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혹시 너…… 마도사냐?’

“……?”

그녀의 호통에 놀란 소아즈는 숫제 땅속을 파고 들어갈 기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로 자신을 지칭하는 유령의 질문에 슬금 눈을 들어 올렸다.

마법사를 말하는 건가……? 여기서 갑자기……?

“……아……니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얼빠진 금색 눈동자가 깜빡거렸다. 레오노엘은 잠시 그 어리둥절한 얼굴을 응시하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그럴 리 없는데 괜한 실언을 내뱉은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곧장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어찌 이 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너는 인간이 아닌 거냐?’

레오노엘은 자세를 낮추며 그를 몰아갔지만 영락없는 족제비의 모습으로 전혀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령과 단둘뿐인 이곳에서 그녀의 귀여움을 마음의 위안으로 삼고 있는 중인 소아즈였다.

그는 유령의 질문에 충실히 답하고 싶었으나 기절한 사이 갑작스럽게 생긴 재주였으므로 뭐라 명쾌히 답을 할 수가 없어 말을 머뭇거렸다.

“일단…… 인간은 맞는데요…… 그…… 이런 일은 처음이라, 저도 제가 왜 이런 능력을 갖게 되었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소아즈는 힐끔 어딘가에 있을 유령을 살폈다. 여전히 두렵게도 굴속에는 저와 족제비 단둘뿐이었다. 그때 유령이 입을 열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 혹여 나 이외에 다른 동물들의 말도 알아들은 적이 있어?’

“……동물이요?”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족제비에게로 닿았다. 동물치고는 너무나도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두 눈이 고개를 주억이듯 흔들렸다.

‘그래. 내 말이 들린다면 다른 아이들의 말도 들리지 않겠니?’

“어…… 전혀…….”

‘하긴 그런가. 조금 전부터 들린다 하였으니 확답을 주기는 어렵겠구나.’

레오노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당황한 기색이 엿보이는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지만 그러기만을 수십 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상황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칠흑같이 까맣고 작은 족제비의 눈동자가 그와 마주쳤다. 아니, 분명 줄곧 마주하고 있었으나 이제야 깨달았기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소아즈는 마른침을 삼키다 가까스로 첫마디를 떼었다.

“저…… 혹시…… 제가 지금 족제비님의 말을 듣고 있는 건가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또 누가 있다고? 설마 내가 유령이기라도 하겠니?’

바보 같은 소리라 치부한 레오노엘이 기가 찬 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멍청한 표정을 한 소아즈의 앞에 자박자박 걸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벼랑에서 떨어져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널 이곳에 데려와 치료해 준 게 나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은 내 집이고 나만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아. 그렇구나……!”

의외로 갑작스레 경쾌해진 소아즈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고는 레오노엘을 향해 배시시 웃더니 다시금 몸을 누이려는 자세를 취했다.

‘뭐 하니?’

“꿈이구나 싶어서요. 세상에 말하는 족제비가 있을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