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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온 늑대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와 막사를 찢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곧장 하산하리라 생각해 무기를 제대로 갖추고 있을 리 만무했던 사냥꾼들은 속절없이 맹수들의 공격에 무너져 내렸다. 늑대들은 마치 단합이라도 한 것처럼 인간들을 물고 늘어졌다.

소아즈는 활을 메고 있었기에 곧장 말에 올라 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날카로운 화살들이 근방에 있던 늑대들을 향해 날았고 정확히 몸통과 머리를 꿰뚫었다.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늑대들이 넘어졌다.

아무도 그가 검이나 활에 출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놀란 사냥꾼들이 맹수의 공격 아래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백마 위에서 신들린 듯 쏘아 대는 화살들이 수십이 넘는 늑대를 쓰러뜨렸고 살아남은 이들이 다친 몸을 허겁지겁 일으켜 세웠다.

“경! 괜찮아?”

겁은 많았지만 몸에 밴 감각으로 다리를 일으켜 어느새 제 근처까지 다가온 쉴로스에게 괜찮으냐 물으니 그가 검을 빼 들며 외쳤다.

“아니요!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아직 버틸 만한 것 같네!”

쉴로스에게 달려든 늑대를 해치운 소아즈가 제 옆구리로 달려드는 회색 갈기의 늑대에게 화살을 먹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눈을 꿰뚫린 늑대가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다시금 그를 향해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아…… 아니, 뭐야? 늑대들이 죽지를 않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진 쉴로스가 늑대에게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기이한 상황이었다. 늑대들은 화살이 박히고 검에 베여도 쓰러지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가 꿰뚫려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모습으로 다시금 일어나 주둥이를 일그러뜨리는 늑대들의 모습은 소아즈 일행이 느끼기에 흡사 불사신과 같았다.

“유령에, 홀린 건지 뭔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하!”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비명이 난무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불현듯 하늘을 올려다본 소아즈가 눈을 게슴츠레 모았다. 날이 점점 추워지는지 물기를 잔뜩 머금었던 눈이 이제는 굵게 떨어져 내렸다.

눈발이 거세어져 감에 아찔한 절망감을 느낀 소아즈가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짧게 탄식했다. 하늘에 바다오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새들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건 단순한 우연일까?

“젠장! 이것들, 머리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 뒤!”

불사의 짐승들에게서 주군을 호위하는 것에만 집중해 있던 쉴로스는 제 등 뒤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그대로 묵직한 앞발에 맞아 바닥에 처박혔다. 다행히 그 순간 몸을 틀어 목덜미는 보호했으나 팔뚝 윗부분에 깊숙한 상처를 입은 그가 검을 바투 쥐고 일어났다.

지금껏 수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이렇듯 머리를 쓰는 동물들과의 전투는 난생처음이었다. 심지어 죽지도 않는 괴물들이니 그의 입술 끝에서 헛웃음만이 새어 나왔다.

“이거 참 돌겠네! 전하! 일단은 물러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퇴로라도, 확보해 주고! 그런 소리 해 줄래?”

“허 참! 그러네요!”

무의식중에 쉴로스가 옷소매로 제 얼굴을 거칠게 닦아 냈다.

“그나저나 저희들 지금 완전히 포위된 거 같지 않습니까……?”

소아즈의 옆에 선 쉴로스가 한 치의 긴장도 늦추지 않고 화살 박힌 짐승들을 노려보았다. 늑대들을 처리하기 바빠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늑대의 대부분이 저희 쪽을 겨냥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죽이지는 않고 어느 정도 상처만 낸 뒤 물러나는 모습이라 꼭 누군가에게 사주라도 받고 움직이는 용병 같았다.

“전하. 어쩐지 이놈들…… 전하를 노리는 것 같은데 혹시 제 착각인지 좀…….”

지금 모여 있는 놈들도, 다른 곳에서부터 합류하는 늑대들조차 쉴로스보다는 소아즈에게 더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모여드는 짐승들을 훑은 소아즈가 활을 버리고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근접전은 단검이 훨씬 유용하리란 판단에서였다.

“그런 것 같네. 나만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섭잖아.”

“이거 어디서 사주라도 받은 걸까요?”

“동물들이?”

“역시 그건 좀 아니겠군요.”

이 와중에도 두 사람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늑대들이 저희들을 공격하는 이유를 추측하기 어려운 탓도 있었다. 어쩌면 지난번 여우 사냥에 대한 복수는 아닐까?

“이것들…… 혹시 일종의 복수는 아닐는지요?”

“복수?”

주군을 호위하며 한 마리씩 베어 나가던 쉴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를 할 게 뭐가 있나 싶어 단검을 휘두르던 소아즈가 인상을 찡그렸다.

“여우들 말입니다, 왜 6개월 전에 아고비스에서……! 붉은여우 사냥을 한번 크게, 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한, 보복이라고?”

“예! 그거 아니면! 딱히! 없어요!!”

“말이 돼? 늑대랑 여우가…… 친구?”

하긴. 머리 쓰고 달려드는 동물들인데 우정이라고 나누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이쪽도 그래야 했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아이고, 인간사의 고충을…… 얘들한테 설명해 줄 수도 없고!”

“그런다고…… 이해받, 을 수 있는! 부분도 아니야……!”

“그러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닙니까!”

검을 쉬지 않고 휘두르는 쉴로스의 얼굴에 미안함과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6개월 전, 아고비스에서는 붉은여우를 잡기 위해 왕국군과 사냥꾼들이 모여 집단 포획에 나섰던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여우보다 모색이 좀 더 짙은 적색을 띠는 아고비스의 여우를 탐낸 크리후베르 제국이 붉은여우의 모피를 다량으로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조공과 다름없는 강제 무역이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어 대량으로 포획하긴 했으나 자신들은 입지도 않는 모피를 위해 여우들을 마구 죽이는 것이 마음에 내킬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원한다는데 그것을 거부할 권리는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파릴로드에게 없었다.

황제의 욕은 이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 하는 것으로 하고 자신들을 에워싼 늑대들의 눈을 훑은 소아즈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짐승들이 노리는 것은 저였다.

이대로 가다간 쉴로스와 다른 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니 계속 이곳에 있는 것보단 다른 쪽으로 유인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여겨졌다. 점점 더 모여드는 늑대들의 노랗고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며 소아즈가 고삐를 움켜쥐었다.

“쉴로스…… 잘 들어. 내가 늑대들을 유인하면 그사이에 다른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

“대피요? 그럼 전하는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화들짝 놀란 쉴로스가 코앞에 맹수들이 있다는 것도 잊고서 고개를 돌려 소아즈에게 소리쳤다.

“어쩔 수 없잖아. 늑대들이 노리는 건 나니까 내가 움직이면 다들 날 따라올 거야.”

“아, 안 됩니다! 진짜 안 돼요!”

“부탁해!”

“저, 전하!!”

쉴로스가 다급히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백마는 이미 숲속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소아즈가 움직이니 놀랍게도 늑대들은 정말 그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조화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군의 희생에 울컥한 쉴로스가 기합을 내지르며 늑대들 앞에 검을 휘둘렀다.

“이놈들!! 감히 이 쉴로스 폰 로던을 두고 어딜 가느냐!”

그러나 단 한 마리의 늑대도 쉴로스 따윈 안중에도 없는 양 그대로 그를 지나쳐 소아즈를 쫓아가 버렸다. 숲을 향해 몰려가는 늑대들을 황망히 보내 버린 쉴로스가 멍하니 검을 들고 눈을 껌뻑였다. 멍청히 넋을 놓은 그의 옆으로 뒤늦게 달려가던 회색 눈의 늑대 한 마리가 동정하듯 쉴로스를 훑고 사라졌다.

“뭐, 뭐야! 나는 안중에도 없다 이거냐?”

그가 뒤늦게 외쳤으나 늑대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정말 나였다니.

뒤를 흘끔 돌아본 소아즈가 가쁜 숨을 내뱉었다. 눈보라가 거칠어졌다. 아마도 계속해서 말을 몰 수는 없을 터였다. 산세는 점점 험해졌고 말 또한 추위에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의식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인지 그의 백마는 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눈 덮인 산에 익숙한 늑대들은 도통 이 추격을 멈출 기미 따위 보이지 않았다.

소아즈의 시야는 점차 눈보라로 어지럽혀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법 야영지에서는 멀어진 듯싶었다. 짐승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저였던 것 같으니 아마 모두 이쪽으로 쫓아왔을 것이다.

쉬지 않고 박차를 가하며 드는 생각은 오로지 쉴로스의 형편없는 손재주였다. 그가 사람들의 치료를 잘 해 주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응급처치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것은 구태여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의 생사였다. 이대로 산속에서 늑대의 밥이 되어 외로이 죽는 걸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 기적을 바라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아고비스의 산속에 사람이 산다는 얘긴 들어 본 적 없으므로, 그러니 누군가 자신을 구해 주리라는 생각은 철저히 버려야 했다.

이쯤 되니 현실감도 떨어지기 시작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산으로 출발하기 전이고 아침을 먹다 잠이 든 것이다. 그러다 이런 허무맹랑한 꿈을 꾸게 된 거지. 조금은 춥고, 또 조금은 위험한 꿈.

“네게는 미안하네…… 주인 잘못 만나서 늑대한테 쫓기기나 하고.”

백마의 흔들리는 갈기를 쓰다듬은 소아즈는 현실도피를 그만두었다. 이제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어 한숨을 쉬었다. 그마저도 찬 기운에 휩싸여 증발해 버린 숨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숨을 내쉬었을 때 그 하얀 김이 미끄러지듯 시야에서 올라갔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응시하면 어느 순간 제 몸이 기울어진다고 생각했다.

시야가 삐끗하면서 눈앞이 크게 뒤흔들린 것만 같았다. 어릴 적 나무 위에서 뛰어내릴 때 느꼈던 배 속이 울렁이는 기분과 비슷했다. 설마 떨어지고 있는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살을 에는 날카로운 바람에 저항하며 소아즈는 고개를 뒤로 꺾었다. 추격자들은 위에, 아니, 그보다 더 위쪽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쫓아오기를 멈추고 우뚝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들의 틈에서 연옥색 눈을 가진 짐승이 승리를 자축하며 길게 울음을 내뿜었다.

쿵―

꾹꾹거리는 괴이한 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찾아왔다. 소아즈는 그제야 자신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저와 같은 통증에 버르적거리는 백마의 움직임. 그것을 마지막으로 소년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