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4화 제9장 대마도(2)
나가사키 현에 속한 대마도는 거제도의 약 두 배(1.8배)에 달할 정도로 큰 섬이나 온통 산악 지대로 뒤덮여 있어 농지 면적이 겨우 3%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척박했다. 하지만 군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초기에 점령해야 할 섬이었다.
대마도는 본 섬 이외에 수백 개의 부속 도서를 거느리고 있다. 원래 대마도 본 섬은 하나였는데 중간에 운하가 놓이며 남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대마도의 허리를 가르듯 파고들어 온 아소만(淺茅湾)으로 인해 엄청나게 긴 리아스식 해안선과 다도해와 같은 지형이 중부 지방에 만들어졌는데, 아소만에서 반대편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두 개의 지협을 골라 운하를 판 것이다.
그 결과, 크게 보면 남북 두 개의 섬으로, 더 자세히 보면 세 개의 섬으로 본 섬이 나뉘었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결국 일본에 붙었다. 그 후, 일본 국력의 신장세에 기대 덩달아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데 오늘 대마도는 세종대왕 시절 이후, 거의 5백 년 만에 대한제국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사상 유래가 없는 공군기의 공습이었다.
제일 먼저 폭격을 당한 곳은 섬 북부 지방의 중요 항구인 히타카츠[比田勝] 항이었다. 1907년 고래잡이배들의 모항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항구였는데, 새벽에 급습을 당한 것이다.
일본 군부는 군 전략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여겨 이곳에 육군 대대 병력을 배치해 항구를 수비하게 했고, 두 개의 대공 포대와 해안포대도 겹겹이 배치해 두었다. 그런데 한국 공군기의 급습으로 인해 포대 시설들은 단 십여 분 만에 무력화되었고, 육군 병력 주둔지마저 초토화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북쪽에서 날아온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번갈아 공격을 퍼부었다. 대공 포대가 무력화되자 전투기까지 가세한 것이다. 공격당한 곳은 히타카츠만이 아니었다. 공군기들은 돌아가는 길에 히타카츠 서북부에 자리한 토요사키 촌[豊崎村]―후세의 가미쓰시마 정[上對馬町]―의 대포(大浦)란 포구를 한 차례 더 두들긴 후 돌아갔다.
이 소식은 급전으로 이즈하라에 전해져 새벽잠에 취해 있던 군 간부들을 깨웠다. 그런데 졸음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보고가 연이어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소식은 여기서 가까운 남부 지역에 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즈하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은 제201폭격비행대대가 서쪽의 고모다란 곳을 치고 있을 때에야 대비 태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즈하라에도 히타카츠와 비슷한 규모의 군 병력과 포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숙소를 뛰쳐나온 병사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겨우 자리를 잡을 즈음, 서쪽에서 요란한 엔진 음과 더불어 폭격기들이 나타났다. 벌써 폭격 실행 과정에 들어갔는지 고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일본군 방공 포대 병력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기 시작했다. 장교의 명령이 떨어져야 움직였고, 그 절차는 길고 복잡했다. 그러다 보니 대응이 두 박자 이상이나 늦었다. 지금은 명령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포탄을 장전한 다음, 쏘고 볼 일이었다.
쒸웅!
폭격기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포탄들이 대공 포대를 향해 약간 비스듬한 각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펑!
웬일로 어떤 대공포 하나가 포탄을 날리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쒸웅! 꽝! 꽝! 꽈광!
하지만 눈먼 포탄을 발사한 포병들이나 그 포가 발사되는 장면을 목도한 다른 동료 포병들도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수십 발의 포탄이 그대로 방공 포대에 작렬했기 때문이다.
* * *
초여름 바다는 따가운 햇살만 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더구나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는 사람을 이유 없이 들뜨게 한다. 신선한 바닷바람이 머리를 시원하게 식혀 주고, 푸른색 물빛은 눈을 편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초여름의 바다 풍광을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느끼는 이도 있었다.
“날씨 하나는 죽이네. 이런 날은 한바탕 붙어야 제격인데…….”
제2함대 제2전대장 여운찬 참장은 계기에서 눈을 떼더니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2함대 함선들은 오늘 아침 모항인 진해항을 나와 대마도 방향으로 항해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일본 배가 나올 기미는 전혀 없는 모양이죠?”
압록함 부함장을 맡고 있는 김좌진 부령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현재 압록함의 함장 자리가 공석이라 제2전대장 여운찬이 함장 역할을 대신했다. 육상 근무에 관심이 없는 그는 늘 전대의 기함인 압록함에 승선하고 있어 사실상 그가 함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만간 김좌진 부함장이 함장 자리를 이어받을 예정인데,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압록함은 대한제국에 겨우 세 척밖에 없는 전함인데, 그중 하나를 벌써 그에게 맡기는 건 다소 부담스런 일이었다.
“참수리 둘 폭격기가 계속 정찰하고 있는데, 깨끗하다네.”
“공군기들이 대거 작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니 올 리가 없죠.”
“그러게.”
“응? 엔진 소리입니다. 또 때리러 가는 모양입니다.”
“오늘 공군이 꽤 바쁘군.”
엔진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곧 일군의 전투기들이 제2전투전대 함선들 위를 금세 지나갔다.
“김해 비행장에서 출격하고 있어 여러 번 공격이 가능하겠네요. 비행기로 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아니겠어요?”
“후후, 맞아. 이러다 대마도에 남아나는 게 있을까 몰라. 내일까지 계속될 텐데.”
“전대장님, 목표 해상에 도착하기 5분 전입니다.”
한담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작전관이 보고했다.
“그래? 어디 보자…….”
배정환 전대장은 레이더와 해도를 번갈아 보더니 바로 명령을 내렸다.
“침로 225도, 속도 유지.”
“침로 225도!”
김좌진은 전대장에게 물었다.
“그럼 해안선에서 25㎞ 정도까지 접근하실 요량입니까?”
“그래야지. 거기서 280도로 대각 전타해서 포격 대형으로 갈 생각이야.”
여운찬은 이처럼 늘 상세하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해 주곤 했다. 김좌진은 앞으로 압록함 함장은 물론, 전대장으로, 또 함대 사령관으로 성장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뢰가 부설되었으리라 알려진 항만이나 포구에서 약 25㎞ 이상 거리를 두라는 것은 해군 측이 정한 규칙이었다. 상륙작전을 펼칠 만한 모든 항만과 해안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어 늘 유의해야 했다.
잠시 후, 거의 직각으로 선수를 돌려 대마도 해안선과 대열을 평행하게 일치시킨 제2전대 함선들은 목표 지점을 향해 함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함인 압록함을 비롯해 중순양함 솔빈함과 경순양함인 대동함 및 낙동함에 장착된 170㎜ 함포는 대마도 북부 지방의 서부 해안 중앙에 있는 포구에 포탄 세례를 쏟아부었다.
메카다케 촌[奴加岳村]―후세의 토요타마 정[豊玉町村]―에 속한 고즈나[小綱]와 오츠나[大綱], 시타노우라[志多浦] 등 세 마을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포구는 물론, 그 앞에 떠 있는 나카노 섬 등 해안포대가 설치되어 있는 섬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 * *
대마도가 공격당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일본의 대본영과 내각에 급전으로 전해졌다. 먼저 낮에 대본영의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이어서 군부 인사들도 참가한 확대 내각회의가 저녁 늦은 시간에 열렸다.
그간 일본의 내각 구성이나 군 조직은 크게 바뀌었다.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꽤 많은 각료와 최고위급 군 장성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일본의 지배 세력은 나름 국민에게 인기가 좋은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해 비판적인 여론을 달래려 했다. 총리부터 그런 사람이 뽑혔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이는 실제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올해부터 총리대신을 맡게 된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육군대신 오카 이치노스케[岡市之助]에게 물었다.
“피해 상황은 어떻게 됩니까?”
“연락이 두절된 곳이 많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우나, 큰 피해를 입은 건 확실합니다. 특히 이번 공격은 서부 해안 쪽에 집중되었는데, 동부는 히타카츠와 이즈하라가 피습되었습니다.”
“예상대로군.”
“그렇습니다. 지난 한 달간 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는데, 결국 그게 오늘 터진 것 같습니다.”
일본 역시 대한제국 내에 첩자를 심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럼 지금은…….”
“회의 직전에 확인했습니다, 공격을 멈춘 것 같다고. 곧 해가 질 테니까요.”
“그럼 저들이 내일은 어떻게 나올 거라 예상합니까?”
“대본영 구성원들은 상륙을 시도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왜 공격과 동시에 상륙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란 의견을 낸 인사도 있었죠.”
“막을 대책은 있어요?”
이번엔 해군대신 야시로 로쿠로[八代六郎] 중장이 나서서 총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 가고시마 항에 있던 제3함대 제7전대를 사세보 항으로 이동시키기로 했습니다. 지금 벌써 이동 중일 겁니다.”
남벌 작전이 종료된 직후, 일본 해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연합함대를 총 네 개 함대로 재편하고 혼슈 북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시오가마[塩竈]와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 대만의 기륭항(基隆港)에 추가로 군항과 해군기지를 설치했다.
기존 요코스카[横須賀], 사세보[佐世保], 구레[呉], 마이즈루[舞鶴] 진수부(鎭守府)들도 그대로 활용하고 있으나, 대한제국과 가까운 규슈 북부의 사세보는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센다이 부근에 있는 시오가마 군항은 대한제국에 의해 북해도가 점령당한 이후 북부 해역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건설되었고, 대만 북부에 있는 기륭항은 사실상 일본 남부 지역 함대의 피항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규슈를 포기할 수 없어, 일본 해군 세력가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사쓰마 번[薩摩藩]이 있던 가고시마에 함대를 배치했다.
그래서 본토 중부 해역의 방어를 맡은 제1함대는 도쿄만 초입에 있는 요코스카와 동해 연안의 마이즈루, 히로시마 부근에 있는 구레 항을 활용했고, 본토 북부 해역을 맡게 된 제2함대는 시오가마 항을 모항으로 썼다.
주력 함대인 제1함대의 임무를 보조함은 물론 규슈를 비롯한 남부해역의 수비를 담당하게 된 제3함대는 가고시마에, 대만과 오키나와 해역을 담당하게 된 제4함대는 대만의 기륭항에 포진했는데, 오키나와의 나하[那覇] 항도 유사시 활용하기로 했다. 제4함대는 다른 세 개의 함대에 비해 전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야시로 해군대신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세보에 도착하면 일단 대기 상태로 있게 될 겁니다.”
가고시마 쪽에 있던 함선을 큐수 북부의 사세보까지 끌어올리는 것 자체도 큰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사세보는 부산에서 약 21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언제든 한국 공군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들만으로 쓰시마 섬 방어가 가능합니까?”
오쿠마 총리의 질문에 야시로 해군대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의 목표는 규슈나 시모노세키 지역에 적이 상륙하는 걸 막는 겁니다. 그러니 방어는 대마도 주둔군에 맡겨 두는 수밖에.”
한마디로 대마도를 방어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 우리도 전투기가 있지 않소?”
“그건 적 해군이 단독으로 움직일 경우에나 쓸 수 있는 수단입니다.”
육군대신 오카의 대답이었다. 일본군은 공군을 만들지 않고, 육군항공대란 조직을 신설해 전투기들을 운용하기로 했다.
“또 기뢰를 잔뜩 깔아 놓았으니, 놈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큰 이득을 얻는 셈이죠. 끝내 점령당할 가능성이 크긴 하나.”
군의 일에 정치인이 너무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쿠마 총리는 그래도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 제7전대만으로 적의 침공을 막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가고시마에 있는 제8전대도 투입할까 고려 중입니다. 지금 연합함대 사령부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총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휴, 이제 다시 전쟁인가? 그것도 전면전.”
“그렇다고 봐야죠.”
전쟁이 재개됐다는 걸 실감하자 모든 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번 전쟁은 전과 달리 본토의 안위가 걸린 전쟁이란 걸 다들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 현에 속한 대마도는 거제도의 약 두 배(1.8배)에 달할 정도로 큰 섬이나 온통 산악 지대로 뒤덮여 있어 농지 면적이 겨우 3%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척박했다. 하지만 군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초기에 점령해야 할 섬이었다.
대마도는 본 섬 이외에 수백 개의 부속 도서를 거느리고 있다. 원래 대마도 본 섬은 하나였는데 중간에 운하가 놓이며 남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대마도의 허리를 가르듯 파고들어 온 아소만(淺茅湾)으로 인해 엄청나게 긴 리아스식 해안선과 다도해와 같은 지형이 중부 지방에 만들어졌는데, 아소만에서 반대편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두 개의 지협을 골라 운하를 판 것이다.
그 결과, 크게 보면 남북 두 개의 섬으로, 더 자세히 보면 세 개의 섬으로 본 섬이 나뉘었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결국 일본에 붙었다. 그 후, 일본 국력의 신장세에 기대 덩달아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데 오늘 대마도는 세종대왕 시절 이후, 거의 5백 년 만에 대한제국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사상 유래가 없는 공군기의 공습이었다.
제일 먼저 폭격을 당한 곳은 섬 북부 지방의 중요 항구인 히타카츠[比田勝] 항이었다. 1907년 고래잡이배들의 모항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항구였는데, 새벽에 급습을 당한 것이다.
일본 군부는 군 전략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여겨 이곳에 육군 대대 병력을 배치해 항구를 수비하게 했고, 두 개의 대공 포대와 해안포대도 겹겹이 배치해 두었다. 그런데 한국 공군기의 급습으로 인해 포대 시설들은 단 십여 분 만에 무력화되었고, 육군 병력 주둔지마저 초토화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북쪽에서 날아온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번갈아 공격을 퍼부었다. 대공 포대가 무력화되자 전투기까지 가세한 것이다. 공격당한 곳은 히타카츠만이 아니었다. 공군기들은 돌아가는 길에 히타카츠 서북부에 자리한 토요사키 촌[豊崎村]―후세의 가미쓰시마 정[上對馬町]―의 대포(大浦)란 포구를 한 차례 더 두들긴 후 돌아갔다.
이 소식은 급전으로 이즈하라에 전해져 새벽잠에 취해 있던 군 간부들을 깨웠다. 그런데 졸음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보고가 연이어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소식은 여기서 가까운 남부 지역에 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즈하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은 제201폭격비행대대가 서쪽의 고모다란 곳을 치고 있을 때에야 대비 태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즈하라에도 히타카츠와 비슷한 규모의 군 병력과 포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숙소를 뛰쳐나온 병사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겨우 자리를 잡을 즈음, 서쪽에서 요란한 엔진 음과 더불어 폭격기들이 나타났다. 벌써 폭격 실행 과정에 들어갔는지 고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일본군 방공 포대 병력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기 시작했다. 장교의 명령이 떨어져야 움직였고, 그 절차는 길고 복잡했다. 그러다 보니 대응이 두 박자 이상이나 늦었다. 지금은 명령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포탄을 장전한 다음, 쏘고 볼 일이었다.
쒸웅!
폭격기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포탄들이 대공 포대를 향해 약간 비스듬한 각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펑!
웬일로 어떤 대공포 하나가 포탄을 날리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쒸웅! 꽝! 꽝! 꽈광!
하지만 눈먼 포탄을 발사한 포병들이나 그 포가 발사되는 장면을 목도한 다른 동료 포병들도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수십 발의 포탄이 그대로 방공 포대에 작렬했기 때문이다.
* * *
초여름 바다는 따가운 햇살만 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더구나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는 사람을 이유 없이 들뜨게 한다. 신선한 바닷바람이 머리를 시원하게 식혀 주고, 푸른색 물빛은 눈을 편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초여름의 바다 풍광을 여느 사람들과 다르게 느끼는 이도 있었다.
“날씨 하나는 죽이네. 이런 날은 한바탕 붙어야 제격인데…….”
제2함대 제2전대장 여운찬 참장은 계기에서 눈을 떼더니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2함대 함선들은 오늘 아침 모항인 진해항을 나와 대마도 방향으로 항해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일본 배가 나올 기미는 전혀 없는 모양이죠?”
압록함 부함장을 맡고 있는 김좌진 부령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현재 압록함의 함장 자리가 공석이라 제2전대장 여운찬이 함장 역할을 대신했다. 육상 근무에 관심이 없는 그는 늘 전대의 기함인 압록함에 승선하고 있어 사실상 그가 함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만간 김좌진 부함장이 함장 자리를 이어받을 예정인데,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압록함은 대한제국에 겨우 세 척밖에 없는 전함인데, 그중 하나를 벌써 그에게 맡기는 건 다소 부담스런 일이었다.
“참수리 둘 폭격기가 계속 정찰하고 있는데, 깨끗하다네.”
“공군기들이 대거 작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니 올 리가 없죠.”
“그러게.”
“응? 엔진 소리입니다. 또 때리러 가는 모양입니다.”
“오늘 공군이 꽤 바쁘군.”
엔진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곧 일군의 전투기들이 제2전투전대 함선들 위를 금세 지나갔다.
“김해 비행장에서 출격하고 있어 여러 번 공격이 가능하겠네요. 비행기로 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아니겠어요?”
“후후, 맞아. 이러다 대마도에 남아나는 게 있을까 몰라. 내일까지 계속될 텐데.”
“전대장님, 목표 해상에 도착하기 5분 전입니다.”
한담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작전관이 보고했다.
“그래? 어디 보자…….”
배정환 전대장은 레이더와 해도를 번갈아 보더니 바로 명령을 내렸다.
“침로 225도, 속도 유지.”
“침로 225도!”
김좌진은 전대장에게 물었다.
“그럼 해안선에서 25㎞ 정도까지 접근하실 요량입니까?”
“그래야지. 거기서 280도로 대각 전타해서 포격 대형으로 갈 생각이야.”
여운찬은 이처럼 늘 상세하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해 주곤 했다. 김좌진은 앞으로 압록함 함장은 물론, 전대장으로, 또 함대 사령관으로 성장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기뢰가 부설되었으리라 알려진 항만이나 포구에서 약 25㎞ 이상 거리를 두라는 것은 해군 측이 정한 규칙이었다. 상륙작전을 펼칠 만한 모든 항만과 해안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어 늘 유의해야 했다.
잠시 후, 거의 직각으로 선수를 돌려 대마도 해안선과 대열을 평행하게 일치시킨 제2전대 함선들은 목표 지점을 향해 함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전함인 압록함을 비롯해 중순양함 솔빈함과 경순양함인 대동함 및 낙동함에 장착된 170㎜ 함포는 대마도 북부 지방의 서부 해안 중앙에 있는 포구에 포탄 세례를 쏟아부었다.
메카다케 촌[奴加岳村]―후세의 토요타마 정[豊玉町村]―에 속한 고즈나[小綱]와 오츠나[大綱], 시타노우라[志多浦] 등 세 마을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포구는 물론, 그 앞에 떠 있는 나카노 섬 등 해안포대가 설치되어 있는 섬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 * *
대마도가 공격당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일본의 대본영과 내각에 급전으로 전해졌다. 먼저 낮에 대본영의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이어서 군부 인사들도 참가한 확대 내각회의가 저녁 늦은 시간에 열렸다.
그간 일본의 내각 구성이나 군 조직은 크게 바뀌었다.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꽤 많은 각료와 최고위급 군 장성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일본의 지배 세력은 나름 국민에게 인기가 좋은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해 비판적인 여론을 달래려 했다. 총리부터 그런 사람이 뽑혔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이는 실제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올해부터 총리대신을 맡게 된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는 육군대신 오카 이치노스케[岡市之助]에게 물었다.
“피해 상황은 어떻게 됩니까?”
“연락이 두절된 곳이 많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우나, 큰 피해를 입은 건 확실합니다. 특히 이번 공격은 서부 해안 쪽에 집중되었는데, 동부는 히타카츠와 이즈하라가 피습되었습니다.”
“예상대로군.”
“그렇습니다. 지난 한 달간 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는데, 결국 그게 오늘 터진 것 같습니다.”
일본 역시 대한제국 내에 첩자를 심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럼 지금은…….”
“회의 직전에 확인했습니다, 공격을 멈춘 것 같다고. 곧 해가 질 테니까요.”
“그럼 저들이 내일은 어떻게 나올 거라 예상합니까?”
“대본영 구성원들은 상륙을 시도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왜 공격과 동시에 상륙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란 의견을 낸 인사도 있었죠.”
“막을 대책은 있어요?”
이번엔 해군대신 야시로 로쿠로[八代六郎] 중장이 나서서 총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 가고시마 항에 있던 제3함대 제7전대를 사세보 항으로 이동시키기로 했습니다. 지금 벌써 이동 중일 겁니다.”
남벌 작전이 종료된 직후, 일본 해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연합함대를 총 네 개 함대로 재편하고 혼슈 북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시오가마[塩竈]와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 대만의 기륭항(基隆港)에 추가로 군항과 해군기지를 설치했다.
기존 요코스카[横須賀], 사세보[佐世保], 구레[呉], 마이즈루[舞鶴] 진수부(鎭守府)들도 그대로 활용하고 있으나, 대한제국과 가까운 규슈 북부의 사세보는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센다이 부근에 있는 시오가마 군항은 대한제국에 의해 북해도가 점령당한 이후 북부 해역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건설되었고, 대만 북부에 있는 기륭항은 사실상 일본 남부 지역 함대의 피항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규슈를 포기할 수 없어, 일본 해군 세력가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사쓰마 번[薩摩藩]이 있던 가고시마에 함대를 배치했다.
그래서 본토 중부 해역의 방어를 맡은 제1함대는 도쿄만 초입에 있는 요코스카와 동해 연안의 마이즈루, 히로시마 부근에 있는 구레 항을 활용했고, 본토 북부 해역을 맡게 된 제2함대는 시오가마 항을 모항으로 썼다.
주력 함대인 제1함대의 임무를 보조함은 물론 규슈를 비롯한 남부해역의 수비를 담당하게 된 제3함대는 가고시마에, 대만과 오키나와 해역을 담당하게 된 제4함대는 대만의 기륭항에 포진했는데, 오키나와의 나하[那覇] 항도 유사시 활용하기로 했다. 제4함대는 다른 세 개의 함대에 비해 전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야시로 해군대신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세보에 도착하면 일단 대기 상태로 있게 될 겁니다.”
가고시마 쪽에 있던 함선을 큐수 북부의 사세보까지 끌어올리는 것 자체도 큰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사세보는 부산에서 약 21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언제든 한국 공군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들만으로 쓰시마 섬 방어가 가능합니까?”
오쿠마 총리의 질문에 야시로 해군대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의 목표는 규슈나 시모노세키 지역에 적이 상륙하는 걸 막는 겁니다. 그러니 방어는 대마도 주둔군에 맡겨 두는 수밖에.”
한마디로 대마도를 방어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 우리도 전투기가 있지 않소?”
“그건 적 해군이 단독으로 움직일 경우에나 쓸 수 있는 수단입니다.”
육군대신 오카의 대답이었다. 일본군은 공군을 만들지 않고, 육군항공대란 조직을 신설해 전투기들을 운용하기로 했다.
“또 기뢰를 잔뜩 깔아 놓았으니, 놈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큰 이득을 얻는 셈이죠. 끝내 점령당할 가능성이 크긴 하나.”
군의 일에 정치인이 너무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쿠마 총리는 그래도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 제7전대만으로 적의 침공을 막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가고시마에 있는 제8전대도 투입할까 고려 중입니다. 지금 연합함대 사령부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총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휴, 이제 다시 전쟁인가? 그것도 전면전.”
“그렇다고 봐야죠.”
전쟁이 재개됐다는 걸 실감하자 모든 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번 전쟁은 전과 달리 본토의 안위가 걸린 전쟁이란 걸 다들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