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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제9장 대마도(3)
각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수송기를 이용해 이미 속속들이 제주 공군기지로 모여들었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비롯해 고민우와 제국익문사 독리 한윤희, 제국정보원장 정재관(鄭在寬)도 마지막 수송기편을 탔다.
의친왕은 명목상 황실을 대표해 군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왔지만, 사실 비행기를 타 보고 싶어서 자청한 면이 있었다. 공군 측이 참수리―2를 개조한 수송기 한 대를 황실에 기증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몸이 단 의친왕이 먼저 나선 것이다.
다만, 공군이 고민하는 이유는 참수리―2가 황실에 기증할 만큼 고급스런 기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다음 버전을 생각하고 있는데, 황실 측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의친왕은 마중 나온 공군 작전사령관 구자현 중장에게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허허허, 꿈만 같은 비행이었소. 기체 성능이 꽤 좋은 모양이외다. 처음엔 조금 두려웠지만, 비행기가 안정되게 날아가서 그런지 이내 가시더이다.”
“하하! 그러셨습니까, 전하.”
“정말 하늘에서 본 경치는 진정 장관이었소. 그 하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옆에 떠 있는 장면이란… 아국의 땅도 너무 어여뻐 보였소. 집들이 정말 콩알만 하게 보이더이다. 듣던 대로.”
한시라도 빨리 비행기를 기증받고 싶어 하는 의친왕의 의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언사였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 줘 공군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였다.
“폐하도 타 보셔야 할 텐데. 분명 크게 기뻐하며 상찬하실 거외다.”
황제까지 들먹여 아예 도장까지 찍으려 하는 의친왕이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전하, 일단 들어가시지요.”
의친왕의 시위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구자현 중장을 보고 민우가 대신해서 나서 줬다.
정보 관련 부서의 간부들까지 이곳에 온 건 일본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이번 전쟁 지휘부에 제공하거나 전략 방향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일본이 심어 놓은 첩자를 색출해 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미 진해항과 울산 비행장 부근에서 암약하던 첩자들을 체포한 사례도 있다 보니, 제주도에도 그런 자들이 없으리란 법이 없었다.
특히 군정청에 설치된 작전 지휘소에서 이번 전쟁을 실제적으로 지휘하게 되어, 제주도 내의 보안 문제가 매우 중차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해군 함선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제주항과 제주 비행장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면, 향후 대한제국 측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정재관은 방첩 작전에 쓰일, 백두산 연구소에 만들어준 무선 감청 장치들을 이번에 수송기편으로 같이 실어 왔다.
공식 명칭으로 ‘합동참모본부 제주 작전 지휘소’, 줄여서 ‘제주 지휘소’라 불리는 임시 군 조직은 군정청 옆에 붙은 건물을 통째로 활용하고 있었다. 앞으로 대부분의 세세한 작전 지휘는 이곳에서 이뤄지는데, 규모가 크고 중대한 작전의 경우 화룡에 있는 합참의 재가를 얻어 진행할 예정이었다.
의친왕은 군 간부들을 격려하고 제주도 군정청이 마련해 준 귀빈실로 들어가 피로를 풀었고, 다른 이들은 곧바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먼저 합참 작전본부 간부가 전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김해 비행장과 이곳 제주 비행장에서 출격한 공군기들이 대마도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소 만 유역의 군사 거점들과 동부 해안 지역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해군 역시 어제처럼 제2전대는 물론, 제7전대도 가세해 공격에 나섰습니다.”
“제7전대도? 우와!”
브리핑을 듣던 민우가 흥미롭다는 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왜?”
윤희가 귓속말로 묻자 민우가 답했다.
“제7전대는 우리가 직접 건조한 신형 함선으로 구성되어 있거든.”
“아, 그렇구나.”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재관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나서서 대신 질문했다.
“말씀 중에 죄송하오만, 제7전대의 활약이 어땠는지 듣고 싶습니다.”
“하하하, 다들 그게 궁금하셨을 겁니다. 제7전대는 주로 아소 만 입구 해역으로 이동해 공군의 공격 목표 이외의 목표물을 타격했습니다. 활약이라고 하면… 뭐, 크게 내세울 건 없으나, 신형 함선들이 항해 속도는 물론 함포의 속사 능력이 뛰어나 구형 함선에 비해 작전 수행 시간이 짧아졌다는 점 정도죠. 그걸 확인한 점도 큰 성과라고 봅니다.”
“아하, 그거 참 좋은 소식이네요.”
민우가 더욱 요란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제 신형 함선만이 아니라 모든 함선들의 함포 사격 제원 산출 시간이 매우 빨라졌다는 것도 알려 드리고 싶군요. 정확도도 높아졌고요.”
해군 소속 간부도 나서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아! 그거, 기계식 사격 통제 장치 덕분이죠?”
“그렇습니다.”
구형 함선의 무기 성능 개선 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해군은 ‘이거라도 해 보자’라는 심정으로 수십 년 뒤에나 세상에 나올 사격 통제 장치(FCS)의 개발을 백두산 연구소 측에 의뢰해 장착했다.
이것은 일종의 수동식 계산기로, 적함 혹은 목표물에 대한 거리와 높이, 풍속 등에 대한 여러 정보를 연산해 빠르게 각 포의 사격 제원을 계산해 주는 장치였다.
이제 각 함마다 보급된 레이더와 이 장치를 활용하면 적 신형 함선에 비해 뒤떨어진 전력의 격차를 좁히거나, 오히려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포 사거리나 위력 면에서 적보다 월등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해전에 돌입하면 위험을 회피하긴 어려웠다.
작전본부 간부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작전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이제 대마도의 일본군 전력은 대부분 상실될 것이라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틀 연속 공격을 퍼부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제주 지휘소의 최고 지휘관을 맡고 있는 추영철 중장은 지금까지 작전 진행 상황이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표정이 무척 밝았다.
“이 정도면 왜놈들의 관심이 대마도에 충분히 쏠렸겠지. 어때요, 적의 대응은?”
추영철의 질문에 브리핑하던 간부가 대답했다.
“적 해군의 움직임만 포착되었습니다. 사세보 항에 1개 전대, 히라도 해협 남쪽 해상에 또 하나, 그리고 시모노세키 항 부근에도 전대 하나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히라도 해협은 사세보 서북쪽에 인접해 있는 해협으로, 히라도[平戶] 섬과 규슈 본토 사이에 있는 바다였다. 그리고 시모노세키[下關]는 세토 내해(瀬戸内海, 세토나이카이) 입구에 있는 도시다.
“사세보와 히라도 해협의 배들은 제3함대 소속이고, 시모노세키 쪽은 1함대 소속일 겁니다.”
해군 간부가 보충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겠죠. 어쨌든 이 정도면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군요.”
“어휴, 당연하죠. 그렇게 때려 댔는데요.”
해군 작전사령관 최장호 중장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후후, 그럼 우린 내일 예비된 작전만 충실히 수행하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더 확인할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럼 해군 쪽부터 진행해 보죠.”
추영철의 요청에 응해 최장호가 나서서 해군 관련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해항에 연락해 내일 새벽 3시에 출항하라고 하세요. 제6전대요.”
그의 명령에 통신 담당 간부들이 일제히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울러 제7전대는 부산항에서 대기하고, 제2전대는 전과 다름없이 일출 직전에 출항해 대마도 주변 해역을 공략하라고 하세요. 특히 대마도 동부 해안으로 넘어가서.”
“하하, 좋은 의견이네요. 그러면 놈들이 더 바짝 긴장하겠는데요?”
추영철은 최장호의 마지막 명령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싱긋 웃더니 공군 쪽 인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공군도.”
“네, 그럼.”
공군의 구자형 작전사령관도 작전 계획에 의거, 이번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제1전비와 제4전비, 제10폭비 예하 부대에 각종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공군의 뒤를 이어 해병대를 대표하고 있는 해병 제1군단 사령관 문규민 중장도 해병대와 관련된 작전 지시를 내렸다. 해병대는 제1군단 전체 병력이 이번 작전에 참여하게 되어 작전사령관 대신 군단장이 해병대 최고 지휘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 * *
회의가 끝난 후, 민우와 윤희, 정재관은 해병대 병력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 군정청에서 할애해 준 넓은 사무실로 짐을 모두 옮겼다. 짐 옮기기가 끝날 무렵, 제주 지역 담당 제국정보원 요원들과 제국익문사에서 채용한 우전학교 출신의 무선전신 담당 직원들이 이들을 찾아왔다.
우전학교(郵電學校)는 우체 업무와 전보 업무 전문가를 양성하는 관립 우무학당(郵務學堂)과 유무선 전신 기술자의 육성 기관인 전무학당(電務學堂)을 통합해 만든 전문학교였다.
두 학당 모두 1900년경, 대한제국 정부가 실제로 한성에 설립한 단기 과정의 관립 학교였다. 화룡 정부도 이 학교의 필요성을 느껴 1년 과정으로 1912년 화룡에, 그리고 1913년에 평양과 봉천, 그리고 남한주의 회덕에 하나씩 설립했다.
교육 기간이 짧다 보니 벌써 많은 졸업생이 배출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중앙우정국, 중앙전화전신국, 대한전화전신공사 등의 국가기관과 공사 등에 특채되어 들어갔다. 그중 일부는 이처럼 제국익문사에 들어오기도 했다.
교무부는 앞으로 교육과정을 더 보완해 우전학교를 2년제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야 기술뿐만 아니라 공직자에 걸맞은 다른 교양 교육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할 인력들이 모두 모이자 대기하고 있던 두 정보기관의 간부들이 이들과 더불어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주도의 제국정보원 요원들은 이 기계의 사용법을 배운 뒤, 감청 임무에 들어가 무선전신이 발신되는 위치를 추적하게 될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세 사람은 저녁식사를 한 후, 제주항 쪽으로 나가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유월이네.”
민우는 걷다 말고 뭔가가 생각났는지 날짜 이야기를 꺼냈다.
“응? 우와, 그러고 보니…….”
윤희도 민우의 말을 듣고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두 사람은 점차 어두워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주도답게 바닷바람이 다소 거칠게 불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윤희의 머리칼이 허공에서 엉키고 춤추는 모습이 꼭 바람결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윤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어떨 것 같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는지, 정재관도 흥분해서 말했다.
“혹시 사라예보 사건을 말하는 거요?”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부부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그로 인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와 관계가 악화되어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동맹 관계에 있는 독일을 믿고 전쟁을 벌이기로 결정하면서 순식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후후, 아우도 잘 아는군.”
“의형이 준 역사책은 닳도록 읽고 있소. 그러니 모를 수가 없지.”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번 달 말경인데…….”
민우는 다시 생각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세월 참 빠르네. 어느새 그때가 왔어.”
“그러게 말이야. 난 올해를 맞으며 제일 먼저 그 사건을 떠올렸는데, 바빠서 잠시 잊은 모양이야.”
“그럼 의형 생각은 어떻소?”
“모르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에휴, 그런 말은 누가 못할까.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윤희가 한숨을 쉬며 민우를 타박했다.
“크크, 그런가?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 볼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고.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테니까.”
“음, 하기야 그때와 달리 독일이 오히려 신중하게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오.”
“응? 왜?”
“비록 독일과 러시아 간의 불가침조약 기한이 끝났다 해도 러시아는 발칸반도 문제에 개입하길 주저하고 있소. 독일이 시비를 걸까 두려워서 말이오. 그러니 전쟁의 불길이 남쪽으로 더 크게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이오.”
“일리 있는 얘기야. 발칸반도 전쟁이 더 크게 선행되어 일어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러시아의 입김이 약화된 상황이라 남슬라브 운동이니 뭐니 하는 것도 지리멸렬할 테고.”
“에이, 모르겠다. 우린 그저 동아시아 일만 신경 쓰자고.”
윤희가 대화를 간단히 정리했다.
이들이 이런 얘길 나눌 수 있는 이유도 유럽에 여러 공사관들이 설립되면서 유럽 대륙에 대한 정보가 전보다 더 많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익문사 요원은 모든 공사관마다 파견되어 있었다.
각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수송기를 이용해 이미 속속들이 제주 공군기지로 모여들었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비롯해 고민우와 제국익문사 독리 한윤희, 제국정보원장 정재관(鄭在寬)도 마지막 수송기편을 탔다.
의친왕은 명목상 황실을 대표해 군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왔지만, 사실 비행기를 타 보고 싶어서 자청한 면이 있었다. 공군 측이 참수리―2를 개조한 수송기 한 대를 황실에 기증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몸이 단 의친왕이 먼저 나선 것이다.
다만, 공군이 고민하는 이유는 참수리―2가 황실에 기증할 만큼 고급스런 기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다음 버전을 생각하고 있는데, 황실 측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의친왕은 마중 나온 공군 작전사령관 구자현 중장에게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허허허, 꿈만 같은 비행이었소. 기체 성능이 꽤 좋은 모양이외다. 처음엔 조금 두려웠지만, 비행기가 안정되게 날아가서 그런지 이내 가시더이다.”
“하하! 그러셨습니까, 전하.”
“정말 하늘에서 본 경치는 진정 장관이었소. 그 하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옆에 떠 있는 장면이란… 아국의 땅도 너무 어여뻐 보였소. 집들이 정말 콩알만 하게 보이더이다. 듣던 대로.”
한시라도 빨리 비행기를 기증받고 싶어 하는 의친왕의 의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언사였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 줘 공군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였다.
“폐하도 타 보셔야 할 텐데. 분명 크게 기뻐하며 상찬하실 거외다.”
황제까지 들먹여 아예 도장까지 찍으려 하는 의친왕이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전하, 일단 들어가시지요.”
의친왕의 시위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구자현 중장을 보고 민우가 대신해서 나서 줬다.
정보 관련 부서의 간부들까지 이곳에 온 건 일본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이번 전쟁 지휘부에 제공하거나 전략 방향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일본이 심어 놓은 첩자를 색출해 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미 진해항과 울산 비행장 부근에서 암약하던 첩자들을 체포한 사례도 있다 보니, 제주도에도 그런 자들이 없으리란 법이 없었다.
특히 군정청에 설치된 작전 지휘소에서 이번 전쟁을 실제적으로 지휘하게 되어, 제주도 내의 보안 문제가 매우 중차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해군 함선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제주항과 제주 비행장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면, 향후 대한제국 측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정재관은 방첩 작전에 쓰일, 백두산 연구소에 만들어준 무선 감청 장치들을 이번에 수송기편으로 같이 실어 왔다.
공식 명칭으로 ‘합동참모본부 제주 작전 지휘소’, 줄여서 ‘제주 지휘소’라 불리는 임시 군 조직은 군정청 옆에 붙은 건물을 통째로 활용하고 있었다. 앞으로 대부분의 세세한 작전 지휘는 이곳에서 이뤄지는데, 규모가 크고 중대한 작전의 경우 화룡에 있는 합참의 재가를 얻어 진행할 예정이었다.
의친왕은 군 간부들을 격려하고 제주도 군정청이 마련해 준 귀빈실로 들어가 피로를 풀었고, 다른 이들은 곧바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먼저 합참 작전본부 간부가 전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김해 비행장과 이곳 제주 비행장에서 출격한 공군기들이 대마도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소 만 유역의 군사 거점들과 동부 해안 지역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해군 역시 어제처럼 제2전대는 물론, 제7전대도 가세해 공격에 나섰습니다.”
“제7전대도? 우와!”
브리핑을 듣던 민우가 흥미롭다는 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왜?”
윤희가 귓속말로 묻자 민우가 답했다.
“제7전대는 우리가 직접 건조한 신형 함선으로 구성되어 있거든.”
“아, 그렇구나.”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재관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나서서 대신 질문했다.
“말씀 중에 죄송하오만, 제7전대의 활약이 어땠는지 듣고 싶습니다.”
“하하하, 다들 그게 궁금하셨을 겁니다. 제7전대는 주로 아소 만 입구 해역으로 이동해 공군의 공격 목표 이외의 목표물을 타격했습니다. 활약이라고 하면… 뭐, 크게 내세울 건 없으나, 신형 함선들이 항해 속도는 물론 함포의 속사 능력이 뛰어나 구형 함선에 비해 작전 수행 시간이 짧아졌다는 점 정도죠. 그걸 확인한 점도 큰 성과라고 봅니다.”
“아하, 그거 참 좋은 소식이네요.”
민우가 더욱 요란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제 신형 함선만이 아니라 모든 함선들의 함포 사격 제원 산출 시간이 매우 빨라졌다는 것도 알려 드리고 싶군요. 정확도도 높아졌고요.”
해군 소속 간부도 나서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아! 그거, 기계식 사격 통제 장치 덕분이죠?”
“그렇습니다.”
구형 함선의 무기 성능 개선 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해군은 ‘이거라도 해 보자’라는 심정으로 수십 년 뒤에나 세상에 나올 사격 통제 장치(FCS)의 개발을 백두산 연구소 측에 의뢰해 장착했다.
이것은 일종의 수동식 계산기로, 적함 혹은 목표물에 대한 거리와 높이, 풍속 등에 대한 여러 정보를 연산해 빠르게 각 포의 사격 제원을 계산해 주는 장치였다.
이제 각 함마다 보급된 레이더와 이 장치를 활용하면 적 신형 함선에 비해 뒤떨어진 전력의 격차를 좁히거나, 오히려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포 사거리나 위력 면에서 적보다 월등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해전에 돌입하면 위험을 회피하긴 어려웠다.
작전본부 간부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작전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이제 대마도의 일본군 전력은 대부분 상실될 것이라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틀 연속 공격을 퍼부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제주 지휘소의 최고 지휘관을 맡고 있는 추영철 중장은 지금까지 작전 진행 상황이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표정이 무척 밝았다.
“이 정도면 왜놈들의 관심이 대마도에 충분히 쏠렸겠지. 어때요, 적의 대응은?”
추영철의 질문에 브리핑하던 간부가 대답했다.
“적 해군의 움직임만 포착되었습니다. 사세보 항에 1개 전대, 히라도 해협 남쪽 해상에 또 하나, 그리고 시모노세키 항 부근에도 전대 하나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히라도 해협은 사세보 서북쪽에 인접해 있는 해협으로, 히라도[平戶] 섬과 규슈 본토 사이에 있는 바다였다. 그리고 시모노세키[下關]는 세토 내해(瀬戸内海, 세토나이카이) 입구에 있는 도시다.
“사세보와 히라도 해협의 배들은 제3함대 소속이고, 시모노세키 쪽은 1함대 소속일 겁니다.”
해군 간부가 보충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겠죠. 어쨌든 이 정도면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군요.”
“어휴, 당연하죠. 그렇게 때려 댔는데요.”
해군 작전사령관 최장호 중장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후후, 그럼 우린 내일 예비된 작전만 충실히 수행하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더 확인할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럼 해군 쪽부터 진행해 보죠.”
추영철의 요청에 응해 최장호가 나서서 해군 관련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해항에 연락해 내일 새벽 3시에 출항하라고 하세요. 제6전대요.”
그의 명령에 통신 담당 간부들이 일제히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울러 제7전대는 부산항에서 대기하고, 제2전대는 전과 다름없이 일출 직전에 출항해 대마도 주변 해역을 공략하라고 하세요. 특히 대마도 동부 해안으로 넘어가서.”
“하하, 좋은 의견이네요. 그러면 놈들이 더 바짝 긴장하겠는데요?”
추영철은 최장호의 마지막 명령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싱긋 웃더니 공군 쪽 인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공군도.”
“네, 그럼.”
공군의 구자형 작전사령관도 작전 계획에 의거, 이번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제1전비와 제4전비, 제10폭비 예하 부대에 각종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공군의 뒤를 이어 해병대를 대표하고 있는 해병 제1군단 사령관 문규민 중장도 해병대와 관련된 작전 지시를 내렸다. 해병대는 제1군단 전체 병력이 이번 작전에 참여하게 되어 작전사령관 대신 군단장이 해병대 최고 지휘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 * *
회의가 끝난 후, 민우와 윤희, 정재관은 해병대 병력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 군정청에서 할애해 준 넓은 사무실로 짐을 모두 옮겼다. 짐 옮기기가 끝날 무렵, 제주 지역 담당 제국정보원 요원들과 제국익문사에서 채용한 우전학교 출신의 무선전신 담당 직원들이 이들을 찾아왔다.
우전학교(郵電學校)는 우체 업무와 전보 업무 전문가를 양성하는 관립 우무학당(郵務學堂)과 유무선 전신 기술자의 육성 기관인 전무학당(電務學堂)을 통합해 만든 전문학교였다.
두 학당 모두 1900년경, 대한제국 정부가 실제로 한성에 설립한 단기 과정의 관립 학교였다. 화룡 정부도 이 학교의 필요성을 느껴 1년 과정으로 1912년 화룡에, 그리고 1913년에 평양과 봉천, 그리고 남한주의 회덕에 하나씩 설립했다.
교육 기간이 짧다 보니 벌써 많은 졸업생이 배출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중앙우정국, 중앙전화전신국, 대한전화전신공사 등의 국가기관과 공사 등에 특채되어 들어갔다. 그중 일부는 이처럼 제국익문사에 들어오기도 했다.
교무부는 앞으로 교육과정을 더 보완해 우전학교를 2년제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야 기술뿐만 아니라 공직자에 걸맞은 다른 교양 교육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할 인력들이 모두 모이자 대기하고 있던 두 정보기관의 간부들이 이들과 더불어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주도의 제국정보원 요원들은 이 기계의 사용법을 배운 뒤, 감청 임무에 들어가 무선전신이 발신되는 위치를 추적하게 될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세 사람은 저녁식사를 한 후, 제주항 쪽으로 나가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유월이네.”
민우는 걷다 말고 뭔가가 생각났는지 날짜 이야기를 꺼냈다.
“응? 우와, 그러고 보니…….”
윤희도 민우의 말을 듣고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두 사람은 점차 어두워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주도답게 바닷바람이 다소 거칠게 불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윤희의 머리칼이 허공에서 엉키고 춤추는 모습이 꼭 바람결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윤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어떨 것 같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는지, 정재관도 흥분해서 말했다.
“혹시 사라예보 사건을 말하는 거요?”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부부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그로 인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와 관계가 악화되어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동맹 관계에 있는 독일을 믿고 전쟁을 벌이기로 결정하면서 순식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후후, 아우도 잘 아는군.”
“의형이 준 역사책은 닳도록 읽고 있소. 그러니 모를 수가 없지.”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번 달 말경인데…….”
민우는 다시 생각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세월 참 빠르네. 어느새 그때가 왔어.”
“그러게 말이야. 난 올해를 맞으며 제일 먼저 그 사건을 떠올렸는데, 바빠서 잠시 잊은 모양이야.”
“그럼 의형 생각은 어떻소?”
“모르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에휴, 그런 말은 누가 못할까.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윤희가 한숨을 쉬며 민우를 타박했다.
“크크, 그런가?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 볼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고.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테니까.”
“음, 하기야 그때와 달리 독일이 오히려 신중하게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오.”
“응? 왜?”
“비록 독일과 러시아 간의 불가침조약 기한이 끝났다 해도 러시아는 발칸반도 문제에 개입하길 주저하고 있소. 독일이 시비를 걸까 두려워서 말이오. 그러니 전쟁의 불길이 남쪽으로 더 크게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이오.”
“일리 있는 얘기야. 발칸반도 전쟁이 더 크게 선행되어 일어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러시아의 입김이 약화된 상황이라 남슬라브 운동이니 뭐니 하는 것도 지리멸렬할 테고.”
“에이, 모르겠다. 우린 그저 동아시아 일만 신경 쓰자고.”
윤희가 대화를 간단히 정리했다.
이들이 이런 얘길 나눌 수 있는 이유도 유럽에 여러 공사관들이 설립되면서 유럽 대륙에 대한 정보가 전보다 더 많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익문사 요원은 모든 공사관마다 파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