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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제9장 대마도(1)
광무 18년, 6월 초.
제주항 근처에 자리한 공군의 제주 비행장.
비행장 상공에 항공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비행기는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춘 후, 자세를 잡고 활주로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라? 우리 참수리 둘과 다를 바가 없는데?”
제10폭격비행단 산하 제201폭격비행대대의 박상진 대대장은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이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약간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실제 역사에서 박상진(朴尙鎭, 1884년 울산 출생)은 주로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대한광복회의 총사령 직을 맡기도 했는데, 결국 일제 당국에 검거된 후 사형을 당한 애국지사였다.
그는 김재덕 훈련비행단장과 같이 꾸준히 제201대대에서 조종사로서 작전을 수행해 오다 김재덕이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자 대대장으로 선임되었다.
그가 기대감을 갖고 이 비행기를 기다린 이유는 그게 공군의 첫 번째 수송기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저버릴 만큼 이 기체는 참수리―2와 외형이 똑같았다. 전투에 필요한 장비와 무장을 떼어 버리고 내부만 수송기로 개조한 모양이었다.
제주도는 남한주에 소속된 하나의 도(道)였다. 정부는 남벌 작전이 끝난 직후 섬 자체를 도로 승격시키고, 당분간 군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군정청장은 해병 제1군단 사령관인 문규민 중장이 맡았다. 그는 작전사령관을 맡고 있다가 자진해서 다시 야전 부대로 오게 되었다.
해병 제1군단 사령부가 제주도에 있지만 2개 사단만 배치되었고, 나머지 3개 사단은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제 제주도 자체가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군 병력이 대거 들어오면서 제주도 내의 일제 잔재 청산이나 검거된 부역자에 대한 재판 등의 절차는 순식간에 끝났고, 행정도 이내 정상화되었다. 군정청은 이 섬의 전통대로 제주도를 제주군과 대정군, 정의군의 3군으로 나누어 행정을 펼쳐 나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제주도 주둔 부대인 해군도 큰 배의 입항이 가능하도록 제주항에 잔교 부두를 가설해 군항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방파제를 만들고 항만 시설 공사를 하려면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시로 취한 조치였다.
그리고 제주항은 어차피 상업항으로 활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개발은 교통통신부와 건설부에 맡기면 되었다. 그래서 해군 측은 군항과 해군기지를 남부 해안의 대정군 중면(中面)―훗날 안덕면으로 바뀜―화순항에 조성하기로 했다.
공군 최고위급 간부들이 탄 수송기는 착륙한 뒤 활주로를 돌아 본부 쪽으로 다가왔다. 박상진 부령 곁에서 이 장면을 같이 지켜보고 있던 제2편대장 조양래 참령이 말했다.
“정말 제대로 일이 벌어지려나 봅니다.”
“참을 만큼 참은 거지.”
현재 제1전투비행단이 주 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제주 비행장은 미어터지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공군기들이 들어왔다. 일단 영암에 있던 제1전비 소속 전투기를 모두 제주도로 불러들였다. 또한 경북 개령 비행장에 있던 제10폭격비행단의 네 개 비행대대 중 두 개도 제주도로 이동시켰다. 심지어 해군 항공 전단 소속 뇌격기 대대 하나도 들어와 있었다.
* * *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자리한 경남 진해항.
진해항은 항만 내부가 넓은데다 외해와 차단되어 있어 풍파가 약하고 수심마저 깊어 양항의 조건을 타고난 곳이었다. 일본은 이곳을 일찌감치 군항으로 만들었는데, 대한제국과 전쟁이 격화되자 시설도 빠르게 확충해놓은 상태라 제2함대가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해군 측은 항만 배후의 민간인 사유지를 모두 사들여 제2함대 사령부가 쓸 수 있는 공간을 크게 늘려 놓았다. 특히 병력을 배에 태워 보낼 상황을 고려해 대규모로 병력 수용 시설도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 그 시설이 제 몫을 하게 되었다. 밤을 틈타 해병대 병력 중 일부가 진해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경상남도 남해안에 흩어져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세 개 사단은 한 달 전부터 진해와 가까운 마산과 창원, 김해의 해안가 산지로 이동, 맹렬히 훈련을 실시해 왔다.
그리고 오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육군 병력이 대거 동원되어 주민들의 통행을 통제하는 사이에 김해에 머물며 훈련하던 제4사단 병력이 진해항 구역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사령관님, 민간 수송선들이 곧 입항할 거랍니다.”
“드디어 왔군. 그럼 일단 짐부터 실어 놓으라고 해. 병력 승선은 위에서 지시가 떨어진 다음에 하고.”
“알겠습니다.”
해병대 병력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2함대 사령관 계승호 소장은 부관의 보고를 들은 즉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민간 수송선이 왔다고요?”
가장 먼저 사령부로 들어와 작전 계획에 대해 협의하던 해병 제4사단장 황상국 소장이 물었다.
“네. 동북해운공사에서 지원해 준 배들이죠.”
“음, 그 회사도 사람과 여객을 실어 나르느라 꽤 바쁠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한테 상륙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조만간 유럽에서 1차 구매 분으로 대형 화물선이 십여 척 넘게 들어온대요. 그걸 동북해운으로 돌리면 될 겁니다. 또 군사작전이 매일 있는 게 아니니까.”
대한제국 측은 한 푼도 남기지 않겠다는 기세로 유럽에서 중고 선박을 구입하는 데 보유하고 있는 마르크화를 물 쓰듯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1차분으로 들어오는 게 독일에서 산 열세 척의 배인데, 이 물량이 독일에서 구매할 수 있는 최대 한계 수량이었다. 이제 세창양행의 도움을 받아 다른 나라에서도 구입해야 할 형편이었다. 세창양행은 독일 기업이기 때문에 마르크화를 받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또 다른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 제2전대가 제주항에 도착해서 대기 중이랍니다.”
“알았네.”
계승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계를 보았다.
“이제 몇 시간 안 남았군, 목표 해역에 대한 정보를 받으려면.”
“어제까지 깨끗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요즘 들어 그 해역에 출몰하는 횟수가 늘어나서요. 이제 지들 해역이니 지켜보겠다고 결심한 모양인지…….”
“기어 나올수록 우리한테 좋은 일 아닙니까?”
역시나 해병대 사단장다운 말이었다. 물론 해군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그놈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고 말하기에 좀 미안하군요.”
“하하, 맞는 말이네요.”
황상국은 멋쩍게 웃었다.
* * *
동트기 직전, 제주 비행장을 차례로 이륙한 제201폭격비행대대 소속 폭격기 열여섯 대는 이내 제주도 상공을 지나 남해로 접어들었다.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통신관은 쉴 새 없이 상황을 전파해 줘야 했다.
“제203대대가 개령 비행장을 이륙, 현재 동래 상공을 지나고 있답니다.”
“알았네. 그럼 우리 위치도 바로 알려 줘.”
“네.”
오랜만에 치르는 실전이라 그런지, 제201대대장 박상진의 음성이 살짝 떨려 나왔다.
“제4전비 김해 비행장에서 상황 전파. 30분 후, 제110대대가 이륙해 약속된 해상으로 향할 거랍니다.”
“30분? 그 정도면 얼추 시간이 들어맞겠군.”
벌써 동이 트기 시작한 모양인지,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륙 이후 지금까지 폭격수는 지도에 온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그가 보고 있는 지도에는 목표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대한제국에 포섭당한 일본군 포로 출신 첩자들이 수집한 정보와 정찰비행을 통해 확인된 사항들이었다. 지도에 그려진 표식은 군 관련 시설인데, 그중에서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방공 포대였다.
“제203대대가 곧 목표 지점 상공에 도착한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공중과 해상 모두 깨끗하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럼 육지만 두들기면 되는 거네?”
박상진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대원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전공을 세우는 것보다 안전하게 작전을 마치는 게 더 중요했다.
지금쯤 북쪽의 제203비행대대는 대마도 북부 지방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윽고 목표에서 약 35㎞ 떨어진 해상에 이르자, 제110전투비행대대가 합류했다. 이 열여섯 대의 보라매 전투기의 임무는 바로 제201폭격비행대대를 호위하는 일이었다.
그간 전투비행단 편제에 다소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큰 임무를 앞두고 전략적 중요도가 큰 전투비행단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였다. 먼저 각 대대에 하나씩 배치된 참수리―1 폭격기 편대를 다시 하나로 모아 비행단별로 폭격비행대대를 하나씩 새로 편성했다. 그래서 총 열두 대로 편성된 폭격비행대대가 비행단마다 하나씩 생겨났다.
그리고 그에 더해 전투기 대대를 두 개 더 늘려 각 비행단마다 전투비행대대 네 개와 폭격비행대대 한 개, 이렇게 모두 합해 다섯 개의 비행대대에 총 76대의 공군기를 각 비행단이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아홉 개의 전투비행단 중에 제5전투비행단까지 이런 편제가 이뤄진 상태였다.
김해에 있는 제4전비 소속 전투기가 제주에서 이륙한 제201폭격비행대대의 호위를 맡은 건 거리 문제 때문이었다. 김해 비행장에서 대마도 남부 지역 상공까지 거리는 겨우 115㎞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제주의 경우 250㎞가 넘어 작전 지속 시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자 폭격기들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폭격수 준비!”
폭격수는 그의 호출에 응답을 한 뒤, 조준기로 눈을 돌렸다.
대마도는 평야 지대가 거의 없고 산지투성이라 해안가 마을에 주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의 상륙을 저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군 역시 상륙이 가능한 해안, 특히 어항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방공 포대도 그랬다.
꿀꺽!
폭격수가 매우 긴장한 모양이다. 자칫해서 민간인 거주 구역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편대 단위로 짝을 이뤄 대마도 남부 지방 중에서 서부 해안에 위치한 요충지 네 곳을 향해 갈라져 나아갔다.
네 곳은 최남단의 요라 촌[與良村]의 영역 중 후세의 츠츠[豆酘] 지역―이즈하라 정 츠츠[厳原町豆酘]―부터 시작해 그 북쪽의 사스 촌[佐須村]의 구네하마[久根浜]와 고모다[小茂田], 아렌[阿連] 지역이었다.
네 곳 모두 중간 크기의 어항이 자리한 지역이기 때문에 소수의 일본 수비대 병력이 붙어 있었다. 박상진 대대장과 제1편대가 맡은 지역은 중간 부분에 있는, 고모다란 곳이었다.
박상진은 고도를 더욱 내려 정밀 폭격 동작으로 들어갔다.
“하하! 이놈들, 아직도 준비가 안 되었나 보네?”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 즈음이라 일본군 수비대는 제 위치에 들어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병사들이 개미처럼 이리저리 달리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폭탄 창 개방!”
그의 명령에 따라 폭탄 창이 개방되고, 폭격수는 조준 절차에 들어갔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먼저 방공 포대를 노렸다. 뒤를 따르고 있는 폭격기 중 한 대는 군 주둔 시설을 맡았는데, 그들도 지금 폭격 절차에 들어갔을 것이다.
폭격수가 여러 손잡이들 중 하나를 당기자 폭탄 창의 우측 열에 매달려 있던 한 줄의 폭탄들이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공군은 폭탄을 아끼려 줄마다 별도로 투하하는 장치를 만들어 폭격기에 달았다. 물론 한꺼번에 폭탄을 투하하는 장치도 있어 필요 시 활용할 수 있었다.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꽤 고도를 낮춘 상태라 폭탄들이 자유낙하 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꽝! 꽈광! 꽝!
폭격수는 육안으로 폭격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명중했습니다.”
“와아아! 대단하네!”
항법사가 환호하며 폭격수를 칭찬했다. 이제 걱정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사이, 다른 폭격기들도 각자가 맡은 목표를 향해 줄줄이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작은 어촌이라 그런지, 두 대의 폭격기로 한 차례만 폭격해도 충분했다. 전투기들도 그 뒤를 이어 기관총으로 살아남은 적병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박상진은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뒤, 다른 폭격기들을 이끌고 다시 동쪽으로, 대마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즈하라[嚴原]를 향해 나아갔다. 남은 폭탄을 그곳에 쏟아부을 심산이었다.
광무 18년, 6월 초.
제주항 근처에 자리한 공군의 제주 비행장.
비행장 상공에 항공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비행기는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춘 후, 자세를 잡고 활주로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라? 우리 참수리 둘과 다를 바가 없는데?”
제10폭격비행단 산하 제201폭격비행대대의 박상진 대대장은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이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약간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실제 역사에서 박상진(朴尙鎭, 1884년 울산 출생)은 주로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대한광복회의 총사령 직을 맡기도 했는데, 결국 일제 당국에 검거된 후 사형을 당한 애국지사였다.
그는 김재덕 훈련비행단장과 같이 꾸준히 제201대대에서 조종사로서 작전을 수행해 오다 김재덕이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자 대대장으로 선임되었다.
그가 기대감을 갖고 이 비행기를 기다린 이유는 그게 공군의 첫 번째 수송기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저버릴 만큼 이 기체는 참수리―2와 외형이 똑같았다. 전투에 필요한 장비와 무장을 떼어 버리고 내부만 수송기로 개조한 모양이었다.
제주도는 남한주에 소속된 하나의 도(道)였다. 정부는 남벌 작전이 끝난 직후 섬 자체를 도로 승격시키고, 당분간 군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군정청장은 해병 제1군단 사령관인 문규민 중장이 맡았다. 그는 작전사령관을 맡고 있다가 자진해서 다시 야전 부대로 오게 되었다.
해병 제1군단 사령부가 제주도에 있지만 2개 사단만 배치되었고, 나머지 3개 사단은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제 제주도 자체가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군 병력이 대거 들어오면서 제주도 내의 일제 잔재 청산이나 검거된 부역자에 대한 재판 등의 절차는 순식간에 끝났고, 행정도 이내 정상화되었다. 군정청은 이 섬의 전통대로 제주도를 제주군과 대정군, 정의군의 3군으로 나누어 행정을 펼쳐 나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제주도 주둔 부대인 해군도 큰 배의 입항이 가능하도록 제주항에 잔교 부두를 가설해 군항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방파제를 만들고 항만 시설 공사를 하려면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시로 취한 조치였다.
그리고 제주항은 어차피 상업항으로 활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개발은 교통통신부와 건설부에 맡기면 되었다. 그래서 해군 측은 군항과 해군기지를 남부 해안의 대정군 중면(中面)―훗날 안덕면으로 바뀜―화순항에 조성하기로 했다.
공군 최고위급 간부들이 탄 수송기는 착륙한 뒤 활주로를 돌아 본부 쪽으로 다가왔다. 박상진 부령 곁에서 이 장면을 같이 지켜보고 있던 제2편대장 조양래 참령이 말했다.
“정말 제대로 일이 벌어지려나 봅니다.”
“참을 만큼 참은 거지.”
현재 제1전투비행단이 주 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제주 비행장은 미어터지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공군기들이 들어왔다. 일단 영암에 있던 제1전비 소속 전투기를 모두 제주도로 불러들였다. 또한 경북 개령 비행장에 있던 제10폭격비행단의 네 개 비행대대 중 두 개도 제주도로 이동시켰다. 심지어 해군 항공 전단 소속 뇌격기 대대 하나도 들어와 있었다.
* * *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자리한 경남 진해항.
진해항은 항만 내부가 넓은데다 외해와 차단되어 있어 풍파가 약하고 수심마저 깊어 양항의 조건을 타고난 곳이었다. 일본은 이곳을 일찌감치 군항으로 만들었는데, 대한제국과 전쟁이 격화되자 시설도 빠르게 확충해놓은 상태라 제2함대가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해군 측은 항만 배후의 민간인 사유지를 모두 사들여 제2함대 사령부가 쓸 수 있는 공간을 크게 늘려 놓았다. 특히 병력을 배에 태워 보낼 상황을 고려해 대규모로 병력 수용 시설도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 그 시설이 제 몫을 하게 되었다. 밤을 틈타 해병대 병력 중 일부가 진해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경상남도 남해안에 흩어져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세 개 사단은 한 달 전부터 진해와 가까운 마산과 창원, 김해의 해안가 산지로 이동, 맹렬히 훈련을 실시해 왔다.
그리고 오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육군 병력이 대거 동원되어 주민들의 통행을 통제하는 사이에 김해에 머물며 훈련하던 제4사단 병력이 진해항 구역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사령관님, 민간 수송선들이 곧 입항할 거랍니다.”
“드디어 왔군. 그럼 일단 짐부터 실어 놓으라고 해. 병력 승선은 위에서 지시가 떨어진 다음에 하고.”
“알겠습니다.”
해병대 병력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2함대 사령관 계승호 소장은 부관의 보고를 들은 즉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민간 수송선이 왔다고요?”
가장 먼저 사령부로 들어와 작전 계획에 대해 협의하던 해병 제4사단장 황상국 소장이 물었다.
“네. 동북해운공사에서 지원해 준 배들이죠.”
“음, 그 회사도 사람과 여객을 실어 나르느라 꽤 바쁠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한테 상륙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조만간 유럽에서 1차 구매 분으로 대형 화물선이 십여 척 넘게 들어온대요. 그걸 동북해운으로 돌리면 될 겁니다. 또 군사작전이 매일 있는 게 아니니까.”
대한제국 측은 한 푼도 남기지 않겠다는 기세로 유럽에서 중고 선박을 구입하는 데 보유하고 있는 마르크화를 물 쓰듯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1차분으로 들어오는 게 독일에서 산 열세 척의 배인데, 이 물량이 독일에서 구매할 수 있는 최대 한계 수량이었다. 이제 세창양행의 도움을 받아 다른 나라에서도 구입해야 할 형편이었다. 세창양행은 독일 기업이기 때문에 마르크화를 받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또 다른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 제2전대가 제주항에 도착해서 대기 중이랍니다.”
“알았네.”
계승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계를 보았다.
“이제 몇 시간 안 남았군, 목표 해역에 대한 정보를 받으려면.”
“어제까지 깨끗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요즘 들어 그 해역에 출몰하는 횟수가 늘어나서요. 이제 지들 해역이니 지켜보겠다고 결심한 모양인지…….”
“기어 나올수록 우리한테 좋은 일 아닙니까?”
역시나 해병대 사단장다운 말이었다. 물론 해군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그놈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고 말하기에 좀 미안하군요.”
“하하, 맞는 말이네요.”
황상국은 멋쩍게 웃었다.
* * *
동트기 직전, 제주 비행장을 차례로 이륙한 제201폭격비행대대 소속 폭격기 열여섯 대는 이내 제주도 상공을 지나 남해로 접어들었다.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통신관은 쉴 새 없이 상황을 전파해 줘야 했다.
“제203대대가 개령 비행장을 이륙, 현재 동래 상공을 지나고 있답니다.”
“알았네. 그럼 우리 위치도 바로 알려 줘.”
“네.”
오랜만에 치르는 실전이라 그런지, 제201대대장 박상진의 음성이 살짝 떨려 나왔다.
“제4전비 김해 비행장에서 상황 전파. 30분 후, 제110대대가 이륙해 약속된 해상으로 향할 거랍니다.”
“30분? 그 정도면 얼추 시간이 들어맞겠군.”
벌써 동이 트기 시작한 모양인지,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륙 이후 지금까지 폭격수는 지도에 온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그가 보고 있는 지도에는 목표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대한제국에 포섭당한 일본군 포로 출신 첩자들이 수집한 정보와 정찰비행을 통해 확인된 사항들이었다. 지도에 그려진 표식은 군 관련 시설인데, 그중에서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방공 포대였다.
“제203대대가 곧 목표 지점 상공에 도착한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공중과 해상 모두 깨끗하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럼 육지만 두들기면 되는 거네?”
박상진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대원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전공을 세우는 것보다 안전하게 작전을 마치는 게 더 중요했다.
지금쯤 북쪽의 제203비행대대는 대마도 북부 지방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윽고 목표에서 약 35㎞ 떨어진 해상에 이르자, 제110전투비행대대가 합류했다. 이 열여섯 대의 보라매 전투기의 임무는 바로 제201폭격비행대대를 호위하는 일이었다.
그간 전투비행단 편제에 다소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큰 임무를 앞두고 전략적 중요도가 큰 전투비행단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였다. 먼저 각 대대에 하나씩 배치된 참수리―1 폭격기 편대를 다시 하나로 모아 비행단별로 폭격비행대대를 하나씩 새로 편성했다. 그래서 총 열두 대로 편성된 폭격비행대대가 비행단마다 하나씩 생겨났다.
그리고 그에 더해 전투기 대대를 두 개 더 늘려 각 비행단마다 전투비행대대 네 개와 폭격비행대대 한 개, 이렇게 모두 합해 다섯 개의 비행대대에 총 76대의 공군기를 각 비행단이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아홉 개의 전투비행단 중에 제5전투비행단까지 이런 편제가 이뤄진 상태였다.
김해에 있는 제4전비 소속 전투기가 제주에서 이륙한 제201폭격비행대대의 호위를 맡은 건 거리 문제 때문이었다. 김해 비행장에서 대마도 남부 지역 상공까지 거리는 겨우 115㎞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제주의 경우 250㎞가 넘어 작전 지속 시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자 폭격기들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폭격수 준비!”
폭격수는 그의 호출에 응답을 한 뒤, 조준기로 눈을 돌렸다.
대마도는 평야 지대가 거의 없고 산지투성이라 해안가 마을에 주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의 상륙을 저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군 역시 상륙이 가능한 해안, 특히 어항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방공 포대도 그랬다.
꿀꺽!
폭격수가 매우 긴장한 모양이다. 자칫해서 민간인 거주 구역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편대 단위로 짝을 이뤄 대마도 남부 지방 중에서 서부 해안에 위치한 요충지 네 곳을 향해 갈라져 나아갔다.
네 곳은 최남단의 요라 촌[與良村]의 영역 중 후세의 츠츠[豆酘] 지역―이즈하라 정 츠츠[厳原町豆酘]―부터 시작해 그 북쪽의 사스 촌[佐須村]의 구네하마[久根浜]와 고모다[小茂田], 아렌[阿連] 지역이었다.
네 곳 모두 중간 크기의 어항이 자리한 지역이기 때문에 소수의 일본 수비대 병력이 붙어 있었다. 박상진 대대장과 제1편대가 맡은 지역은 중간 부분에 있는, 고모다란 곳이었다.
박상진은 고도를 더욱 내려 정밀 폭격 동작으로 들어갔다.
“하하! 이놈들, 아직도 준비가 안 되었나 보네?”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 즈음이라 일본군 수비대는 제 위치에 들어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병사들이 개미처럼 이리저리 달리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폭탄 창 개방!”
그의 명령에 따라 폭탄 창이 개방되고, 폭격수는 조준 절차에 들어갔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먼저 방공 포대를 노렸다. 뒤를 따르고 있는 폭격기 중 한 대는 군 주둔 시설을 맡았는데, 그들도 지금 폭격 절차에 들어갔을 것이다.
폭격수가 여러 손잡이들 중 하나를 당기자 폭탄 창의 우측 열에 매달려 있던 한 줄의 폭탄들이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공군은 폭탄을 아끼려 줄마다 별도로 투하하는 장치를 만들어 폭격기에 달았다. 물론 한꺼번에 폭탄을 투하하는 장치도 있어 필요 시 활용할 수 있었다.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꽤 고도를 낮춘 상태라 폭탄들이 자유낙하 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꽝! 꽈광! 꽝!
폭격수는 육안으로 폭격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명중했습니다.”
“와아아! 대단하네!”
항법사가 환호하며 폭격수를 칭찬했다. 이제 걱정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사이, 다른 폭격기들도 각자가 맡은 목표를 향해 줄줄이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작은 어촌이라 그런지, 두 대의 폭격기로 한 차례만 폭격해도 충분했다. 전투기들도 그 뒤를 이어 기관총으로 살아남은 적병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박상진은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뒤, 다른 폭격기들을 이끌고 다시 동쪽으로, 대마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즈하라[嚴原]를 향해 나아갔다. 남은 폭탄을 그곳에 쏟아부을 심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