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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제8장 흥안 유전(2)



첫 번째 유전 지대로 개발이 예정된 구역은 북만주선 철도 노선을 중심에 두고, 남북으로 약 20㎞, 동서로 15㎞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의 땅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 구역 내에 유정들과 임시 저유 시설, 직원 주택, 편의 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주진성은 시추 공사 현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문득 김순정 과장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느 정도 깊이에서 유전층에 도달할 것 같아?”

“글쎄요. 데이터가 없어서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죠.”

김순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은 유정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보니 시추공을 뚫는 일 자체가 바로 생산 정[Production Well]을 설치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로 그간 시추하는 곳마다 어김없이 석유가 솟구쳐 나왔다.

하지만 천공 깊이에 대한 것은 이들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각 유전 지대에 분포하고 있는 유정들의 평균 깊이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

“천 미터쯤 되려나? 그러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대경 유전의 시발점이 된 송기삼정은 1,357∼1,382m 깊이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흥안 지역은 약 1,000m 깊이에서 유전층에 도달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략 천오백 이하라 보고 예산을 짜서 작업해야죠. 부족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후후, 그게 현명한 일이지. 더 일찍 나오면 좋긴 하겠다만.”

그래서 석유공사 사람들은 약 1,500m 이하에 석유층이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이 정도 깊이면 개발하기에 꽤 좋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남쪽 철도는 어디까지 부설되었다고 했지?”

“경아선 말씀인가요?”

“응, 경아선.”

경아선 또한 기존 철도 노선의 명칭을 정리하면서 새로 붙인 이름인데, 예전의 경장선과 장치선, 아치선이 사실상 한 줄로 이어져 있어 이를 경아선이라 지칭한 것이다.

즉, 서울을 기점으로 장춘, 하라(합랍모도), 하안―기존 백도눌성의 송화강 건너편 지역―등의 송화강 서안 지역을 거친 후, 눈강 강변을 따라 도아(洮兒), 다내(多耐), 대뢰(大賚), 앙아기 및 치치가르를 지나 흑룡강 연안 국경 지역인 아이훈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현재 경아선은 두 구역에서 동시에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나는 장춘에서 북상하는 구간이고, 또 하나는 치치가르에서 아이훈으로 향하는 구간이었다. 그러므로 주진성이 말한 남쪽 철도는 장춘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구간을 말하는 것이다.

“하안을 넘어 초평 근교까지 이르렀다고 들었습니다.”

초평(草坪)은 후세 중국의 대안시(大安市) 중심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눈강 서쪽의 강변 지역이었다.

“벌써 거기까지 깔렸다고?”

대한석유공사 사람들은 초평이란 곳을 주목했다. 이 지역 주변에도 유전이 존재하는데다 이곳과 흥안, 두 지역을 잇는 가상의 선을 그으면, 그 선을 따라 앞으로 개발할 유전들이 줄줄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세 대경 유전에서 처음 석유가 나온 송기삼정 지역 또한 두 지역의 중간 지점에 자리해 있다. 심지어 송화강 동편의 백도군―기존의 백도눌성을 줄여 부르기로 함―에도 역시 유전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이 유전들을 개발하려면 경안선 철도의 초평에서 흥안에 이르는, 새로운 철도 노선이 필요했다. 아직 철도 노선 부설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석유공사 사람들은 이 노선에 흥초선이란 가명을 붙이고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겼다. 그래야 차기 개발 계획의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흥초선이 부설되고, 그 구간에 있는 유전들마저 다 개발되어야 광의의 흥안 유전 지대 개발이 비로소 마무리되는 거지. 이곳 흥안이야 첫 단추에 불과한 거고.”

“하하하, 물론이죠.”

“이번에 돌아가면 철도청 사람을 만나 졸라야겠어. 지금 여기저기 철도 놓을 곳이 많겠지만, 흥초선 구간도 서둘러 달라고.”

“잘 먹힐 것 같은데요? 초평에서 흥안에 이르는 지역도 모두 경작이 가능한 땅이지 않습니까? 실제 농민 이주지로 예정되어 있고요. 그러니 그 노선을 만들어 놓으면 더 수월하게 농민을 유치할 수 있을 겁니다. 초평을 그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로 개발하고.”

실제로 초평은 송강주 서남부 지방의 중심 상공업 도시로, 그 주변은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는 지역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특히 근교에서 양돈업을 많이 장려하기로 했는데, 이 지역에서 사료로 쓸 옥수수나 콩이 많이 생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맞아. 그러니까 농수산부나 내부 사람들과 협력해서 압력을 넣어야겠어. 후후후!”

“반드시 들어줄 겁니다. 두 부처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방치해 두면 누가 가져가기라도 할 것처럼 유전 개발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아니, 최소한 철도를 깔아 두고 자주 오가며 확인하고픈 욕망에 휩싸인 듯했다. 그 정도로 대한석유공사 사람들은 석유에 대한 심리적 결핍감이 심한 편이었다.



* * *



주진성과 김순정은 시추 공사 현장 부근의 흥안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약 8㎞를 이동해 부흥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500미터 정도 걸어가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시추 현장과 달리 수많은 노역자들이 대지에 달라붙어 길을 닦거나 땅 고르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건설기계도 대거 동원되어 사람들과 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호수 이름이 뭐였더라?”

“부흥호라 부르기로 했답니다.”

“부흥? 왠지 이름에 성의가 없어 보이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죠. 만주 땅이니, 어떤 이름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죠. 거의 다 이름 없는 땅이라.”

이들이 화제로 삼고 있는 호수는 후세 중국인에 의해 조가둔남포(趙家屯南泡)라는 이름이 붙게 될 호수였다. 이 호수는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둥그런 모양이고, 지름의 길이는 대략 2.4㎞였다. 사람들이 붙어 공사를 벌이고 있는 곳은 이 호수의 동북과 동남쪽 연안 지역이었다.

이 호수와 북만주선 철도 사이에 놓인 지역이 바로 공업단지로 예정된 곳이었다.

“저쪽, 철도 가까운 곳이 화력발전소와 정유 공장이 들어설 곳입니다. 석탄 저장 시설도 그렇고요.”

김순정은 손을 들어 호수 북쪽 지역을 가리켰다.

철도를 통해 석탄을 운반해 와야 해서 석탄 저장소와 화력발전소 부지는 철도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정유 공장은 그 옆, 호수 동북쪽에 자리했다.

흥안 지역에 공급할 석탄은 치치가르 이북 지역과 저 멀리 아이훈 주변에서 생산될 석탄을 활용하기로 했다.

“아이훈 쪽은 어떻대?”

전체 계획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 주진성은 석탄이나 철도 같은 단어가 언급되자 궁금한 점을 물었다.

“모르겐을 훨씬 전에 넘어섰고, 아이훈을 약 50㎞ 정도 앞두고 있는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모르겐[墨爾根]은 치치가르와 아이훈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리고 모르겐에서 아이훈까지 약 210㎞ 거리에 있으므로 경아선 중 치치가르 이북 구간의 부설 공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는 셈이었다.

“오호, 거의 다 끝났네?”

“아무래도 남부 구간보다 북부 구간의 개통이 시급한 형편이라…….”

“그렇지. 군부나 우리 광무부가 모두 조바심을 내고 있는 곳이니, 그럼 석탄 수급 과제도 곧 해결되겠군.”

“그렇습니다. 우리보다 그쪽이 먼저 준비될 것 같군요. 철도 덕분에. 그쪽이 아니라도 저쪽 하크오모 쪽도 있으니까.”

군부나 광무부가 경아선 철도의 부설 문제로 조바심을 내는 데는 서로 비슷한 이유가 있었다. 보급로 문제로 인해 아이훈 이북의 흑룡강 국경 지대에 아직 병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몇몇 군사 거점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무정부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르 공화국의 러시아 인들이 국경을 무단으로 넘어온 다음, 곳곳에 스며들어 몰래 금을 캐기도 하고, 심지어 원주민을 상대로 약탈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지역을 맡은 군 병력은 육군 제3군단 소속 부대였다. 총 네 개 사단으로 구성된 제3군단은 대흥주 외에 연서주와 동몽골주, 송강주도 맡고 있어 각 주마다 사단 하나 정도만 배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흥주는 면적이 너무 넓고 국경선이 길어 1개 사단 병력만으로는 국경을 수비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빠르게 병력을 이동시키고 보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보급만 원활하다면 무장 순검 병력도 역내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형편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광무부도 마찬가지였다. 내륙 영토 중에 가장 먼 곳에 있는 오지이긴 하나 대흥안령 산지나 흑룡강 연안 지역은 자원의 보고라 할 만한 곳이었다. 또 러시아인들의 금 잠채 행위에 대한 보고가 거듭 들어오자 개발을 서두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은 강제 노역자들을 대거 활용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무리해 보이는 사업이라도 오히려 착수하고 보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부역자 죄수들 중 5년 노역형을 선고받은 자들의 수가 가장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투입할 수 있는 노역자 수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아이훈까지 철도 부설 공사를 마친 후에도 흑룡강을 따라 계속 철도를 부설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럼 원유 저유 시설이 들어설 곳은 이쪽이지?”

이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원유 저유 시설이 들어설 자리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생산된 석유 제품을 보관할 저유 시설은 조금 더 남쪽에 있죠.”

주진성은 원통 모양의 원유 저유 시설이 빽빽이 들어설 미래의 모습을 속으로 그려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겠지. 타 지역의 개발을 위해서라도.”

“맞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 여건상 더 크게 만드는 것도 어렵습니다.”

석유제품 저유 시설보다 더 남쪽에 있는 부지는 석유화학공장들이 들어설 곳이었다.

“부흥호 남쪽 대지는 비워 두기로 했지?”

“네. 아직 손도 대지 않고 있죠.”

호수 남쪽 연안을 비워 둔 이유는 석유화학단지의 확장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파이프라인 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겁니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네. 아무래도 차후 과제라.”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공상부는 대한석유공사 측에 하르빈 지역에도 석유화학 플랜트를 건설하자고 제안해 왔다.

대흥 지역의 원유 생산량이 앞으로 크게 늘어나게 되면 흥안에 건설된 석유화학 플랜트 시설만으로 원유 생산분을 감당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러므로 수자원이 풍부한 송화강을 끼고 있어 공업용수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인구도 훨씬 많은 하르빈에 플랜트를 하나 더 짓는 게 효율적이란 논리였다.

물론 석유공사 측도 동의했다. 그 제안의 논리도 합리적인데다 하르빈 서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조주군(肇州郡)에도 유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조주 중심지의 위치는 미래 시대와 달리 하르빈에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는데, 이곳 북쪽 지역에 유전 지대가 존재했다.

기록을 보면 미래 중국의 조주현(肇州縣) 관내 여러 유전들의 매장량의 합은 1억 640만 톤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5대 천연가스전으로 손꼽히는 가스전도 보유하고 있어 조주 지역에 대한 개발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처럼 하르빈에 석유화학 플랜트를 건설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원유의 운반 수단으로 파이프라인을 선택, 북만주선 철도를 따라 부설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공사 현장 점검이 끝나자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주진성 국장은 출장 온 김에 하르빈 플랜트가 들어설 부지를 선정하는 일도 처리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