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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제8장 흥안 유전(1)
어디를 향하든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광활한 초원 지대. 저지대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온갖 형태의 습지는 물론, 큰 호수들이 곳곳에 박혀 있고, 그 사이사이에 온통 푸른 초원과 숲이 펼쳐져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은 원래 이 땅의 주인인 몽골계 유목민들만 오가던 한적한 땅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 대흥주의 흥안 지역은 송화강 이북에서 가장 빠르게 변모하는 곳이 되었다.
남한주 출신 농민들이 대거 들어와 곳곳에서 터를 잡기 시작한 점도 그 이유의 하나로 꼽을 수 있겠지만, 대한제국의 일대 역사적 과업 중 하나인 흥안 유전 개발이 본격화된 게 더 큰 원인이었다.
이 한적한 초원 습지는 이제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기계와 수많은 사람들로 뒤덮였다. 땅을 다지고 도로를 내는 일이 이미 끝나 가고 있어 이곳의 목가적인 풍광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중앙정부의 담당관들과 각종 공사에서 파견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도 아예 이곳으로 들어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협의하며 개발을 진척시켜 나갔다.
현재 이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건 치수 문제였다.
“참나, 이렇게 호수들이 많은데 물이 문제라니.”
그 문제를 놓고 한참 동안 논의하던 농수산부 개간사업국의 장민규 과장은 한탄조로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그거야 쓰기 시작하면 금방 고갈될 텐데요. 물 들어올 데도, 빠질 데도 없고, 더구나 호수 중에 염호도 있고.”
도시계획을 맡고 있는 건설부 관리도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상당히 많은 웅덩이와 호수들이 약간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긴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흥안 지역을 흐르는 큰 물줄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저 사람들은 신났다고 땅에 구멍만 뚫고 있네요. 기초 환경이 이렇게 엉망이건만.”
장민규는 천막 밖으로 보이는 굴착 공사 현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음과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뒤섞여 상당히 시끄러웠다.
“하하하, 저쪽이나 우리나 할 일이 태산인 거 하나는 분명하죠. 여기서 얼마나 많은 시추공을 뚫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며 툴툴거리더라고요.”
“그렇지. 정말 감도 안 잡힐 거예요. 여기가 어떤 곳인데.”
농경지나 농민 거주지는 유전 지대 바깥에 조성되고 있었다. 건설 당국은 미래의 흥안군 지역 중에서 유정이 집중 분포하는 지역―후세의 대경시 사르투 구[薩爾圖區]와 홍강구(紅崗區) 북부―이나 공업단지와 동쪽의 도심지가 들어설 용봉구(龍鳳區) 구역을 피해 농민 정착지를 마련했다. 특히 흥안군 동남쪽에 인접한 안다 군―원래 안달(安達)인데, 몽골어 원 발음으로 바뀜―지역에 농민 이주자들을 집중 유치했다.
이제 흥안군 지역 외곽에 조성된 농경지는 물론, 앞으로 엄청난 수의 인구를 수용할 도심 예정지로 물을 공급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게 이 두 부처 소속 관리들에게 떨어진 과제였다.
그렇다고 당장 농민들이 쓸 물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작은 담수 웅덩이나 늪을 찾은 뒤, 그곳들을 인공적인 물길로 연결해 마을 공용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곳과 연결되는 관개수로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수는 우물을 파서 해결했다. 확실히 빼어난 농사 기술을 갖고 있는 민족이라 그런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이런 일들을 척척 알아서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이주 농민 가구가 아직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이주민이 더 들어오고 농토가 넓어지면 더 많은 농업용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도시 구역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가 형성되기 전에 상하수도 시스템부터 시급히 구축해야 했다.
“결국 수로를 내야 한다니.”
“어차피 이미 결론이 난 얘기입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장민규 과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았다. 도래인 출신인 두 사람은 미래와 지형적 조건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다른 해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자신들이 들고 온 지도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메인 수로의 위치와 상수원으로 쓸 거대한 저수지 위치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정부는 흥안 북쪽의 태평하에 주목했다. 태평하의 원 이름은 쌍양하(雙陽河)였다. 태평하는 흥안군 동북 쪽의 먼 산간 지역에서 발원해 서남 방향으로 흐르다 흥안군의 서북 방향에 있는 늪지대를 만나서 강줄기가 소멸되는 강이다. 즉, 상류에 지류는 있으나 강 자체는 어느 강의 지류도 아닌, 고립된 물줄기인 것이다.
“대수로 제1공구 공사는 태평하에서 여기까지 물줄기를 끌어오는 일이죠.”
“어휴, 그 구간 길이만 해도 100㎞가 넘네요?”
이렇게 끌어온 물은 농지와 도시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가둬 두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생활용수로 활용하게 된다.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2공구에 비하면.”
물을 끌어와서 썼으면 당연히 오폐수 처리 과정을 거쳐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문제는 흘러나갈 물줄기 또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흥안 남쪽에 산재하는 여러 크고 작은 호수들을 연결하는 수로를 파서 배수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 여러 호수들을 거친 끝에 흥안군에서 흘러나간 물은 결국 송화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이 공사 구간 또한 약 150㎞에 달하는 거리였다. 이 모든 공사가 끝나면 태평하는 송화강의 지류로 거듭나는 셈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이네요.”
“뭐, 흥안 유전이 아니더라도 이 지역의 농지를 개발하려면 필수적인 일이니 어쩔 수 없죠.”
흥안 지역이 안고 있는 이런 물 문제 때문에 요하 하류 지역에 있는 반산 유전 지대부터 개발하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이곳의 농지를 개간하고 농민을 이주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농수산부와 내부는 흥안 유전의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차피 수로를 내는 일을 병행해야 유전도 개발하고 농민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민규는 수로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대수로가 흘러가며 움푹 파인 지형을 만나면 자연스레 호수가 만들어질 겁니다. 그러면 그대로 좋은 일이죠. 그 지역의 수자원이 풍부해지니까요. 필요하면 준설해서 더 많은 물을 저수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겠네요.”
“자, 그러면 공사 구간을 더 잘게 나누는 일을 해 보죠. 그래서 각 구간 별로 동시에 공사에 들어가면 한결 공기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럽시다.”
정부가 주저함 없이 이런 대규모 공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건 당연히 부역자 죄수들의 존재 때문이다. 또 투입할 수 있는 건설기계의 수가 부쩍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거의 무료로 쓸 수 있는 수만 명의 인력과 기계의 힘을 조합하면 이곳에 석유화학 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치수 문제를 충분히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벌써 대략 오천의 죄수가 작년부터 선발대로 들어와 도시의 터를 닦는 일이나 공사에 참여할 사람들의 임시 주거지를 만드는 일을 수행해 왔다.
* * *
대한제국의 두 번째 석유 생산 시설과 석유화학 플랜트가 작년 말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휘발하 유역의 해룡성 지역에 들어선 ‘해룡석유화학단지’는 화정특별주 연길에 있는 ‘연길석유화학단지’와 규모가 비슷했다.
이곳 또한 석유 매장량이 많지 않아 시설을 처음부터 작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전 지대가 경산선 철도 노선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휘발하 강물을 공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먼저 개발에 착수했던 것이다.
경산선 철도는 예전의 훈봉선 철도 구간을 포함한 노선인데, 서울과 산해관을 잇는 노선이라 경산선이라 개칭했다. 서울을 기점으로 해룡성, 무순, 봉천을 지나 동하(東河)―반산 부근의 예전 구방자역이 있던 곳으로, 하북선의 분기점―와 금주를 거친 후, 청의 국경인 산해관까지 연결된 노선이었다. 현재 산해관역이 국경 역으로 설치되었는데, 이 지역은 이제 각산군(角山郡)이 되었다.
해룡성 석유화학 단지 일이 마무리되자 대한제국은 이제 이곳 흥안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세 번째 유전 지대 개발에 나섰다.
착암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엔지니어들은 진흙 범벅이 된 차림새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시추 구멍에서 올라오는 진흙은 화학약품과 물을 섞어 만든 특수 진흙이었다. 이 진흙물을 시추공에 계속 분사하면 드릴 부분의 마찰열도 식혀 주고, 깨어진 암석 덩어리도 지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대한석유공사 사장 주진성은 시추 공사 장면을 지켜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공상부에서 석유화학 부문의 행정을 담당하던 그는 광무부 산하 대한석유공사가 출범하자 자리를 옮겨 사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대한석유공사는 유전 개발은 물론, 정유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일까지 총괄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석유화학 공업 분야에 대한 정책은 여전히 공상부가 관할했다.
주진성은 어제부터 이곳에 와서 현장을 직접 살피고 있었다.
“두 유전 지대를 개발한 경험이 있어 그런지 확실히 솜씨가 늘었네?”
“진짜 그렇죠? 해룡성 유전 개발이 꽤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기술 인력의 숙련도는 물론, 그 수도 대폭 늘었잖아요?”
현장 책임을 맡고 있는 김순정 과장도 착착 일손이 맞아 돌아가는 걸 보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주진성과 김순정은 이 분야의 몇 안 되는 도래인 출신 전문가였다.
현재 이곳에서 첫 번째 시추공을 뚫는 작업이 시작된 이후, 순차적으로 작업 공구를 두 개 더 늘렸는데, 모두 근처에 몰려 있었다. 미래의 대경 유전 지역에 셀 수 없이 많은 유정이 자리 잡은 걸 감안하면, 유정 세 개는 너무나 적은 숫자였다.
“너무 부족해. 시추 기계와 전문 인력의 수를 대폭 늘려야 되는데…….”
“지금 화물열차에 실려 계속 오고 있으니, 조만간 몇 개 더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러시아 규격의 광궤 철도 구간에 대한 표준궤 조정 작업 공사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대상 노선은 우수리선과 북만주선, 하려선(하르빈―여순) 및 봉동선(봉천―동래) 중 구 안봉선 구간이었다.
또 계획대로 치치가르 남서부 훌라르 역에 광궤와 표준궤 열차를 갈아타는 환승 구역 설치 공사와 물류 센터 공사도 끝나 벌써 영업을 시작했다.
아울러 훌라르에서 훌룬 공화국 앞의 국경 지역인 하크오모에 이르는 구간은 광궤와 표준궤 복합 구간이 되었다. 즉, 러시아에서 넘어오는 열차는 훌라르에서 환승해야 하지만, 국내 열차는 국경까지 자유롭게 오가게 한 것이다.
이 표준궤 조정 공사를 마친 덕분에 이제 광궤와 표준궤가 교차되는 구역에서 화물을 옮겨 싣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이곳까지 장비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다.
“파이프나 다른 자재 수급은 문제없고?”
“그렇습니다. 안산 제철소에서 끊임없이 보내 주고 있습니다.”
“하하, 안산 제철소에 대한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야. 자재가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른 게 엊그제 같은데.”
유전과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담당한 그도 자재 수급에 대한 압박을 크게 받았다. 철강 생산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제철소 담당자에게 싫은 소리를 해 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상이 청진 제철소 준공과 함께 한결 완화되었는데, 안산 제철소마저 조업을 시작하자 자재 수급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올해 초에 완공된 안산 제철소는 벌써 연서주와 송강주, 대흥주, 동몽골주 일대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장 이곳 흥안 유전의 개발 과정에도 큰 보탬이 되었고, 여순 조선소 또한 활발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대련 해군 조선소의 함선 건조 속도도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대한자동차공업공사와 공작기계제작공사, 철도차량제작공사, 건설기계제조공사, 농기계제작공사 등 철강재를 많이 소비하는 공기업들이 제2공장을 봉천이나 안산 인근에 개설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준비가 끝난 업체는 곧 실행에 들어갈 거라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노동력 확보 문제 때문에 망설였다. 가급적 이 회사 직원들을 한국인, 즉 한인으로 뽑으라는 정부 방침 때문이었다. 그래야 이민족 수가 아직 많은 연서주에 한인 인구를 더 많이 유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디를 향하든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광활한 초원 지대. 저지대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온갖 형태의 습지는 물론, 큰 호수들이 곳곳에 박혀 있고, 그 사이사이에 온통 푸른 초원과 숲이 펼쳐져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은 원래 이 땅의 주인인 몽골계 유목민들만 오가던 한적한 땅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 대흥주의 흥안 지역은 송화강 이북에서 가장 빠르게 변모하는 곳이 되었다.
남한주 출신 농민들이 대거 들어와 곳곳에서 터를 잡기 시작한 점도 그 이유의 하나로 꼽을 수 있겠지만, 대한제국의 일대 역사적 과업 중 하나인 흥안 유전 개발이 본격화된 게 더 큰 원인이었다.
이 한적한 초원 습지는 이제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기계와 수많은 사람들로 뒤덮였다. 땅을 다지고 도로를 내는 일이 이미 끝나 가고 있어 이곳의 목가적인 풍광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중앙정부의 담당관들과 각종 공사에서 파견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도 아예 이곳으로 들어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협의하며 개발을 진척시켜 나갔다.
현재 이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건 치수 문제였다.
“참나, 이렇게 호수들이 많은데 물이 문제라니.”
그 문제를 놓고 한참 동안 논의하던 농수산부 개간사업국의 장민규 과장은 한탄조로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그거야 쓰기 시작하면 금방 고갈될 텐데요. 물 들어올 데도, 빠질 데도 없고, 더구나 호수 중에 염호도 있고.”
도시계획을 맡고 있는 건설부 관리도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상당히 많은 웅덩이와 호수들이 약간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긴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흥안 지역을 흐르는 큰 물줄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저 사람들은 신났다고 땅에 구멍만 뚫고 있네요. 기초 환경이 이렇게 엉망이건만.”
장민규는 천막 밖으로 보이는 굴착 공사 현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음과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뒤섞여 상당히 시끄러웠다.
“하하하, 저쪽이나 우리나 할 일이 태산인 거 하나는 분명하죠. 여기서 얼마나 많은 시추공을 뚫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며 툴툴거리더라고요.”
“그렇지. 정말 감도 안 잡힐 거예요. 여기가 어떤 곳인데.”
농경지나 농민 거주지는 유전 지대 바깥에 조성되고 있었다. 건설 당국은 미래의 흥안군 지역 중에서 유정이 집중 분포하는 지역―후세의 대경시 사르투 구[薩爾圖區]와 홍강구(紅崗區) 북부―이나 공업단지와 동쪽의 도심지가 들어설 용봉구(龍鳳區) 구역을 피해 농민 정착지를 마련했다. 특히 흥안군 동남쪽에 인접한 안다 군―원래 안달(安達)인데, 몽골어 원 발음으로 바뀜―지역에 농민 이주자들을 집중 유치했다.
이제 흥안군 지역 외곽에 조성된 농경지는 물론, 앞으로 엄청난 수의 인구를 수용할 도심 예정지로 물을 공급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게 이 두 부처 소속 관리들에게 떨어진 과제였다.
그렇다고 당장 농민들이 쓸 물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작은 담수 웅덩이나 늪을 찾은 뒤, 그곳들을 인공적인 물길로 연결해 마을 공용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곳과 연결되는 관개수로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수는 우물을 파서 해결했다. 확실히 빼어난 농사 기술을 갖고 있는 민족이라 그런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이런 일들을 척척 알아서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이주 농민 가구가 아직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이주민이 더 들어오고 농토가 넓어지면 더 많은 농업용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도시 구역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가 형성되기 전에 상하수도 시스템부터 시급히 구축해야 했다.
“결국 수로를 내야 한다니.”
“어차피 이미 결론이 난 얘기입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장민규 과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았다. 도래인 출신인 두 사람은 미래와 지형적 조건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다른 해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자신들이 들고 온 지도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메인 수로의 위치와 상수원으로 쓸 거대한 저수지 위치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정부는 흥안 북쪽의 태평하에 주목했다. 태평하의 원 이름은 쌍양하(雙陽河)였다. 태평하는 흥안군 동북 쪽의 먼 산간 지역에서 발원해 서남 방향으로 흐르다 흥안군의 서북 방향에 있는 늪지대를 만나서 강줄기가 소멸되는 강이다. 즉, 상류에 지류는 있으나 강 자체는 어느 강의 지류도 아닌, 고립된 물줄기인 것이다.
“대수로 제1공구 공사는 태평하에서 여기까지 물줄기를 끌어오는 일이죠.”
“어휴, 그 구간 길이만 해도 100㎞가 넘네요?”
이렇게 끌어온 물은 농지와 도시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가둬 두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생활용수로 활용하게 된다.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2공구에 비하면.”
물을 끌어와서 썼으면 당연히 오폐수 처리 과정을 거쳐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문제는 흘러나갈 물줄기 또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흥안 남쪽에 산재하는 여러 크고 작은 호수들을 연결하는 수로를 파서 배수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 여러 호수들을 거친 끝에 흥안군에서 흘러나간 물은 결국 송화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이 공사 구간 또한 약 150㎞에 달하는 거리였다. 이 모든 공사가 끝나면 태평하는 송화강의 지류로 거듭나는 셈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이네요.”
“뭐, 흥안 유전이 아니더라도 이 지역의 농지를 개발하려면 필수적인 일이니 어쩔 수 없죠.”
흥안 지역이 안고 있는 이런 물 문제 때문에 요하 하류 지역에 있는 반산 유전 지대부터 개발하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이곳의 농지를 개간하고 농민을 이주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농수산부와 내부는 흥안 유전의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차피 수로를 내는 일을 병행해야 유전도 개발하고 농민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민규는 수로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대수로가 흘러가며 움푹 파인 지형을 만나면 자연스레 호수가 만들어질 겁니다. 그러면 그대로 좋은 일이죠. 그 지역의 수자원이 풍부해지니까요. 필요하면 준설해서 더 많은 물을 저수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겠네요.”
“자, 그러면 공사 구간을 더 잘게 나누는 일을 해 보죠. 그래서 각 구간 별로 동시에 공사에 들어가면 한결 공기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럽시다.”
정부가 주저함 없이 이런 대규모 공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건 당연히 부역자 죄수들의 존재 때문이다. 또 투입할 수 있는 건설기계의 수가 부쩍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거의 무료로 쓸 수 있는 수만 명의 인력과 기계의 힘을 조합하면 이곳에 석유화학 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치수 문제를 충분히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벌써 대략 오천의 죄수가 작년부터 선발대로 들어와 도시의 터를 닦는 일이나 공사에 참여할 사람들의 임시 주거지를 만드는 일을 수행해 왔다.
* * *
대한제국의 두 번째 석유 생산 시설과 석유화학 플랜트가 작년 말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휘발하 유역의 해룡성 지역에 들어선 ‘해룡석유화학단지’는 화정특별주 연길에 있는 ‘연길석유화학단지’와 규모가 비슷했다.
이곳 또한 석유 매장량이 많지 않아 시설을 처음부터 작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전 지대가 경산선 철도 노선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휘발하 강물을 공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먼저 개발에 착수했던 것이다.
경산선 철도는 예전의 훈봉선 철도 구간을 포함한 노선인데, 서울과 산해관을 잇는 노선이라 경산선이라 개칭했다. 서울을 기점으로 해룡성, 무순, 봉천을 지나 동하(東河)―반산 부근의 예전 구방자역이 있던 곳으로, 하북선의 분기점―와 금주를 거친 후, 청의 국경인 산해관까지 연결된 노선이었다. 현재 산해관역이 국경 역으로 설치되었는데, 이 지역은 이제 각산군(角山郡)이 되었다.
해룡성 석유화학 단지 일이 마무리되자 대한제국은 이제 이곳 흥안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세 번째 유전 지대 개발에 나섰다.
착암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엔지니어들은 진흙 범벅이 된 차림새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시추 구멍에서 올라오는 진흙은 화학약품과 물을 섞어 만든 특수 진흙이었다. 이 진흙물을 시추공에 계속 분사하면 드릴 부분의 마찰열도 식혀 주고, 깨어진 암석 덩어리도 지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대한석유공사 사장 주진성은 시추 공사 장면을 지켜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공상부에서 석유화학 부문의 행정을 담당하던 그는 광무부 산하 대한석유공사가 출범하자 자리를 옮겨 사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대한석유공사는 유전 개발은 물론, 정유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일까지 총괄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석유화학 공업 분야에 대한 정책은 여전히 공상부가 관할했다.
주진성은 어제부터 이곳에 와서 현장을 직접 살피고 있었다.
“두 유전 지대를 개발한 경험이 있어 그런지 확실히 솜씨가 늘었네?”
“진짜 그렇죠? 해룡성 유전 개발이 꽤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기술 인력의 숙련도는 물론, 그 수도 대폭 늘었잖아요?”
현장 책임을 맡고 있는 김순정 과장도 착착 일손이 맞아 돌아가는 걸 보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주진성과 김순정은 이 분야의 몇 안 되는 도래인 출신 전문가였다.
현재 이곳에서 첫 번째 시추공을 뚫는 작업이 시작된 이후, 순차적으로 작업 공구를 두 개 더 늘렸는데, 모두 근처에 몰려 있었다. 미래의 대경 유전 지역에 셀 수 없이 많은 유정이 자리 잡은 걸 감안하면, 유정 세 개는 너무나 적은 숫자였다.
“너무 부족해. 시추 기계와 전문 인력의 수를 대폭 늘려야 되는데…….”
“지금 화물열차에 실려 계속 오고 있으니, 조만간 몇 개 더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러시아 규격의 광궤 철도 구간에 대한 표준궤 조정 작업 공사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대상 노선은 우수리선과 북만주선, 하려선(하르빈―여순) 및 봉동선(봉천―동래) 중 구 안봉선 구간이었다.
또 계획대로 치치가르 남서부 훌라르 역에 광궤와 표준궤 열차를 갈아타는 환승 구역 설치 공사와 물류 센터 공사도 끝나 벌써 영업을 시작했다.
아울러 훌라르에서 훌룬 공화국 앞의 국경 지역인 하크오모에 이르는 구간은 광궤와 표준궤 복합 구간이 되었다. 즉, 러시아에서 넘어오는 열차는 훌라르에서 환승해야 하지만, 국내 열차는 국경까지 자유롭게 오가게 한 것이다.
이 표준궤 조정 공사를 마친 덕분에 이제 광궤와 표준궤가 교차되는 구역에서 화물을 옮겨 싣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이곳까지 장비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다.
“파이프나 다른 자재 수급은 문제없고?”
“그렇습니다. 안산 제철소에서 끊임없이 보내 주고 있습니다.”
“하하, 안산 제철소에 대한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야. 자재가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른 게 엊그제 같은데.”
유전과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담당한 그도 자재 수급에 대한 압박을 크게 받았다. 철강 생산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제철소 담당자에게 싫은 소리를 해 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상이 청진 제철소 준공과 함께 한결 완화되었는데, 안산 제철소마저 조업을 시작하자 자재 수급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올해 초에 완공된 안산 제철소는 벌써 연서주와 송강주, 대흥주, 동몽골주 일대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장 이곳 흥안 유전의 개발 과정에도 큰 보탬이 되었고, 여순 조선소 또한 활발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대련 해군 조선소의 함선 건조 속도도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대한자동차공업공사와 공작기계제작공사, 철도차량제작공사, 건설기계제조공사, 농기계제작공사 등 철강재를 많이 소비하는 공기업들이 제2공장을 봉천이나 안산 인근에 개설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준비가 끝난 업체는 곧 실행에 들어갈 거라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노동력 확보 문제 때문에 망설였다. 가급적 이 회사 직원들을 한국인, 즉 한인으로 뽑으라는 정부 방침 때문이었다. 그래야 이민족 수가 아직 많은 연서주에 한인 인구를 더 많이 유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