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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제7장 수산업 진흥(3)



기차는 속도를 줄이더니, 어느 마을 앞에 자리한 역에서 멈췄다. 그러자 열차에 탄 승객 중 몇 명이 큰 보퉁이 하나씩을 메고 하차하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 예진에 다녀온 모양이다.

“아, 이곳은?”

“혹시 우리?”

“하하하, 그렇습니다. 이주 농민들이 만든 마을입니다. 영신동이라고 하죠.”

“영신? 새로운 것을 맞는다고? 허허, 이곳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오. 다들 단단히 마음먹었나 보오. 마을에 그런 이름을 붙이다니.”

하구 늪지대를 갓 벗어나자 나타난 마을이었다. 이들이 이 마을의 정체에 대해 단박에 알아본 건, 익숙한 옷차림을 한 이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주민이 정착했단 말이오? 개인 자격으로 이주한 어민들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농민들이 이주했다는 건 금시초문… 오, 그럼 예진에서 본 우리 동족들이 다 저들?”

신치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교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청자가 많지 않으니 잘 모르셨겠지요. 농민들은 작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기야, 작년에 왔으니 벌써 번듯하게 집까지 지었겠지. 그런데 집 모양새가 서양식 같소만? 그 흔한 초가도 없고.”

“초가 형태로는 겨울의 이 지역 폭설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저렇게 눈이 흘러내도록 지붕을 기와로 덮거나 아예 간도의 신식 건물처럼 양회로 튼튼히 지어야 합니다. 또 사람이 자주 올라가 눈을 쓸어내릴 수 있어야 하고요.”

민가의 모양새를 보니, 정부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역력했다. 이주민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집 짓는 걸 도와준 듯했다.

“그런데 여긴 어떤 작물이 많이 나오?”

“밀과 보리, 감자를 주로 심죠. 북쪽에선 밀이나 보리농사가 어려워 대신 귀리와 호밀을 심을 거라 들었습니다. 감자는 괜찮다고 하네요. 또 앞으로 젖소와 육우를 많이 키울 거라던데, 아직 종우 역할을 할 소들이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겨울에 먹일 건초를 충분히 비축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 만들어져야 들여올 수 있답니다.”

“음, 나도 얼핏 들은 것 같소. 여기나 북해도, 캄차카에서는 소한테 줄 작물을 따로 심는다고.”

“동몽골 일부 지역에서도 그런다고 들었소.”

세 사람은 그래도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들이라 얻어들은 풍월이 꽤 많은 듯했다.

“작년 내내 저들은 정부가 배급해 주는 식량으로 살았습니다. 정착지를 건설하는 와중에도 일부 농경지를 개간해서 수확한 게 있어 올해는 좀 형편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구휼 식량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작년 막바지에 괴수처럼 생긴 커다란 농기계들을 들여와 한숨 돌렸답니다. 이 기계로 작년부터 경작지를 크게 늘려 놓아 내년 정도면 식량 걱정할 일은 없을 거랍니다. 소 키우는 일도 시작할 거고.”

“각 가구에 돌아간 농토는 넓은 편이오?”

“하하하, 넓다마다요. 저 들판을 보세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 땅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정부는 소유 면적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차츰 인구도 늘어날 테고, 다음에 들어올 사람도 생각해야 하니까.”

열차는 다시 북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 중간에 영신동과 비슷한 마을이 드문드문 나타났고, 마을마다 어김없이 기차역이 설치되어 있어 승객들에게 잠시 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마을 이름도 만주 지방의 개척촌 명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흥동’, ‘청수동’, ‘천평동’, ‘명덕동’ 등 간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이름들이었다.

드디어 열차는 풍주역에 도착했다. 예진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약 40㎞로, 그리 멀지 않은 여정이었다.

풍주는 일본 측에 의해 계획도시로 만들어져 그런지, 시가지 형태가 바둑판 모양이고, 각 구역마다 일본식 목조 주택이 들어찼다. 러시아식 석조 건물도 간간이 섞여 있어 이 지역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일행은 풍주 시내 동편에 있는 총독부 건물로 들어섰다. 이 건물은 본디 일본의 가라후토 청[樺太廳]이었다. 그리고 건물 동편 산기슭에 러시아인을 고용해 다시 석조 건물로 새로운 청사를 신축 중인데, 이 신청사가 완공되면 현청사는 풍주시청으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재 사할린부의 총독을 맡고 있는 이는 육군 제12사단장인 곽명섭 소장이었다. 그는 인사차 방문한 손님들을 활짝 웃으며 맞아 주었다.

그의 최우선 임무는 사할린의 방위와 치안 유지이나, 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이주민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그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손님들을 대할 때마다 정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그는 일단 질문부터 받았다. 사할린에 대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광흥진 철도는 언제 공사가 끝납니까?”

역시 신치용이 먼저 나서서 질문했다. 광흥진은 현재 연결된 육로가 없어 오로지 뱃길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광흥진 항이 부동항이란 사실이다. 처음 대한제국 관료들은 항구가 결빙되거나 그게 아니라도 유빙을 이유로 동절기에 선박 운항을 자제시켰다. 그러나 곧 광흥진이 부동항이란 걸 알게 되었고, 시험 운항을 해 본 후 동절기 운항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사할린 동부 해역이나 광흥진보다 한참 남쪽에 있는, 북해도 동북부의 오호츠크 해역이 오히려 얼어붙거나 유빙이 형성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래서 겨울철에 캄차카로 가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마진항이 있는 쓰가루 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이처럼 주변이 온통 산지인데다 변변한 평야 지대 하나 없는 사할린 서부 해안 지역에 그나마 사시사철 쓸 수 있는 항구가 있다 보니, 원 계획보다 일찍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양쪽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완료될 겁니다.”

“그럼 서부 해안을 따라 철도를 놓을 계획은 없소?”

“당연히 있죠. 혹시 벼루진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금시초문이외다.”

“방포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죠. 역시 해안가에.”

그곳 주변의 해안가 지형 중에 가파른 곳이 많아 바닷가 벼랑을 뜻하는 순 한국어 ‘벼루’란 말을 써서 ‘벼루진’이라 이름했는데, 방포 남쪽 약 13㎞ 지점에 있는 해안가 마을이다. 러시아 지명은 고르노자보츠크(Gornozavodsk)이고, 일본식 이름은 나이호로[內幌]였다.

“벼루진? 그럼 거기에도 항구가 들어섭니까?”

“당연히 항구도 만들어야죠. 어항 용도로.”

“오호라, 어항으로!”

“방포보다 남쪽에 있다니!”

사실 웅기수산은 처음에 광흥진보다 훨씬 남쪽에 자리한 방포(네빌스크)를 원했지만, 방포는 군항 구역까지 있다 보니 워낙 비좁아 개인 자격의 어민만 소수 이주할 수 있었다.

신치용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광흥진에서 약 60㎞나 떨어져 있어 분명 어로 허가를 새로 내줄 가능성이 크고, 광흥진보다 한반도와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여기 사할린은 워낙 어획량이 많으니 말이오. 평생 고기만 잡아 온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는 게 제일 기쁜 일이랍니다.”

신치용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할린의 어획량이 상상 이상이란 것은 웅기수산 사람들을 통해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럼 연해주 쪽은 어때요?”

“거기도 마찬가지올시다. 그래서 우리 조합원들은 하절기에 주로 연해주에서 고기를 잡고, 겨울이 되면 다시 돌아와 웅기 앞바다에서 조업하고 있답니다.”

“고기가 그렇게 잘 잡혀요?”

“그럼요. 함경도 어부들이 대거 연해주로 건너간 이유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요.”

“하하, 다행이네요.”

곽명섭은 미소를 머금은 채 얘기를 이어 갔다.

“사실 벼루진은 탄광이 들어설 곳입니다.”

“아, 탄광까지…….”

“거기서 캐낸 석탄을 서부 해안 지역에 공급하는 거죠. 화력발전소도 방포에 만들고요. 그럼 광흥진의 전력 사정도 한결 좋아지겠죠.”

“아, 그러면 그 벼루진이란 곳부터 철도를 깔 거라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거기부터 시작해 광흥진까지 연결할 겁니다. 대략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갈 거랍니다.”

“오! 좋군요, 여러모로. 그럼 광흥진을 통해 풍주로 넘어갈 수도 있을 테고.”

“그렇습니다.”

“그럼 풍주나 예진 쪽 전기는 어떻게…….”

예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어랑수산의 박진홍은 그간 묵혀 둔 질문을 꺼냈다.

“지금 이곳의 북쪽에 있는 나이바란 곳에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거기서 생산되는 전기로 풍주는 물론, 예진까지 쓸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나이바란 곳에 발전소를 짓는다는 말은 근처에 탄광이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상승 탄광이 지금 개발 중에 있죠. 그래서 광산과 나이바를 연결하는 광산 철도를 부설하고 있습니다. 그게 완공될 때 즈음이면 여기서 북쪽으로 뻗어 나간 철도도 나이바와 연결될 겁니다.”

“상승 탄광?”

“일본군에 승전한 기념으로 지은 명칭입니다. 계속 이기겠다고.”

곽명섭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상승 탄광의 원 일본식 이름은 나이부치[內淵]인데, 러시아 측은 이곳을 브이코프(Bykov)라 명명했다. 이 탄광은 한때 남사할린 지역에서 가장 많은 석탄 생산량을 자랑할 정도로 큰 탄광이었다.

문제는 이곳이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한국인 강제 징용 노동자가 끌려와 희생된 곳이란 점이었다. 그래서 도래인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비극을 추모하기 위해 ‘상승’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사실 북해도의 라온달(고노마이) 금광과 미란(무로란) 제철소, 유파(유바리)를 비롯한 여러 탄광들도 그런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사할린의 다른 탄광들도 그랬다.

“더 질문하실 게 있습니까?”

“그럼 두부키 항은 언제 개항이 됩니까?”

“그것도 내년 정도겠죠. 작은 어항이 들어설 곳이라 항구 만드는 일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랑수산 박진홍 대표의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그는 곽명섭을 보고 그간 속 깊이 품고 있던 생각을 풀어놓았다.

“우리 어랑수산은 예진항에 관심이 많습니다. 만일 우리 회사가 예진항에 진출한다면, 두부키 항의 어업권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까?”

그는 사할린 동부 해안, 즉 오호츠크해 방면으로도 진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또 예진과 두부키가 철도로 연결되면 두 지역을 오가기도 편리해진다.

“하하, 좋습니다.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예진은 예전부터 어업으로 유명한 곳이죠. 그리고 조만간 예진 동쪽에 있는 대호진이란 곳도 개발될 예정이니, 그곳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겁니다.”

대호진(大湖津)―러시아 지명은 오제르스코예(Ozerskoye)이고, 일본 지명은 나가하마[長浜]―은 예진의 동쪽, 약 30㎞ 떨어진 곳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북해도 군정청은 주변에 큰 호수가 두 개나 있어 ‘대호’라 이름했는데, 이 두 호수 중에 동쪽에 있는 호수는 그 폭이 10㎞에 달할 정도로 컸다. 이곳 역시 어촌으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고맙습니다. 돌아가서 우리 조합원들과 상의해 결론을 내겠소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웅기수산의 신 대표도 나섰다.

“우린 벼루진에 관심이 있습니다. 광흥진에 지사가 있으니 관리하기도 수월할 듯하여…….”

“하하하! 고맙습니다, 관심을 보여 주셔서.”

그러나 두 사람과 달리 성진어업사는 여전히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곽명섭은 그를 보며 넌지시 한마디를 건넸다.

“서울에서 연락이 왔어요. 세 분께서 한번 북주열도와 캄차카에 다녀가시라고. 원하시면 배편을 준비해 놓겠답니다.”

“오, 북주열도와 캄차카?”

두 지역은 세 회사 모두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곽명섭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