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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제7장 수산업 진흥(1)



캄차카의 지신항.

동북해운공사 소속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 네 척이 지신항에 도착해 부지런히 화물을 하역하며 승객을 하선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군함 이외의 선단 네 척이 동시에 입항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동북해운공사는 사할린과 북해도, 쿠릴, 캄차카 지역의 해운을 담당하기 위해 공상부가 창립한 국영 기업이다. 이 회사가 운용하는 선박들은 독일 현지에서 구입한 것이거나 세창양행으로부터 꾸준히 사들인 중고 선박이었다.

현재 한반도를 기준으로 볼 때, 동부 해역의 물류와 해운은 이 회사가 대부분 맡았고, 서부 해역은 대개 세창양행의 몫이었다. 대한제국 측은 아직 보유 선박이 부족해 서부 해역에 투입할 여력이 없는데다 한국 국적의 선박으로 남중국해 해상으로 진출하는 건 꿈도 못 꾸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동방양행의 자회사인 동방해운이 보유하고 있는 두 척의 선박만이 한반도 내해와 산동반도 이북 항로를 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한제국은 힘이 닿는 대로 계속해서 화물선이나 여객선을 사들이는 중이다. 아울러 해군 전용 조선소가 군함의 건조를 담당하게 되면서 대한조선공사도 다소 여력이 생기게 되었다. 조직의 7할가량을 해군조선소 측에 나눠 주고 남은 힘을 민간 선박으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연서주의 여순 조선소에서 화물선 건조를 시작했고, 남한주의 연일항(후세의 포항)과 황해도의 구미포항 근처에 조성되고 있는 신항에도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대거 들어오자 해병 제8사단장 경태호 소장도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항구로 나갔다.

여객선에서 제일 먼저 내린 농수산부 농업지도국의 이진룡(李鎭龍) 과장과 내부의 백규삼 주사가 경태호 소장에게 다가와 인사말을 건넸다.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통신을 통해 여러 사안을 두고 계속 소통한 지라 서로 오랜 지기처럼 대했다.

“만리타향에서 일하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자심하셨소.”

“하하, 이진룡 과장님이야말로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백 주사님도.”

“허허, 우리야 유람을 떠나온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이진룡은 황해도 유림 의병 출신 인사이다. 처음 황해도 군정청의 일을 도우며 간도 세력과 화해한 그와 그의 동지들은 이후 각자 자신의 기호와 뜻에 맞는 길을 찾아 나섰다.

한학 실력을 살리기 위해 고전 연구소에 들어가거나 일정 절차를 밟은 후 하급 관리가 된 이들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신학문을 익혀야 출세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깨달은 그는 전문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이진룡은 동지들 몇 명과 함께 농업이 근본이라는 유교적 신념에 따라 농업학교에 입학, 농업 전문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는 2년간 수학한 끝에 평양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중앙정부의 농수산부 관리로 발탁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진룡은 시선을 옮겨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병사들 표정이 밝네요?”

“그럴 수밖에요. 산 설고 물 선 곳에서 오랜만에 동포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허허, 정말 나 같아도 그럴 것 같군요.”

병사들은 배에서 내린 민간인들을 성의를 다해 맞이했다. 다들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민간인 이주자들이 가져온 짐 보따리를 빼앗아 들다시피 해서 천막으로 만든 임시 숙소로 안내해 줬다. 호들갑스런 해병대원들의 행태로 부두 전체가 떠들썩했다.

경태호는 물론, 병사들도 이주민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합참에서 통보받은 건 이주자 농민들이 도착할 테니, 내부 관리의 뜻에 따라 지정된 지역까지 잘 안내해 주란 것 정도였다. 만약 저들이 이미 처형당한 갑급이나 특급 부역자들의 가족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이외에 또 한 무리의 민간인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남자 죄수들이었다.

“저자들은 광산에서 노역할 자들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개발될 금광에서.”

내부 관리 백규삼 주사의 대답이었다.

이제 자신들 차례가 되었는지, 죄수들을 따라 나선 가족들도 여객선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곳이 너무나 멀고 척박한 곳이다 보니 모든 죄수 가족이 이주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형량이 무겁지 않은 가족들은 북해도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며 형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죄수 가족들의 거주지는 광산 배후 지역으로 정해졌는데, 이들에게는 농토도 충분히 제공될 예정이었다. 가족들이 이런 혜택 외에도 이주를 결심한 이유는 휴식일에 죄수와 같이 지낼 수 있게 해 준다는 조건 때문이라고 했다.

“금광 개발 대상지라면… 역시 로드니부터 손대는 건가요? 세 곳 중에서?”

경태호는 어느 곳이 개발 대상지인지 환하게 꿰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지금 일본군 포로들이 광산과 연결되는 도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캄차카는 활화산 지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광물자원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니켈, 구리와 같은 금속 물질은 물론, 금, 은, 백금 등의 귀금속 자원, 석류, 루비, 자수정, 사파이어, 청색 흑요석, 옥, 마노 등의 보석들도 많이 산출된다고 한다. 물론 석탄과 석유 자원도 그랬다.

“맞습니다. 로드니죠.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로드니란 호칭은 러시아 지명인 로그니코바(Rodnikova)에서 유래된 것으로, 지신 남동쪽에 직선거리로 약 50㎞ 지점에 자리한 곳이다. 하지만 지신에서 출발할 경우, 거대한 아바차 만으로 인해 일단 북쪽으로 한참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에 다시 남하해야 했다. 그러므로 직선거리보다 실제 거리가 훨씬 더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정부는 아바차만 연안 지역 중 지신 맞은편, 미래 시대의 빌류친스크(Vilyuchinsk)란 곳에 또 하나의 항만을 조성하기로 했다.

“하기야 거기로 향하는 길이 열려야 반대편 서부 해안 지역으로도 나갈 수 있겠죠.”

반대편 서부 해안 지역은 오호츠크해 연안 지역으로, 반도 서남부 지방이다.

“그뿐 아니라 그 남쪽에 있는 아사차 금광도 개발이 가능해지죠.”

백규삼 또한 이주민 인솔자이기에 광산 예정지의 위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사차(Asacha) 금광은 로드니 금광에서 남쪽으로 약 48㎞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정부는 아사차 금광의 개발을 위해 로드니에서 도로를 연장해 건설함은 물론, 가까운 연안 지역에 보급항도 건설하기로 했다. 그래서 훗날 항구와 광산을 철도로 연결해 주면 이 항만 지구가 배후 도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로드니와 아사차 금광의 중간 지대에 매우 중요한 시설이 하나 들어설 예정인데, 그건 바로 지열발전소였다. 무트노프스키(Mutnovsky) 화산 지대에 있는 간헐천 지역으로, 지열발전소를 건설하기에 모든 조건이 최적화된 곳이었다.

실제로 훗날 러시아의 유일한 지열발전소가 이곳에 지어져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즉 지신시에도 전력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금광상 지역은 내륙 비행장이 들어설 중평 지역과 가까운, 캄차카 중앙산맥 내의 아긴스코예(Aginskoe)란 곳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그곳을 중심으로 산맥을 따라 수많은 금광상이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교통 여건의 문제로 후보지 세 곳 중 제일 나중에 개발될 곳이었다.

이 세 곳 중 로드니 금광과 아사차 금광은 정부가 직접 개발하기로 했고, 캄차카 중앙산맥의 광역 금광상은 여러 민간 기업들에 나눠 줄 예정이었다.

“응? 저건… 와! 트랙터 아닙니까?”

부두의 대형 크레인에 의해 하역되고 있는 트랙터들을 보고 경태호는 깜짝 놀랐다.

“농민들의 빠른 정착을 돕기 위해 우리 농수산부에서 제공하는 겁니다. 물자를 실어 나를 차량도 충분히 지원될 거라고 하더군요.”

“와! 트랙터까지 들어왔으니, 사람들도 금방 자리 잡겠네요. 먼저 들어온 건설기계들이 도로는 물론, 마을 터와 농토까지 깨끗하게 닦아 놨으니, 금상첨화네요.”

“그래요? 잘됐군요. 그럼 저들은 집을 짓는 일과 트랙터로 농지를 개간하는 일만 하면 되겠네요.”

이진룡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들어온 농민들의 이주 대상 지역은 현재 자보이코(Zavoiko)―후세의 엘리조보(Elizovo)―라 불리는 러시아 정착촌인데, 대한제국으로 이 지역이 귀속되자 거주민들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폐촌이 된 곳이었다.

지신에서 북쪽으로 약 15㎞ 거리에 위치해 있고, 훗날 지신의 위성도시처럼 기능할 곳이었다. 또한 북방 내륙 지방과 서남쪽의 금광 개발 예정지로 나가는 도로가 분기되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가 될 지역이기도 했다.

“정말 정부가 좋은 결정을 내렸네요. 지신 북쪽 지역을 탐사해 보니 아바차 강을 따라 평원 지대가 꽤 넓게 펼쳐져 있더군요. 이런 넓은 땅을 개간하려면 인력만으로 어림없죠.”

대한건설기계제조공사는 트랙터와 경운기, 콤바인 등을 생산하는 농기계 부문 생산 라인을 분리 독립시켰다. 그래서 대한농기계제작공사가 탄생했는데, 이 업체 역시 훈연 산업 지구 내에 자리했다. 이 업체는 조금씩 생산량을 늘려 농기계의 농가 보급률을 높여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캄차카나 사할린처럼 농촌 인구가 태부족한 곳은 처음 정착촌이 만들어질 때부터 초기분에 한해 무료로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캄차카에 트랙터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지역이 첫 번째 이주 대상지가 된 거죠. 이제 다음 배로 올 사람들은 자보이코의 북쪽 평원 지대에 배치될 겁니다.”

내부의 백규삼 주사의 말이었다.

자보이코 북쪽은 코랴키(Koryaki)와 후세에 라즈돌니(Razdolnyy)란 마을이 들어설 지역이었다. 코랴키는 ‘코랴크’ 족이 거주하던 곳이라 그렇게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쪽 도로는 어디까지 건설되었소?”

이진룡의 질문에 경태호가 지도를 품에서 꺼내 보여 줬다.

“여기까지 갔어요. 가날리라고.”

가날리(Ganaly)는 1888년에 설립된, 인구수가 1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러시아 정착촌이다. 이 마을은 캄차카의 양대 산맥인 중앙산맥과 동부산맥이 거의 맞붙기 직전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이 좁은 구역을 빠져나가면 반도 중앙의 넓은 평야 지대와 마주하게 된다.

“음, 코랴키라는 곳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군요. 하긴, 북쪽이 지름길이긴 하나 험산준령으로 가로막혔으니 서쪽으로 돌아가야지.”

“직선거리로 100킬로미터 정도 되니까 꽤 많이 진척된 셈이죠. 그리고 남쪽은 아바차 만 반대편 연안 지역까지 도로가 뚫렸습니다.”

“그렇다면 최소 저 바다를 둘러싼 주변 평야 지대에 정착지를 만들 준비가 다 끝난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경태호의 대답에 이진룡은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그럼 이주민 모집하는 걸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소이다.”

“그렇긴 한데, 엄지진 지역에도 좀…….”

“알겠습니다. 그쪽은 수산진흥국에 연통을 넣어 어민 조합 쪽으로 알아보라 전하겠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어민 조합 중에 화정주의 웅기항 어민 조합처럼 엄청나게 큰 조합들은 벌써 대형 수산업 전문 회사로 성장했어요. 웅기수산이라고.”

“웅기수산이요?”

경태호는 처음 듣는 얘기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캄차카에 배치되어 근무하는 사이,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