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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제6장 새로운 전략(2)
창동진 조선소는 박경훈의 예상보다 규모가 컸다. 자연 상태의 만의 크기가 작아 시설도 작게 들어서리라 예상했는데, 만 전체를 이용해 조선소와 항구 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규모를 키운 모양이다. 또한 전기도 들어왔는데, 창해의 화력발전소에서 끌어온 것이라 했다.
박경훈은 조선소 시설을 둘러보며 간부들과 얘기를 나눴다.
“각 함대 사령부에 이 사실을 알려 줘야지?”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할 제2함대가 바빠지겠군.”
“되레 다들 기뻐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
해군 작전사령관 최장호 중장이 웃으며 말했다.
해군 제2함대 사령부는 남한주의 진해항에 있는데, 이 항구와 더불어 부산항도 기항지로 활용했다. 현재 부산항이 있는 동래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이기 때문에 시로 승격되어 동래시가 되었고, ‘부산’이란 지명은 오로지 항구로 한정되어 있었다.
해군 간부들은 착공식에 앞서 조선소 간부로부터 조선소와 건조될 함선에 대한 설명부터 들었다.
“현재 함선의 건조에 들어갈 철강재는 청진 제철소에서, 중간재와 부품 등은 훈연 산업 지구에 있는 여러 업체로부터 공급받게 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하동 제철소가 준공될 예정이라, 철강 제품 공급처가 그곳으로 바뀔 겁니다. 아울러 이곳 창동진 북쪽에 인접해 있는 로마 군 지역에 우리 조선소에 부품과 중간재를 공급할 산업 단지가 조성될 예정입니다.”
하동 제철소는 흥개호 동북쪽, 하동군 지역에 건설 중인 중형 제철소로 몇 달 후 완공될 예정인데, 이곳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은 우수리선과 동해연해주선 철도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다.
“로마 군? 음, 아까 오면서 보니 창동진 전전 역이 로마 역이던데…….”
박경훈은 이내 그 역 명칭을 기억해 냈다.
“그렇습니다. 그 역을 중심으로 산업 단지가 들어서게 됩니다.”
로마 군은 ‘로마노프카(Romanovka)란 러시아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로마노프카는 1895년에 형성된 인구 500명 정도의 작은 정착촌이다. 이 마을 사람들 중 아무르 공화국으로 이주하지 않고 남은 이들은 100여 명에 불과한데, 모두가 한국인으로 귀화한 상태였다.
그래서 정부는 이곳을 중심으로 가마 강 유역을 따라 산업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가마 강이란 이름 역시 ‘가마유노바(Gamayunova)’란 원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조선소가 이 지역에 큰 영향을 주겠군요.”
“그럼요. 앞으로 이미 개발이 시작된 창주부터 시작해 이곳 창동진까지, 반원형의 띠 모양으로 산업 지구가 만들어지게 될 겁니다.”
아무르 만 해안을 따라 이곳으로 이동하다 보면 창주 다음에 치무헤(Tsimuhe)라는 한국인 마을이 나온다. 러시아 정부에 의해 슈코토보(Shkotovo)로 바뀌게 되는데, 이 마을의 원주민은 한국인이었다. 연해주 정부는 이 마을이 포함된 지역을 ‘치무 군’이라 이름했다. 치무 군 다음 지역이 로마 군이고, 그다음으로 오는 게 바로 창동진군이었다.
창동진의 북부에도 페트로프카(Petrovka)라는, 인구 800명가량의 러시아와 한국인의 혼성 정착촌이 있는데, 이곳은 배도면으로 이름이 바뀌고 기차역도 설치되었다. 이곳 주민 중에서 상당수가 현재 조선소 직원으로 고용되어 기능 교육을 이수하고 있었다.
조선소 간부는 이 조선소에서 건조될 함선의 모형을 가져와 해군 간부들에게 보여 주었다.
“지난번에 보신 것보다 훨씬 큰 모형입니다.”
“와! 멋지군. 하하하!”
박경훈 참모총장은 모형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아주 세련되게 빠졌네요. 요즘 돌아다니는 배들과 다르게.”
“함포까지 달아 놓으니 그럴듯하군.”
해군 간부들도 희색이 만면한 채 마치 제 자식 자랑하듯 한마디씩 떠벌렸다. 이들이 흥분하는 건 이 배가 약 1만 톤급의 최신형 중순양함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해군이 직접 건조하고 있는 모든 신형 함선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배인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놈들로 함대를 꽉꽉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
박경훈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운 심정이 절로 배어 나왔다. 이제 막 초도함이 착공되는 시점에서 보자면, 갈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두 척씩 동시에 건조할 계획이니, 그렇게 될 날도 머지않을 겁니다.”
조선소 사장은 그런 박경훈을 애써 위로해 주었다.
창동진 조선소는 첫 번째 과업으로 이 1만 톤급 중순양함 네 척을 건조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함선들과 다른 보조 함선들로 제3함대 산하 제9전대를 구성할 계획이었다.
현재 다른 해군 조선소 중 나진 조선소는 제2함대 제7전대에 배치될 두 척의 4천 톤급 경순양함과 200톤급의 신형 고속정을, 흥남 조선소는 잠수함과 소해함 등 주로 성분 전대에 편성될 함정과 300톤급의 소형 구축함을 건조하고 있다.
대련 조선소는 제1함대 제8전대를 구성할 4천 톤급 경순양함 네 척을 건조 중에 있는데, 구형 함선의 개조 작업도 이 조선소의 몫이었다. 이들 조선소에서 작업 중이거나 건조 예정인 함선들이 모두 실전 배치되면 이제 명실공이 세 개 함대 체제가 완성되는 셈이었다.
* * *
화룡에 있는 대한항공공업공사로 출장을 간 제4해군 항공 전단 소속 전투 조종사들이 뇌격기를 몰고 성진의 사령부로 속속들이 귀환했다. 이들은 제102대대 조종사들로, 이번에 새로 제작되어 나온 열여섯 대의 뇌격기를 인수해 온 것이었다.
제101대대장 김경천은 격납고 쪽으로 나가 동료들을 맞아 주었다.
“축하하네. 드디어 자네의 애기가 생겼군. 기분이 어떤가?”
“허허허,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나. 정말 화룡에서 첫 시험비행을 했을 때의 기분이란 훈련기를 탈 때와 비교할 수도 없지. 내 전용 기체니까.”
김경천의 해군무관학교 동기생이자 제102대대장으로 선임된 오동진(吳東振, 1889년 평북 의주 출생) 참위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실제 역사 속에서 그는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정의부 독립군을 이끌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과를 거둬 김좌진, 김동삼 등과 더불어 3대 맹장으로 꼽힐 정도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하지만 1920년대 후반, 일제에 사로잡혀 공주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안타깝게도 옥에서 순국했다고 한다.
“그럼 3대대 기체는 언제나 나온다고 하나?”
“한 달 뒤라고 하네.”
“오호, 약조한 기한보다 빨리 나오네?”
“항공공업공사는 지금부터 한 달간 다른 공군기의 생산을 중단하고 뇌격기만 손댈 거라고 하네. 그러니 가능한 거지. 이렇게 공장 하나로 항공기 물량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워 두 번째 공장을 동간도 청계란 곳에 세우고 있다던데? 소형 비행장 시설도 만들고 있고.”
“나도 그런 얘길 들었어. 그 공장까지 세워지면 항공기 생산 속도가 배나 빨라질 거라고 하더군.”
청계군(靑溪郡)은 훈춘하 상류에 자리한 지역으로, 예전에 춘화군(春化郡)이라 불리던 곳이다.
훈춘하의 하류에 자리한 훈춘시에서 이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그다음에 오는 지역이 마달군(馬達郡)이다. ‘마적달’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예전의 훈춘군을 동간도 도청 측이 행정구역 정리 작업을 하며 바꾼 것이었다.
청계군은 이 마달군 동북쪽에 자리한 꽤 궁벽한 곳인데, 대한항공공사는 보안 유지를 위해 일부러 이곳을 제2공장 부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제2공장이 건설되기 전, 일단 훈춘시를 기점으로 청계까지 연결되는 지선 철도가 부설되었다. 아울러 남쪽으로 예전 청국과 러시아 간의 국경지대였던 산지를 관통하는, 짧은 철도 노선도 부설하고 있는 중이다.
이 철도를 놓는 이유는 연해주 남부의 부포군―후세의 슬라비얀카―의 서부 평야 지대에 산업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기 제조에 들어갈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 공장들도 이곳에 입주시키기로 했다.
그 외에도 금속 제련, 전기제품, 목재 펄프 관련 업체도 들어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부포항을 확장하고, 이 항구를 활용하던 어민들을 위해 동부 반도 지형에 새로운 어항을 건설해 주기로 했다.
부포군은 관내 지역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브루스 강과 포이마 강에서 유래된 지명이었다.
대한항공공업공사 측은 청계 공장이 준공되면 그곳에서 전투기와 뇌격기를 생산하고, 기존 화룡 공장은 폭격기 시리즈와 새로 개발하고 있는 수송기 모델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공군본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어. 그래서 우리 1대대는 내일 제주도로 이동할 예정이네.”
김경천의 얘기에 오동진은 금시초문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제주도로? 갑자기 왜?”
“곧 새로운 작전이 시작된다고 하네. 그래서 거기 주둔하고 있는 공군 부대와 한동안 합동훈련을 해야 한다던데…….”
현재 한반도 남부 지역에 배치된 공군 전투비행단은 모두 두 개로, 제1전비와 제4전비가 바로 그들이었다. 제1전비는 전라남도 제주에 비행단 본부를 두어 전라남도 영암을 보조 기지로 활용하고 있고, 제4전비는 경상남도의 김해를 주 비행장으로, 울산을 보조 기지로 지정했다. 아울러 제10폭격비행단도 경북 개령(김천) 비행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합동훈련을? 허허허, 이거 심상치 않은데? 혹시 그거 아닐까?”
“확실히 그런 것 같지? 정말 큰 싸움이 다시 재개될 모양이야.”
두 사람은 아직 직위가 낮아 군부가 세운 작전 계획의 전모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훈련이 진행된다는 사실에서 곧 일본을 상대로 전투가 재개될 것이라고 유추했다.
“자네들도 김해로 간다는 소문이 돌던데…….”
“뭐? 어휴, 그럼 그렇지. 그래야 맞지. 거, 진즉 알려주지. 잠깐이지만 가슴을 졸였지 않나.”
오동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체를 인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 제외된 건 아닌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하하하, 미안하네. 제주도에 온 신경이 가 있다 보니 내가 무심했군.”
“그런데 솔직히 누군가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군.”
“그건 그렇지. 뇌격기 전투 조종사 신청을 받을 때 교관이 한 말이 생각나는군.”
해군무관학교 2학년을 마쳤을 때, 교관은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생도들에게 뇌격기에 대해 설명하고, 전투 조종사 지원 신청을 받았다. 그는 그때 김경천의 교실에 와서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까지 공군의 전투 조종사 중에서 사상자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이제 낙하산도 개발되어 적기에 피해를 입거나 기체가 고장 나더라도 뛰어내리면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뇌격기는 분명 다를 것이다. 낮은 고도로 적 함선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적함의 대공포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고도가 높지 않아 피격되면 낙하산을 펼 시간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직분이란 뜻이다. 그러니 이 점을 명심하고 잘 생각해서 신청하도록!”
뇌격기에 탑승해서 공격 훈련을 꽤 많이 해 온 김경천은 교관의 말이 사실이란 걸 첫 번째 훈련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고성능 어뢰가 개발됐다는 걸 알고 군사과학 연구소 사람들에게 속으로 얼마나 고마움을 표했는지 모른다.
“그 어뢰가 개발되어 한결 나아지긴 했지.”
김경천은 저고도와 고고도 어뢰 투하 훈련을 모두 마쳤다. 그런데 사실 고고도라 해도 그다지 높지 않아 상대적 고고도라 해야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두 상황이 크게 다른 건, 고고도 쪽의 경우 속도를 크게 줄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하 후에 빠르게 회피기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제주도와 김해에서 작전을 펼치는 게 확실하다면, 대마도부터 노리는 건가?”
오동진은 벌써 다른 쪽으로 생각이 옮아 간 듯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제주도는 조금 멀지 않나?”
오동진의 질문에 김경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름 자신의 추론을 덧붙였다.
“제주도 쪽은 적 함선을 견제할 목적인 것 같은데? 하지만 결국 대마도가 맞을 거네.”
두 사람이 대화에 열중하는 사이, 제102대대에 소속된 모든 기체들이 격납고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비대대 사람들이 기체에 득달같이 달라붙어 기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창동진 조선소는 박경훈의 예상보다 규모가 컸다. 자연 상태의 만의 크기가 작아 시설도 작게 들어서리라 예상했는데, 만 전체를 이용해 조선소와 항구 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규모를 키운 모양이다. 또한 전기도 들어왔는데, 창해의 화력발전소에서 끌어온 것이라 했다.
박경훈은 조선소 시설을 둘러보며 간부들과 얘기를 나눴다.
“각 함대 사령부에 이 사실을 알려 줘야지?”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전달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할 제2함대가 바빠지겠군.”
“되레 다들 기뻐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
해군 작전사령관 최장호 중장이 웃으며 말했다.
해군 제2함대 사령부는 남한주의 진해항에 있는데, 이 항구와 더불어 부산항도 기항지로 활용했다. 현재 부산항이 있는 동래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이기 때문에 시로 승격되어 동래시가 되었고, ‘부산’이란 지명은 오로지 항구로 한정되어 있었다.
해군 간부들은 착공식에 앞서 조선소 간부로부터 조선소와 건조될 함선에 대한 설명부터 들었다.
“현재 함선의 건조에 들어갈 철강재는 청진 제철소에서, 중간재와 부품 등은 훈연 산업 지구에 있는 여러 업체로부터 공급받게 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하동 제철소가 준공될 예정이라, 철강 제품 공급처가 그곳으로 바뀔 겁니다. 아울러 이곳 창동진 북쪽에 인접해 있는 로마 군 지역에 우리 조선소에 부품과 중간재를 공급할 산업 단지가 조성될 예정입니다.”
하동 제철소는 흥개호 동북쪽, 하동군 지역에 건설 중인 중형 제철소로 몇 달 후 완공될 예정인데, 이곳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은 우수리선과 동해연해주선 철도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다.
“로마 군? 음, 아까 오면서 보니 창동진 전전 역이 로마 역이던데…….”
박경훈은 이내 그 역 명칭을 기억해 냈다.
“그렇습니다. 그 역을 중심으로 산업 단지가 들어서게 됩니다.”
로마 군은 ‘로마노프카(Romanovka)란 러시아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로마노프카는 1895년에 형성된 인구 500명 정도의 작은 정착촌이다. 이 마을 사람들 중 아무르 공화국으로 이주하지 않고 남은 이들은 100여 명에 불과한데, 모두가 한국인으로 귀화한 상태였다.
그래서 정부는 이곳을 중심으로 가마 강 유역을 따라 산업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가마 강이란 이름 역시 ‘가마유노바(Gamayunova)’란 원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조선소가 이 지역에 큰 영향을 주겠군요.”
“그럼요. 앞으로 이미 개발이 시작된 창주부터 시작해 이곳 창동진까지, 반원형의 띠 모양으로 산업 지구가 만들어지게 될 겁니다.”
아무르 만 해안을 따라 이곳으로 이동하다 보면 창주 다음에 치무헤(Tsimuhe)라는 한국인 마을이 나온다. 러시아 정부에 의해 슈코토보(Shkotovo)로 바뀌게 되는데, 이 마을의 원주민은 한국인이었다. 연해주 정부는 이 마을이 포함된 지역을 ‘치무 군’이라 이름했다. 치무 군 다음 지역이 로마 군이고, 그다음으로 오는 게 바로 창동진군이었다.
창동진의 북부에도 페트로프카(Petrovka)라는, 인구 800명가량의 러시아와 한국인의 혼성 정착촌이 있는데, 이곳은 배도면으로 이름이 바뀌고 기차역도 설치되었다. 이곳 주민 중에서 상당수가 현재 조선소 직원으로 고용되어 기능 교육을 이수하고 있었다.
조선소 간부는 이 조선소에서 건조될 함선의 모형을 가져와 해군 간부들에게 보여 주었다.
“지난번에 보신 것보다 훨씬 큰 모형입니다.”
“와! 멋지군. 하하하!”
박경훈 참모총장은 모형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아주 세련되게 빠졌네요. 요즘 돌아다니는 배들과 다르게.”
“함포까지 달아 놓으니 그럴듯하군.”
해군 간부들도 희색이 만면한 채 마치 제 자식 자랑하듯 한마디씩 떠벌렸다. 이들이 흥분하는 건 이 배가 약 1만 톤급의 최신형 중순양함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해군이 직접 건조하고 있는 모든 신형 함선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배인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놈들로 함대를 꽉꽉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
박경훈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운 심정이 절로 배어 나왔다. 이제 막 초도함이 착공되는 시점에서 보자면, 갈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두 척씩 동시에 건조할 계획이니, 그렇게 될 날도 머지않을 겁니다.”
조선소 사장은 그런 박경훈을 애써 위로해 주었다.
창동진 조선소는 첫 번째 과업으로 이 1만 톤급 중순양함 네 척을 건조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함선들과 다른 보조 함선들로 제3함대 산하 제9전대를 구성할 계획이었다.
현재 다른 해군 조선소 중 나진 조선소는 제2함대 제7전대에 배치될 두 척의 4천 톤급 경순양함과 200톤급의 신형 고속정을, 흥남 조선소는 잠수함과 소해함 등 주로 성분 전대에 편성될 함정과 300톤급의 소형 구축함을 건조하고 있다.
대련 조선소는 제1함대 제8전대를 구성할 4천 톤급 경순양함 네 척을 건조 중에 있는데, 구형 함선의 개조 작업도 이 조선소의 몫이었다. 이들 조선소에서 작업 중이거나 건조 예정인 함선들이 모두 실전 배치되면 이제 명실공이 세 개 함대 체제가 완성되는 셈이었다.
* * *
화룡에 있는 대한항공공업공사로 출장을 간 제4해군 항공 전단 소속 전투 조종사들이 뇌격기를 몰고 성진의 사령부로 속속들이 귀환했다. 이들은 제102대대 조종사들로, 이번에 새로 제작되어 나온 열여섯 대의 뇌격기를 인수해 온 것이었다.
제101대대장 김경천은 격납고 쪽으로 나가 동료들을 맞아 주었다.
“축하하네. 드디어 자네의 애기가 생겼군. 기분이 어떤가?”
“허허허,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나. 정말 화룡에서 첫 시험비행을 했을 때의 기분이란 훈련기를 탈 때와 비교할 수도 없지. 내 전용 기체니까.”
김경천의 해군무관학교 동기생이자 제102대대장으로 선임된 오동진(吳東振, 1889년 평북 의주 출생) 참위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실제 역사 속에서 그는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정의부 독립군을 이끌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과를 거둬 김좌진, 김동삼 등과 더불어 3대 맹장으로 꼽힐 정도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하지만 1920년대 후반, 일제에 사로잡혀 공주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안타깝게도 옥에서 순국했다고 한다.
“그럼 3대대 기체는 언제나 나온다고 하나?”
“한 달 뒤라고 하네.”
“오호, 약조한 기한보다 빨리 나오네?”
“항공공업공사는 지금부터 한 달간 다른 공군기의 생산을 중단하고 뇌격기만 손댈 거라고 하네. 그러니 가능한 거지. 이렇게 공장 하나로 항공기 물량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워 두 번째 공장을 동간도 청계란 곳에 세우고 있다던데? 소형 비행장 시설도 만들고 있고.”
“나도 그런 얘길 들었어. 그 공장까지 세워지면 항공기 생산 속도가 배나 빨라질 거라고 하더군.”
청계군(靑溪郡)은 훈춘하 상류에 자리한 지역으로, 예전에 춘화군(春化郡)이라 불리던 곳이다.
훈춘하의 하류에 자리한 훈춘시에서 이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그다음에 오는 지역이 마달군(馬達郡)이다. ‘마적달’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예전의 훈춘군을 동간도 도청 측이 행정구역 정리 작업을 하며 바꾼 것이었다.
청계군은 이 마달군 동북쪽에 자리한 꽤 궁벽한 곳인데, 대한항공공사는 보안 유지를 위해 일부러 이곳을 제2공장 부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제2공장이 건설되기 전, 일단 훈춘시를 기점으로 청계까지 연결되는 지선 철도가 부설되었다. 아울러 남쪽으로 예전 청국과 러시아 간의 국경지대였던 산지를 관통하는, 짧은 철도 노선도 부설하고 있는 중이다.
이 철도를 놓는 이유는 연해주 남부의 부포군―후세의 슬라비얀카―의 서부 평야 지대에 산업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기 제조에 들어갈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 공장들도 이곳에 입주시키기로 했다.
그 외에도 금속 제련, 전기제품, 목재 펄프 관련 업체도 들어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부포항을 확장하고, 이 항구를 활용하던 어민들을 위해 동부 반도 지형에 새로운 어항을 건설해 주기로 했다.
부포군은 관내 지역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브루스 강과 포이마 강에서 유래된 지명이었다.
대한항공공업공사 측은 청계 공장이 준공되면 그곳에서 전투기와 뇌격기를 생산하고, 기존 화룡 공장은 폭격기 시리즈와 새로 개발하고 있는 수송기 모델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공군본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어. 그래서 우리 1대대는 내일 제주도로 이동할 예정이네.”
김경천의 얘기에 오동진은 금시초문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제주도로? 갑자기 왜?”
“곧 새로운 작전이 시작된다고 하네. 그래서 거기 주둔하고 있는 공군 부대와 한동안 합동훈련을 해야 한다던데…….”
현재 한반도 남부 지역에 배치된 공군 전투비행단은 모두 두 개로, 제1전비와 제4전비가 바로 그들이었다. 제1전비는 전라남도 제주에 비행단 본부를 두어 전라남도 영암을 보조 기지로 활용하고 있고, 제4전비는 경상남도의 김해를 주 비행장으로, 울산을 보조 기지로 지정했다. 아울러 제10폭격비행단도 경북 개령(김천) 비행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합동훈련을? 허허허, 이거 심상치 않은데? 혹시 그거 아닐까?”
“확실히 그런 것 같지? 정말 큰 싸움이 다시 재개될 모양이야.”
두 사람은 아직 직위가 낮아 군부가 세운 작전 계획의 전모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훈련이 진행된다는 사실에서 곧 일본을 상대로 전투가 재개될 것이라고 유추했다.
“자네들도 김해로 간다는 소문이 돌던데…….”
“뭐? 어휴, 그럼 그렇지. 그래야 맞지. 거, 진즉 알려주지. 잠깐이지만 가슴을 졸였지 않나.”
오동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체를 인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 제외된 건 아닌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하하하, 미안하네. 제주도에 온 신경이 가 있다 보니 내가 무심했군.”
“그런데 솔직히 누군가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군.”
“그건 그렇지. 뇌격기 전투 조종사 신청을 받을 때 교관이 한 말이 생각나는군.”
해군무관학교 2학년을 마쳤을 때, 교관은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생도들에게 뇌격기에 대해 설명하고, 전투 조종사 지원 신청을 받았다. 그는 그때 김경천의 교실에 와서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까지 공군의 전투 조종사 중에서 사상자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이제 낙하산도 개발되어 적기에 피해를 입거나 기체가 고장 나더라도 뛰어내리면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뇌격기는 분명 다를 것이다. 낮은 고도로 적 함선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적함의 대공포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고도가 높지 않아 피격되면 낙하산을 펼 시간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직분이란 뜻이다. 그러니 이 점을 명심하고 잘 생각해서 신청하도록!”
뇌격기에 탑승해서 공격 훈련을 꽤 많이 해 온 김경천은 교관의 말이 사실이란 걸 첫 번째 훈련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고성능 어뢰가 개발됐다는 걸 알고 군사과학 연구소 사람들에게 속으로 얼마나 고마움을 표했는지 모른다.
“그 어뢰가 개발되어 한결 나아지긴 했지.”
김경천은 저고도와 고고도 어뢰 투하 훈련을 모두 마쳤다. 그런데 사실 고고도라 해도 그다지 높지 않아 상대적 고고도라 해야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두 상황이 크게 다른 건, 고고도 쪽의 경우 속도를 크게 줄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하 후에 빠르게 회피기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제주도와 김해에서 작전을 펼치는 게 확실하다면, 대마도부터 노리는 건가?”
오동진은 벌써 다른 쪽으로 생각이 옮아 간 듯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제주도는 조금 멀지 않나?”
오동진의 질문에 김경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름 자신의 추론을 덧붙였다.
“제주도 쪽은 적 함선을 견제할 목적인 것 같은데? 하지만 결국 대마도가 맞을 거네.”
두 사람이 대화에 열중하는 사이, 제102대대에 소속된 모든 기체들이 격납고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비대대 사람들이 기체에 득달같이 달라붙어 기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