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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제6장 새로운 전략(1)



서울의 홀한대로 동편에 자리를 잡은 참정부 청사.

총리대신이 수장으로 있는 이 참정부 청사 내의 국가전략위원회 회의실에서 시급한 국가 대사를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중요한 대외정책이나 국가 전략의 경우, 내각회의에 최종적으로 상정하기에 앞서 안건을 조율하고 수립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전략위원회이다. 예전에 ‘국가전략회의’라 불리던 기구인데, 정부는 이 기구를 개편한 다음, 위원장으로 부총리인 이상설을 임명했다.

이 기구에는 군부를 비롯해 내부, 외부, 탁지부, 대외정보위원회 및 그 산하 기관인 제국정보원과 제국익문사 등의 수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또한 해당 기관의 수장들이 대표성을 부여한 인사들이 수시 임명직 위원으로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일본 해군의 움직임이나 미해군의 책동이 거의 같은 시점에 일어난 걸 볼 때, 전략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양국 모두 지난 2년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죠.”

합참의 추영철 작전본부장이 먼저 군부 측의 의견을 풀어놓았다.

“그럼 왜 현 시국에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고 생각하오?”

그 의견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진 이는 외부대신 이범진(李範晋)이었다. 약 2년 전, 독일에서 돌아와 외부대신으로 임명된 그는 떠나 있는 동안 상전벽해처럼 변한 고국의 현실에 차근차근 적응해 가며 직무에 충실히 임해 왔다.

“특기할 만한 대외 정세의 흐름이 없는 걸로 보아 시국을 고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일본이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건 당연히 정상화 전략의 일환일 겁니다.”

김구 내부대신이 추영철의 발언에 이어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정상화?”

“그렇소이다. 일본 해군은 아국의 공군기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간 함대를 비정상적인 위치에 배치했지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대만이나 오키나와, 도쿄만처럼 우리와 가급적 먼 지역에 피신하듯 틀어박혀 있지 않았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합니다.”

“후후, 그렇군.”

추영철과 이범진 대신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나라가 서로 합심해 움직이고 있는 거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껏 위원들의 발언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이상설(李相卨) 부총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현재 실세 부총리란 평을 들을 정도로 정부와 여권 지지층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모든 도래인 인사들이 전폭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있는데다 한성 출신 고위 관료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렇습니다. 특히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호,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적극적이라니…….”

“일본은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니까요.”

“저도 추 중장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백범도 미국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란 견해를 지지하고 나섰다.

“미국은 아국과 알류산 열도를 나눠 갖고 있어 졸지에 인접국이 된 상황이지요. 또 북방 항로 문제로 꽤 속을 끓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남방이 더 큰 문제로 떠올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국의 군사력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신경이나 썼겠습니까마는, 이제 알게 되었으니 남방에 큰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죠.”

“오, 필리핀을 말하는 것이오?”

이범진도 미국의 고민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렇지.”

“맞아.”

다른 위원들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필리핀이 문제올시다. 우리가 은파부를 차지한데다 중남아 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으니, 파란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필리핀이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백범의 평소 지론이었다. 미국은 대한제국의 입김으로 인해 인도차이나반도의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가 몸살을 앓고 있는 과정을 쭉 지켜봐 왔다. 그러니 자국의 식민지인 필리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문제를 떠안게 된 셈입니다.”

“그렇군. 저들이 긴장하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이상설 부총리 또한 간단히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다.

추영철도 백범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미국이 이번에 캄차카 해역에서 도발을 한 건 우리의 힘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에서 그랬을 겁니다. 실제로 북해도 이북에 배치된 우리 군 전력을 이제 다른 지역의 작전에 투입하기 어려워진 상황이죠. 이걸 노린 것 같습니다.”

대한제국은 여전히 중남아 지역 항로를 보호할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유일한 수단은 독일 국적의 상선, 즉 세창양행의 배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꽤나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모든 군수물자와 병력이 독일 국적의 민간 선박에 실려 이동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군용 화물을 싣고 그 해역을 오가는 독일 국적 상선을 볼 때마다 대만 해역에 배치된 일본 함선은 물론, 남중국해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와 영국, 미국 함선들 역시 앞뒤 안 가리고 공격하고픈 유혹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배를 멈춰 세워 검문이라도 하고 싶었겠죠. 이들은 분명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파악했을 테니까요. 물론 우리가 무서워서 참고 있는 게 아니라 독일 때문에 극도로 인내하고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걸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바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테니까요.”

추영철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는지 단정적인 말투로 얘기했다. 그는 이런 정세 분석 내용을 토대로 그간 군부가 짜 놓은 전략에 대해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의 전력으로 당장 일본을 굴복시키는 건 어렵습니다. 해군 전력도 약하고, 일본의 대비 태세도 잘 갖춰져 있으니까요.”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멀리 나가 있던 대부분의 해군 함선들을 다시 본토 해역으로 불러들였다.

그래서 대한제국 공군기의 공격 범위 밖에 있는 해역은 해군 함선들이 지키고, 규슈와 혼슈 북부, 동해 연안 지대는 항만이나 상륙작전이 가능한 지역의 앞바다에 기뢰를 대거 부설했다. 또 요충지마다 해안포대를 잔뜩 배치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일본 본토를 공격하려면 먼저 해전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일본 쪽보다 남쪽의 우리 해상 운송로를 보호하는 과제가 더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으니까요.”

“해군력의 증강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일본 본토를 노리기보다 일단 남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추영철의 대답을 들은 이상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이다. 마땅히 그래야겠지. 그럼 그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도 세워 두었소?”

“그렇습니다. 내각회의에서 결정이 나면 한 달 뒤부터 단계적으로 실행하게 될 겁니다.”

회의 내내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던 민우는 이 대목에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군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 전략을 준비해 왔다. 즉, 이번 사건과 상관없이 실행할 예정이었다는 뜻이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미해군의 도발로 인해 북해도와 캄차카에 배치된 전력의 일부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저… 그런데요. 전 왠지 미국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민우가 입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오, 그래요? 한번 얘기해 보시게.”

이상설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가장 어렵던 시절에 한성에서 같이 지낸 터라 그는 민우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끝까지 우릴 적대한다는 게 미국의 근본적인 전략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음, 그렇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문제지.”

“동맹 관계이기 때문에 일본 편을 드는 게 당연한 선택이긴 하나, 미국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와 계속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요. 이해득실면에서도 그렇고. 즉, 합리적이지 못한 외교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무슨 이유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래서 일군의 미국 자본가들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미 행정부에 계속 압력을 넣고 있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잖아요? 물론 우리를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걸고 경쟁해야 할 신흥 라이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

“후후, 머리가 복잡할 거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더구나 저들은 현재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관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죠. 태평양 건너편 지역의 정세는 이제 우리로 인해 정리가 끝나 가고 있어 끼어들 곳도 별로 없잖습니까. 고작 분할된 중국 대륙의 내전에 개입해 이득을 취하는 것 정도? 더 이상 식민지를 개척할 곳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죠.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바라는 최선의 상황은…….”

“허허허, 결국 또 필리핀이로군.”

백범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반응했다.

“맞습니다. 지난 가츠라―태프트 밀약도 그런 내용이었으니.”

“그럼 고 위원장은 미국의 움직임을 역으로 대화하자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는 겁니까?”

추영철도 민우의 논리에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일단 미국의 의도에 대해 괄호를 쳐 놓고 보자는 겁니다. 너무 과하고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자는 거죠. 괜히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 입장에서도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건 피하는 게 좋잖아요?”

“음, 전면전이라…….”

새삼 전면전이란 단어를 듣고 보니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특히 오랫동안 베를린에서 근무한 이범진 외무대신이 그랬다. 미국의 국력이 만만치 않게 강성해지고 있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 *



연해주 남부에서 가장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는 곳은 창해(블라디보스톡)와 창주(아르튬), 그리고 창주만―러시아식으로 아무르스키 만―연안 지대였다. 그다음은 당연히 연해주의 주도인 우수리시와 흥개호 주변 지역이다. 이 두 권역에 여러 산업 시설이 들어섬과 동시에 유입 인구도 점증하는 추세였다.

그에 반해 창해의 동쪽 우수리만 동부 해안 지역은 현재 한창 이주 어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해 어촌 위주로 거주지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어민의 이주를 돕고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도로를 뚫고 해안선을 따라 철도를 부설하기 시작했다.

창주역을 기점으로 삼는 이 노선은 이른바 ‘동해연해주선’ 철도로, 우수리만 연안 지역 구간에 대한 부설 공사는 이미 완료되었고, 곧 나호포(나홋카)까지 연결될 예정이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동해연해주선 철도의 1단계 부설 공사가 마무리된다. 다음 2단계 철도는 나호포에서 심곡진과 올가를 거쳐 삼조항 구간까지, 3단계는 청람을 거쳐 향동항까지 부설될 예정이었다.

교통 환경이 개선되자 창주에서 나호포 사이에 분포하고 있는, 쓸 만한 포구마다 어촌이 들어서고 인구도 전보다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철도는 물론, 뱃길까지 열려 있는 창동진의 훌륭한 교통 환경에 주목한 정부는 이 지역에 해군 전용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서둘러 공사를 진행한 끝에 이제 조선소가 완공되어 가동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식으로 볼쇼이카멘이란 이 포구는 창동진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고, 항만 내에 조선소 도크와 초대형 기계들이 들어섰다. 또한 항만의 안쪽에 부두 시설도 만들어져 항구로서 기능도 충실히 수행했다. 아울러 배후에 조선소 직원을 위한 거주지와 상업 지구도 조성되고 있었다.

해군참모총장 박경훈 대장 일행은 창동진역을 나와 항구 안에 있는 조선소로 향했다. 그가 해군 간부들을 대거 대동해서 이곳을 찾은 건 신형 함선 착공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생 많으셨죠?”

“하하, 편하게 왔습니다. 철도 덕분에.”

미리 와 있던 해군 간부들과 조선소 사장을 비롯한 회사 간부들이 나와 이들을 맞아 주었다.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나자 해군 간부는 곧바로 박경훈에게 중요한 내용부터 보고했다.

“한 시간 전에 합참발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총장님께 보고하라며.”

“응? 급한 건가 보네?”

“급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그간 준비해 온 그 작전 계획이 내각에서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오, 그래? 잘됐군. 후후, 그럴 줄 알았지.”

박경훈은 활짝 웃더니 서둘러 조선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