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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제5장 미란 제철소(3)



이른 아침, 청벽반도(에토모반도) 남단에 있는 청벽곶(지구곶)에 오르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북태평양의 물비늘을 목도하게 된다. 이 황금빛 바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특유의 시리도록 파란빛으로 바뀌는데, 수려한 해안 절벽 풍경과 어우러져 사람들의 넋을 빼놓곤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보니, 이곳 무로란[室蘭]을 처음 점령한 대한제국군 장교들은 서슴없이 ‘아름다운 물결’이라는 뜻으로 ‘미란(美瀾)’이란 이름을 부여했다. 내친김에 미란 앞바다부터 시작되는 우치우라 만[內浦灣]조차 ‘미란만’이라 고쳐 불렀다.

그때의 장교들처럼 귀빈들도 청벽곶에 올라 같은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캬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네.”

성영길은 맞바람을 받으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순수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좋죠? 이곳 경치는 보면 볼수록 맘에 들더라고요.”

손영일은 미란에 들어오자 아예 안내인처럼 행동했다. 이곳 제철소를 재가동하는 일이 북해도 개발의 일대 과제라,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청진 제철소 간부들과 같이 이곳을 여러 번 방문해 상황을 직접 챙기곤 했다.

“이곳을 경계로 해서 오른쪽, 즉 서쪽은 미란만 해역이죠.”

미란만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의 내해였다. 해안 배후 지역이 모두 험준한 산지로 이뤄져 있다 보니 해안 평야 지대가 비좁아 연안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자, 그럼 행사장으로 가시죠.”

손영일은 손님들을 제철소로 안내했다.

미란 제철소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인데다 일관 제철소였다. 원 이름은 일본제철 산하 무로란 제철소인데, 1907년 처음에 일본 제강소 무로란 제작소로 출발해서 1909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12년, 북해도를 점령한 대한제국 측은 서둘러 이 제철소를 재가동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대부분 흩어진 상황이라, 잔류한 소수의 일본인 직원을 찾아 회유를 해야 했던 것이다. 또 새로운 인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대한제국 측은 병급 부역자 죄수 중 가장 가벼운 형을 받은, 즉 5년 노역형에 처해진 자들을 대거 데려왔고, 그래도 부족한 인력은 현지 일본인 중에서 신규로 채용했다.

아울러 이 시대 기준으로 첨단 기술이 적용된 대한제국의 다른 제철소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공정을 개선하는 과정도 거쳐야 했다.

원료 수급도 문제였다. 원료를 공급하는 주변 탄광과 철광의 생산량이 최소한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어야 했다.

그렇게 약 2년 동안 땀을 흘린 덕분에 이들 대내외적 조건이 모두 완비됨에 따라 다시 조업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크게 열기로 했는데, 이 제철소가 대한제국의 국영기업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에 아예 ‘미란 제철소 개업식’이란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미란 제철소는 북해도 공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북해도가 대한제국에 귀속되었다는 사실을 일본인 주민에게 재차 각인시켜 주는 효과가 있기에 중앙정부의 대신들까지 초대해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한 것이다.

귀빈들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이들을 맞아 주었다.

“크크,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는 이들은 많지 않네? 억지로 끌려 나온 것 같은 표정인데요?”

장내를 한번 둘러본 뒤, 단상에 있는 자리에 앉으며 성영길이 촌평을 하자 손영일은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럴 수밖에요. 일본인 직원이 뭘 안다고 우릴 환영해 주겠어요. 그래도 억지로나마 미소를 짓고 있잖아요?”

“크크, 그럼 저쪽은 다 일본인이겠네요.”

손영일의 설명을 들은 성영길은 즉시 일본인 직원 그룹의 위치를 알아챘다. 모두가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어도 표정에서 티가 났다. 이제 새로 상관이 된 한국인들에게 잘 보여야 될 필요가 있는 일본인 직원들은 나름 환영한다는 티를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아 누가 봐도 어색하게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맞아요.”

“저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자들은 죄수죠?”

성영길은 객석의 오른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전체 직원의 4할 정도에 달하는 이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여요? 난 그저 침울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바로 인상을 구기고 있는 거죠. 아니, 지들이 뭘 잘했다고 성질을 내?”

“하하, 지은 죄는 멀게, 벌은 가깝게 느껴지는 모양이죠. 죄지었다는 걸 알면 벌도 달게 받겠지만, 그런 자들은 또 죄를 짓지도 않잖아요?”

이태인 광무부대신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저들은 북해도에 들어와 있는 수형자 중에 가장 형편이 좋은 축에 속해요. 저들에게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서 기술을 익히면 형기를 마칠 때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조건도 걸어 줬으니까요. 물론 눈 밖에 나면 그럴 일은 없을 테고.”

가벼운 형을 언도받았다 해도 가족들은 역시 대부분 죄수를 따라 이주했다.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정부가 이들의 재산을 몰수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반역 행위의 대가로 치부한 재산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이미 고향에서 이웃의 눈 밖에 난데다 남은 재산도 없으니, 정부가 내민 이주에 따른 조건부 구제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기, 표정이 밝은 이들은 한국인 간부들이죠?”

“그렇습니다. 내륙의 다른 제철소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가 있죠.”

“아∼ 포로들?”

“그렇습니다. 사실상 하급 간부 역할을 하게 될 이들이라,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포로 출신 일본인 귀화자들은 아무래도 내륙보다 해외 영토에서 일하는 걸 더 선호했다. 특히 같은 일본인이 많이 사는 북해도는 이들에게 최적의 정착지였다. 한편, 남쪽의 은파부 지역으로 가서 일하고 있는 이들도 꽤 많았다.

“직원들 급여 수준은 어떻습니까?”

성영길이 물음에 손영일은 바로 대답해 주었다.

“평사원의 경우, 대개 12원을 받죠. 물론 초임입니다. 그러나 위험도가 높은 일은 위험수당이 붙어 15원까지 올라갑니다. 포로 출신 귀화자는 평균 14원, 간부는 그 역할과 직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광부 월급보다 훨씬 적긴 하나, 북해도 수준에서 보면 꽤 수준이 높은 편이네요. 그럼 수형자들은 어떻게 대우하죠?”

탄광의 광부 월급이 25원이나 되니, 제철소보다 두 배 이상 더 받는 셈이었다. 그래서 한국인 중에도 빨리 돈을 모으고 싶은 이들은 탄광 일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광산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죠. 3원 정도입니다.”

“조금 적군요.”

“남은 가족들도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일본인 직원은 임금 수준에 만족해합니까?”

“예전의 수입보다 훨씬 더 많은 편인데도 아직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대한제국의 원화 가치에 대한 감이 없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아직 우리를 믿지 못한다는 거죠. 허풍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신들은 피정복자니까.”

“하하, 그래요? 그럼 이따가 내 얘기를 들으면 조금 놀라겠네요?”

“아마도요. 하지만 분명 꽤 좋아할 겁니다.”

행사가 시작되자 귀빈들이 차례로 나서 축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성영길이 마이크 앞에 섰다.

“에, 여기 미란에서 미란 제철소와 동시에 우리 제국은행도 영업을 시작할 겁니다.”

제국은행은 국영 은행으로,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은행이었다. 그렇기에 새로 영토로 편입된 지역 중 개발이 시작되는 곳이라면 은행들 중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현재 제국은행은 북해도 내의 지밀과 라온달, 해가람 등 세 곳에 진출한 상태였다. 그리고 성영길의 말대로 이제 이곳 미란에서도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조만간 서창포(오타루)와 마진(하코다테), 가온주(아사히카와), 휘란(네무로)에도 지점이 개설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한제국의 국영 및 민영 회사에 취업해 일하는 분들에 한해 여러분이 보유하고 있는 엔화를 원화로 환전해 주기로 했습니다.”

통역을 통해 성영길의 설명을 들은 직후, 일본인 직원들은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해 웅성거렸다. 그러다 그가 말한 내용 중 주제어가 ‘제국은행 개설’이 아니라 ‘환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곧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간 북해도 잔류 일본인들은 보유하고 있던 엔화를 쓸 수가 없었다. 이미 이 땅의 주인이 바뀐 상황에서 그들 스스로 엔화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해도에 들어온 대한제국 기업이나 공공기관도 엔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나둘 북해도로 진출하기 시작한 제국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불태환 화폐나 다름없는 엔화의 액면 가치만큼 일시에 금이 풀려 나갈 경우, 재정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다.

현재 북해도에 잔류한 일본인 수는 약 3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는 대한제국이 북해도를 완전히 점령한 후에도 출도하길 원하는 주민들을 꾸준히 내보낸 결과였다. 일본 측도 북해도 주민을 흔쾌히 받아주겠다고 하여 잠시 신사협정을 맺고 일본 측이 보내 주는 여객선의 입항을 허락했다.

일본인 주민 이외에 아이누 민족은 예상대로 모두가 잔류했다. 아이누의 인구수 또한 정확히 집계된 건 아니지만, 대략 2만 이하일 것이라 추산했다.

실제로 에도 시대에 아이누 인의 인구수를 26,800명으로 집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이후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가 대폭 줄었을 것이란 설이 있었다.

현재 동부 평원 지대 일대에 아이누 인들을 모아 아이누 자유도를 구성하고 있지만,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이들을 모으는 일도, 또 이주하라고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아 생각만큼 진척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자유도의 구성을 포기하고 사할린처럼 군이나 면 단위의 자치행정 기구를 만들자는 안도 나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30만 인구의 엔화 자산을 한꺼번에 바꿔 주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라 차일피일 미뤄 오던 터였다. 때문에 일본인 주민들은 일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도시 주민은 번듯한 일자리도 없어 대한제국 정부나 민간 기업이 벌이는 여러 공사장에서 품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정부는 이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만주 평원에서 생산되는 저가의 구황작물이나 잡곡을 대거 사들여 이들에게 긴급히 배급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엔화를 환전해 주겠다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에 다들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단, 가구당 교환 가능한 액수는 제한을 두기로 했어요. 금액을 한정하지 않으면 이웃들의 돈까지 모두 모아 대신 바꿔 주는 이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성영길이 콕 짚어서 얘기하자 일본인들은 멋쩍게 웃었다. 벌써 그런 생각을 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 수수료를 챙길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걸 금하지는 않겠지만, 금액에 제한을 두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성영길이 이 조치를 내놓은 건 금 생산량이 크게 늘어 재정이 풍족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건 가능하다 판단한 것이다. 물론 수거된 엔화는 언젠가 반드시 일본 정부에게서 금으로 돌려받을 계획이었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손영일 공상부대신의 용광로 점화 행사가 대미를 장식했다. 귀빈과 동행한 대한통신(CNA) 기자들도 플래시를 터트리며 행사 장면을 스케치했다.

“이제 미란 제철소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북해도 산업도 탄탄하게 발전하겠는데요?”

이태인 광무부대신이 손영일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여긴 산업 개발에 필요한 모든 부존자원이 풍부한데다 전기와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도 훌륭히 구비되어 있으니까요. 아울러 이번 방문 일정에서 빠진 마진에도 이미 개발된 각종 광산과 제련소는 물론, 시멘트 공장을 비롯한 산업 시설이 꽤 많답니다. 전력 사정도 좋고요.”

흥분된 모양인지 손영일의 말이 빨라졌다. 그리고 뭔가 갈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성영길을 바라보았다.

“에휴~ 알겠어요, 알겠어. 이쪽으로 사람을 많이 보내 달라는 거 아닙니까. 정책적으로! 거, 말로 하시지,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세요?”

이태인도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하! 저도 이번 방문으로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캄차카와 북주열도, 사할린까지… 앞으로 북해도가 주변 해외 영토를 모두 먹여 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해양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겠죠.”

“맞습니다. 그러니 가급적 빨리 이곳 현지인들을 대한제국에 완전히 동화시키고 우리 한국인 인구도 늘려야 하는 거죠.”

손영일은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그간 꾸준히 북해도 개발 사업을 진행하며 느낀 게 많은 모양이었다.